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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가슴이 시키는 일.
“왜?”
“보고 있으니까 좋아서.”
“피이.”
김미영의 모습에 강찬은 웃고 말았다.
여자아이라 그런가?
엉뚱한 소리로 삑삑 해대다가 한순간에 부쩍 컸다.
“백설공주.”
“응?”
주변을 둘러보는 김미영을 강찬이 불렀다.
“나중에 대학 가서 정말 멋진 사람을 만날 수도 있잖아.”
김미영은 먼저 배시시 웃었다.
“나쁘다.”
“뭐가?”
“너두 나중에 나보다 예쁘고 좋은 여자 만날 수 있다는 뜻이잖아.”
“그런 건 아니고.”
“그런데 왜 나는 그럴 거라 생각해?”
요거 봐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난 공부 말곤 잘하는 게 없어.”
공부 못하는 놈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유학 결심한 거야. 둘이서 프랑스에서 지내려고. 아빠, 엄마가 반대하면 거기서 아예 살 거야. 나, 프랑스어 인터넷 강의 들어.”
김미영이 얼굴을 찌푸렸다.
“정말 어렵더라. 그래도 그 강의 들으면 행복해. 함께 있는 거 같기도 하고.”
뒤에 한 이야기는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프리카와는 확실히 다른 건가?’
강대경, 유혜숙, 그리고 석강호.
강찬이 불행한 일을 당한다면 제대로 삶을 이어가기 어려울 사람들이다. 거기다 김태진만 해도 부하들을 잃은 아픈 기억 때문에 함부로 반말도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왜?”
“그냥. 보고 있으니까 좋아서.”
“흐흐흐.”
독특한 웃음소리마저 좋게 들렸다.
학원에 있었던 일, 엊그제 보았다는 TV 프로그램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석강호와 갔었던 백반집에서 맛있게 저녁도 먹었다.
카드로 계산할 때 김미영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카드도 있어?”
“그냥 통장에 있는 돈 쓰는 거야.”
계산을 마치자 사용 내역이 문자로 왔는데 잔액의 동그라미가 너무 많아 알아먹기가 어려웠다.
통장을 나눠놓을 필요가 있었다.
“차 가져다 드리러 같이 가.”
번거로운 소리다.
당장 김태진 회사 직원 두 명 정도는 김미영을 따라다니고 있을 텐데 말이다.
강찬은 아파트에 김미영을 내려주고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운 다음, 다시 택시로 돌아왔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가슴이 설렜다.
번호 키를 누르고 문을 열었을 때, 유혜숙과 강대경이 함께 있었다.
“아들!”
“다녀왔습니다.”
유혜숙이 강찬을 안아주고는 안색을 살폈다.
“운동이 좀 심했었나 봐요.”
“얼굴이 반쪽이 됐다. 뭐 좀 먹을래?”
“지금 막 밥 먹고 들어오는 길이에요. 그런데 저건 뭐예요?”
식탁에 서류가 여러 장 있어서 강찬이 그리로 시선을 주었다.
“응. 아빠랑 엄마가 후원하려고 하는 보육원하고 양육원 목록이야.”
오랜만에 유헤숙을 보는 것도 좋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강찬은 식탁으로 갔다.
“아픈 곳은 없니?”
“예.”
강대경은 이제야 말 걸 틈을 찾았다. 그나마 유혜숙이 약을 데운다고 자리를 비우지 않았으면 아직 입도 떼지 못했을 거다.
“생각보다 많이들 어렵다.”
“봐도 되나요?”
“그럼.”
강찬이 서류를 하나씩 보았다.
한 달에 필요한 비용이 600만 원인데 후원금과 보조금을 합한 금액이 450만 원인 곳이 그나마 가장 상태가 좋아 보였다.
이래서야 제대로 살 수나 있나?
“다들 이렇더구나. 최근에 점점 더 어려워졌다는데 우리 능력으로도 한계가 있어서. 어느 한 곳 마음에 걸리지 않는 곳이 없다.”
“아들, 이거 먼저 먹어.”
유혜숙이 강찬에게 약을 놓아주었다.
“두 분은 드셨어요?”
“네가 사준 약이라고 엄마가 얼마나 알뜰하게 먹는데. 아빠가 안 말렸으면 비닐 팩까지 다 먹었을걸?”
“이이는 꼭!”
유혜숙이 눈을 흘기자 강대경의 목이 쑥 들어갔다.
보기 좋았다.
나중에 가정이 생긴다면 이런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일요일에 상정 보육원에 가볼 생각인데 같이 갈래?”
“예. 그런데 혹시 선생님하고 다른 약속이 잡힐지는 몰라요.”
“그래. 시간 되면 같이 가는 걸로 하자.”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자 방에 들어왔다.
아늑함.
이제는 방에 들어오면 편안함이 느껴졌다.
병원에서 지어준 약을 먹고 모처럼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을 때였다.
웅웅웅. 웅웅웅.
전화를 들었던 강찬은 샤흐란을 깜박 잊고 있었음을 알았다.
“여보세요?”
[“무슨 짓을 했길래 벌써 퇴원한 거지?”]
이놈은 계속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나 보다.
강찬은 잠시 방심했구나 싶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더군.”]
“쓸데없는 소리 지껄일 거면 용건이 생겼을 때 다시 전화해.”
[“워워, 강찬.”]
여유 있는 척했으나 샤흐란은 또 기력이 달리는 음성이었다. 통화 중에 힘이 빠진 게 벌써 두 번째다. 아직 부상에서 제대로 완쾌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얼떨결에 당했지만 네 능력을 인정하기에 전화한 거다. 냉정하게 생각하는 게 좋아.”]
“용건을 말해, 샤흐란.”
[“우리 일을 도와라. 그러면 200억을 주지.”]
이 새끼는 또 무슨 소릴 하려는 거지?
[“다 알아, 강찬. 그러니 라노크를 죽여. 너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않나? 적당한 방법이면 되겠지. 아니라면 그가 확실히 움직일 동선만 알려줘. 그래도 200억은 네 거다.”]
피식.
[“잘 생각해. 시간이 얼마 없어.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그 뒤로 어쭙잖은 경호원들은 고용하지 않아도 좋을 거야.”]
이 새끼가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만약 우리가 먼저 라노크의 동선을 알게 되면 네가 가장 아끼는 사람 중 한 명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거야. 10억이면 되더군. 교통사고, 뜻하지 않은 강도. 그따위 어설픈 경호원들이 과연 그런 일까지 막을 수 있을까?”]
“샤흐란.”
[“대답은 내일 듣겠다. 남은 시간이 열흘밖에 없어, 강찬. 그 안에 결정을 못 하거나 우리가 해결하게 되면 이번처럼 날뛸 틈도 없이 누군가를 잃어. 아! 아마 여자가 될 거다.”]
말을 마치자 힘겨운 숨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전화를 받아서 끊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라노크에게 전화하긴 어렵다.
열흘 정도 남았다는 말이 위민국이란 놈이 빌린 배로 한국을 떠날 계획과 맞아떨어졌다.
강찬은 병원에서 지어준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라노크를 죽여달라고?
그건 화가 나지 않았다.
아끼는 사람 중 여자 한 명을 다시 못 보게 하겠다고?
개새끼.
반드시 심장이나 목에 칼을 꽂아주마.
***
다음날 오전 학교에 갔을 때, 석강호는 1, 2학년들과 운동을 하고 있었다. 담배를 끊었을 정도로 독기가 올랐는데 특히나 격투술에 치중했다.
체육선생이라더니 몸놀림에 재능은 있었다. 그러나 나이 든 표가 분명하게 났다.
“선생님. 그게 뭐예요?”
“호신술이다.”
“저희도 가르쳐 주세요.”
기구 운동에 질린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강찬은 짧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근접격투술은 이런 식으로 배워서 몸에 익기도 어려운 운동이다. 기밀 정보를 빼돌리는 것도 아니어서 가르쳐준 들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석강호는 우선 맨손 대 맨손의 기본자세를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태권도를 생각했던 모양이다.
동작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따라 하다 보니 괴상망측한 자세가 나왔다.
기본기를 서너 차례 가르쳐 준 다음이었다.
강찬은 중간에 눈짓을 해서 석강호를 불렀다.
“샤흐란이 전화했었다.”
“벌써 사흘이 지났소? 아. 그러네. 뭐랍디까?”
강찬은 통화 내용을 있는 대로 전해 줬다.
“이 새끼가 거물인 척하네.”
“그게 뭔 소리냐?”
“그렇잖수. 기껏 다이아몬드 때문에 부하들 팔아먹고 마약이나 밀수하던 놈이 대사를 죽이면 200억을 주느니 마느니 하는 게! 병신이 무슨 프랑스의 앞날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에라도 있는 것처럼 주접을 떠니까 같잖아서 그렇소.”
속이 후련할 정도로 시원한 평가였다.
“라노크에겐 전화했소?”
“조금 뒤에 전화할 생각이다. 이참에 라노크를 미끼로 써보려고.”
석강호가 눈을 반짝였다.
“둘이 짜고 위치를 알려주면 누구든 움직이지 않겠냐? 라노크는 배후를 치고, 우리는 거꾸로 타고 내려와서 샤흐란만 잡으면 되는 거고.”
“그랬다가 라노크가 당하면요?”
“그거야 프랑스 정보국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설마 라노크를 죽이겠다고 회칼 들고 오겠냐? 알아서 총질하거나 다른 방법을 쓸 텐데 우리가 끼어들 일도 없다.”
“그건 그렇수.”
대강 의논을 끝낸 석강호가 운동부실로 들어가자 강찬은 라노크에게 전화를 넣었다.
[“무슈 강. 대사께서 면담 중이시니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엉뚱한 사람이 전화를 받아서 김이 팍 샜다.
어차피 점심시간이기도 해서 중국집에서 몇 가지 음식을 주문해 다 같이 먹었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잠시 쉬었다가 되지도 않는 호신술 구경에 지쳐서 운동부실을 나왔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대사님.”
[“무슈 강. 직접 못 받아서 미안합니다.”]
“업무가 많으실 테니까 그건 괜찮습니다. 전화를 드린 건 어제 샤흐란에게서 왔던 전화 때문입니다.”]
강찬은 통화내용을 라노크에게도 전해주었다.
[“미끼를 바꿔야겠군요.”]
강찬이 풀썩 웃었는데 라노크는 진지한 음성이었다.
[“오늘 전화가 오면 이틀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십시오. 내일 저녁에 호텔을 예약해 두겠습니다. 괜찮으시면 내일 뵙지요.”]
“알겠습니다, 대사님.”
전화를 끊자 한결 여유가 생겼다.
김태진이 쫓고 있으니 그쪽에서 샤흐란을 먼저 찾을 수도 있고, 반대로 라노크가 배후를 잡아낼 수도 있는 일이다.
어느 쪽이든 각자의 목적이 있으니 게을리할 리도 없다.
생각 난 김에 김태진에게 전화해볼까 했으나 그만두기로 했다. 쫓기는 것도 그렇지만 사람 뒤를 쫓는다는 것이 얼마나 신경 곤두서는 일인지를 익히 짐작해서였다.
운동부실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은 석강호와 기본자세를 반복하고 있었다.
‘에휴.’
기가 막힌 자세였다.
적과 마주 섰다면 딱 한 번의 손질에 목을 찔려 죽기 꼭 좋은 자세.
강찬이 고개를 내저으며 천천히 몸을 풀 때였다.
“선생님. 이런 동작으로 싸울 수 있어요?”
차소연이 던진 질문에 여럿이 동조하는 눈빛을 보냈다. 자기들이 보기에도 너무 엉성했던 모양이다.
“나중에 시범을 보면 알 거다.”
“예.”
대답에 신뢰가 담겨있지는 않았다.
그저 그러려니 하던 참이다. 그런데 강찬을 바라보는 석강호의 시선에 아쉬움이 잔뜩 담겨 있었다.
약이 오른 거다.
그리고 대련 상대가 있었으면 싶은 거다.
담배까지 끊으며 이를 악물었는데 허공에 대고 연습하자니 맥이 빠지기도 했을 거다.
강찬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석강호의 앞으로 나섰다.
‘어쩌려고 그려쇼?’
석강호의 눈빛이 딱 그랬다.
“몸 좀 한번 푸시죠.”
히죽.
걱정된 건 걱정된 거고, 좋은 건 좋은 모양인지 석강호가 만족한 듯 웃었다.
강찬이 나서자 운동부실이 단박에 조용해졌다.
둘이서 몸을 약간 비튼 상태에서 권투 선수처럼 두 손을 목 높이로 올린다.
여기까지는 아이들이 한 것과 비슷했다.
석강호가 두 번쯤 상체를 움찔거린 다음이었다.
쉬익.
그가 곧바로 엄지를 날렸다.
파바박.
팔꿈치로 막은 강찬이 그대로 턱을 노렸고, 석강호는 팔꿈치를 밀쳐내고 강찬의 옆구리와 목을 노렸다.
팍. 팍. 파박.
삽시간에 손과 손이 네다섯 번 부딪치고 둘이 떨어졌다.
아이들은 탄성도 지르지 못했다.
기본자세 때는 몰랐던 살벌한 동작도 그렇지만 강찬과 석강호의 번들거리는 눈빛에 완전히 기가 질렸다.
파박. 팍. 팍. 퍼억!
다시 시작이다.
주먹과 팔꿈치를 밀쳐낸 강찬이 석강호의 옆구리에 손날을 쑤셔 넣었다.
아이들의 얼굴이 단박에 일그러졌다.
마치 석강호 대신 옆구리를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석강호가 몸을 좌우로 비틀고는 강찬에게 달려들었다.
팍. 파박. 팍팍팍. 파박.
강찬은 파리를 쫓듯 석강호의 손을 이리저리 쳐내고 마지막에 목과 옆구리를 때렸다. 칼을 들고 있었다면 석강호는 이미 바닥을 뒹굴었을 거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칼을 맞았던 옆구리와 허리에 뻐근한 통증이 몰려왔다. 강찬이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나며 석강호도 자세를 풀었다.
“우와.”
아이들은 그제야 탄성을 질렀고, 몇몇은 손뼉을 쳤다. 석강호의 아쉬움을 달래준다는 게 애꿎은 애들 가슴에 불만 지른 꼴이다. 강찬이 물러나기 무섭게 죄다 일어나 제 나름으로 기본자세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강찬이 밖으로 나가자 석강호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괜찮소?”
“그냥 좀 결렸어.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그나저나 몸이 그렇게 굳어서 어쩌냐?”
“그러게 말이오. 설마 했더니 나도 몸뚱이가 이렇게 느린 줄은 몰랐소. 팔이랑 몸통에 모래주머니라도 달아놓은 것처럼 무겁습디다.”
“내일부터 제대로 하자. 내가 좀 잡아줄 테니까.”
“몸부터 좀 낫고 합시다. 솔직히 불안해서 제대로 달려들지 못한 것도 있으니까.”
“쯧.”
그런 면이 없잖아 있었을 거다.
강찬은 무언가 방법을 강구해야겠다고 여겼다.
잠시 쉬고 있자니 학원을 마친 김미영이 와서 함께 집으로 향했다.
“토요일에 놀러 갈 수 있어?”
“토요일?”
“응! 금요일에 강촌에 놀러 갔다가 토요일 하루는 내 마음껏 놀아도 된다고 허락받았어.”
“가고 싶은 데는 있니?”
“바다 보고 싶어.”
“바다?”
“응! 회도 사 먹고, 모래도 밟아보고 싶어.”
“알았다. 그러자.”
“흐흐흐흐.”
저렇게 좋을까?
아파트 앞에서 헤어진 다음 집에 들어가자 미쉘에게서 전화가 있었다.
내일 오전 11시에 호텔에서 디아이 인수 계약에 참석하는지를 확인하는 전화였다.
강대경이 일찍 들어와서 셋이 식탁에 앉았는데 저녁은 삼겹살이었다.
아파트에 강찬을 부러워한다는 아주머니들 이야기와 쉬프가 슬슬 입소문을 탄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다.
고기 냄새만큼이나 집안에 행복이 가득했다.
밥을 먹고 거실에서 함께 과일까지 먹은 다음 방에 들어왔을 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전화가 울렸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111-1111-1111.
전화기에서 나온 벌레가 행복을 좀 먹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론 샤흐란의 인생도 더럽게 불쌍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 불쌍한 새끼는 가족끼리 삼겹살을 구워먹는 행복을 알 리가 없다.
하기야 프랑스에는 삼겹살이 없다.
그만 좀 받으라고 전화가 몸을 사정없이 떨어댔다.
“여보세요?”
[“결심이 섰나?”]
“이틀쯤 시간이 필요해.”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알았다.”
[“그럼 이틀 후에 전화하지.”]
“샤흐란.”
강찬은 전화를 끊으려는 샤흐란을 붙들었다.
“200억을 먼저 보내지는 않을 거고. 어떻게 그 돈을 보장하지?”
낮에 생각해두었던 질문이다.
샤흐란이라면 이쪽에서 이 정도는 궁금해 줘야 한다.
[“결심이 서면 방법을 알려주지.”]
“방법이 먼저야, 샤흐란. 우리가 그렇게 신뢰하는 사이는 아니잖아.”
[“스위스 계좌를 넘겨줄 거다.”]
“돈을 꺼내기 전에 비밀번호를 바꾸면 끝나는 일이야. 그 큰돈을 넘겨올 방법도 없고. 좀 더 확실한 방법이었으면 좋겠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라노크가 뭐라고 지껄였는지는 모르지만 이번에 그를 잡는다면 네가 상상하지 못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 유럽 전체의 판도가 달라진다. 강찬.”]
“그건 유럽 놈들끼리 알아서 할 일이고 난 200억을 어떻게 받느냐가 중요해. 내 손에 쥐어질 돈. 그리고 이후에 보장받을 안전. 내가 라노크를 팔아도 네놈들이 못 잡으면 난 돈도 못 받고 양쪽에서 쫓기는 신세가 되는 거거든. 날 그렇게 어리숙하게 대하지 마, 샤흐란.”
[“흐-흠. 그 정도라면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지.”]
“이틀 후에 전화할 때 그 방법을 들었으면 좋겠어.”
급작스럽게 전화가 뚝 끊겼다.
이 새끼는 전화 매너부터 배울 필요가 있었다.
‘약 오를 거다.’
샤흐란은 긁어대는 걸 참지 못한다.
뭐든 제 놈이 끌고 가야지, 이쪽에서 주도권을 잡고 흔드는 꼴을 이겨내지 못하는 놈.
200억이면 돈가스가 몇 갠 거지?
개코나 얼마나 많은 돈인지도 모르겠다.
전혀 욕심나지 않는 돈이다.
지금 강찬에게 필요한 이유도 없다.
통장에 들어있는 돈 중에도 용병 때 받은 월급 말고는 가치도 느껴지지 않는 참이다.
열흘 언저리.
라노크를 미끼로 삼든, 김태진이 잡아내든 샤흐란만 잡으면 된다.
쫓고 쫓기는 싸움.
강찬은 샤흐란을 노리고, 샤흐란은 라노크를 노리는데 라노크는 강찬을 이용하는 엿 같은 관계. 거기에 모가지 귀신, 위민국과 김태진이 부록으로 끼었다.
어설프게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목숨을 노리는 거다.
‘빨리 끝내자, 샤흐란.’
강찬도 길게 끌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