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 / 0419 ----------------------------------------------
3-6. 제대로 해주지.
석강호가 알려준 공항 쪽 바닷가를 향해 가는 길이다. 토요일인 데다 휴가철이어서 길이 꽤 막혔다.
급할 게 없어서 둘이 음악도 듣고 같이 고개도 까딱거리며 자동차 전용 도로에 들어섰다. 아직 쉬프가 몇 대 없어서인지 옆쪽으로 지나가는 차들이 강찬과 자동차, 그리고 김미영을 번갈아 보며 지나가곤 했다.
김미영은 운전하는 강찬을 보며 행복한 얼굴이었다. 가끔 특유의 “흐흐흐.”하는 웃음을 웃었는데 눈 끝이 예쁘게 떨어져서 보기 좋았다.
시간이 11시쯤 됐을 때 공항으로 빠지는 길에 접어들었다. 점심 먹기 적당한 시간에 도착할 것 같았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분위기 깨는 데는 전화만 한 게 없다.
그것도 이럴 때 미쉘이 하는 전화라면 더더욱.
강찬은 음악을 끄고 프랑스어로 전화를 받았다.
“알로.”
[“보스!]
미쉘은 당황하고 놀란 음성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미쉘은 눈치가 빠르다. 강찬이 프랑스어로 말을 하자 그에 맞춰서 프랑스어로 대답했다.
[“육스벤처스에서 조금 전에 전화가 왔어! 오늘이 토요일인데 육스벤처스 CFO가 직접 회사로 전화를 했다구!”]
고작 국제전화 한 통 온 것이 이렇게 흥분할 일인가? 놀란 음성이어서 샤흐란이 무슨 짓을 했나 싶었던 강찬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육스에서 우리에게 1차로 투자하는 금액이 100억이야, 보스! 필요하면 두 번에 걸쳐서 더 해주겠대! 유럽 쪽 매체에서 먼저 알고 확인 전화가 오는데 이쪽은 지금 미쳤어, 미친 거 같아, 보스!”]
강찬이 보기에도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나 어떡해? 미쳤나 봐! 여기 직원들도 다 그래! 어쩜 좋아!”]
혼자라면 얼른 달려가서 뺨따귀를 한 대씩 때려주면 좋으련만.
“토요일이다. 괜히 직원들 고생시키지 말고 얼른 퇴근해라.”
[“노우, 보스! 오늘은 내가 쏠 거야. 우리 다 같이 남산 호텔에 놀러 가기로 했어. 사무실 계약해서 조금 뒤에 인테리어 업자도 와! 꺄아아아! 너무 좋아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 보스!”]
강찬이 인상을 버럭 쓰며 전화기를 멀리하자 김미영이 놀란 얼굴로 보았다.
“잘 된 거 맞지?”
[“이예에쓰! 보스!”]
강찬은 전화를 냅다 끊어버렸다.
미친년을 오래 상대해봐야 이쪽만 손해다.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미쉘. 이쪽은 오래 통화하기 어려워.”
[“대표님. 임 실장입니다.”]
이것들이 돌아가면서?
[“이렇게 주신 기회, 절대로 놓치거나 망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직원들이 할 말이 있답니다.”]
멀리서 “하나, 둘, 셋!” 하는 소리가 들려서 강찬은 얼른 전화기를 귀에서 뗐다.
[“대표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대표님! 꺄아아아아아!”]
헛웃음을 웃으며 강찬이 전화를 껐을 때 김미영은 정말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
“무슨 일이야? 누군데 대표라고 부르고 저래?”
강찬은 김미영을 슬쩍 본 후에 전화기를 홀더에 내려놓았다. 다친 모습을 보이는 것과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가족들과 석강호, 그리고 김미영에게만큼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말하기도 어렵다.
“사실 디아이란 회사, 대표이사를 맡았어.”
“회사? 대표이사?”
“응. 드라마 제작사인데 어머니랑 아버지는 아직 잘 모르셔. 공트 자동차 소개해 준 분이 드라마 제작 투자회사하고 친해서 투자 끝낼 때까지만 임시로 맡기로 한 거야.”
제 궤도에 오르면 실제로도 미쉘에게 맡겨놓을 참이어서 그다지 마음에 걸리지는 않았다.
“외국어를 잘하니까 좋은 점이 정말 많다.”
“이렇게 번 돈은 저축할까 해. 그래서 나중에 프랑스 유학 갈 때 부모님 손 안 벌리게.”
김미영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가 그보다 더 빠르게 어두워졌다.
“왜?”
“네가 힘들 게 번 돈이잖아. 거기다 넌 국비 장학생이어서 학비 들 일도 없고. 그런 건 싫어.”
“푸흐흐.”
김미영이 서운한 얼굴로 강찬을 흘깃 보았다.
“전에 우리 어머니가 국비 장학생으로 뽑혔는데 군대 제대한 아버지 기다려주느라고 다 포기하셨었대. 그런 거 보면서 난 부럽던데? 넌 그런 거 못 하겠네?”
“왜 못 해? 너 군대 가면 공부만 열심히 하면서 기다릴 거야.”
김미영의 진심을 보는 거 같아서 강찬은 기분 좋았다.
“나두 그래. 대신 우리는 누가 희생하는 거 하지 말고 둘 다 잘 되자. 외교관 남편, 뭐 이런 거 한 번 해보게. 그래서 나중에 인터뷰 같은 거 할 때, 남편이 학비 대줬다고 말해주라. 그럼 내가 정말 멋져 보이잖아.”
김미영이 촉촉하게 젖은 눈과 불그레한 볼을 하고 있어서 강찬은 깜빡 잊고 있었던 ‘단순이’란 별명이 불쑥 떠올랐다.
“그럴 수 있지?”
“응!”
김미영이 배시시 웃는 모습이 좋아서 강찬은 머리를 쓸어주었다. 어떤 때는 여동생 같다가 어떤 때는 마음이 훅 간다. 이대로 조금씩 같이 지내면서 김미영이 좀 더 커서도 변하지 않는다면 이런 아이랑 함께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유학도 마찬가지다.
외교관 부인이 되달라고 하고 먼저 가라면 이 아인 그럴 것만 같다.
함께 하는 유학과 외교관 부인 얘기가 의외로 효과가 좋았다. 김미영은 기분이 풀어져서 강찬의 손에 깍지를 끼고 흔들기도 했고, 혼자 흥얼거리기도 했다.
바닷가에 도착한 시간은 얼추 1시 30분쯤 되었다. 도로에서 빠져나가 좁은 골목을 지나자 눈앞에 바다가 펼쳐졌고, 그 앞으로 빈 곳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강찬의 차로 벌떼처럼 장사꾼들이 매달려서 ‘조개구이’와 ‘민박’, 그리고 회가 맛있다고 손짓을 했다. 강찬은 석강호가 일러준 가장 안쪽 집에 차를 대고 식당에 들어섰다.
아주머니가 그냥 내리라고 하면서 강찬과 김미영을 향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젊은 분들이 정말 잘 어울리네. 얼른 안으로 들어가요. 내 잘해 드릴게.”
처음 보는 외제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의 정체를 애써 외면하는 얼굴이었다.
강찬은 바닷가에 놓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와! 정말 좋아!”
“뭘로 드릴까?”
김미영의 감탄을 주인아주머니가 메뉴판으로 뚝 잘랐다.
“광어회로 주세요.”
“광어회! 술은?”
김미영의 표정이 굳어진 것을 아주머니는 노련하게 외면하며 강찬을 보았다.
“됐어요. 그냥 회나 주세요.”
“알았어요!”
석강호랑 왔으면 벌써 소주 일병, 맥주 일병을 시켜서 시원하게 한잔했을 텐데. 시킬까도 생각해 봤지만, 김미영을 놀라게 할까 봐 그냥 두었다.
김미영은 바다 한번, 강찬 한번, 다시 바다 한번, 강찬 한번을 보면서 “흐흐흐흐.”하고 웃었다.
바닷물이 가게 앞까지 들어와 있어서 꼬마들을 앞세운 가족들, 연인들, 그리고 친구들이 노는 모습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성적 떨어지면 안 돼.”
시선을 바다에 빼앗겼던 김미영이 강찬을 보고는 활짝 웃었다.
잠시 후, 주인 음식을 잔뜩 가져왔는데 솔직히 회는 별로였다.
굶주렸던 광어를 잡은 건지, 회 자체가 비쩍 마른 데다 퍽퍽하기까지 했다. 불과 이틀 전인가, 남산 호텔에서 먹었던 비싼 회가 떠올라서 강찬은 김미영에게, 그리고 강대경과 유혜숙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맛있다.”
김미영은 몇 장 되지도 않는 상추에 회를 싸서 맛있게 입에 넣었다.
“왜?”
“예뻐서 그래.”
“흠흠흠.”
입에 음식이 담겨 있어서 웃음소리가 이상하게 나왔다.
테라스의 난간에 팔을 걸치고 김미영에게 보조를 맞추느라 회를 간간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 한 5년? 아니면 외교관이 될 때까지 한 7년?
회, 떡볶이, 돈가스, 이거저거 열심히 먹여서 키우다 보면 답이 나올 거다. 김미영이 중간에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아쉬움은 남을망정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회를 다 먹은 다음에 매운탕이 나왔다.
글자 그대로 뼈만 남은 생선에 채소 몇 가지와 라면 수프를 때려 넣은 맛이었다. 김미영도 맛있다고는 했지만, 많이 먹지는 않았다.
“바다 걸을래?”
“응! 응!”
모지리.
옆 사람들이 힐끔 시선을 던졌지만, 강찬은 상관없었다. 그냥 내 눈에 예쁜 거다.
‘이래 봬도 얘가 전교 1등이다.’
아파트 아줌마들 같은 생각을 하며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은 카드로 했고, 김미영과 둘이 바닷가로 나갔다.
“와아아!”
달려오는 바닷물을 따라 도망왔다가 물을 따라 뛰어갔다. 30분쯤 해변을 펄쩍거리던 김미영은 결국 신발은 물론이고 발목까지 홀랑 젖고 말았다.
둘이 모래사장과 도로를 가르는 시멘트벽 위에 앉아서 바다를 보았다.
강찬이 속으로 ‘담배 하나 피우면 좋겠다!’ 할 때 김미영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평화로운 시간이다.
좋은 부모, 이전의 삶을 함께 기억하는 석강호, 김미영,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김태진까지.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
샤흐란을 잡아야 이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복수도 마치고 남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또 30분이 지났는데도 옷은 말랐는데 신발은 그대로였다. 더구나 모래까지 잔뜩 묻었다.
둘이 식당에 가서 차 키를 받는데 아주머니가 호스를 가져와 대뜸 김미영의 발에 부었다.
“이대로 차 타면 차 다 버려요.”
깜짝 놀랐던 김미영이 강찬에게 미안한 얼굴로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뭐해요? 얼른 업어.”
아주머니가 시선으로 김미영을 가리켰다.
여기서 싫다고 하면 김미영이 무안해진다. 강찬은 기분 좋게 그녀의 앞에서 자세를 낮췄다.
“신발 안쪽 모래 털고, 차를 빼놓을 테니까 저기까지 걸어갔다 와요. 여기오면 다 하는 거야.”
엄한 년들한테 비싼 회를 처먹이고, 말라 비틀어진 회를 먹인 게 미안하던 참이다. 강찬은 김미영을 업고 해변으로 이어진 길을 걸었다.
“찬아.”
“응?”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김미영이 볼에 입을 맞췄다.
몸이 미쉘보다 더 뜨겁게 느껴졌다.
“사랑해.”
그의 뒤에서 김미영의 고백이 들렸는데 강찬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은 이르다. 좀 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인정할 수 있는 시간까지 선택권을 주고 싶었다.
해변이 그리 길지 않았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조금만 더 길었다면 김미영의 몸이 타버렸을지도 모른다.
***
집에 들어가기 전에 스파게티 먹고 강남의 팥빙수 전문점에서 빙수도 한 그릇씩 먹은 다음에 헤어졌다.
차를 공영주차장에 세웠을 때 김미영은 무척 아쉬운 얼굴이었다.
“이리 와.”
강찬이 팔을 벌려주자 김미영이 폭 안겼다.
“내일부터 정말 열심히 공부해. 외교관 알지?”
“응!”
강찬의 가슴에 볼을 묻고 김미영이 힘차게 대답했다.
“가자.”
몸이 또 뜨거워지는 느낌이어서 강찬이 웃으며 김미영을 다독였다. 정면에서 안았더니 강찬도 위험할 뻔했다.
택시를 타고 돌아왔고, 김미영이 먼저 들어갔다.
강찬은 벤치에 앉아 석강호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공영주차장에 세웠다고 알려주었다. 가족끼리 외식 중이라 집에 가서 전화하겠다는 것을 내일 저녁까지 쉬라고 알려 놓았다.
집에 들어갔을 때 강대경과 유혜숙은 TV를 보고 있었다. 셋이 과일 먹고 함께 오락 프로그램을 보며 웃었다.
그렇게 토요일이 무사히 넘어갔다.
침대에 누운 강찬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샤흐란, 빨리 끝내자.’
결전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빨리 승부를 내고 싶었다.
***
일요일은 전쟁이나 전투가 있지 않은 다음에야 군인도 쉰다. 강찬은 아침 운동을 걸렀는데 확실히 몸이 찌뿌드드했다.
몸도 아는 거다. 그래서 달리라고 꼬드긴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 쉬고 나면 다음 날은 또 뛰기 싫어서 버둥거린다.
운동이란 몸이 가진 한계를 이겨내는 것이 기본이다.
아침으로 모처럼 강찬이 만든 오믈렛을 셋이 먹고 10시 30분경에 상정 보육원으로 출발했다.
지하에 세워진 차는 쉬프였다.
“차 바꾸셨네요?”
“내가 다른 걸 타고 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강대경이 으쓱해 하며 운전석에 올랐고, 유혜숙이 조수석, 당연히 강찬은 뒤에 탔다.
일요일 오전답게 한가한 도로를 40분쯤 달려서 상정보육원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원장이란 분을 만났는데 예상보다 눈빛이 날카롭고 엄하게 생겼다. 조금 더 인자하게 생겼으면 좋았겠지만, 그걸 뭐랄 수는 없었다.
운영비 지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거라 강찬은 보육원 마당에 있는 부서진 벤치에 엉덩이를 걸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역 자로 갈라진 건물의 왼쪽이 보육원, 오른쪽이 양로원인 모양이다.
점심시간이었는지 커다란 양동이에 밥, 된장국, 그리고 깍두기, 단무지를 담아가는 것이 보였다.
‘저런 걸 먹나?’
하기야 가장 형편이 좋은 곳이 매월 200만 원가량 부족하다고 했으니까.
강찬이 씁쓸한 시선으로 입구를 바라볼 때였다.
함께 사는 누군가가 잘라준 것 같은 머리 모양의 여자아이가 문을 잡고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눈이 마주친 아이가 얼른 고개를 감췄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강찬이 풀썩 웃자 여자아이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꼬고 문에 숨는다.
“여기서 뭐 해? 얼른 밥 먹어야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체격이 작은 여자가 강찬을 흘깃 보고는 아이의 팔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강찬은 갑자기 이전의 삶이 떠올랐다.
돈가스가 미치도록 먹고 싶었었다.
아이들에게 손 한번 내밀면 굳이 뺏지 않아도 그 정도 사주겠다는 놈들은 있었다.
‘통장에 있는 돈하고 디아이에서 월급 받은 걸 여기에 보내면 밥은 제대로 먹일 수 있지 않을까?’
강찬이 멍하니 앞을 보고 있을 때 강대경과 유혜숙이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 거처를 한번 둘러보시죠.”
“아닙니다. 식사를 방해할 것 없이 다음번에 인사하겠습니다.”
강대경이 점잖게 원장과 악수를 나눴고, 유혜숙과 강찬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 보육원 밖으로 나왔다.
차에 올라서 집으로 향하는데 분위기가 뻑뻑했다.
“점심이라도 먹고 들어갈까?”
5분쯤 지나서야 강대경이 입을 열었는데 유혜숙의 뜻에 따라 집으로 향했다.
궁금하다고 다 알려고 해선 안 된다.
강찬은 점심을 먹고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로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을 검색한 후에 침대에 몸을 눕혔다.
‘차라리 운동이나 할까?’
아니면 산책이라도 하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
강찬이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기다리던 샤흐란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강찬. 내일 홍콩의 실버 하베스트 은행의 계좌와 비밀번호를 주겠다. 한국은 규제가 까다로워서 월요일까지 다른 방법은 없다.”]
스위스에 있다던 돈이 그 사이 홍콩까지 온 거다. 강찬은 라노크와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었다.
“좋아, 샤흐란. 내일 아침에 비밀번호를 바꾸고 나면 장소와 시간을 정해서 알려주지.”
[“그 계좌는 비밀번호는 바꿀 수 있더라도 7일간 송금은 금지되어 있어. 그 점을 명심해.”]
“급할 게 없으니까.”
강찬은 전화를 끊었다.
라노크를 해결한 다음에 출국하겠다는 계획일 거다.
강찬은 라노크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내용을 알려주었다.
[“무슈, 강. 내일 계좌와 패스워드를 받는 대로 반드시 통화로 알려주세요. 문자는 위험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사님. 그리고 이렇게 되면 내일은 수요일 야구장 스케쥴을 알려줘야 할 겁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무슈, 강.”]
대화가 끝났다.
최소한 수요일까지 라노크를 노리는 조직이 어디인지는 알 수 있을 거다. 그 외에 잘하면 샤흐란까지 잡는다.
강찬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프랑스 요원들만 믿고 라노크를 야구장에 던져두기가 위험하다고 느껴졌다. 마무리만큼이나 이런 일은 잘 마무리할 필요가 있었다.
강찬은 굳게 결심하고 전화를 들었다.
[“일요일에 어쩐 일인가?”]
“내일 잠시 뵐 수 있나요?”
[“교관이 보자는데 나야 언제고 가야지. 어디로 갈까? 학교? 아니면 우리 회사로 한번 올래?”]
이왕이면 석강호도 알고 있는 게 좋다.
“학교에서 뵈었으면 싶은데요.”
[“알았다. 오전에 바로 들르지.”]
이제야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계좌에 입금한 사람을 찾으면 대강은 윤곽이 나올 거고, 그건 전적으로 라노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놓고 라노크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후는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라노크와의 대화를 숨기기 위해서라도 프랑스 정보총국이 강찬을 노릴지도 모를 일이다.
미친 새끼들.
왜 대한민국 안에서 유럽의 판도가 어쩌고저쩌고하는 짓거리를 하며 속을 썩일까?
일주일.
꼭 일주일이면 모든 게 정리될 수 있을 거다.
***
월요일 아침, 운동을 다녀와서 아침을 먹을 때까지도 강대경과 유헤숙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강대경이 출근하고 나자 강찬도 나가봐야 할 시간이었다.
“무슨 일 있어요?”
거실로 나온 강찬을 보며 유혜숙이 아쉽게 웃었다.
“우리가 지원하는 돈의 사용처를 지정하려고 했는데 보육원마다 그건 안 된대. 애들 먹는 거, 입는 거, 그리고 학비 지원을 하고 싶은 거였는데 보육원 일반 관리비로도 쓸 수 있게 하고 우리에게 관련 자료를 하나도 보여줄 수 없다고 해서 아빠도 많이 서운해하고 계셔.”
이런 일이었구나.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혜숙이 말을 덧붙였다.
“애들이 자꾸 눈에 밟혀. 아빠는 관리 안 되는 지원은 무의미하다고 하는데 엄마는 그렇더라도 보내고 싶었거든.”
“어려운 일이네요.”
“너무 신경 쓰지 마. 좋은 방법을 찾아볼 거야.”
“예. 그러시리라 믿어요.”
강찬은 기분 좋게 웃어주고 아파트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