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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사업?
목요일 새벽.
아파트 공터는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강찬은 쥐새끼처럼 숨어서 기회를 노리는 교활한 적과 전쟁 중이다.
먼저 숨을 크게 들이쉬며 각오를 다졌다.
그런 다음, 가볍게 몸을 풀고 아파트 밖으로 달려나갔다.
‘와라! 언제고 환영이다.’
저격? 기습?
라노크를 노리고 열흘 안에 몸을 빼야 하는 놈이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총을 쏴?
강찬이 죽는 대신 방송과 검찰이 대대적으로 나설 일이다.
대한민국, 총기 없는 건 정말 좋다.
젠장!
생각을 마치는 순간에 총 맞은 것처럼 옆구리, 허리, 등에 짜릿한 통증이 몰려왔다. 이 고비가 칼을 들고 맞섰을 때 살아나는 경계선이다.
강찬은 당연하게 고통을 싹 무시했다. 철사로 칼을 묶어야 할 정도의 체력으론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어렵다.
“헉헉.”
숨도 가빠왔다.
달리기는 참 묘하다. 며칠만 쉬면 예전의 경계가 어디였는지를 또렷하게 알려준다.
‘맘대로 해!’
곪으면 소독하고, 통증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5㎞를 넘어가자 숨이 터졌다.
“헉헉. 헉헉.”
아파트의 공원으로 돌아온 강찬은 땀을 비 오듯 흘렸다.
강찬은 5분가량 몸을 풀어준 다음 계단을 이용해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 땀 냄새를 풍기기 싫었고, 더워진 몸을 서서히 식힐 필요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침을 준비하던 유혜숙과 막 일어난 듯한 강대경이 강찬을 맞아주었다.
“어머! 저 땀 좀 봐.”
유혜숙은 체대 입시를 위해 강찬이 달린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얼마나 달리니?”
“10㎞쯤 돼요.”
강대경이 화들짝 놀란 눈을 했다.
“나는 따라 뛰다가 쓰러지겠구나.”
“설마요. 대신 걷는 운동부터 하실 필요는 있지요.”
“그렇구나.”
몇 마디 대화로 강대경이 새벽 운동에 따라 나올 위험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씻고 나올게요.”
“그래, 아들. 엄마가 아침 맛있게 해줄게.”
“예. 기대할게요.”
말 한마디에 고마워하는 유혜숙이다. 그걸 알고 나서는 꼬박꼬박 답을 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과 감사, 사랑이란 감정을 전해주는 사람.
강찬은 가능한 한 빨리 샤흐란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으며 욕실로 향했다. 세차게 뿜어지는 찬물을 뒤집어쓰자 불이라도 난 것처럼 화끈거리던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무리한 건가?’
강찬은 곧장 고개를 저었다.
아프리카였다면 절대로 이런 생각 하지 않았을 거다.
머리를 말리고 거울을 보았다.
어느새 지금의 얼굴에 익숙해져서 과거의 모습이 흐릿했다. 대신 눈빛만큼은 도저히 고등학생으로 보이지 않았다.
강찬은 세면대에 팔을 걸치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이 말이 들린다면 지금까지의 일도 다 알고 있겠지? 최선을 다하는 거다. 엄마, 아버지를 빼앗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다 같이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가는 거라 이해해다오.”
처음과 다르게 낯간지럽고 어색했지만 적어도 감정만큼은 전달하고 싶었다. 하기야 말을 알아들을 정도면 지금까지 어떤 생각으로 견뎠는지도 잘 알겠지만 말이다.
씻고 나왔을 때는 마침 아침준비가 끝나 있었다.
“오늘은 뭐 할 거니?”
“저녁까지 약속이 좀 있어서 나가보려고요. 왜요?”
식탁에 앉아 강대경을 시작으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스미든 지사장을 한번 만나보려고. 이쪽 주문이 늘어나는데 이 양반이 이상하게 꼼짝을 안 하는구나. 혹시 통역이 못마땅한가 싶어서 너랑 둘이 한번 찾아가볼까 했지.”
“그러세요? 그런데 꼭 스미든 지사장이 뭔가를 해줘야 하나요?”
“차량 주문서에 지사장 사인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거든. 주문이 밀려오는 게 상상 이상이어서 본사에 도움도 좀 받아야 하고.”
“그 정도예요?”
“아빠 능력 있으셔, 아들.”
뿌듯해하는 유혜숙의 얼굴이 보기 좋았다.
“어이구? 당신이 웬일로 내 칭찬을 다 해?”
“여보!”
“아니다. 아니야. 얼른 먹자, 먹어.”
강대경이 짓궂은 눈빛으로 강찬과 눈을 마주쳤다.
“제가 한번 전화해 볼게요.”
“네가?”
“예, 지난번에 명함 받은 것도 있고, 계약 잘 끝내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했었거든요. 한번쯤 따로 약속 잡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럼 좋지.”
강대경이 김칫국을 다 먹어서 유혜숙이 국을 더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당장 차가 몇 대나 더 필요한 거예요?”
“글쎄다. 지난번 들여온 차들이 모두 전시용이나 시승차로 사용돼서 당장 200대는 있어야 할 거 같다.”
“와!”
강찬과 유혜숙이 놀란 얼굴을 하자 강대경이 아니란 듯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감탄할 정도는 아니고.”
“그런 건가요? 그래도 대단하신 거 아녜요?”
“다들 지켜보는 정도? 꼭 그 정도일 거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쳤다.
11시에 호텔에서 인수계약을 하기로 했는데 약속 장소가 하필이면 남산호텔이었다.
강대경이 출근한 후에 강찬은 전화를 들었다.
[“하이! 차니.”]
“어디냐?”
[“집이요. 그날 이후로 밖에 한 번도 안 나갔어요.”]
이 새끼는 틀림없이 오래오래 살 거다.
“강유모터스 차량 주문서에 네 사인이 필요하다더라. 그냥 몇 장 더 넉넉하게 해 줘. 그리고 오늘부터 사람 많은 곳 위주로 살살 다녀라. 당장 타겟이 네가 아닌 거 같으니까.”
[“정말 괜찮겠소?”]
“2주 안으로 다 끝날 것 같다. 그때까지만 조심해. 아, 참! 그러고 공트 본사에 전화해서 여기 주문 차량 좀 빨리 보내달라고 해.”
[“오케이, 차니. 바로 전화하지요.”]
“사인 먼저 하는 거 잊지 말고.”
[“당장 강유모터스에 전화해서 서류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인하는 즉시 본사에 전화하겠소.”]
“알았다. 다친 덴 좀 괜찮냐?”
[“외출해도 되면 오늘 병원 가서 의안을 넣겠소. 그럼 인물이 확 살아날 거요.”]
미안하라고 이런 소릴 하나?
“알았다.”
[“차니.”]
전화를 끊으려는데 스미든이 강찬을 불렀다.
[“나 한국어 어학원 신청해도 되겠소?”]
아니다. 이 새끼는 원래 속이 없는 거다.
“2주만 기다려. 그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
[“오케이, 차니.”]
전화를 끊고 나자 한숨이 푹 나왔다. 그 사이, 같이 있는 여자가 싫증 났거나 새로운 여자 생각이 난 게 틀림없었다.
석강호와 통화를 하고 시간을 보내다 10시가 조금 못돼서 집을 나섰다. 날이 날이니만큼 편안해 보이는 쟈켓도 입었다.
은행에 들러 5억짜리 수표를 찾아서 곧바로 호텔로 향했다.
남산 호텔 지하의 비스니스센터 회의실.
변호사 사무실이나 디아이 사무실이 훨씬 편하고 좋으련만 미쉘답지 않은 일 처리였다.
강찬이 호텔에 내려 약속된 장소에 들어서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차니!”
미쉘이 강찬을 안고 양볼에 요란스럽게 뽀뽀를 했다.
“인사해, 차니. 디아이 김성길 대표이사. 오늘 이 호텔을 일부러 예약하셨어.”
김성길이 일어나서 거슬리는 동작으로 손을 내밀었다.
커다란 대가리, 부리부리한 눈, 굵직한 목과 몸통이 영락없이 전직 깡패 출신임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분이 김선일 부사장님.”
“김선일이요.”
놈이 아니꼬운 빛을 감추지 않은 채로 손을 내밀었다.
“계약을 담당해주실 태양 법무법인 최영 변호사.”
세 명과 인사를 마치자 미쉘이 여자 셋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여기가 소속 연기자 세 명이야. 소연이는 그전에 봤고. 여기는 이하연, 성소미. 그 외에 다른 연습생과 직원들은 계약 끝나면 바로 만나기로 했어.”
진한 화장의 이하연과 성소미가 고개를 까딱하고 자리에 앉았다.
복잡한 인사가 끝나고 강찬이 가운데 앉았는데 그때까지 서 있는 사람은 미쉘과 은소연이 전부였다.
강찬의 좌로 최영 변호사, 우로 미쉘이 앉았다.
“계약서는 내가 변호사님과 다 검토했어.”
최영 변호사가 강찬과 김성길의 앞으로 계약서를 내밀어 주었다.
이걸 지금 본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고.
강찬은 말없이 품에서 5억짜리 수표를 미쉘에게 건네주었다.
“어린 양반이 돈이 많네.”
김성길이 이죽거리는 투로 말을 던졌다.
다른 곳에서 봤으면 분명히 시비를 거는 걸로 알았을 만큼 불만 가득한 말투였다.
피식.
강찬이 특유의 웃음을 짓자 한순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어디에 사인하면 됩니까?”
강찬은 빨리 끝내고 싶었다.
“도장 안 가져오셨나요?”
젊은 변호사 최영이 당황스러운 투로 물어보았다.
“아뇨. 그냥 사인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요.”
“허. 세상 참.”
이번에는 부사장 김선일이 아니꼬운 시선을 강찬에게 보냈다.
이 새끼들이 미친 건가?
누가 보면 회사를 뺏기는 놈들인 줄 알겠다.
“미쉘. 저 사람들이 프랑스 말 알아?”
“아니, 왜?”
강찬이 프랑스어로 말을 하자 다들 놀란 눈으로 보았다.
“뭔가 불만이 있는 거 같은데 불편한 계약이면 이거 하지 마.”
강찬과 달리 미쉘은 그나마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얘네들 지금 많이 아쉬울 거야. 드라마 제작하다가 망가졌거든. 들인 만큼 가져가는 건데 투자를 받으려고 버둥대다 파는 거니까 심사가 틀어진 거지. 보기에도 거친 사람들이잖아. 팔기로 해놓고도 사실은 차니가 투자해줬으면 욕심이 있을 거야.”
강찬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최영 변호사를 보았다.
“사인으로 안 됩니까?”
“인수자야 상관없죠. 나중에 공증을 위해서 신분증과 인감을 따로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죠.”
강찬은 최영이 손으로 짚어준 곳에 사인을 했다. 불편한 심정을 털어내기 위해 숨을 내쉬며 펜을 미쉘에게 건네주었을 때였다.
“어이, 인수자님.”
김성길이 걸쭉한 목소리로 강찬을 불렀다.
“가급적으루다가 지금 남은 직원들은 짜르지 마쇼.”
이건 또 뭔 소리지?
강찬은 미쉘을 먼저 보았다.
“직원 고용 승계는 계약 조건에 없는데요?”
“그르니까 부탁하는 거 아뇨.”
존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말도 아닌 묘한 말투였다.
“알았어요. 가능한 한 그렇게 하지요.”
미쉘이 대답하자 김성길이 검지로 계약서를 가리켰다.
“거 괜찮으면 계약서에 자필로 적어주쇼.”
강찬은 피식 웃으며 김성길을 보았다.
여기까지다.
이런 양아치 새끼들이 손해 보면서 넘겼다고 우겨댈 회사 인수해봐야 뒤만 불편할 거고, 또 이렇게까지 인수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만하자.”
강찬은 탁자에 두었던 수표를 들어 품에 넣었다.
그리고는 사인한 계약서를 잡고 가로 세로로 시원하게 찢어버렸다.
“너 뭐하냐? 지금?”
피식.
강찬이 웃자 김성길이 의자에 상체를 젖히며 고개를 뒤틀었다.
“꼬마야. 어린 게 돈 좀 있다고 뵈는 게 없나 본데, 이제는 이 회사 10억에 사줘야것다.”
은소연이 울 듯한 얼굴로 미쉘을 보았다.
전에 미쉘이 안타까워하던 여자다.
강찬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미쉘이 저 여자 하나 구하자고 5억을 쓰게 할 멍청이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일 처리를 엿같이 한 것만은 분명했다.
이건 아니다.
강찬이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네가 나를 잘 모르나 본데 이 바닥에서 나 무시하고 힘들어. 보쇼, 미쉘 기자. 잘 알 거 아뇨?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10억에 인수하거나, 아니면 우릴 가지고 논 대가루다가 5억 놓고 가쇼. 그럼 우리가 드라마 제작해서 따블로 디릴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미쉘도 불쾌한 얼굴로 김성길을 노려보았다.
얘는 화낼 때 정말 예쁘구나.
강찬은 엉뚱한 생각에 피식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화장이 요란한 다른 두 계집애가 묘하게 웃는 것이 보였다.
허은실.
딱 그년이 학교 앞에서 ‘존만아.’라고 할 때와 같은 웃음이었다.
“더 있을래? 같이 나갈래?”
강찬이 미쉘에게 질문을 던진 다음이었다.
“앉아!”
김성길이 의자에 왼쪽 팔을 걸치고 으르렁거렸다.
비즈니스센터에 있는 옆쪽 회의실에서 고개가 불쑥 나오고 입구 카운터의 직원이 급하게 다가왔다.
“아! 미안허요. 조용히 할라니까 그만 가서 일 보쇼.”
이러다 괜히 일 내지.
김성길이 어르고 뺨치는 것에 상관없이 강찬은 걸음을 옮겼다. 미쉘이 가방을 챙기는 동안이었다.
김선일이 급하게 입구를 막았다.
후우.
왜 이런 일이 자꾸 생기지?
“우리 대표님 아직 말씀 안 끝났잖아, 이 씨…….”
퍼억!
“컥!”
강찬이 옆구리를 뾰족한 주먹으로 찍자 김선일이 상체를 구부렸다.
강찬은 놈의 머리를 움켜쥔 채로 당겨서 김성길이 나올 공간을 막았다.
퍼억. 퍼억. 퍼억.
손을 적당히 구부려 손바닥 안쪽으로 얼굴을 올려치자 두 번 만에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야 이, 개새끼야!”
김성길이 탁자에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강찬은 김선일을 던지고 몸을 비틀어 오른발로 놈의 다리를 걷어찼다.
와당탕. 콰자작!
두꺼운 탁자에서 넘어진 김성길이 바닥에 떨어지며 의자를 박살 냈다.
미쉘은 질려서 벽에 붙었고, 최영 변호사는 회의실 가장 안쪽 벽에 계집애 셋과 벽을 향해 서 있었다.
“끄응!”
강찬은 몸을 일으키려는 김성길의 어깨를 오른발로 세차게 찍어버렸다.
콰자작.
“끄아악!”
옆의 회의실에서 튀어나왔던 사람들이 카펫에 튄 피와 살벌한 풍경에 서둘러 몰을 피했다.
고작 이런 새끼들이 하는 회사를 인수하게 해?
강찬은 미쉘을 날카롭게 노려본 다음 피투성이가 된 김선일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때였다.
“하지 마세요.”
은소연이 떨리는 음성으로 강찬을 말렸다.
다른 두 년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벽에 대가리를 처박고 있는데 말이다.
정신 빠진 년.
이런 엿 같은 새끼들 밑에 있었으면서 착한 척은.
퍼억! 퍼억! 퍼억!
몸이 예전 용병 수준을 회복해서 매질에 제대로 힘이 실렸다.
“손님!”
꼭 세 대를 때렸을 때 보안요원인 듯한 건장한 놈 둘이 강찬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눈이 뒤집힌 다음이다.
강찬은 날카롭게 놈들을 노려보았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그런데 지랄 맞게도 두 놈이 다급하게 물러나 상체를 깊숙하게 숙이며 인사했다.
당황스러운 장면이었다.
“도석이 형님 모시던 주철범입니다, 형님.”
젠장.
비즈니스센터에서 볼일 보다 들킨 것처럼 찜찜한 느낌이었다.
털썩.
강찬은 잡고 있던 김선일의 대가리를 벽으로 밀어버렸다.
“너는 여기 손님들 전부 위층 회의실로 모셔. 비용은 회사에서 지불하는 걸로 하고, VIP 숙박권 2매씩 드리고.”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친 주철범이 입구를 막아섰다.
칸막이가 완벽하게 막혀서 안쪽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강찬이 화를 삭이는 동안 지하 비즈니스 센터가 모두 비워졌다.
“이 새끼들이 형님께 대들었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라.”
“그게 아니고, 형님. 이 새끼들이 부탁해서 회의실 내준 거라 그렇습니다, 형님. 예전에 생활 접은 놈들인데 아는 사이라 사정을 봐줬거든 말입니다, 형님. 언짢으신 게 있으며 제 선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형님.”
말을 마친 주철범이 피투성이인 김선일의 머리통을 발로 툭툭 찼다.
“빨리 일어나 인사드려. 이 새끼야. 광택이 형님 친구분 되셔.”
손바닥 안쪽으로 피를 닦던 김선일이 움찔하며 강찬을 보았다.
“이 병신같은 새끼들아, 이 형님 오시는 줄 알았으면 말을 해얄 거 아냐. 이래서 생활 접은 새끼들은 챙겨주는 게 아닌데. 너흰 좀 이따 보자.”
두 놈이 쭈뼛쭈뼛 일어나 강찬에게 깊게 허릴 숙이며 인사했다.
“형님. 광택이 형님께 안 들어가게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선 저쪽으로 옮기시죠, 형님.”
“됐고. 갈 테니까, 이 새끼들 병원비하고 여기 비우느라고 들어간 돈 바로 보내. 오늘 중으로 연락 안 하면 내가 광택이 직접 찾아갈 테니까 알아서 하고.”
주철범이 난처한 얼굴로 한 걸음 물러섰다.
“형님. 한 번만 살려주십쇼, 형님. 애들이 봐서 광택이 형님 아시면 저 여기서 쫓겨납니다, 형님.”
형님 소리를 하도 빠르게 들으니까 멀미가 나는 느낌이었다.
그때였다.
“형님. 몰라뵙고 그랬습니다. 한 번만 눈 감아주시고, 회사 인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형님.”
김성길이 어깨를 부여 앉은 채 허리를 깊게 숙였다.
지랄.
강찬은 아예 쳐다도 보기 싫었다.
“이대로 가시면 광택이 형님 눈 밖에 나서 아무도 회사 안 삽니다, 형님.”
김선일이 피범벅인 코밑을 손바닥으로 닦으면서 급하게 강찬에게 매달렸다.
하여간 깡패 새끼들은 항상 이렇다.
처맞고 나야 사람 새끼들처럼 행동하는 거.
강찬은 판단이 서질 않아 미쉘을 보았다.
그런데 미쉘이 고개를 떨어트리는 것을 보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살피지도 않고 인수하라고 시원하게 말한 잘못도 있는 거다.
원래는 이럴 사이도 아니다.
기껏 부탁해 놓고 일이 꼬이자 화를 내는 모습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변호사님. 내가 인수하는 겁니다. 인수자 사인은 미쉘이 대신하는 걸로 하고 인수됩니까?”
“예. 문제없이 처리하겠습니다.”
최영이 빠릿빠릿하게 답을 했다.
강찬은 다시 김성길을 보았다.
“마지막이다. 조건 달 거 있으면 지금 말해. 비겁하게 뒤에서 한 마디라도 들리면…….”
말이 너무 나갔다.
뒷말이 들리면 가서 때려주는 거 말고 할 것도 없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나마 김성길이 얼른 말을 받아주어서 다행이었다.
강찬은 품에서 수표를 꺼내 미쉘에게 건네주었다.
“화내서 미안하다.”
“아냐, 차니. 이렇게 일 만들어서 미안해.”
“라운지에서 커피 마시고 있을 테니까 끝나면 그리로 와.”
“오케이.”
미쉘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확실히 얘는 화낼 때가 웃을 때보다 백 배쯤 예쁘다.
강찬이 회의실 입구쯤 나올 때 ‘쫘악!’하고 따귀 때리는 소리와 “너 이 개새끼, 나중에 봐.” 하는 주철범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찬이 라운지에 들어서자 매니저가 급하게 자리로 안내했다.
이래서 이 호텔이 싫었다.
커피를 시켜놓고 왜 이렇게 화가 치미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빌어먹을.
석강호가 담배를 끊었다고 해서 얼결에 담배를 참은 거다. 전에 아프리카에서 한번 담배를 끊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비슷했다.
작은 일에도 워낙 분통을 터트리니까 다예루와 대원들 몇 놈이 담배를 가져와서 제발 피우라고 통사정을 한 적도 있었다.
커피가 도착해서 한 모금 마셨는데 전화가 울렸다.
누구야!
짜증이 불쑥 올라와서 전화기를 들었다.
“예, 대사님.”
[“무슈 강, 오늘 저녁 5시에 남산 호텔을 예약해 두었는데 시간 괜찮은가요?”]
염병.
뭔 수를 내야지 이상하게 이 호텔로 꼬인다.
“알겠습니다, 대사님.”
[“그럼 5시에 보지요.”]
전화를 끊은 강찬은 샤흐란을 잡을 때까지는 담배를 피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찬이 커피잔을 들었을 때였다.
미쉘과 여자 셋이 라운지를 향하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 시선이 모조리 네 명의 여자에게 쏠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