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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고기를 잡으러.
“나와 서 이사가 있으니까 달려드는 놈들만 상대합시다.”
김태진이 강찬의 상처를 힐끔 보며 건넨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던 참이다.
강찬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앞을 노려볼 때였다.
“빨리 풀어!”
경호원의 한 마디에 멀리 있는 놈 하나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손에 일본도를 들고 있었다.
시선을 가져와야 했다.
와락!
강찬이 뛰어들자 단박에 서너 개의 칼이 달려들었다.
턱. 푹. 푹. 턱. 턱. 푹. 피윳!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적의 손목을 쳐내고, 찌르고 베었다.
좌우에서 김태진과 서상현이 달려들지 않았다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놈들도 독기가 올랐다.
강찬은 일본도를 든 놈을 보았다.
경호원 셋이 놈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피윳!
시선을 뺏긴 틈에 옆구리를 베였다.
푹푹!
놈의 팔을 두 번 찌르는 사이 새로운 덩치가 앞을 막았다.
피윳! 피윳!
놈의 목을 좌우로 긋는 순간,
“끄ㅡ윽!”
푸학!
뿜어진 피가 강찬의 상체를 확 뒤덮었다.
“퉤!”
눈으로 피가 들어가서 앞이 온통 벌겋게 보였다.
경호원 하나가 일본도를 피해 몸을 펄쩍 뛰자 석강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석강호는 구한다.
눈알이 빠지든, 옆구리가 갈라지든, 석강호는 구하고 본다.
푹! 푹!
“끄아악!”
목덜미와 겨드랑이를 찍힌 놈의 비명이 처절했다.
“비켜!”
마주 선 놈이 움찔하는 순간이었다.
피윳!
강찬은 대검으로 목젖을 그어버렸다.
죄? 천벌? 지옥?
묶인 채 뒈진 석강호를 보는 게 지옥이다.
뜨끔!
옆구리를 또 베였다.
푹!
강찬은 놈의 팔을 찍어서 확 당겼다.
“끄아아악!”
“이리 와!”
온통 피를 뒤집어쓴 강찬이 놈의 목을 안고 앞으로 달렸다.
피윳!
서상현이 따라오지 못한 바람에 왼쪽 옆구리에 또 칼을 맞았다.
푹! 푹! 피윳!
강찬에게 잡힌 놈이 세 번이나 칼을 맞더니 축 늘어졌다.
와락!
강찬은 놈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피윳! 피윳!
왼쪽을 또 베였다.
마지막으로 버티던 경호원마저 몸을 피했다.
푹푹! 피윳!
강찬은 막아선 놈 둘을 찌르고 베었다.
석강호를 향해 일본도가 높게 들리는 순간이었다.
강찬은 앞으로 몸을 날렸다.
푹!
“끄어억!”
일본도를 든 놈의 목덜미에 칼을 꽂은 강찬이 씨익 웃었다.
바닥에 묶인 석강호의 고개가 움직이고 있었다.
됐다.
강찬은 목을 찌른 놈을 안고 뒤로 돌아섰다.
옆구리가 불로 지지는 것처럼 화끈거렸다.
털썩.
강찬이 손을 놓자 놈이 짚단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허억. 허억.”
김태진과 서상현이 옆에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강찬은 왼손에 남았던 철사의 끝을 오른손으로 잡은 다음, 대검과 오른손을 함께 꽉 묶었다.
손끝이 떨려서 감각을 무디게 하려는 의도였다.
예전의 몸을 찾지 못했었다면 벌써 쓰러졌을 거다.
“끄응.”
그때 석강호가 몸을 움직이며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씨발.”
살아나서 뱉은 첫마디가 욕이다.
이제 스무 명쯤 남았다.
강찬은 팔뚝으로 눈가의 피를 닦아냈다. 굳어서 끈적였지만 그래도 훨씬 나았다.
강찬이 숨을 고르고 앞을 노려보는 순간에, 석강호가 이를 북북 갈며 강찬의 옆에 섰다.
피가 잔뜩 묻은 일본도를 들었다.
“뒤로 가 계쇼.”
“같이 하자. 너까지 나서면 저 개새끼들 다 죽일 수 있다.”
강찬이 만족한 듯 히죽 웃는 순간이었다.
질린 얼굴로 강찬을 보았던 김태진이 마주선 놈들을 향해 능숙한 중국어를 쏟아 냈다.
“쒼마?”
당황한 듯 나온 반문에 김태진이 다시 답을 했다.
놈은 강찬을 매섭게 노려본 다음, 김태진과 두 번쯤 더 대화를 나눴다.
“하오!”
이건 강찬도 아는 중국어다.
놈이 뒤를 보고 뭐라고 소리치자 서 있던 놈들이, 쓰러져 있는 놈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끝내기로 했소.”
강찬은 경계를 풀지 않은 채로 김태진을 보았다.
“오광택이 오고 있다고 했지요.”
김태진 역시 상의 곳곳이 날카롭게 갈라졌는데 살이 깊게 벌어진 자리도 두어 곳 정도 있었다.
“시체를 치우는 일도 그렇고, 강찬 씨도 데드라인이오.”
피식.
분이 풀리지 않았다.
저것들이 살아가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
가족을 붙잡은 데다, 석강호를 거꾸로 매달았던 놈들이다.
이대론 못 보낸다.
다 죽이고 만다.
“강찬!”
그때 김태진이 그를 거칠게 불렀다.
퍼뜩.
강찬이 매섭게 그를 노려보는 순간이었다.
“여기가 끝이 아냐! 지켜야 할 사람이 아직 남았어! 여기서 저놈들 다 죽여서 끝날 것 같으면 나도 끝장 보겠다. 남은 사람들은 생각 안 하나!”
김태진의 눈도 매섭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남자다.
이런 눈을 가진 남자는 오랜만이다.
한 번쯤 말을 들어주어도 되지 않을까?
“함부로 반말한 건 미안하지만, 강찬 씨가 지켜야 할 사람이 아직 남았소. 석강호 선생도 무리해선 곤란하고. 지금은 참읍시다.”
그런가? 아직 지켜야 할 사람이 남은 건가?
강찬이 숨을 짧게 내쉬자, 김태진이 눈 끝만으로 멋지게 웃었다.
“어우!”
긴장이 풀렸는지 서상현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릎 바로 위로 깊게 베인 상처가 한눈에 보였다.
그는 강찬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똑바로 서 있는 것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10분쯤 지났을 때 쓰러진 놈들이 대강 수습되었다.
부상자는 알아서 걸었고, 스물가량 되는 놈들이 죄다들 한 놈씩을 어깨에 걸치거나 등에 업었다.
“빨리들 걸으라!”
김태진과 대화를 나눴던 놈이 느닷없는 한국말로 고함을 지른 다음, 강찬의 앞으로 다가왔다.
“남조선에 이거이 혼자 이 정도 하는 전사가 있는 줄은 몰랐어. 기카고, 우린 여기까지야.”
놈이 석강호를 슬쩍 보았다.
“담번이래 한족 새끼들이 직접 올 끼야. 이쪽에서 죽거나 다친 아들이래 우리가 다 공작을 엄폐할 끼니까, 비겁하게 한족 새끼들에게 죽지 말라우.”
놈은 김태진에게 고개를 돌려 중국어로 몇 마디를 더 한 다음 돌아섰다.
“아!”
놈이 강찬을 향해 날카롭게 시선을 돌렸다.
“기카고, 련변, 하얼삔, 이 두 곳은 절대로 오지 말라.”
피식.
놈이 강찬의 옆구리를 슬쩍 보고는 그대로 걸어나갔다.
강찬은 갑자기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신음을 삼키며 나무로 걸어가서 주저앉았다.
“에이, 씨발!”
따라왔던 석강호가 강찬의 옆구리를 보며 욕을 버럭 뱉었다.
강찬은 앞을 본 채로 풀썩 웃었다.
그러고 나자, 불쑥 유혜숙이 떠올랐다.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옆구리가 아팠다.
찌익!
김태진이 경호원들의 쟈켓을 길게 찢어서 강찬에게 다가왔다.
강찬은 멍하니 김태진을 보았다.
“출혈이 너무 심한데?”
김태진이 천으로 가슴을 두른 다음, 있는 힘껏 당겨 묶었다.
“정신 잃으면 안 돼. 뒤쪽에 도로가 있으니까 차를 그리 댈 거요.”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유헤숙의 모습이 떠올랐다.
석강호는 얼굴을 우그러트리고 있었다.
대원이 살아 있는 것을 보는 건 언제나 행복했다.
“괜찮냐?”
“그게 나한테 할 소리요!”
“우냐?”
“눈병 난 거요!”
“고맙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정말 고마웠다.
“씨…발, 그냥 가족만 구하지.”
“병신아. 내가 누군지 모르냐?”
석강호가 강찬의 오른손에서 철사를 풀어냈다.
“뭐 미쳤다고 이건 이렇게 세게 감았소?”
강찬이 풀썩 웃자 석강호가 팔뚝으로 눈물을 쓱 닦았다.
“차가 도착했답니다. 뒤쪽으로 가면 바로 도로에 붙었다니까 그리로 갑시다.”
김태진의 말에 석강호가 강찬의 앞으로 몸을 수그렸다.
“괜찮겠소?”
“그냥 업혀만 주쇼.”
김태진이 경호원과 함께 강찬을 등에 올려주었다.
산속, 밤 길이다.
석강호가 걸음을 디딜 때마다 옆구리를 생으로 찢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강찬 씨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서상현이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오광택이랑 친구랍디다.”
“고등학생이?”
“호적이 잘못된 거요. 내가 대하는 거 보면 모르겠소?”
“그럼 나보다 네 살이나 위네?”
서상현이 놀란 얼굴로 김태진을 보았을 때, “나보다는 어리니까.” 하는 대꾸가 있었다.
“강찬 씨! 잠들면 안 돼!”
김태진이 강찬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거칠게 흔들었다.
5분쯤 더 걸어가자 편한 복장의 사내 여럿이 우르르 달려왔다.
“준비는?”
“말씀하신 대로 다 됐습니다.”
김태진의 직원들이 들고 온 들것을 펴서 석강호의 앞에 놓았다.
“저기 눕힙시다. 혼자보다 훨씬 빠를 거요.”
석강호가 자세를 낮췄고, 직원들 넷이 달려들어 강찬을 들것에 눕혔다.
확실히 빨랐다.
강찬은 아무것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정신 좀 차려봐요!”
석강호의 말이 왕왕거리며 들렸다.
별, 달, 그리고 하얗게 뭉친 구름이 뿌옇게 흘러갔다.
“강찬 씨! 내 말 들려요? 서둘러! 조금만 더 빨리 가보자!”
들것을 잡은 사내들의 거친 숨소리가 과장되게 들렸다.
석강호도, 가족도 살았다.
다행이다.
***
아프리카?
주변은 흐릿했다.
유혜숙이 밧줄에 묶여 뭐라고 악을 써댔다.
‘가야 하는데?’
기둥에 온몸이 꽁꽁 묶인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아랍놈 하나가 기다란 칼을 들고 유혜숙의 앞에 섰다.
“아들! 그냥 가!”
‘놔! 놔! 이 개새끼야!’
붙잡고 있는 게 누군지도 모른다.
“아들!”
그순간에 몸이 풀렸다.
확!
강찬은 벼락같이 몸을 날렸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엄청난 통증이었다.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의식이 흐려졌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멀리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떴을 때 “정신이 들어요?” 하는 유헌우의 얼굴이 보였다.
“괜찮은 겁니까?”
“이 정도면 내일쯤 퇴원한다고 할 걸요?”
뜻밖에도 김태진이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강찬 씨. 아직 물 마시면 안 돼요. 담배, 커피도 안 되고. 물론 술, 간호원도 안 됩니다.”
김태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는데도 유헌우는 뻔뻔한 얼굴이었다. 그가 방을 나간 다음이다.
“석강호 선생은 병원에 있다가 다시 지리산으로 갔소. 깨어나면 꼭 좀 전화해달라고 하던데.”
마치 군대의 선임을 만난 느낌이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김태진이 물끄러미 강찬을 보더니 기분 좋게 웃었다.
“내 나이가 마흔다섯이요. 어지간한 사이에 말 놓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강찬 씨는 좀 더 편하게 대해도 좋을 것 같군.”
그 역시 가슴과 팔뚝에 온통 붕대를 감고 있었다.
“침대 좀 일으켜 주세요.”
“그냥 있지.”
강찬과 시선을 마주친 김태진이 한숨을 푹 쉰 다음, 침대 아래에 있는 레버를 돌렸다.
“물 좀 주세요.”
“그건 안 된다잖았나?”
강찬은 김태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질린 얼굴이었다. 그러다 잠시 후, 종이컵에 물을 따라주었다.
“조금만 마셔.”
“그러죠.”
김태진이 다시 강찬의 곁에 앉았다.
“오광택이한테 대강 들었다. 공트 자동차 이야기도 들었고.”
강찬은 깜박 잊고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제 전화기 여기 있나요?”
“여기.”
김태진이 침대 옆에서 전화기를 꺼내주었다.
유혜숙과 김미영, 그리고 미쉘과 스미든의 번호가 찍혀 있었다.
강찬은 스미든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벨이 두 번 울렸을 때였다.
[“알로! 차니?”]
“그래. 아직 남산 호텔에 있냐?”
[“예쓰, 차니! 어떻게 할까요?”]
“내가 경호원을 보내볼 테니까 통화되면 그 사람들 반경 안에서 다녀. 다른 일 없지?”
[“아무 일 없어요. 정말 괜찮은 거요?”]
“그래. 나중에 보자.”
강찬은 전화를 끊은 다음에 김태진에게 스미든의 경호를 따로 부탁했다.
“바로 조치하마.”
김태진은 전화를 들어 남산호텔과 스미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경호를 지시했다.
“미리 말하지만 당분간 경호는 전부 무료다. 석강호 선생 가족들에게도 직원 둘 보내놨다. 계약금은 두 배로 돌려주마.”
“사람 치사하게 만들지 마세요.”
“내 자존심이야.”
나중에 얘기해도 되는 거다.
그런데 지금 몇시나 된 거지?
강찬은 그제야 전화기의 시간을 보았다.
오전 11시 30분이었다.
버튼을 눌러 석강호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귀청 터지겠다.”
[“살았소? 살아난 거요?”]
“그래.”
[“내일 올라가요! 그때까지 병원에 있으쇼!”
“수련회 끝나고 와.”
[“뭔 소리요? 내일 수련회 끝나는 날이요.”]
강찬은 당장 대꾸하지 못했다.
[“수요일 내내 의식 없었고 오늘 목요일이우. 하여간 일단 병원에 있어요. 내가 갈 테니까.”]
“알았다.”
전화를 끊고서야 목요일인 걸 알았다.
“오늘이 목요일이었네요.”
김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오전이 고비라면서 의사 선생이 계속 붙어있었지. 좀 독특한 사람이던데?”
장기를 꺼내야 한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바쁘지 않아요?”
“대표가 바쁠 일이 있나? 큰 계약 때 얼굴마담이나 한 번씩 하는 거지.”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는 답이었다.
“차는 병원 주차장에 가져다 놨으니까 됐고.”
김태진이 슬쩍 강찬을 보았다.
“졸업하면 우리 회사로 오지? 내 시원하게 대우해 줄 테니까.”
사람 꼬리나 졸졸 따라다니라고?
절대 사양하고 싶은 권유여서 강찬은 피식 웃기만 했다.
“우리 쪽은 아니던데 격투술은 어디서 익힌 거냐?”
“인터넷이요.”
김태진이 까불지 말라는 듯 짧게 웃었다.
“주차장 박기범이 목 돌려서 조직 무너트렸고, 공트 자동차 한국 지사장을 말 한마디로 부리는데다, 오십 명을 상대로 달려든다라……?”
김태진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만 해도 정신 사납다.”
누군들 이해하겠나.
다시 태어나서 워낙 숨 막히게 일이 벌어져서 강찬도 이해하기 어려운 판국이다.
“지리산에 있던 주차장 놈들 시체와 살아남은 놈들을 중국 애들이 데려가겠다더군. 오광택이 주차장 입단속 시키러 울산인가 간다고 했고.”
나중에 중국어로 두어 마디 나누더니 그 얘기를 했던 모양이었다.
30분쯤 지나자 유헌우가 다시 들어왔다.
“물 마셨어요?”
그가 컵을 바라보자 김태진이 시선을 외면했다.
“하여간. 괜찮아요?”
“예.”
유헌우가 진지한 얼굴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른 곳이야 강찬 씨 체질을 짐작하니까 이해하겠는데 허리를 찔린 건 좀 위험해요. 장기 손상이 없는 거 같아서 개복은 안 했지만, 음식을 잘못 먹었다가 문제 생기면 정말 큰 수술을 해야 합니다. 물을 마셨다니까 최소 6시간은 경과를 봅시다.”
“그러죠.”
이 정도로 진지한 유헌우의 표정이 처음이라 강찬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김태진이 점심을 먹고 오겠다며 나간 다음에 강찬은 유혜숙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아들? 어디야?”]
“재미있게 노느라고 전화 못 받았어요.”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어디 다친 거 아니니?”]
“아니에요. 왜 그렇게 놀라세요?”
[“어후. 그저께 흉측한 꿈을 꿨잖아. 그때부터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
“무슨 꿈인데 그러세요?”
[“아들이 피투성이가 돼서 울고 있는데 가까이 갈 수가 없더라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데. 아빠가 말려서 수련회장에 못 갔어. 목소리 들으니까 이제 살 것 같다. 정말 괜찮은 거지?”]
“괜찮아요. 그리고 참! 저 며칠 더 여기 있을지 몰라요. 산이 정말 좋네요.”
유혜숙은 답이 없었는데 의심하고 있다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음 주에 아버지랑 내려오세요. 산이 정말 좋아요.”
[“정말 우리 아들 아무 문제 없는 거지?”]
“그럼요. 여기가 너무 좋아서 그래요.”
[“돈이랑 필요하잖아.”]
“석강호 선생님도 애들 보내고 여기 같이 있기로 했어요. 체대 입시 준비 같이할 겸 해서요.”
[“아휴!”]
이제야 마음을 놓인다는 듯한 커다란 한숨이었다.
[“아들! 아빠랑 의논하고 전화할게.”]
“그러세요. 앞으론 전화 꼭 받을게요.”
[“그래. 아들.”]
전화를 끊고 나자 마음이 한결 편했다.
강찬은 미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번에 전화를 받은 미쉘은 전에 이야기했던 ‘디아이 패밀리’의 인수가 가능하다는 답을 얻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비용은?”
[“5억이면 된대.”]
“보니까 여자 연기자 셋이 다던데 그 가격이 적당한 거야?”
[“은소연 빼고 다른 애 둘이 제법 나가잖아. 내가 볼 때 충분히 가능성 있어.”]
“미쉘.”
[“응?”]
“미쉘이 맡아서 해줄 거면 하고, 아니면 관두자. 난 그거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공연한 일에 신경 쓰는 거 싫다.”
[“차니. 그럼 나 때문에, 날 위해서 인수하는 거야?”]
강찬은 수화기에서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라노크의 말이 생각나서 인수하려는 건데 얘는 늘 진도가 너무 나간다.
할 수만 있다면 김태진 회사를 확 사버리고 싶었다.
“좀 생각해 보고 나중에 전화해 줘.”
[“알았어, 차니.”]
촉촉한 목소리라 얼른 전화를 끊었다.
그래.
샤흐란을 잡을 때까지만 참자.
강찬은 이를 꽉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