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43화 (4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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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고기를 잡으러.

샤흐란에게서 경고를 받은 느낌이었다.

중국 쪽 조직을 이용해 망가진 주차장 파를 꼬드긴 것이라면, 이건 강찬의 뒷조사를 마쳤다는 뜻도 된다.

강찬은 조직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야 놈도 가족을 노리는 따위의 짓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하고, 강찬을 곧바로 칠 수밖에 없는 거다.

‘미쉘이 말한 회사는 우선 인수하기로 하고.’

라노크에게 완전히 읽히는 회사다.

당장은 김태진이 딱이다.

실력 되지, 경호업체 대표지, 자존심 있지, 무엇보다 확실하게 살아 있는 눈빛까지.

‘그런데 뭐라고 설명하지?’

죽었다가 살아났더니 고등학생 몸이었다고 솔직하게 말해버려?

김태진은 틀림없이 정신과 상담을 진지하게 권할 사람이다.

‘쯧.’

강찬이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김미영이었다.

[“여보세요?”]

“어디니?”

[“학원 끝났어. 어제랑 왜 전화 안 받았어?”]

서운했던 모양이다.

“전화기를 다른 곳에 뒀었어. 집에 없었거든.”

[“어딘데? 혹시 수련회 간 거야?”]

“거길 내가 왜 가? 석강호 선생님 부탁으로 뭐 좀 알아보느라고 온 거야. 이번 주는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다음 주에 보자.”

[“나 다음 주에 학원 쉬어. 그땐 시간 괜찮아?”]

“그래. 놀러 가기로 했잖아.”

[“응! 정말 갈 수 있는 거지?”]

김미영의 들뜬 목소리가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잠시 통화를 더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기다렸던 것처럼 샤흐란의 일이 달려들었다.

‘이러다 내가 돌겠는데?’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김태진이 들어섰다.

음식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는 건지, 아니면 원래 깔끔한 건지는 몰라도 양치질을 해서 개운한 치약냄새를 풍겼다.

“시간 좀 되세요?”

“평소엔 한가하다니까. 내가 해줄 게 있으면 부담 갖지 말고 말해.”

편안하게 대해 주는 것이 좋았다.

“의논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잠시만 앉으시죠.”

“그러지.”

김태진이 침대 옆에 있던 의자에 자리 잡았다.

강찬은 먼저 샤흐란과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아프리카의 작전 중에 대원을 팔았고, 배후에 세력이 있다는데 아직 밝혀지진 않았다. 그리고 스미든은 지난번 방문에서 죄를 뉘우치고 강찬과 한편이 되었다.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김태진이 아무 말 않고 있어서 강찬은 주차장 파와 왜 싸움이 일어났었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후반부의 사건은 김태진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서 긴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샤흐란이란 인물을 찾아야 이 싸움이 끝난다는 말이군.”

“그렇지요.”

김태진이 의문 가득한 시선으로 강찬을 보았다.

“저는 공트 자동차와의 계약을 따려다가 엉겼다고 이해하는 게 속이 편하실 겁니다.”

“속이 안 편한 설명도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받아들이지 못하실 겁니다. 프랑스어, 석강호 선생과의 관계, 제 격투술까지요.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넘어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김태진이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하는 게 서로를 위해서 좋겠지?”

“그럴 겁니다.”

그가 기가 막힌 투로 웃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단순히 경호를 제대로 하란 뜻은 아닐 테고?”

“샤흐란을 잡는 일에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그쪽이라면 오광택이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샤흐란은 특수부대를 지휘했던 인물입니다. 그가 여기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인다면 깡패들은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그런가?”

고개를 끄덕이던 김태진이 퍼뜩 시선을 들었다.

“프랑스인이라면서? 그쪽 인물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면 대번에 표시가 나지 않나?”

“샤흐란은 분명 방법을 강구해 낼 겁니다. 불편하시면 맡지 않으셔도 됩니다.”

김태진인 입술을 모은 채로 인상을 찌푸렸다.

“흐-흠. 내가 경호실 근무했다는 건 알지?”

“인터넷 홍보 문구에서 봤습니다.”

김태진은 맥이 빠진 얼굴이었다.

“우리 회사에 경호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직원들이 좀 있어. 그런 애들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요원을 만나면 생명이 위험해. 그러니 걔들 교관으로 일해주는 조건이라면 샤흐란 일에 협조하지.”

“제가 드렸던 말씀은 없었던 걸로 하죠.”

숨도 안 쉬고 거절이 나오자 김태진이 입맛을 다셨다.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봐.”

대원들 죽는 꼴을 보면 눈이 뒤집히는 강찬이다. 그런데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한 초짜들을 가르치라고?

시쳇말로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제안이었다.

분위기가 조금 뻑뻑해졌으나 감당하기 싫은 일을 맡는 것보단 나았다.

배가 고팠는데 유헌우의 진지한 경고가 마음에 걸렸다. 자칫해서 개복수술이라도 하게 되면 유혜숙이 지리산을 뒤질 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한 시간쯤 지나서 주사를 맞자 잠이 몰려왔다.

그때까지 김태진은 곁에 있었다.

웅웅웅. 웅웅웅. 웅웅웅.

전화기의 진동이 강찬의 잠을 깨웠다.

얼핏 일어나 보니 김태진은 자리에 없었다.

전화기를 들여다본 강찬은 두 번쯤 눈을 끔벅였다.

111-1111-1111.

‘라노크인가?’

강찬은 우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강찬.”]

“샤흐란?”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멋진 계획을 또 망쳐놨더군.”]

“옆구리가 좀 아문 모양이지?”

[“지금 그 말을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전화기 너머에서 병원의 기계음이 희미하게 들렸다.

강찬이 번호를 다시 한 번 살핀 다음이었다.

[“난 원래 소모전을 좋아하지 않아.”]

“걱정 마라. 조만간 심장에 칼을 꽂아줄 거니까.”

샤흐란이 픽 코웃음을 쳤다.

[“나를 자극하면 네 주변 사람들이 위태로워 져. 그 정도 경고를 받았으면 알아들을 만도 한데.”]

당장 반박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사흘 뒤에 다시 전화하마.”]

전화가 끊겼다.

마지막은 힘겹게 말을 마친 느낌이었다.

‘라노크에게 알려야 하나?’

강찬은 우선 침대를 세우고 싶었다.

머리맡에 있는 호출 벨을 누르자 곧바로 간호사가 들어왔다.

“침대 좀 올려주세요.”

간호사가 침대를 올려주고 체온과 맥박을 재고 났을 때 유헌우가 들어섰다.

“좀 어때요?”

“배가 많이 고픈데요.”

“그 정도면 괜찮은 신호인 거 같네요. 어디 상처를 한번 봅시다.”

기껏 올린 침대를 다시 내렸다.

유헌우는 간호사에게 소독할 준비를 해오라고 지시한 다음, 허리의 상처를 들춰보았다.

투두둑.

붕대가 떨어질 때마다 짜릿한 통증과 함께 피가 번져 나왔다.

유헌우가 상처를 살피고, 배를 몇 차례 누르는 사이, 간호사가 바퀴 달린 선반을 가져왔다.

“외견상이나 촉진으로는 문제가 없네요. 상처도 벌써 아물고 있고. 옆구리 상처도 봅시다. 회복 속도가 빨라서 붕대를 좀 더 자주 갈아주는 게 좋겠어요.”

침대를 다시 세워야 해서 간호사에게 미안했다.

유헌우는 강찬을 앉게 한 다음, 가위로 붕대를 자르고 다시 천천히 떼어냈다.

이번만큼은 강찬도 두 차례 신음을 토해냈고,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

“칼 맞을 땐 모르나요?”

“예?”

“붕대를 떼는 것보다는 더 아플 것 같은데 이렇게 되도록 견디는 게 신기해서 그럽니다.”

유헌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상처를 살폈다.

“모두 열여섯 곳이요. 최근 한 달 사이에 허가품목인 진통제와 혈액을 너무 써서 관련 부서에서 의심하는 눈치더군요.”

강찬이 간호사를 힐끔 보았다.

누구라도 입만 뻥긋하면 유헌우는 빠져나가지 못한다.

“밖에서 말이 나오면 모를까, 병원 식구들은 다 안심해도 됩니다.”

소독약을 발라주며 유헌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다. 어떤 의미의 자신감인지는 몰라도 따지고 들기도 어려웠다.

“이전보다 회복이 더딥니다. 상처가 워낙 많아서 그런 모양인데 이번 주말까진 병원에 있어봅시다.”

“예.”

집에 가기 전에 어느 정도는 몸을 회복하는 게 좋다.

“저녁은 우선 죽을 먹어보고 괜찮으면 내일부터 제대로 식사하는 걸로 하구요.”

이것도 얌전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잠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김태진이 들어왔다.

“일어났네?”

“가서 좀 쉬시죠.”

셔츠 사이로 감은 붕대가 고스란히 드러나서 김태진이 더 중환자처럼 보였다.

“아래층에 서 이사가 입원해 있으니까 그렇게 부담 갖지 않아도 돼.”

“많이 다쳤나요?”

“하마터면 평생 다리를 못 쓸 뻔했다더군. 직원들 교육 담당이라는 놈이 저 모양이니 할 말도 없을 거야.”

말을 마친 김태진이 강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다.

강찬은 TV를 끄고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샤흐란은 귀국길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더군. 정보부에 있는 친구 말로는 프랑스 정부에서 이 사건이 보도되지 않도록 협조요청까지 했다던데 내가 모르는 게 더 있는 건가?”

강찬은 아차 싶었다.

조직을 구성하겠다는 욕심에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인 꼴이다.

프랑스 정보총국까지 강찬을 적으로 돌리면 이건 절대로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 된다.

“말하기 곤란하면 여기서 멈추기로 하지.”

의외로 김태진은 깔끔하게 물러났다.

“나는 비무장지대에서 아군을 지키거나 복수 차원에서 상대방 초소를 급습하는 임무를 수행했었다.”

뜬금없는 이야기라 강찬은 듣고만 있었다.

“적성에 맞았지. 그렇게 군인으로 살고 싶었고. 그런데 북한군 특수부대, 모가지 귀신이란 놈에게 부대원 다섯을 한꺼번에 잃으면서 모든 게 날아갔다.”

김태진은 아직 그때의 분을 삭이지 못한 채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죽은 놈들의 대검에 묻은 피로 봐서 놈도 심각한 부상을 당했을 텐데. 그때부터 내가 워낙 미쳐서 날뛰는 바람에……, 후우! 전역당했다. 하기야 그냥 뒀으면 평양이라도 뛰어갈 판이었으니까. 그 뒤로 경호실에서 근무했었지.”

고개를 앞에 두었던 김태진이 말끝에 시선을 들어 강찬을 보았다.

“그때 몸뚱이를 온전히 보전한 동기 두 놈이 있었는데 한 놈은 정보부, 다른 놈은 그 부대 대장으로 있지. 정보부에 있는 동기 놈이 그러더구나. 샤흐란 일에 손대지 말라고. 최근에 중국 쪽과 프랑스 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그런데 우습게도 나를 참지 못하게 하는 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김태진이 주먹을 꽉 쥐자 붕대를 감은 팔뚝이 꿈틀거렸다.

“모가지 귀신이 중국 쪽 정보국에 있단다. 내 대원 목 다섯을 자르고 사라졌던 놈이 말이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마주쳐봐서 얼굴은 안다.”

“중국에 가시겠네요.”

“지금 한국에 있단다.”

뜻밖의 이야기였으나 아무튼, 김태진은 복수할 기회를 잡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가 묘하게 웃으며 강찬을 보았다.

“샤흐란이 국내로 들어오기 전에 통화한 명단에 놈이 있었는데…….”

뭐하고 뭐가 통화를 해?

강찬은 순간 눈이 번쩍 띄었다.

“혹시 모가지 귀신을 뒤쫓으면 샤흐란이란 인물이 나오지 않을까?”

강찬은 어리둥절한 느낌이어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실마리가 될지는 몰라도 당장 모가지 귀신이 샤흐란 때문에 국내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딘지 성급해 보였다.

김태진은 강찬의 생각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광명유한합작공사라는 회사의 대표로 국내에 들어왔더군. PCB 기판을 설계하고 생산하는 업체라는데 서울호텔에 묵고 있다.”

중국이든 북한이든, 이 시점에 공작원이 국내로 들어온 것은 사실이니까. 강찬은 어쨌든 막막했던 샤흐란의 꼬리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당장은 나도 접근하기 어려워. 우선 중국 쪽 요원 애들이 붙어있고, 우리 정보부 요원들도 감시 중이니까. 보름 후에 화물을 싣고 나간다더구나.”

“화물이요?”

“이쪽에서 PCB 기판을 싣고 간다는 거지. 그런데 놈이 화물선을 전세를 냈다고 하던데?”

이렇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샤흐란을 데려가겠다는 거군요?”

“부상의 정도를 감안하면 그런 추리가 들어맞을 수도 있지.”

강찬은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의 눈빛을 보면서 김태진도 만족한 얼굴이었다.

“샤흐란의 이전 행적을 뒤지다 보니 놈이 나왔다. 중국 기업 대표와 프랑스 공트 자동차의 부사장으로 공식 통화를 하는 바람에 잡아낸 거고. 정보부에 내 친구 놈이 아니었다면 모가지 귀신이란 사실은 밝히기 어려웠겠지.”

보름이라고 했다.

“정보부 친구에게 도움을 받기로 했다.”

강찬이 의아한 눈으로 보았을 때였다.

“나는 모가지 귀신을 잡고, 너는 샤흐란을 잡는 거다.”

씨익.

그런 거라면 빼지 않는 강찬이다.

“놈의 중국식 이름이 위민국이더구나. 정보부에서 거래 상대방 회사를 조사하고 있는데 원래부터 PCB 기판을 생산하는 업체가 맞는단다. 덕분에 대주주가 주가 조작을 하는 것도 부수적으로 알게 되었다는데 그건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김태진이 멋진 미소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위민국의 일정과 동선을 파악하고 있으니까 연락이 오는 대로 알려주마. 그러니 우선 몸을 제대로 만드는 데 주력해.”

“기분 좋은데요?”

“지금껏 그때 목을 잘린 대원들의 모습을 잊어본 적이 없다. 이번에라도 제대로 갚아줘야지.”

마음 같으면 달달한 봉지 커피에 담배 하나 피우고 싶은데 지금은 참아야 하는 때였다.

잠시 후, 저녁으로 죽이 나왔다.

김태진은 서상현에게 들렀다가 저녁을 먹고 오겠다며 병실을 나섰다.

배가 고프던 참이라 죽 한 그릇을 말끔하게 비워냈다.

죽을 먹고 나서 한 시간쯤 지나서 유헌우가 들렀다.

“통증이 있거나 이상한 곳은 없어요?”

“배가 고픕니다.”

유헌우가 풀썩 웃으며 배를 몇 번 눌러보았다.

“절대로 술은 안 됩니다.”

“그럼요.”

밤을 그대로 넘어가지 않으리라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퇴근한 이후라도 갑자기 복통이 생기거나 문제가 있으면 바로 연락하세요. 아니면 간호사에게 말해도 되고.”

“그럴게요.”

유헌우가 돌아서며 주사약 몇 가지를 처방해 주었다.

강찬은 침대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샤흐란이 사흘 뒤에 전화한다는 이유가 뭘까?

위민국이라는 모가지 귀신과 과연 만날까?

라노크에게는 어디까지 말하는 게 좋을까?

물론 김태진에게도 라노크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어딘가 비겁한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반대로 샤흐란만 잡으면 모두 끝나는 일이다.

이번만큼은 놓치면 안 된다.

옆구리를 뼈째 갈랐는데도 살아난 놈.

강찬은 우선 미쉘이 회사를 인수하는 일을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라노크의 의심도 덜고, 만약 이번에 샤흐란이 나타나지 않을 때를 대비하려는 생각이었다.

‘여기까지.’

간단하게 생각하는 게 좋다.

강찬이 만족한 웃음을 짓는 순간, 병실 문이 열리며 오광택이 들어섰다.

깔끔한 양복에 넥타이 없는 연초록 셔츠 차림이었다.

“살 만하네?”

강찬이 풀썩 웃자 오광택은 직접 가서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난 내가 장의사가 된 줄 알았다.”

툴툴거리면서 종이컵을 들고 온 오광택이 커피를 건네주고 담배를 꺼냈다.

“창문 좀 열어라.”

“그래? 그러지.”

순순히 말을 듣는 게 이상했지만 뭐 아직까지야 나쁠 게 없으니까.

봉지 커피와 담배.

강찬은 몸과 마음의 고단함이 단숨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주차장 애들은 깨끗이 정리 끝났고.”

강찬의 표정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오광택이 불쑥 인상을 썼다.

“뭐야! 이번에 완전히 정리했다니까! 아예 울산 쪽 식구들이 다 접수해서 다시는 주차장이니 세차장이니 안 나와! 박기범이는 다음 주에 필리핀으로 이민 갈 거고.”

“고생했네.”

후루룩.

요란스럽게 커피를 들이켠 오광택이 한숨처럼 담배를 뿜어냈다.

“이번 건 주차장 파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서 애프터 서비스한 거다. 그렇게 알아라. 간다.”

종이컵에 담배를 던진 오광택이 깔끔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그냥 입을 다무는 느낌이었다.

“할 말 있는 거 아니었냐?”

병실 문을 잡은 오광택이 강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픽 웃고 병실을 나갔다.

저 새끼는 뭔가 좀 다르긴 하다.

신세 진 것도 있고.

강찬은 기분 좋게 침대에 몸을 기댔다.

전화가 울려서 들어보니 석강호였다.

그 성격에 오래 참았다.

“여보세요?”

[“저녁은 어쨌소?”]

“먹었다. 너는?”

[“애들 챙기다 이제 겨우 때웠소. 난 저녁때 올라갈 거요.”]

“왜? 무리하지 말고 내일 일정에 맞춰서 와.”

[“그게 아니라, 마누라하고 애가 워낙 겁에 질려서 자꾸만 경찰에 신고한다고 난리잖소. 그거 달래지 않았다간 사고 나겠수.”]

“하긴. 일반인이 견디기 어렵지.”

[“이따 봅시다.”]

“조심해서 와.”

[“알았수.”]

석강호가 올라온다니까 더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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