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52화 (52/520)

0052 / 0419 ----------------------------------------------

3-7. 뒤통수를 쳐?

학교에 들어선 강찬은 뜻밖의 광경에 눈을 끔벅였다.

경호 회사 직원들과 운동부 아이들이 줄을 맞춰서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지가지들 한다.

강찬이 운동부실에 거의 도착했을 때 안에서 김태진이 나왔다.

“일찍 오셨네요.”

“누구 말이라고 게으름을 피워?”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석강호 선생은 교무실에 다녀오신다던데?”

“바쁘시지 않으면 기다렸다가 함께 얘기하죠.”

“그러지.”

김태진이 편하게 대답하고는 운동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나이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진 걸 다 주고라도 그렇게 하고 싶네.”

이 학교에 김태진까지 다시 태어나?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다.

“주말에 자기들끼리 연습을 했던 모양이더군. 어디를 어떻게 맞았는지 되새기고 자세 연구도 하고. 무엇보다 눈빛이 살아난 게 마음에 들어.”

“다행이네요.”

“팔이 부러졌던 직원은 유급 휴가를 줬다. 지리산에 가서 아침저녁으로 산을 타겠다고 하더군. 눈빛은 그놈이 제일 살아났어. 팔에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비겁했던 모습을 되새기겠다면서, 자네를 소개해줘서 고맙다고 허리를 꾸벅 숙이더구먼.”

강찬이 풀썩 웃자 김태진이 슬쩍 시선을 주었다.

“이곳에 오고 싶어하는 직원들이 많아.”

“월수금에 석강호 선생이 가기로 했잖습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와주면 싶은데 어때?”

“생각해 볼게요.”

단박에 거절하기 어려워서 강찬은 답을 미뤘다.

석강호와 그의 가족을 구할 때 보여주었던 모습 때문이었다.

“어? 언제 왔소?”

둘이서 운동장을 보고 있자니 석강호가 뒤에서 다가왔다. 말을 뱉고는 조심스러운지 주변을 살폈다.

“어디 셋이서 얘기할 만한 데 없을까?”

“그럼 당직실로 갑시다. 담배 피우기도 그렇고, 차도 한 잔 마실 수 있어서 거기가 제일 좋수.”

“그러자.”

세 사람은 곧바로 당직실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요.”

“학교에 이런 곳이 있었구만?”

김태진이 신기한 듯 당직실을 두리번거렸다.

석강호가 커피를 타서 건네준 다음이다.

강찬은 금요일에 라노크와 만났던 이야기, 어제 통화한 내용, 그리고 수요일 야구장에 라노크가 나오기로 한 일들을 차례대로 설명했다.

말이 끝나자 김태진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프랑스의 대선에 유럽 판도가 바뀔 일이라니, 이 정도면 우리나라 정보원에서도 어느 정도는 감을 잡고 있겠는데?”

“친구분이 계시다면서요?”

“맡은 분야가 아니면 다른 쪽 내용은 전혀 알기 어렵지. 심지어 타부서 직원 이름도 모르는 곳이니까.”

하기야 정보를 처리하는 곳이니까 충분히 그럴만도 하겠다.

“제 생각에는 샤흐란이 라노크를 제거하고 우리나라를 뜰 거 같거든요. 그런데 금요일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놈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라노크가 이번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싶은데요.”

“그렇진 않을 거야.”

김태진이 고개를 모로 틀며 입을 열었다.

“프랑스 정보총국의 능력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지. 용병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들을 계속 보급하니까. 게다가 중국 쪽이 움직인 것까지 알고 있는 눈친데 설마하니 방심할 리가 있을까?”

듣고보니 그렇기도 하다.

“경호 업무는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우리의 신분이나 임무를 밝히지 않는 것도 문제가 돼. 프랑스 요원들이 우리를 적으로 오인할 수도 있고. 쉽지 않은 문젠데.”

전투는 몰라도 경호에 경험이 없는 터라 강찬은 고개만 끄덕였다.

“우선 관객석과 외곽에 우리 직원들을 깔아놓자. 저쪽도 요원을 동원하는데 한계가 있을 테니 그것까지는 문제 되지 않을 거다.”

김태진이 입술에 힘을 주고는 잠시 계산하는 눈치였다.

“총을 사용하지 못하는 거라면 그럭저럭 막을 수도 있겠는데…….”

“총기를 사용한다면요?”

강찬의 질문에 김태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조건 죽는다고 보는 게 맞아. 프랑스 대사의 비공식 일정이라 사전 점검을 하기도 어려울 거고.”

강찬은 남은 커피를 입에 털어 넣다가 불쑥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럼 우리가 전날 저격 장소를 미리 선점하고 있는 것은 어떻겠어요? 보셔서 위험하다 싶은 곳에 직원들을 배치해 놓으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총을 쓸 수 있다고 가정하는 건가?”

“유럽의 판도가 뒤집히는 일이라면 일단 해치우고 수습하지 않을까요? 저라면 그렇게 할 것 같은데요?”

김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흠. 내가 전날 야구장을 사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게 빠르겠군.”

“잘못하면 라노크 쪽에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은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김태진이 상체를 불쑥 들었다.

“아! 그래서 모가지 귀신이 느닷없이 한국에 들어온 건가? 라노크를 제거하려고? 그놈이라면 북한의 특수군단 애들을 동원할 테니까.”

강찬과 석강호의 시선에 김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샤흐란은 어차피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라면서? 거기에 중국이든, 프랑스든 기본적으로 라노크를 죽이게 되면 외교적 분쟁에 시달리게 되지. 그런데 북한이라면 이야기가 달라. 정보를 주는 데만 200억을 쓸 수 있는 자들이라면 라노크를 직접 죽여주는 데 얼마를 쓸까?”

“그렇다는 건 총기를 쓸 확률이 높다는 거네요?”

“그렇게 되지.”

뭐가 이렇게 복잡하게 꼬이지?

강찬이 인상을 찌푸리자 김태진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 길로 회사에 가봐야겠다. 용인에 있는 시립 야구장이라고 그랬지?”

“예.”

김태진을 따라 강찬과 석강호도 당직실을 나왔다.

아이들 절반쯤이 새빨개진 얼굴로 스탠드에 있었고, 나머지는 아직 운동장을 돌고 있었다.

김태진과 헤어진 두 사람은 운동부실로 들어갔다.

당장은 어수선해서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오전에는 저 친구들이 애들 기본자세를 잡아주고 오후에 내가 교육하기로 했수.”

“누구 생각이냐?”

아이들을 위해서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저 친구들이 먼저 그리 말합디다. 뭐해요? 운동이나 합시다.”

그래. 그게 현명하겠다.

석강호를 따라 강찬도 몸을 일으켰다.

강찬은 1시간쯤 석강호와 함께 기구운동을 하고 다시 30분쯤 격투술을 연습했다.

적당한 근육의 긴장과 노곤한 느낌이 기분 좋았다.

당직실로 가서 몸을 씻은 후, 옷을 갈아입고 돌아왔을 때 석강호는 오후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당히 해라. 그러다 쓰러지는 거 아니냐?”

“그렇지 않아도 보약 하나 먹고 있수.”

“잘했다.”

“확실히 이렇게 운동하니까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수. 둔한 몸도 좀 빨라진 것 같고.”

하기야 예전의 기억이 남았다면 어느 정도는 실력을 찾을 거다. 다예루가 다른 건 몰라도 싸움 하나만큼은 타고난 놈이다.

“대장.”

“왜?”

“수요일에 나도 갑시다.”

운동실에서 다예루가 씩씩거리며 강찬을 노려보는 느낌이었다. 나무에 매달려야 했고 가족이 납치당한 것에 대한 분노가 그의 눈에 온통 담겨 있었다.

“말리면 화낼 거냐?”

“그거 잔인한 짓이오.”

강찬이 먼저 “푸흐흐.”하고 웃었는데 석강호는 따라 웃지도 못하고 있었다.

“알았다. 그렇게 하자.”

“푸흐흐흐. 고맙소.”

샤흐란이 얽혀있는 일이고, 납치당한 것도 있는데 무조건 빠지라고 할 수도 없었다.

웅웅웅. 웅웅웅.

그때 전화가 울려서 강찬이 얼른 전화기를 들었다.

미쉘이었다.

강찬은 고개를 저어 보인 다음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 미쉘.”

[“차니. 잠깐 통화 괜찮아?”]

그나마 이성을 찾은 음성이었는데 아직 흥분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것처럼 들렸다.

“괜찮아. 말해.”

[“드라마 제작과 관련해서 엄청나게 문의가 들어왔어. 전에 알던 작가가 써놨던 작품도 섭외해 놨고. 투자가 알려지면서 매니지먼트 쪽에서 섭외가 대단해. 이쪽 일은 이대로 그냥 진행하면 되겠지?”]

제대로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전화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우선 미쉘이 원하는 방향으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시간 날 때 의논하는 걸로 하자.”

[“책이 나왔으니까 적당한 역할은 우리 쪽 애들 위주로 배역을 줄 거고, 나머진 오디션으로 처리할게. 아래층 사무실 공사는 이번 주에 끝난다니까 다음 주 월요일쯤 한 번 들렀다가 가.”]

“알았다. 그렇게 할게.”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을 때였다. 거짓말처럼 진동이 울렸다.

강찬이 눈짓을 하자 석강호가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여보세요?”

[“샤흐란이다. 계좌와 비밀번호를 전해줄 테니 메모해라.”]

강찬이 허공에 손으로 글씨 쓰는 흉내를 내자 석강호가 얼른 메모지와 볼펜을 전해주었다.

“불러.”

[“계좌번호는 13765-golden-33255, 비밀번호는 888-sprteu-2010, 이상이다. 입금을 확인할 수 있도록 10분 뒤에 전화하지. 그때 라노크의 일정을 받겠다.”]

“알았다.”

샤흐란이 전화를 끊었다.

“왜 그러쇼?”

“이 새끼가 왜 이렇게 당당하지? 막말로 내가 이 돈 다른 곳에 빼돌릴 수도 있는 거잖아?”

“그렇기도 하우.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가?”

“일단 라노크에게 전하고 나서 생각하자.”

강찬은 라노크에게 전화를 걸어 받은 계좌와 비밀번호를 넘겨주었다.

“대사님. 샤흐란이 이렇게 쉽게 계좌와 비밀번호를 넘겨주는 것도 수상합니다. 혹시 계좌를 조사할 때 참고 하시고 10분 뒤에 전화한다니 그때 장소와 시간을 전해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 있으면 강찬 씨에게 전화드리지요.”]

라노크의 정중한 음성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전화를 끊자 짜증이 확 솟구쳤다.

“왜요? 가만있으라고 그럽디까?”

아차차! 석강호는 프랑스어를 모른다.

“그게 아니라 계좌번호 주고받으면서 머리 쓰는 게 짜증 나서 그런다. 이 개새끼, 어디 있는지만 알면 다 끝나는 건데 유럽의 판도니 지랄이니 내가 알 게 뭐냐.”

“푸흐흐. 어쩐지 잘 참는다 했수. 그러지 말고 샤흐란하고 통화 끝나면 오랜만에 옥상이나 다녀옵시다. 내가 볼 땐 니코틴 부족이요.”

내 속이 보이나?

강찬은 가슴을 한번 슬쩍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 봐야 이틀이오. 아니어도 이번 주면 샤흐란도 움직일 거 아니오?”

“너랑 둘이서 싸우는 거면 겁날 것도 없어. 이 새끼들이 비겁하게 인질을 잡을까 봐 그런 거지.”

“이번엔 꼭 죽여버립시다.”

“그러자.”

석강호와 둘이서 히죽거리고 있자니 샤흐란의 전화가 울렸다.

“샤흐란. 적을 준비가 됐나?”

[“말해라. 강찬.”]

“용인시립 야구장. 오후 3시.”

[“틀림없겠지?”]

강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샤흐란은 기분 나쁜 웃음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 새끼. 반드시 뭔가 있는데?

“또 그런다. 얼른 옥상이나 갑시다.”

석강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강찬에게 손짓을 했다.

“거기 아뇨. 여기! 이쪽 2학년 교실로 가요.”

운동부실을 나온 석강호는 2학년 건물을 가리켰다.

“3학년들은 자습하느라 거의 학교 나와요. 가뜩이나 공부에 스트레스받는 애들이 마음 푸는 곳이니까 차라리 이쪽으로 가는 게 맞소.”

확실히 선생이라 아는 게 많다.

그런데 이 새끼가 언제부터 이렇게 배려심이 많아졌지?

강찬은 잠자코 석강호를 따라 2학년 건물로 향했다.

2학년도 생각보다 많이 나와 있었다.

계단과 복도에 흩어졌던 아이들이 아직도 강찬을 보고는 시선을 떨구거나 몸을 피했다.

마침내 옥상이다.

강찬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남학생과 여학생 몇 명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계집애들은 낯이 있었다.

어디서 봤었지?

생각났다.

허은실의 병풍을 하던 년들.

3학년 여학생이 2학년 교실 옥상에 있는 것이 의아했지만, 다리 달린 년들이 어딘들 못 가겠나.

강찬과 석강호는 옥상 문에 기대앉아 느긋하게 담배를 피웠다.

살 것 같았다.

“그거 아쇼? 교무실에서 대장 졸업 안 시키면 안 되냐는 말이 나온 거?”

뭐라는 거야?

“푸흐흐. 뭘 그렇게 놀란 얼굴이요? 일진 애들 사고 안 치지, 왕따 애들 확 줄었지. 선생들 중에 그리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말이오.”

“훈련소를 다시 가면 갔지 학교는 아니다. 지금도 갑갑해 죽을 판에.”

강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고등어 틈에 낀 정어리를 더 하라고?

말이 되는 소릴 해라.

둘이 시시덕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나자 실제로도 기분이 나아졌다.

수요일이면 결판난다.

안 되면?

분위기로 봐서 이번 주에는 어떤 식으로든 끝났다.

석강호와 눈이 마주치자 웃음도 나왔다.

삐걱.

강찬은 모처럼 개운해진 마음으로 옥상을 내려갔다.

그런데 옥상의 계단을 내려오자 병풍 셋과 모르는 남학생 둘이 서 있었다.

옥상을 비울 때까지 기다렸던 건가?

강찬이 피식 웃으며 계단을 내려갈 때였다.

“잠깐 얘기 좀…….”

병풍 하나가 말꼬리를 흐리며 강찬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가뜩이나 정신 사나운데 이것들이 확.

강찬이 날카롭게 노려보자 사내놈들 둘의 대가리가 급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은실이 때문이야. 호준이랑.”

가뜩이나 점심시간이다.

시간 밥을 먹는 사람을 굶겨놓으면 정신이 더 사나워진다.

“잠깐이면 돼.”

병풍 셋이 다 한 마디씩 뱉고는 가장 오른쪽에 있는 계집애가 강찬을 힐끔 보았다.

“먼저 가 계세요. 얘기 들어보고 갈게요.”

“큼. 알았다.”

석강호가 아이들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뭔데?”

“옥상에 가서 말할게.”

이년들은 평소에 연습한 게 맞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기 어렵다.

강찬은 짧게 숨을 내쉬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피식.

버릇이다.

뒤쪽 창으로 비친 그림자를 보며 혹시나 뒤에서 습격하지 않나 지켜보는 것.

옥상으로 들어가자 고개를 떨구었던 남학생 두 놈이 한 놈은 음료수, 다른 한 놈은 담배를 꺼내 강찬에게 건네주었다.

수제 자판기 느낌이었다.

“됐고. 하고 싶다는 말이나 빨리해.”

강찬이 시선을 들자 예상대로 병풍 2가 입을 열었다.

“일진 연합에 한 번만 같이 가줘.”

뭐라는 거지?

강찬이 듣기에는 ‘나 따귀를 때려주거나 팔을 부러트려 줘.’ 처럼 들렸다.

“지난번 트론스퀘어 일 때문에 우리 학교 애들은 보이기만 하면 다 맞고 다녀. 은실이랑 호준이는 매일 나가고.”

이번 말은 병풍 3이 했다.

강찬은 정신을 집중하고 다시 병풍 1을 노려보았다.

“그날 괜히 걸려서 일진 탑이 팔 부러진 거라고. 사실 강찬은 학교 일진 애들 챙기는 것도 아닌데 그날따라 재수 없게 걸린 거라고 말이 돌았어.”

그건 맞다.

“그래서 그 앙갚음으로 우리 밖에도 못 나가. 2학년들은 1주일에 한 번씩 불려가거나 도망 다녀야 하고.”

강찬은 남학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담배 좀 줘봐라.”

“예. 형님.”

“개새끼가 확! 한 번만 더 형님 소리하면 아예 입을 찢어 버린다.”

“예. 형…….”

호칭이 묘했지만, 형님이라고 한 건 아니니까.

강찬은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답답한 얼굴로 병풍을 보았다.

“궁금해서 그런데 허은실이랑 이호준이, 그렇게 줘 맞으면서 왜 나가는 거냐?”

“안 그러면 밖에 나왔을 때 다구리, 다 같이 덤벼들어서 정말 존나, 심하게 맞아.”

병풍 3이 전문 용어를 급하게 순화된 말로 바꾸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래서 같이 가서 어떻게 하라고?”

“앞으로 우리 학교 애들 건드리지 말라고 해주면 돼.”

병풍 1이 급하게 한 말을 들은 강찬이 피식 웃었다.

“너희는 같은 학교 애들 자살할 때까지 괴롭히다가 아쉬워지니까 나한테 그따위 소릴 지껄이라는 거냐?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전학 가고, 점심 쫄쫄이 굶도록 괴롭힘당한 애들 심정은 이해나 하냐?”

말을 하다 화가 치밀어서 강찬은 입을 다물었다.

이것들은 그냥 이기적인 짐승들이다.

저보다 약하다 싶으면 우르르 달려가서 물고 뜯고 하다가 안 되겠으면 더 강한 자 뒤에 대가리를 감춘다.

“원래 그날 트론스퀘어에서 끝나기로 했었어.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일이 꼬여서 지금까지 이런 거야.”

병풍 2가 강찬의 시선을 받고 급하게 고개를 떨궜다.

“까는 소리 말고 앞으로도 그냥 열심히 맞고 살아. 맞을 때마다 너희한테 당했던 애들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하는 거 잊지 말고.”

강찬이 고개를 저으며 옥상 문으로 향할 때였다.

“우리가 밖에서 안 맞게 해주면 학교 안에서 애들 따돌리거나 빵셔틀, 삥 뜯는 거, 우리가 싹 없앨게.”

귀가 솔깃한 제안이어서 강찬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전에 옥상에서 다친 애들 중에 방학 끝나고 학교 나오는 애들 있거든. 걔들하고 허은실이면 지금 말한 거, 지킬 수 있어. 정말이야.”

병풍 셋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년들을 믿어도 되나?

가슴에서 떠오른 답은 ‘아니오.’다.

그런데도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었다.

강찬이 없어도 차소연을 따돌리는 일들이 없는 학교, 그런 것을 위해서라면.

“애들 어딨어?”

“차로 20분만 가면 돼.”

강찬은 가슴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함정을 파놓은 것들은 꼭 이런 식으로 답을 한다.

멀지 않다, 쉽게 간다.

당장 내일이면 야구장에서 하룻밤을 지새워야 할지 모르는데 이런 일에 휘말려도 될까 하는 계산이 먼저 섰다.

“가자.”

강찬이 고갯짓을 하며 피식 웃었다.

함정?

아예 다시는 함정 따위 생각도 못 하게 만들어주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