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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닭 쫓던 개.
운동부실에 도착했을 때 석강호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고 있었다.
“어쩐 일이오? 어? 대표님도 오셨네?”
“기쁜 소식이 있지.”
강찬은 정수기로 다가가 커피를 탔다.
“뭔 소식인데요? 샤흐란이 있는 곳이라도 나왔소?”
물에 담겼던 티스푼으로 커피를 타던 강찬이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어? 그 웃음은 뭐요? 설마 정말 그런 거요?”
“아직 정확한 위치는 모르는데 인천 검단 쪽인 건 알았나 보더라. 뒤지다가 알게 되는 대로 연락 준단다.”
“와아!”
강찬은 김태진과 석강호에게 커피를 건네주고 의자에 앉았다.
“저쪽에 요원들이 있다니까 그쪽을 덮치는 건 일단 둘이서 하자.”
“알았수.”
수건을 빈 의자에 걸치며 석강호가 시원하게 답을 한 직후였다.
“석 선생하고 둘이서만? 그럼 나는?”
“위민국이 검단에 없는 거잖아요.”
“그렇지.”
김태진이 얼떨떨한 얼굴로 답을 했다.
“샤흐란이 몰리면 어떤 식으로든 연락이 갈 거고, 그럼 위민국도 움직이겠죠. 밖에서 대기하고 계시다가 그때 승부를 보시죠.”
“그것도 괜찮군.”
“푸흐흐. 샤흐란, 이 새끼. 이번엔 확실하게 끝낼 수 있겠구려. 개새끼. 봐서 거꾸로 매달아 놓읍시다.”
강찬이 석강호를 따라 웃었다.
대충 인천의 검단지역으로 이동해서 기다리기로 했다.
오후 4시쯤이었다.
김태진의 차로 이동했고, 차가 출발하자 석강호는 뒷자리에서 바로 잠이 들었다.
“피곤한 건 이해하겠다만 이런 일을 앞두고 실제로 잠을 자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룸미러로 석강호를 흘깃 본 김태진의 말이었다.
원래 저런 놈인 걸 어떻게 하겠나?
강찬은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퇴근 시간 전이라 길이 막힌다는 느낌은 없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그런데 전화가 와서 들어보니 오광택이었다.
“여보세요?”
[“나다. 통화 좀 괜찮냐?”]
“말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서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너, 권세직 아들 새끼 팔 부러트렸냐?”]
“이름은 모르겠고, 뱀눈같이 생긴 놈 팔을 부러트린 건 있다.”
[“울산공원 앞에 권세직 건물에서?”]
“맞아.”
김태진이 ‘이건 또 뭔 소리야?’ 하는 눈으로 강찬을 슬쩍 보았다.
[“신영동파라고 옛날 영동파 애들 모은 놈이 권세직이다. 이 새끼가 아마 우릴 치기 위해 명분이 필요했던 모양인데 네 이름을 앞에 걸었다. 그까짓 놈 무섭진 않은데 혹시 모르니까 당분간이라도 조심 좀 해라.”]
“깡패들이 싸우는 데 명분이 필요해?”
[“네가 몰라서 그래. 이 바닥도 남의 구역 함부로 치고 들어오면 위아래에서 압력 주거든. 월등히 힘이 세면 모를까, 비등비등할 때는 그런 핑계로 시비 걸고, 누가 중재해주면 업소 하나 뜯어가려고 할 때도 많아. 아무튼, 며칠만이라도 몸 좀 챙겨.”]
“알았다.”
강찬은 전화를 끊고 낮에 뱀눈의 팔을 부러트린 일부터 오광택과의 통화내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권세직 그놈, 야비해서 깡패라기보다는 모사꾼에 가깝다고 들었다. 평가도 안 좋고. 그런데 그놈 밑에 있으면 가게든 건물이든 하나씩 챙기게 되니까 애들이 제법 따르는 모양이더군.”
설명을 하면서도 김태진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요즘은 돈 많은 깡패가 제일이야. 아무리 잘해줘도 돈 없으면 곁을 떠난다더군. 그런 면에서 오광택이는 평가가 좋아. 애들 굶기지 않고, 또 그들 세계의 의리 중요시하고.”
“그래 봐야 깡패인 거잖아요.”
“그렇지.”
자동차 전용도로를 나오자 도로 폭이 좁아지면서 길이 막히기 시작했다.
“여기 산업도로를 타고 넘으면 바로 검단인데 그쪽은 제대로 된 식당이 없어. 차라리 이 근처에서 저녁 먹으면서 기다리자.”
“그러죠.”
김태진은 주차장이 넓은 한식당에 차를 세웠다.
깊은 잠에 빠졌던 석강호를 깨워 가게로 들어간 다음, 김치찌개 3인분을 주문했다.
“아까 그 얘긴데요.”
밑반찬이 나올 때 강찬이 조용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낮에 내내 찜찜했거든요. 깡패라는 놈들이 너무 허술해서 기가 막힐 정도더라구요. 그랬더니 결국 뒤에 술수가 있던 거지요.”
김태진이 물을 마시며 강찬의 말에 집중했다.
“만약 검단에 우리와 라노크의 시선을 쏠리게 한 게 같은 맥락이라면, 저놈들이 원하는 게 뭘까요?”
“검단이 미끼라고 생각하자는 거지?”
“그렇죠.”
찌개를 놓아준 아주머니가 가스 불을 켜고 돌아섰다.
각자 그럴만한 이유가 뭐가 있을까를 생각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석강호였다.
“저놈들이 시종일관 노린 건 라노크잖소.”
“그렇지.”
강찬의 답에 김태진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두 사람이 다음 말을 기다리자 석강호는 수저로 찌개를 뒤적였다.
“그렇다는 거요.”
하기야, 석강호에게 뭘 더 바라겠냐?
그것도 머리 쓰는 일을.
김태진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전화기를 들고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수고들 많다. 지금은 어디에 있나?”
석강호가 불을 줄이며 김태진의 통화에 집중했다.
“파주? 그쪽에 공업단지가 있나? 어. 어. 그래. 알았다.”
전화를 끊은 김태진이 위민국이 파주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웃렛에 들렸다 외곽의 식당에 막 들어갔다는데? 라노크에게 전화를 한번 해보지?”
찌개가 먹기 좋게 끓었는데 누구도 수저를 들지 못했다.
강찬은 얼른 전화를 들었다.
[“대사께서는 면담 중이십니다.”]
“강찬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무슈 강.”]
“대사님 지금 대사관에 계신 건가요?”
잠시 뜸이 있었다.
위치를 알려줘도 되겠냐는 질문을 한 모양이었다.
[“리옹과 파주가 자매결연을 맺어서 그 행사에 와 계십니다. 이곳에서 저녁 식사와 행사 하나를 마치고 출발할 예정입니다.”]
강찬이 입 모양으로 ‘파주’라고 알려준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 들으세요. 대사님이 위험합니다. 북한 쪽 특수요원들이 그쪽에 있을 확률이 높아요. 지금 바로 갈 테니까 정확한 위치를 주세요.”
[“무슈 강. 놀라운 정보이긴 하지만 이 부분은 대사님의 허락이 있어야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파주 쪽으로 출발할 테니 가능한 대사님과 빨리 통화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근처에 요원이 몇 명이나 있나요?”
[“그 점도 함부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슈 강.”]
“이해합니다. 다만, 대사님과 빠르게 통화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세요. 정말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전화 끊고 5분도 되지 않아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이 동시에 일어났다.
“파주와 리옹이 자매결연을 맺어서 그 행사에 가 있답니다.”
차가 출발하자 마음이 복잡했다.
잘못된 판단이면 샤흐란을 놓치는 것은 관두고 공연히 오지랖 넓은 짓 해서 일을 망치는 꼴이 된다.
‘일단 가자. 가서 라노크를 구하는 게 우선이다.’
도망간 놈은 나중에라도 죽일 수 있지만 한번 죽어버린 사람은 절대 되돌리지 못한다.
강찬이 결심을 굳혔을 때 뒷자리에서 석강호가 전화기를 넘겨 주었다.
“여기네. 오늘 리옹과 자매결연, 밤에는 횃불을 들고 산천어 잡이 축제도 있고.”
차를 한쪽에 세운 김태진이 위치를 들여다보았다.
“위민국이 어떤 식으로 라노크를 공격할지, 짐작하기 어렵다.”
“라노크의 차가 벤츠고 방탄이라고 하던데 그거면 괜찮지 않을까요?”
“도주하는 거라면 방탄차가 도움되겠지만, 길에 세워놓고 공격당하는 거면 10분을 견디기 어렵지. 방탄유리가 결로 찢어져 버리니까.”
장소를 숙지한 후에 차가 다시 출발했다.
“아예 위민국을 먼저 덮쳐버릴까요?”
김태진이 운전석에서 얼른 시선을 돌렸다.
“뒷수습이 문제가 되나요?”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만약 오늘 아무런 일이 안 나면 아예 우리는 위민국을 덮치자.”
김태진이 굳은 결의로 말을 한 뒤로 특별한 대화는 없었다. 그는 새로 난 국도는 물론이고 예전의 도로까지를 상세히 알아서 목적한 곳에 어렵지 않게 도착했다.
“저게 대사의 차인 모양이지?”
“여기서야 사고 못 칠 거고 역시 끝나고 나갈 때를 노리는 거겠죠?”
“그렇겠지.”
세 사람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트렁크를 열고 대검을 골라서 등 뒤에 꽂았다.
“흉갑은?”
“시선이 너무 끌려요.”
김태진이 잠시 고민하더니 그대로 트렁크를 닫았다.
강찬과 석강호가 잠시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였다.
라노크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대사님?”
[“무슈, 강. 검단이 아니라 이쪽에서 나를 노리고 있다는 말이 신빙성이 있는 겁니까?”]
“어느 정도는요. 북한군 출신 중국인이 주변에 있는 것도 그렇고요.”
놀란 듯한 숨소리가 먼저 들렸다.
[“우리 정보국에서도 몰랐던 일을. 강찬 씨의 능력은 정말 놀랍군요. 인원은 얼마나 동원했소?”]
“알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저희 쪽은 세 명이 대기 중입니다.”
[“알겠습니다. 행사 끝나면 전화 드리고 함께 출발하지요.”]
“예, 그렇게 하시죠.”
통화가 끝났다.
강찬은 오히려 속이 후련해졌다.
지루하기만 하던 싸움이 오늘 끝장나는 거다.
유럽의 판세가 어쩌고 하는 일에 왜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는지는 몰라도 오늘 결판내면 된다.
“강찬.”
도로의 바깥쪽에 앉아서 목을 풀고 있던 강찬을 김태진이 다급하게 불렀다.
“모가지 귀신이다.”
후다닥.
강찬과 석강호가 얼른 몸을 일으켜서 김태진의 시선을 따라갔다.
“승합차 보이지? 위민국 말고 다섯 놈 더 탔다. 다른 차는 안 보였고.”
김태진이 승합차의 앞과 뒤를 멀찍이 살펴보았다.
“저 정도면 라노크를 잡는 데 충분하긴 하겠다.”
승합차는 정식 주차장 외곽에 세웠다. 위민국은 차에서 내려 음료수와 물 따위를 사서 다시 차에 올랐는데 이후로 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김태진이 미행하던 직원들에게 확인한 결과 오후에는 이 인원만 돌아다닌 것도 맞다.
“샤흐란을 버린 거로군요. 일단 급해서 구해봤는데 영양가가 없으니까 미끼로 던지고 라노크를 노린다는 계획이었나 본데요.”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저놈들 뒷수습은 누가 합니까?”
“우리 쪽에서 알아서 한다. 내가 볼 때 라노크는 중국이나 북한에서 요원이 들어온 것까지는 알아도 정확하게 누가 온 건지는 모르는 모양이니까 그런 식으로 처리하마.”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고 멀리서 횃불이 보였다.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악을 쓸 때마다 사람들이 환성을 질러댔다.
강찬의 전화가 울렸다.
[“대사님 차량 출발합니다. 전화 끊지 마세요.”]
라노크가 아니라 이전에 통화했던 요원이었다.
셋이 얼른 차에 타고 주차장에서 벤츠가 나오길 기다렸다.
[“주차장 나갑니다. 확인되셨나요?”]
“봤어요. 뒤를 따라가죠.”
강찬의 말에 따라 김태진이 라노크의 차량 뒤에 붙었다.
승합차가 뒤늦게 움직였으나 강찬의 뒤에 붙었다.
“저쪽에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 원래 적막하지. 신설도로라 아직 가로등도 제대로 없고.”
김태진이 앞쪽에 펼쳐진 언덕을 가리켰다.
언덕을 넘어가서였다.
벤츠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빠져 숲으로 난 길로 들어섰다. 김태진과 강찬은 당연히 따라갔는데 승합차도 멈추지 않았다.
바닥의 굴곡이 자동차의 진동으로 고스란히 느껴지는 길을 지나 으슥한 곳에서 벤츠가 멈춰 섰다.
“라노크는 안 타고 있겠군.”
김태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문을 열었다.
강찬과 석강호가 그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승합차에서 아직 한 명도 내리지 않았을 때였다.
뒤에서 승용차가 한 대 더 들어와 승합차의 뒤를 막아버렸다.
“미행하던 우리 직원이다.”
강찬은 승합차만 보고 있었다.
조수석에 타서 자신을 보고 있는 놈.
전에 호텔에서 눈이 마주쳤던 놈이 분명했다.
“젠장! 피해!”
강찬은 다급하게 외치고 석강호의 뒤통수를 당겼다.
김태진도 얼떨결에 강찬을 따라 달렸다.
철컥. 드르륵.
모두 여섯 명이 차에서 내렸다.
강찬은 벤츠의 창을 두들겼다.
티잉. 팍. 티잉. 팍.
그때 총성이 들리며 벤츠에서 불똥이 튀었다.
“총 가진 거 빨리 줘.”
놈들이 빠르게 벤츠로 다가올 때 요원이 소음기 달린 권총을 건네주었다.
티이잉. 티잉. 티이잉.
적들이 급하게 몸을 숙이며 옆으로 튀었다.
“나머지도.”
총알이 날아들고 적의 숫자가 많은 터라 곧바로 총 두 자루가 더 나왔다.
강찬은 김태진과 석강호에게도 총을 건네주었다.
“아, 이 미친 개새끼들.”
소음기를 달았다고 영화에서처럼 ‘푸슉’ 하는 정도로 소리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냥 ‘타앙’ 하는 소리가 한 꺼풀 죽어서 나온다고 보는 게 맞다.
이 정도면 듣는 사람은 누구든 총소리인 줄 안다.
대한민국에서 총을 쏴대면 어쩌자고?
그건 나중 문제고 지금은 우선 살아나는 게 중요했다.
강찬은 석강호에게 검지와 중지로 승합차를 가리키고 김태진에게 우측을 가리켰다.
글록 19이니까 장탄수, 막말로 15발 정도 있다고 보면 된다. 그중 앞에서 3발을 쐈다.
적들도 함부로 총을 쏘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그렇다고 오래 시간을 끌지도 못한다.
이미 총소리가 울린 다음이라 언제 군이나 경찰이 달려올지 모른다.
‘라노크가 대단한 인물이긴 한가 보군.’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총을 쏘게 만들 정도의 인물이란 뜻이다.
손에 담긴 권총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 시간을 끌면 무조건 우리 쪽이 유리하다.
강찬은 소리 나지 않게 벤츠의 바닥에 엎드렸다.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티잉. 티잉. 티잉.
석강호가 엄호사격을 하자 승합차에서 불똥이 튀었다.
‘오케이!’
급하게 한 놈이 몸을 움직였다.
티이잉.
“끄으윽.”
털썩.
발목이 나간 놈이 바닥에 넘어질 때 다른 놈이 또 움직였다.
티이잉.
털썩.
두 놈.
강찬은 다른 놈 하나가 타이어 뒤에 발을 감추는 걸 보았다.
티잉. 티이잉. 티이잉.
푸슉. 덜컹.
“끄윽.”
털썩.
세 놈.
타이어가 터지며 승합차가 그쪽으로 주저앉을 때 또 한 놈이 바닥에 쓰러졌다.
세 놈 남았다.
적이 반으로 줄면 대개 비슷한 행동을 취한다.
특수 부대라 다르지 않냐고?
지랄. 죽게 생긴 놈들과 작전에 실패하게 생긴 놈들은 거짓말처럼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남은 놈들끼리 한자리에 모이는 거.
“다예.”
강찬은 석강호에게 바닥을 가리켰다.
적이 똑같은 방법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거다.
석강호가 얼른 벤츠의 아래로 엎드려 권총을 앞으로 겨눴다.
강찬은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한 놈만 맡아주세요.”
김태진이 당황한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내가 달려나가면 가장 왼쪽. 아셨죠?”
김태진이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강찬이 왼손 검지, 중지를 차례로 편 다음 재빠르게 벤츠의 오른쪽으로 달려나갔다.
후다닥.
티이잉. 티잉. 티잉.
석강호가 먼저 총을 쐈다.
티잉. 티잉. 티잉.
그리고 김태진이 연속해서 총을 쏴댔다.
강찬은 아예 승합차를 향해 곧바로 달렸다.
티이잉.
털썩.
티이잉.
털썩.
두 발에 두 놈이 끝났다.
그런데 모가지 귀신이 보이지 않았다.
티이잉.
“윽!”
강찬이 서 있던 승합차의 반대편에서 총소리가 나더니 김태진이 어깨를 맞고 바닥에 넘어졌다.
강찬은 승합차의 뒤를 빠르게 돌았다.
터억.
위민국과 강찬은 동시에 상대의 권총을 밑으로 눌렀다.
퍼버버벅. 퍼벅. 퍼버버벅.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번인지 모를 정도로 손이 오갔다.
파악. 팍.
그리고 거의 동시에 둘이서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대검을 꺼냈다.
이런 놈을 김태진이 상대한다고?
“간나 새끼.”
뭐래는 거야?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것이 없다.
강찬은 빠르게 앞으로 달려들었다.
터덕. 터더덕. 퍼벅.
‘이런 사람이 있구나.’
연습할 때마다 만들었던 가상의 적이 현실에 나타난 느낌이었다.
손짓하나, 눈길 한 번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 사내.
휙! 휘익! 퍼벅.
대검의 날이 눈 바로 앞을 지나가도 상체를 빼지 않는 독종은 처음이었다.
퍼버벅. 피윳!
강찬이 손목을 세차게 긋자 위민국이 얼른 두 걸음을 물러났다.
“하아! 기가 막히누만. 대업을 망치는 것도 기렇고, 그 솜씨도 기렇구.”
위민국은 손목을 꾹 눌러 잡고 강찬을 노려보았다.
마무리를 해야 했다.
강찬은 대검을 고쳐 들고 위민국에게 다가갔다.
위민국이 이를 악물며 강찬에게 달려들었다.
퍼버벅. 피윳! 피윳! 피윳!
그러나 이미 싸움은 기울었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한칼을 먹은 후에 위민국은 힘없이 뒤로 밀렸다.
푹. 푹. 푹. 푹.
강찬이 겨드랑이와 어깨를 찍은 다음, 연달아 양쪽 어깨의 근육을 갈라버렸다.
피윳! 피윳!
이 정도 해놓으면 이놈은 앞으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덜컹!
밀려난 위민국이 승합차에 부딪히며 몸을 세웠다.
‘이걸 죽여야 하나?’
강찬이 잠시 고민할 때였다.
“강찬.”
김태진이 오른쪽 어깨를 떨군 채로 강찬을 불렸다.
“보내주자. 총소리가 울려서 이대로 보내는 게 낫겠다. 어차피 근육은 다 갈라버린 거 아니냐?”
강찬이 시선을 돌렸을 때 위민국은 허탈한 얼굴이었다.
“가라.”
라노크를 구한 거고, 위민국과 다른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강찬이 고갯짓을 하며 차를 가리켰을 때 김태진이 말을 덧붙였다.
“위민국. 승합차는 내일 우리 직원을 시켜서 보내줄 테니 당장은 가장 뒤에 있는 차를 타고 가라.”
위민국이 고갯짓만 했다.
다리를 저는 세 놈이 상체가 피범벅인 두 놈을 억지로 차에 태웠다.
위민국이 타자 차가 곧바로 출발했다.
정원 초과라 뒷자석이 무척 좁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