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55화 (55/520)

0055 / 0419 ----------------------------------------------

3-8. 닭 쫓던 개.

무언가 허전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는데 요원 셋이 그제야 차에서 내렸다.

“대사님은?”

“다른 차로 출발하셨소.”

어딘지 기분이 찜찜했지만, 굳이 라노크가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출발이다.

김태진의 직원에게 승합차를 손봐서 움직이라 해놓고 세 사람은 우선 병원으로 향했다.

운전은 석강호가 했다.

“나이를 먹는 건 슬픈 일이야.”

김태진은 트렁크에서 꺼낸 붕대로 상처를 감싸고 있었다.

“자넨 괜찮나?”

“다행히 오늘은 이렇게 멀쩡하네요.”

실제로도 다친 곳은 없었다.

“아버님이 강유자동차 강대경 대표 맞지?”

“예.”

왜 그러냔 투로 슬쩍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비무장지대에서 왕으로 불린 양반이 떠올라서 그래. 우리 쪽이고, 저쪽 애들이고 비무장왕이라고 불렀거든. 누구든 걸리면 무조건 목이 달아난다고. 세 명 정도로는 상처 하나 안 입을 만큼 타고난 양반이었지.”

“그게 언제 적 얘깁니까?”

“그렇긴 하네.”

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선 석강호가 속도를 높였다.

***

전화를 해놓아서 유헌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대한민국 어디에서 총상을 입고 옵니까?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이 있는 건가요?”

꿰매고 붕대를 감아주며 유헌우는 아예 고개를 저어댔다.

“스치듯이 살만 갈라놓은 상처라 일주일 정도 입원해 보시고 그 뒤에는 통원해도 되겠습니다. 병실은 전에 쓰던 걸 비워드리지요.”

시원시원하게 치료를 마친 유헌우가 김태진에게 주의사항을 전했다.

세 사람이 병실에 들어가자 서상현이 올라와서 넷이 모였다.

커피를 타고 막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라노크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찬입니다.”

[“무슈 강. 오늘 덕분에 커다란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기쁜 소식이 있는데 샤흐란을 잡았습니다.”]

“예? 언제요?”

[“강찬 씨가 적을 상대할 때 우리 요원들이 덮쳤지요. 현재 대사관에 있고, 내일 프랑스 본국으로 송환할 예정입니다.”]

강찬은 순간 멍했다.

엉뚱한 싸움에 끼어들어 개처럼 싸우고 났더니 닭은 다른 놈이 챙긴 꼴이다.

“대사님. 제가 이해하기가 어려운데요.”

그래서 강찬의 음성은 곱지 않았다.

[“이해합니다, 무슈 강. 하지만 제 입장도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어쩌면 내일 저도 본국으로 함께 갈지 모릅니다. 이후의 일정에 대해선 따로 의논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적인 대화를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강찬은 눈치를 보고 있는 세 사람에게 통화내용을 알려주었다.

“뭐 이런 엿 같은 경우가 있지?”

석강호가 분통을 터트리는 동안에도 강찬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병풍 셋에게 당한 이후로 연타로 내리 멍청한 꼴을 당한 거다.

“그럼 저 새끼들은 우리보고 도와달라고 할 때도 샤흐란을 빼돌릴 생각을 하고 있었단 거 아뇨?”

“그런 거지?”

“그렇잖소? 우리가 이렇게 나선 게 샤흐란을 잡자는 거지, 제 놈 명령을 듣자는 건 아니었잖소.”

강찬이 창밖을 보았다.

이건 아니다.

필요하다면 대사관에 뛰어들어가서라도 샤흐란을 끝장내야 한다.

피식.

‘이것들이 사람을 완전히 병신 취급을 하네.’

강찬은 독하게 마음먹고 전화를 걸었다.

[“무슈 강.”]

라노크는 감정을 배제하려 애쓰는 목소리였다.

“대사님.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전화 드렸습니다. 만약 끝까지 이런 식으로 처리하신다면 그 이후에 나올 결과에 대해 각오해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나직한 한숨이 들렸다.

강찬이 피식 웃으며 전화를 끊으려는 참이었다.

[“잠시만요, 무슈 강! 본국 정보총국에서 살아있는 샤흐란을 요구했습니다. 나 역시 몹시 언짢은 방식이지만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후로 샤흐란이 절대 다른 짓을 못할 거라는 데 제 모든 명예를 걸지요. 그렇게 이해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샤흐란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무슈 강.”]

“그 정도도 안 된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저 역시 제가 알아서 움직이겠습니다. 이후로 불편하게 대면하더라도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무슈 강! 알았습니다. 다만, 10분만 시간을 주시지요. 제가 그 안에 전화하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강찬은 전화를 끊고 내용을 다시 설명해 주었다.

샤흐란의 낯짝을 보면 어떻게 바뀔지는 몰랐으나 적어도 정말 닭 쫓던 개처럼 허공만 바라보는 것은 성격상 용납이 안 되는 일이다.

강찬은 새삼 분통이 터져서 눈이 번들거렸다.

정보국이나 정보총국 따위 두려워한 적은 없다. 좋은 게 좋은 거란 뜻이지, 이렇게 멍청한 꼴을 당할 만큼 바보라는 뜻은 아닌 거다.

잠시 후에 전화를 걸어 온 라노크는 병원에 차를 보낸다고 했다.

“같이 갑시다.”

“그러자.”

석강호의 청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이었다.

“어쩌면 지금 죽이는 것보다 정보국에 잡혀가는 게 더 고통스럽지 않겠나. 배후를 캐기도 그게 더 쉬울 거고. 그러니 자네가 좀 참아.”

“일단 보고 결정하려구요.”

“그거야 자네 판단이지. 하지만 욱하는 일이 없었으면 해서 하는 말이다. 내가 모가지 귀신을 살려 보내자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이니까.”

강찬은 무슨 뜻인지 다 알아듣지는 못했다.

“중국과 프랑스의 신경전일 수 있어. 거기에 위민국과 샤흐란은 그냥 일종의 미끼가 된 거지. 그래서 각자 동선 파악이 서로 안 된 걸 수도 있고. 자네가 좀 참고 냉정하게 판단해주었으면 싶다.”

“알았습니다.”

잠시 후에 주차장이라고 연락이 와서 강찬과 석강호가 병실을 나갔다.

그때까지 한마디도 못하고 있던 서상현이 마법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김태진을 보았다.

“지금 프랑스 대사를 협박한 겁니까? 대사는 그걸 받아들여서 차까지 보낸 거구요?”

“그것뿐인 줄 아냐? 특수군 다섯을 혼자 잡았고, 마지막에 모가지 귀신하고 격투술로 붙어서 저렇게 상처 하나 없이 그놈을 반병신 만들었다.”

“다섯은 총으로 잡았다는 말씀인 거죠?”

“미치겠더라. 엎드려서 발목을 쏘는 것도 그렇지만 달려가면서 두 발에 두 놈을 잡았다.”

“권총으로요?”

김태진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아! 도대체 불가사의네. 칼이야 그렇다고 쳐도 권총 사격은…….”

“두 발에 두 놈을 잡은 것도 그래. 정확하게 한 발씩 쏘더라니까. 나 같으면 우선 몇 발씩 쏘고 봤을 텐데. 당시에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까 섬뜩하더라. 그 상황에서 표적에 명중시킬 자신이 있었던 거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그러게나 말이다. 아무튼, 저 친구는 무조건 우리 회사에 넣자. 잘하면 정부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후.”

서상현이 엄두가 안 난다는 투로 고개를 저어댔다.

***

차는 한강을 건너가 15분쯤 달려서 프랑스 대사관 지하 주차장에 들어섰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다른 직원이 두 사람을 맞았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볼품없이 키가 커다란 직원이 복도를 지나 가장 안쪽의 문을 열었다.

“무슈 강. 어서 오세요.”

라노크는 정장 바지에 셔츠만 입고 있었다.

“대사님. 석강호입니다. 샤흐란과 관계도 있고, 이번에 가족이 납치되기도 했었습니다.”

강찬이 석강호를 소개하자 라노크는 두 사람에게 탁자 앞의 의자를 권했다.

“본국의 결정에 많이 서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배후를 알아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 믿으시고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대사관에는 요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직원들도 있어서 말이 나오지 않도록 내일 새벽에 송환할 생각입니다.”

라노크는 탁자에 있던 주전자를 들어 두 사람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샤흐란은 어디 있습니까?”

“차 한잔 하고 만나기로 하지요.”

“먼저 보고 싶습니다.”

강찬이 강하게 원하자 라노크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따라오시겠습니까?”

라노크가 앞서 가고 강찬과 석강호가 뒤를 따랐다.

방을 나온 라노크는 엘리베이터와 가장 가까운 쪽 방문을 열었다.

강찬과 석강호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샤흐란은 중환자용 침대에 누워있었다.

덥수룩한 수염, 거죽과 뼈만 남은 앙상한 얼굴.

왼쪽 옆구리로 호스 두 개가 꽂혀서 기괴하게 돌아가는 기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의 퀭한 눈이 강찬을 보는 순간 힘이 들어갔다.

강찬이 다가서자 요원 둘이 앞을 막았다가 라노크의 눈짓을 받고 뒤로 물러났다.

“강찬.”

강찬은 말없이 샤흐란을 노려보기만 했다.

여차하면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 기계의 힘에 의지해 삶을 견디는 꼴을 보고 있자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국에서 데리고 가는 거라면 후환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거다.

“날 죽이지 않을 건가?”

움푹 팬 볼을 움직이며 샤흐란이 강찬을 자극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겠는데?”

“후회될 텐데?”

강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궁금하면 내 앞에 또 나타나 봐. 그땐 반드시 모가지를 갈라줄 테니까.”

강찬은 말을 마치고 뒤로 물러났다.

석강호가 이를 악물고 있다가는 고개를 저으며 아예 몸을 돌렸다.

잠시 후, 세 사람은 다시 라노크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북한이 움직인 것을 몰랐던 것 때문에 본국의 정보국이 온통 난리입니다. 강찬 씨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휴우. 저는 일단 내일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배후가 밝혀질 때까지는 돌아오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강찬 씨께는 가끔 전화하겠습니다.”

“그러시죠.”

강찬이 쓰게 웃고는 그만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내일 새벽에 프랑스를 가야 하는 라노크도 그렇지만 여기에 더 있고 싶지도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악수를 나누고 라노크와 헤어졌다. 여러 가지로 사연이 많았다.

지하에서 차를 타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김태진에게 전후 이야기를 전하고 석강호와 둘이 병실을 나섰을 때는 얼추 11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하루가 참 기우.”

왜 아니겠나?

“이상하게 맥 빠지지 않소?”

“그러게 말이다. 쯧!”

“커피나 한잔 하고 갑시다.”

“그러자.”

둘이서 병원 앞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워물었다.

“오늘은 어떻게 온종일 당하기만 한 거야.”

“푸흐흐.”

석강호가 냅킨을 들어 얼른 입을 닦았다.

“잊어버려요. 샤흐란 본국으로 송환되면 이걸로 끝이요, 끝! 이제 우리도 좀 재미나게, 맘 편히 살아 봅시다.”

석강호가 시원하게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그럴까?”

“그러자구요. 큰돈 바라는 것도 아니잖소. 여기저기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구, 다 같이 놀러두 가고. 그렇게 삽시다.”

둘이서 한 시간쯤 킬킬대자 찝찝했던 기분이 좀 풀렸다.

택시를 타고 각자 집으로 향했다.

강찬은 참 깊게 잠이 들었다.

***

새벽에 달리기를 하고 나자 오히려 피곤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좋았다.

찜찜하든 어떻든 간에 혹처럼 붙어있던 샤흐란의 일이 정리된 거다. 한 달쯤 더 지켜보다 경호하는 일도 그만두게 할 생각이었다.

아침을 맛있게 먹고 학교를 향할 때는 기분도 상쾌했다.

스탠드에 허은실과 이호준, 그리고 머저리 같은 놈들이 쭉 앉아서 강찬을 반겨줄 때까지 말이다.

“우리 왔어.”

저것들이 이렇게 부지런한 줄은 몰랐다.

“일찍 나왔다?”

“약속했잖아.”

듣고만 있으면 원래부터 약속을 잘 지켰던 것 같다.

운동부실로 들어서자 석강호도 벌써 나와 있었다.

“저것들을 어쩌우?”

“왕따를 없애준다잖냐. 그냥 애들 뛸 때 같이 달리게 해.”

“그래도 되겠소?”

“안 할 거면 운동부에 뭐하러 나오냐?”

“그도 그렇긴 한데 기존의 애들이 불편할까 봐 그게 걱정이오.”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운동부 아이들이 하나둘 나왔고, 직원 다섯도 나왔다.

강찬은 밖에 있는 아이들이 방학 동안 같이 운동할 거라고 먼저 설명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뜻밖에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게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강찬은 스탠드로 나왔다.

허은실과 이호준을 포함해 대략 1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스탠드에 있었다.

“너희도 오전 달리기부터 같이 해.”

“알았어.”

대답은 허은실이 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으면 돼?”

“가져오긴 했냐?”

“다들 편한 옷은 준비했어.”

“그럼 그렇게 해.”

소위 일진이라는 것들이 운동복을 갈아입겠다고 줄줄이 일어서서 건물로 들어갔다. 하기야 이호준과 허은실을 빼면 나머지는 죄다 2학년들이라 강찬에게 말도 제대로 걸지 못한다.

시간이 되자 직원들 다섯이 앞에 섰고, 그 뒤로 운동부, 마지막에 사고뭉치들이 섰다.

강찬과 석강호가 스탠드에서 그걸 바라보았다.

“거참. 살다가 저놈들이 알아서 뛰는 걸 다 보우.”

“왜?”

“뭘 시켜도 말을 안 들어먹던 놈들이라 그렇소.”

그런가?

강찬은 말없이 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4바퀴를 달렸을 때 새로 온 2학년 놈들 서넛이 줄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놈들은 강찬의 눈치를 살피며 비척거리다가 결국 스탠드로 빠져나왔다.

3바퀴를 더 달렸을 때 운동부는 전원이 뛰고 있었고, 일진 중에는 허은실이 유일하게 꼬리에 남아 있었다.

처음 뛰는 거라 그럴만했다.

피식.

강찬은 달리는 아이들을 보며 웃고 말았다.

지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운동부 아이들 얼굴에 또렷하게 오른 것을 보아서였다.

두 바퀴를 더 돌았을 때 허은실도 결국 대열에서 떨어졌다.

여기까지.

강찬은 석강호와 함께 운동부실로 들어와 기구 운동을 했다. 2시간쯤 지나 운동이 끝났다.

샤워를 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보니 스탠드에 앉은 아이들이 격투술을 불편한 자세로 지켜보고 있었다.

“먼저 씻어.”

“그럽시다.”

당직실은 둘이 샤워하기 어렵다.

강찬은 우선 스탠드로 걸음을 옮겼다.

삐딱하게 앉아 있던 놈들이 얼른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호준이.”

강찬은 이호준을 불렀다.

“어.”

이상한 소리로 대답한 놈이 강찬의 곁으로 왔다.

“어제 그 뱀눈 말이다. 그 위로 학생회장인가 있다고 했지? 그 새낀 또 뭐야?”

“광민대학교 학생회장 오빠가 일진연합 대장이야.”

“전엔 깡패가 끌었다고 했잖아.”

“조직이 없어지니까 그 오빠가 오히려 힘이 세졌어.”

허은실이 대화에 끼어들었는데 궁금한 것을 듣고 싶었던 참이라 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럼 그 새끼만 두들기면 더는 괴롭히는 놈들이 없는 거냐?”

허은실은 대답이 없었다.

“왜? 그래도 또 남는 게 있어?”

“그러려면 이번에 퇴원해서 나오는 애들이랑 힘을 합쳐야 해. 저쪽은 머릿수가 많거든.”

괜히 얘기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강찬은 먼저 몸을 씻을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민 대학교 격투부는 전국에서도 알아줘.”

전국 깡패들이 알아주나?

강찬은 피식 웃고 몸을 일으켰다.

귀찮지만 당분간은 이게 최선이다.

공연히 돌아다니면서 도와달라는 전화질 해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게 백번 낫다.

당직실에서 석강호가 나오자 바로 몸을 씻었다.

개운했다.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였다.

“선배님. 저 형들 점심은 어떻게 해요?”

문기진이 운동부실 앞에서 난처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일진 놈들도 밥은 처먹어야 한다.

“아, 거. 개새끼들.”

방학 동안 점심값 모두를 김태진이 부담하겠다고 한 것을 강찬이 단호하게 거절했고, 이후로 석강호와 둘이서 번갈아가며 내던 참이다.

‘저것들한테 삥을 뜯기는 건가?’

강찬은 일진 놈들 밥값을 내는 것이 홱 기분이 상했지만, 숨을 길게 내쉬며 참기로 했다.

“오늘은 어디에 시킬 거냐?”

“분식집이요.”

“그럼 난 돈가스로 해주고 쟤들 것도 받아줘라.”

“예, 선배님.”

답을 한 문기진이 메모장과 볼펜을 들고 스탠드로 향했다.

강찬은 운동부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잠시 뒤에 배달이 왔고, 남학생들은 다 같이 스탠드에서 밥을 먹었다. 처음엔 어색하더니 자주 하니까 이제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오후엔 뭐할 거요?”

“병원에 가볼까 하는데. 왜? 다른 일 있어?”

“그냥 뭐 하려는지 궁금해서 그렇수.”

석강호가 단무지를 두 개를 동시에 입에 털어 넣고는 강찬을 보았다.

“샤흐란도 없어지고 했으니까 우리 가평이나 한번 다녀옵시다.”

강찬은 풀썩 웃으며 그러자고 했다.

샤흐란의 일이 끝난 거다.

그에 맞게 디아이부터 하나씩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