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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끝장을 보자.
강찬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이럴 땐 긴말이 필요 없다.
“나다. 상황 설명부터 해.”
[“알고 있었소? 지리산 중턱에 있는 숙소요. 나만 조용히 나오라고 전화를 했습디다. 아니면 마누라와 딸을 죽여버리겠다고.”]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다.
“연락은?”
[“둘 다 전활 안 받소.”]
석강호는 조금이나마 안심되는 모양이었다.
“집 주소하고 두 사람 전화번호 불러.”
석강호가 집 주소와 아내와 딸의 전화번호, 그리고 마지막으로 협박받았던 전화번호를 차례대로 불러주었다.
“내가 전화할 때까지 움직이지 마.”
[“알았소.”]
전화를 끊었을 때는 심장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강찬은 곧바로 김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강찬입니다.”
[“강찬? 아! 강찬 씨! 어쩐 일이요?”]
“석강호 쪽에 애들이 깔렸다는 데 알고 계십니까?”
[“예? 지금 뭐라고 했어요?]
“지리산에 애들이 깔린 것 같습니다. 석강호 혼자 숙소에서 나오라고 했다는데 가족이 인질로 잡혀서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인질을 구해낼 때까지만 석강호를 지켜주면 됩니다.”
잠깐의 침묵이 지난 다음이었다.
[“확실합니까?”]
김태진은 의외로 침착한 음성이었다.
[“경찰에 신고합시다.”]
“대표님. 중국 쪽 애들이고, 원한까지 있어서 인질이 다치기 쉽습니다.”
[“알았소. 인질은 어디 있나요?”]
“집에 가 볼 참입니다.”
[“그럴 확률은 거의 없어요. 전화번호 압니까? 알면 불러주세요. 5분이면 위치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강찬은 받아적은 전화번호와 협박 번호까지, 세 개를 알려준 다음, 먼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전화기, 차 키, 면티와 운동복 바지를 가방에 쑤셔 넣고는 방을 나섰다.
잠깐이나마 눈빛이 번들거리는 것을 가리기 위해 손바닥 안쪽으로 비비기까지 했다.
“어디 가려고?”
“오늘 2학년 수련회 갔는데 석강호 선생님이 늦게 출발한다고 같이 가자네요.”
“수련회를?”
“예! 제가 인기가 있거든요. 밖에서 기다린다니까 같이 다녀올게요.”
어딘지 미심쩍어하는 눈치였으나 유혜숙은 조심하란 말 외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강찬은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석강호에게 전활 걸었다.
“나다. 사실은 너한테 경호업체 사람을 붙여놨다. 혹시 전화하면 받아. 그리고 안식구와 딸이 있는 곳은 5분 안에 알 수 있단다. 내가 가서 해결할 테니까…….”
강찬은 현관을 뛰어 나와 입구 쪽으로 달렸다.
“그때까지만 버텨.”
[“고맙소. 식구 구하면 전화 주쇼. 이가 갈려서 참기 어려우니까.”]
“알았다.”
강대경이나 유혜숙이 인질로 잡혔다면 옆에서 뭐라고 말려도 참기 어려울 거다. 그래서 석강호에게 참고 있으란 말을 하지 못했다.
강찬은 택시를 타고 공영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동안 강찬은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이! 차니.”]
“스미든. 석강호가 위험하다. 문 걸어 잠그고 절대 움직이지 마.”
[“오우! 지금 백화점인데 빨리 가겠소.”]
“그럼 곧바로 나가서 택시로 남산 호텔로 가. 그리고 내가 전화할 때까지 방에서 꼼짝 하지 마.”
[“오케이, 차니!”]
불어를 쏟아내자 기사가 뒤를 힐끔 봤을 때였다.
강찬의 전화가 울렸다.
[“두 사람이 같이 있네요. 하남에 있는 화훼 농장이에요.”]
“주소 좀 문자로 보내주세요.”
[“강찬 씨. 내가 갑니다. 그러니까 기다려요.”]
“근처에 가 있어야죠. 그러니까 주소부터 보내주세요.”
[“알았소. 절대로 혼자 움직이지 말고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요.”]
전화를 끊고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자 문자가 왔다.
강찬은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안내를 눌렀다.
소요 시간이 30분가량 걸린다고 나왔다.
끼이익!
타이어가 비명을 질러댔다.
미친놈처럼 차를 몰았고, 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서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속도계가 160을 가리키자 내비게이션 속의 여자가 단속 구간이라고 발악을 해댔다.
10분쯤 더 달려 우측으로 빠져나와 다리를 건너, 또다시 우측 길로 5분쯤 달리자 목적지가 나왔다.
20동이 넘는 커다란 비닐하우스 단지.
그중 보온을 위해 두꺼운 천을 둘러싼 비닐하우스 근처에 승합차와 승용차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강찬은 화예단지를 아예 지나서 이쪽이 보이지 않는 곳의 갓길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트렁크를 열고 공구 상자에 있는 한 뼘 길이의 드라이버를 꺼내 청바지 뒷주머니에 꽂았다.
몸 상태는 별로 나쁘지 않았다.
강찬은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오광택. 석강호 선생 가족이 하남에 인질로 있어서 왔다. 주소 문자로 보낼 테니까 뒤처리 좀 부탁하자.”
잠시 멍했다가 화들짝 놀란 오광택의 음성이 들렸다.
[“하남? 야! 나 거기 가는데 20분! 아니 10분 이면 돼! 그러니까 어딘지 말하고 잠깐 기다려! 내가 간다. 내가 갈 테니까.”]
“문자 봐라.”
강찬은 전화를 끊은 다음, 김태진이 보낸 문자를 그대로 오광택에게 보내주었다.
됐다.
강찬은 전화기를 차에 던져 넣고 차 문을 잠갔다.
멀리서 지켜볼지 모른다.
자동차 열쇠를 갓길의 풀숲에 찔러 넣은 강찬은 천천히 비닐하우스의 반대쪽 끝으로 걸어갔다.
맞은 편은 역한 냄새가 나는 개천이었다.
다행히 별도의 감시자는 없었다.
하기야 군사 작전이 아닌 다음에야 이 정도까지 하기는 어렵다.
강찬은 자세를 낮추고 빠르게 목표했던 비닐하우스를 향해 움직였다.
거리가 제법 됐다.
다음 칸이 차가 세워진 비닐하우스다.
비닐이라 윤곽이 보일 수도 있다.
강찬은 거의 엎드리다시피 자세를 낮췄다.
조심스럽게 살피는데 후줄근한 양복 차림의 사내 둘이 서 있었다. 입구의 반대쪽까지 경계를 세울 정도라면 제법 많은 인원이 있다는 의미다.
두 놈이다.
뒷주머니에 꽂아 두었던 드라이버를 꺼내 뾰족한 끝이 아래로 오게 잡았다.
개새끼들. 가족을 인질로 잡아?
거리는 7에서 8m.
바닥은 흙, 다행히 도롯가라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제법 컸다.
한 새끼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강찬은 마지막으로 주위를 한 번 더 살폈다.
두 놈이 마주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놈은 등이 보였다.
커다란 웃음 끝에 말소리가 들렸다.
중국어.
등을 보인 놈이 뭐라고 지껄이자 상대방 놈이 상체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
파바박.
강찬은 단거리 선수처럼 달려나갔다.
정면에서 강찬을 본 놈의 표정이 딱 굳는 순간이었다.
푸욱.
드라이버를 놈의 목젖에 정확하게 박았다.
성대가 찍히면 당장은 큰 소리를 내지 못한다.
“꺼으. 꺼어어.”
짜그락!
등을 보인 놈이 고개를 돌리는 쪽으로 강찬이 세차게 목을 돌려버렸다.
그리고는 숨 쉴 틈도 없이 달려들어 드라이버가 박힌 놈의 대가리도 돌려버렸다.
으드득.
강찬은 놈을 얼른 받쳤다.
그리고는 소리가 나지 않게 바닥에 눕혔다.
첫 번째 놈은 무너지듯 주저앉아서 소리가 별로 크지 않지만, 이 새끼는 옆으로 쓰러졌다.
강찬은 놈들이 허리춤에 찬 칼 두 자루를 모두 꺼냈다. 그리고는 자세를 낮추고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봉고차에 네놈쯤의 대가리가 보였다.
정작 비닐하우스는 시커먼 천을 덮어 놓아서 안을 살필 수 없었다.
입구로 들어가자니 봉고차에 있는 놈들이 걸렸다.
숫자가 겁나는 것이 아니라 인질들이 다칠까 봐서다.
강찬은 다시 두 놈이 쓰러진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입구의 비닐하우스에 붙어섰다.
칼을 꺼내 천을 고정시킨 끈을 잘라낸 다음, 철 지지대의 안쪽을 조심스럽게 잘라냈다.
‘후우.’
석강호의 부인인 듯한 중년 여자가 딸을 안고 비닐하우스에 기대앉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모두 여섯 놈.
세 새끼는 의자를 붙여 길게 늘어져 있었고, 두 새끼는 의자에 앉아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남은 한 새끼가 문제다.
칼을 꺼내 들고 끝으로 볼을 긁고 있었다.
얼마나 빨리 들어가느냐에 승부가 달렸다.
오래 고민할 수도 없다.
석강호가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른다.
강찬은 쇠로 만든 지지대를 타고 칼을 그었다.
날을 워낙 세워놓아서 비닐이 갈라지는데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앞쪽부터 목표물까지 바닥도 살폈다.
믿기지 않겠지만, 전투 중에 달려가다 엎어지는 놈이 있다. 긴장한 데다 바닥을 살피지 않아서 푹 꺼지는 곳을 밟거나 혹은 평소라면 절대 걸리지 않는 돌부리에 걸리는 놈도 있다.
강찬이 마지막으로 다른 놈이 더 없는지를 살필 때였다.
끼이익.
입구의 문이 열리며 두 놈이 안으로 들어왔다.
교대 시간쯤 되는 모양이다.
칼을 꺼내 들었던 놈이 입구로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쫘아악.
강찬은 비닐을 밀고 곧장 앞으로 달렸다.
“나시쉬엔마!”
홰액!
강찬은 있는 힘껏 칼을 던졌다.
칼을 들고 있는 놈!
목이나 이마를 노리고 싶었지만, 손에 익지 않아서 몸통을 노렸다.
퍼억!
“끄으윽!”
심장 아래 칼이 박힌 놈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꺄아아악!”
석강호의 부인과 딸이 부둥켜안았을 때 강찬은 그 앞에 있었다.
“쉐이?”
일곱 놈이 모조리 칼을 뽑아들고 강찬을 둘러쌌다.
그리고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다시 두 놈이 들어와 놀란 얼굴로 지껄여 댔다. 죽은 두 놈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였다.
“강찬이 아이니?”
콧수염을 단 놈이 묘한 억양으로 말을 던진 다음이었다.
“석강호 선생님이 보내서 왔어요.”
강찬은 뒤쪽으로 고개를 살짝 틀고 빠르게 말을 전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콧수염이 중국말을 쏟아내자 일곱 놈이 강찬을 널따랗게 둘러쌌다.
‘위험한데?’
한자리에 서서 세 곳을 모두 막아야 하는 싸움.
다행히 인질이 비닐하우스에 등을 대고 있지만, 강찬이 막아주지 않으면 바로 칼을 맞는다.
강찬 좌우의 두 놈은 비닐하우스의 벽을 타고 아예 인질을 노리고 있었다.
정면에 마주 선 세 놈은 무술을 익힌 듯 자세가 달랐다.
휙!
눈앞으로 단검이 빠르게 지나가서 상체를 뒤로 젖히는 순간이었다.
그 틈을 노리고 왼쪽에 있는 놈이 인질들에게 칼을 휘둘렀다.
척. 푹. 푹.
“끄으으.”
강찬은 놈의 손목을 잡아채 칼을 꽂았다.
피윳!
그러나 강찬도 오른쪽 어깨를 베였다.
“꺄악!”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어지간하면 세 번 이상 찔렀을 텐데 앞에 있는 세 놈의 솜씨가 그 정도 틈을 주지 않았다.
팔뚝을 찍힌 놈이 뒤로 물러나는 틈에서 두 번이나 검이 오고 갔다. 칼등에 톱날같이 홈이 파여서 박히면 쉽게 빠지지도 않는다.
휙! 휙!
“꺄악.”
좌우에 있는 놈들이 의도적으로 인질을 노렸다.
그 와중에 앞에 선 놈들이 강찬을 노리는 거다.
휘익!
오른쪽 놈이 인질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푹. 피윳!
놈의 팔뚝을 찌르고 겨드랑이를 긋는 사이,
피윳! 피윳!
강찬도 왼쪽 어깨와 팔뚝을 베였다.
‘쯧!’
의도적으로 인질을 먼저 노린 다음, 강찬을 공격하고 있었다.
함부로 달려들 수도 없어서 이대로 견뎌야 했다.
강찬이 하얗게 변한 눈으로 앞에 있는 놈을 노려볼 때였다.
삐그덕.
비닐하우스 문이 열리고 양복바지에 셔츠를 입은 김태진이 들어섰다.
안을 쭉 훑어보는 그는 크게 놀라는 얼굴이 아니었다.
처음 팔뚝을 찔렸던 놈이 김태진에게 달려들었다.
척. 퍼억. 퍽. 퍽.
김태진은 놈의 손목을 쳐낸 후, 연달아 명치와 목, 그리고 턱을 때렸다.
그는 곧바로 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워들고 강찬의 곁으로 다가왔다.
“기다리라니까.”
“뒤에 두 사람 지켜주실 수 있죠?”
“그 정도는 될 거요.”
김태진의 실력은 이미 봤다.
이제부턴 좀 다를 거다!
강찬은 대답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한 걸음을 나갔다.
무술? 인질이 없다면 그거 그렇게 센 거 아니다.
강찬은 칼을 거꾸로 든 상태다.
단박에 왼쪽 놈에게 달려들 듯 몸을 틀다가 오른쪽 놈의 목을 향해 칼을 뻗었다.
휙!
기다렸던 대로 가운데 놈이 칼을 찔러왔다.
턱!
이런 칼은 못 잡는다.
카각!
강찬은 놈의 칼등에 홈을 칼로 찍었다.
퍽!
왼손으로 팔목을 잡는 순간, 놈은 왼손으로 오른쪽 눈을 때렸다.
푸욱.
강찬은 잡고 있던 놈의 팔뚝을 칼로 찍어서 뒤로 물러났다.
“아악!”
퍽!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놈은 강찬의 목덜미를 때렸다.
푹. 푹. 푹.
그 사이 강찬은 놈의 가슴 두 곳과 목덜미를 칼로 찍어버렸다.
“끄으으.”
털썩.
이놈은 살기 힘들다.
강찬이 남은 두 놈을 노려보는 사이,
피윳. 피윳!
김태진이 달려드는 놈과 칼을 한 번씩 주고받았다.
인질 두 사람은 질려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부둥켜안은 채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뭐하니! 빨리 인질을 죽이라!”
콧수염이 거칠게 악을 쓰는 순간이었다.
쉑!
강찬은 왼쪽에 있던 놈을 향해 칼을 던졌다.
푸욱!
“끄어억!”
털썩!
강찬이 손을 뻗자 김태진이 칼을 건네주고 쓰러진 놈의 칼을 얼른 집어들었다.
“또 해 봐. 이 개새끼야!”
강찬이 휙 하고 칼을 디밀자 앞에 있는 놈이 움찔할 때였다.
쉑!
강찬은 우측에 있는 놈을 향해 냅다 칼을 던졌다.
퍼억.
빌어먹을!
가슴에 박힌 칼을 움켜쥔 놈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개새끼! 칼을 뺏어야 하는데!
김태진이 칼을 건네주고는 놈에게 달려들었다.
휘익!
앞에 있는 놈이 칼을 휘둘렀다가 얼른 물러났다.
시간이 너무 걸린다.
그만큼 석강호가 위험하다는 뜻이다.
끼이익.
그때 두 번째로 문이 열렸다.
“뭐야!”
오광택이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스물이 넘는 놈들이 들어섰다.
쇠파이프, 회칼, 야구 방방이.
중국놈들이 당황했을 때였다.
와락.
강찬이 단박에 앞으로 나갔다.
피윳! 피윳! 피윳!
팔을 뒤집듯 연속해서 칼을 휘둘러 두 놈의 목을 그어버렸다.
푹. 푹. 푹. 푹.
그리고는 어깨와 목덜미를 사정없이 찍었다.
“끄억.”
털썩.
한 놈은 쓰러졌지만 다른 놈은 아직 강찬의 칼에 어깨와 목덜미 사이를 찍힌 채로 몸이 꼬여 있었다.
가족을 건드려?
마지막까지 인질을 죽이라고 했던 놈이다.
오광택이 강찬에게 다가왔다.
“그 정도면 됐다.”
피욱!
털썩.
놈이 쓰러졌는데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됐다니까. 어깬 괜찮냐?”
“후우. 와줘서 고맙다.”
강찬은 어깨의 상처를 한 번 보고는 김태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석강호 선생님 쪽에 연락 좀 해주세요.”
베인 자리를 움켜쥔 김태진이 바지에서 전화를 꺼내는 사이, 강찬은 눈물범벅인 석강호의 부인에게 다가갔다.
“우선 호텔에 가 계세요. 선생님 연락되는 대로 전화 드릴게요.”
못 알아들은 것 같은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마 중학생쯤 돼 보이는 딸이 강찬을 더 또렷이 보았다.
“전화를 안 받네요.”
강찬이 자세를 일으켜 세웠을 때 김태진이 전화를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가볼 테니까 가족분들 좀 챙겨 주세요.”
“내 차로 갑시다. 사이렌을 달아서 아무래도 좀 더 빨리 갈 수 있을 거요.”
그것도 나쁘지 않다.
강찬은 급히 오광택을 찾았다.
“저기 두 분, 전화할 때까지 남산 호텔에 모셔 주라. 뒤처리 부탁하고.”
“나도 가자.”
“넌 여기 있어 봐. 이 새끼들 아무래도 서울에 더 있지 싶다.”
오광택이 이를 깨물고 조금 전 쓰러진 세 놈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가!”
“고맙다.”
강찬이 움직이자 김태진이 그 뒤를 따랐다.
강찬은 우선 차에 가서 전화기와 가방을 챙겼다.
김태진의 차는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출발이다.
검은색 대형 승용차.
김태진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뒷자리로 던졌다.
“총이 있었어요?”
“가스총이라 저런 싸움엔 소용 없어요.”
그가 시동을 걸고 스위치를 누르자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고 뒷유리 칸에 올려진 경광등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강찬은 그 사이 세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벨만 울리고 석강호는 받지 않았다.
“지리산 어딘지는 압니까?”
“가는 동안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차는 빠르게 달려나갔다.
강찬은 가방에서 얇은 면티를 꺼내 찢은 다음, 상처를 묶었다.
김태진은 슬쩍슬쩍 지켜보다가 강찬이 찢어서 건네준 면티 조각을 받아 두말 않고 자신의 팔뚝을 싸맸다.
“후우!”
피가 배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꽉 묶어놓아서 한결 편했다.
차는 이미 고속도로에 진입해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가면 길이 한가해질 거요. 트렁크에 약 상자가 있으니 적당한 곳에서 붕대로 다시 묶읍시다.”
강찬이 고개를 돌려 김태진을 보았다.
“하도 사용해 본적이 오래돼서 깜박했었소.”
하기야 경호 업체 대표가 칼질할 일이 뭐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