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4화 (3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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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일이 점점 커지네.

웃기는 사람들이다.

인터넷이 발달한 한국에서, 그것도 공트 자동차의 발표회장에 온 사람 중에 쉬프를 모를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럼에도 가식적인 탄성과 손뼉 치는 모습을 보자니 저들이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있을까 싶었다.

그나마 적어도 한 사람은 진심이 담긴 것처럼 보였다.

유혜숙이다.

모델 곁에서 운전석의 문을 여는 강대경을 보며 유혜숙은 손을 세워 입과 코를 막았다.

“아버지, 멋있네요.”

강찬이 유혜숙을 감싸주었을 때 그녀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아빠, 엄마 만나서 고생 많이 하셨어. 그런데도 늘 저런 모습으로 엄마와 널 지켜주신 거야.”

기분 좋은 웃음이 나왔다.

유헤숙은 길게 세운 손끝으로 눈물을 훔치고 소심하게 손뼉을 쳤다.

발표회장에 깔린 흥분이 가라앉을 때쯤 미쉘도 단상에서 내려왔다.

모른 척할 이유도 없고, 예의도 아닌듯싶어 강찬이 손을 들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

“차니!”

빌어먹을. 모른 척했어야 했다.

가뜩이나 시선을 끄는 미쉘이 치렁치렁한 금발을 휘날리며 요란스럽게 강찬의 품으로 뛰어든 것이다.

“미쉘! 프랑스어로 얘기해.”

말릴 겨를도 없어서 강찬은 우선 미쉘에게 당부부터 했다.

“이런 곳에서 보니까 정말 좋다!”

다행히 프랑스어 말이다.

그러나 미쉘은 유혜숙의 바로 앞에서 몇 달 못 본 애인을 만난 것처럼 온몸을 밀착시킨 채로 그의 볼에 키스를 퍼부어댔다.

평소와 다르게 과장된 모습이었다.

“진정해. 지난번에 뵀던 분들이 있으니까 인사 먼저 하고.”

여기서 미쉘이 한국어를 지껄이면 첫 만남에서 쇼를 했다고 자백하는 꼴이다.

그제야 미쉘이 몸을 뗐다.

유혜숙과 김성희의 표정이 묘했다.

미쉘은 좋게 말하면 센스가 있고, 나쁘게 표현하면 의뭉스럽다.

그녀는 불어로 유혜숙과 김성희에게 인사하며 밝은 얼굴로 고개까지 끄덕였다.

“어쩐 일이야?”

“내가 근무하는 잡지사에서 다음 달 쉬프 특집을 내거든. 차니야 말로 여기 웬일이야?”

“스미든을 소개한 게 나야. 알리사에게서 말 못 들었어?”

“쟤랑 따로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야.”

미쉘이 느닷없이 사무적인 표정으로 알리사를 보았다. 그런 다음, 강찬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는 또 함박웃음을 담고 있었다.

“강유모터스 대표가 아버지야.”

“차니 로얄패밀리였어?”

“그런 건 아니고.”

올 때가 됐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스미든이 왼쪽 눈이 하트 모양으로 변한 채로 강찬에게 다가왔다.

“차니. 이런 미인을 알고 있어요?”

확 쫓아 버릴까 싶었는데 유혜숙과 김성희도 옆에 있었고, 또 공트 한국 지사장의 위치도 있어서 적당하게 미쉘과 인사를 나누게 했다. 알리스와 미쉘, 두 사람도 얼굴을 마주한 것은 이곳이 처음이란다.

미쉘을 향해 연신 관심을 보이던 스미든은 기자들과 행사 관계자의 요청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놈은 몹시 아쉬운 표정이었고, 알리사는 안심하는 얼굴이었다.

호텔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더니, 간단한 과자와 음료를 준비해 주었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자, 강대경이 다가와서 미쉘과 인사를 나눈 후, 유혜숙과 김성희를 데리고 갔다.

미쉘은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

그렇다고 몸을 밀착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음료 등을 챙겨와서 강찬의 곁을 떠나지 않는 모습이 그랬다.

“차니. 행사 끝나고 같이 맥주 한 잔 마실 수 있어?”

김미영을 흉내 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래.”

쎄실의 일로 도움도 받았고, 알리사를 소개해 준 것도 있어서 강찬은 순순히 그러자고 했다.

그때 라노크가 강찬에게 다가왔다.

미쉘을 소개해 주었는데 다분히 형식적인 인사를 나눈 라노크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강찬 씨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하는 인사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차니. 저분과는 어떻게 아는 거야?”

“그냥, 오늘 처음 봤어.”

미쉘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거만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야. 다음다음 대선에 대통령을 노린다는 말도 있고. 절대 먼저 와서 인사를 건넬 사람이 아닌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이 있겠나.

강찬은 갑자기 이런 자리에 있는 것이 불편해졌다.

“나갈래?”

“지금?”

미쉘은 반가운 표정이었다.

강찬은 강대경과 유혜숙을 향해 움직였다.

“아는 친구가 있어서 먼저 좀 나가볼까 해요. 괜찮을까요?”

유혜숙이 목을 빼서 미쉘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엄마는 나와 움직일 거니까 편한 대로 해라.”

“고맙습니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오늘 정말 멋있었어요.”

강찬이 웃어주고 몸을 돌릴 때까지 유혜숙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는데 딱히 풀어줄 방법이 없어서 모른 척 걸음을 옮겼다.

***

행사장 위층의 바깥쪽으로 야외 테라스가 있어서 강찬과 미쉘은 그곳에 자리 잡았다.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데 북적이는 정도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맥주 두 병을 주문한 후에 여유 있게 담배를 피웠다.

유리로 된 벽을 통해 드나드는 사람이 보여서 강대경이나 유혜숙에게 흉한 꼴을 보일 염려는 없었다.

맥주까지 한 모금 마시자 조금은 여유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강찬은 넥타이의 매듭을 풀어 늘어트린 다음, 셔츠의 목 단추를 풀었다.

“울라! 그 모습 너무 좋다. 나, 몸이 뜨거워져.”

“병원에 가봐. 아무래도 좀 이상해.”

미쉘이 눈을 스마일 그림처럼 만들며 웃었다.

매력적이긴 하다.

테라스에 앉아 있는 이들 중에 그녀를 힐끔거리지 않는 사람들이 없을 만큼.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사랑 없는 섹스 따위 관심도 없을뿐더러, 이미 개방적인 삶에 익숙한 미쉘을 붙들고 나만 바라봐 달라고 매달릴 마음도 없었다.

“차니는 섹스 싫어해?”

어쩐지 그런 소리 안 한다 싶었다.

“말 해봐. 혹시 문제 있거나 그래?”

피식.

강찬은 대꾸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미쉘은 계속 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사랑 없이 하는 거 싫어.”

“사랑과 억지로 묶지 말고 그냥 즐기면 되는 거 아냐?”

“넌 그렇게 즐겨. 난 사랑하는 사람과 할 테니까.”

“그럼 차니는 경험이 없어?”

강찬을 따라서 미쉘도 맥주를 입에 가져갔다.

이참에 선을 긋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건 아니고. 서너 번, 사랑 없는 섹스를 한 후로 관심 없어졌다는 게 맞아. 허무하더라. 그냥 외로움만 더 진해지는 것 같았고. 돌아섰을 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걸로 끝이야.”

미쉘이 의아한 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차니, 고등학생 맞아?”

아차!

차라리 몸에 이상이 있다고 해버릴 걸, 아무 생각 없이 프랑스에서의 감정을 꺼내 버렸다.

“만약 내가 차니를 사랑한다면 나랑도 즐길 수 있는 거니?”

말투가 바뀌었지만 상관없었다.

“힘들 걸. 순결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개방적인 것도 싫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내가 지금부터 다른 사람 다 버리고, 차니만 사랑하면 가능하냐고?”

“미쉘.”

강찬은 담배를 입에 물며 진지하게 그녀를 보았다.

“지금부터 그러잖다고 사랑이 시작되는 건 아니잖아. 잠시 둘이서만 섹스를 나누다 시시해지면 헤어지는 거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넌 너대로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 만약 섹스가 없어서 날 만나는 게 불편하다면 더 만나지 말자.”

“아그리아뜨(멋있다)!”

에효! 말해 뭐하겠냐. 또 몸이 뜨거워졌는지 미쉘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강찬을 보고 있었다.

어쩐지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강찬이 미쉘을 보는 순간이었다.

“Je t'aime, Chany.”

너무 진지한 눈으로 말을 건네는 바람에, 깊고 푸른 눈이 촉촉하게 젖은 채로 바라보는 바람에 강찬은 잠시 멍했다.

“정신 차려.”

“아니야, 차니. 나 이상하다? 고등학생을 상대로 이런 말 하기 너무 자존심 상하지만, 차니의 그 눈빛이 이상하게 날 흔들어. 사실 지난 토요일에 쎄실을 만난다고 할 때 처음 알았어. 내가 어쩔 줄 모르고 있었어. 그래서 그날 저녁에 내가 쎄실에게 부탁도 했어. 차니 내가 사랑하는 거 같다고, 당분간 내 사람으로 인정해 달라고.”

어쩐지 병원에 왔을 때 전에 없이 깔끔하게 일어서더라니.

“미쉘. 불편해.”

“내 과거 때문이니?”

“그런 건 상관없다니까. 하지만 넌 사랑조차 하룻밤 같이 있자는 것처럼 말하잖아. 지금 선택이 틀렸으면 어떻게 할래? 기분 좋게 헤어져? 난 그런 거 못 해. 사람을 잃는 게 너무 끔찍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절대 놓을 자신이 없어. 그게 죽음이라도.”

빌어먹을.

말을 마친 강찬은 욕을 꿀꺽 삼켰다.

진지한 대화를 통해 선을 분명하게 그으려던 의도였는데 작전이 완전히 틀어져서 아예 불을 지른 것처럼 보였다.

“쥬뎀므, 쥬뎀므, 차니.”

‘죽인다, 죽인다.’처럼 들렸다.

‘쯧!’

강찬은 슬쩍 짜증이 났다.

원하는 남자는 언제고 손에 넣다가 뜻밖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강찬을 만나고 보니 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 탓이었다.

강찬이 이만 들어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힐 때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미녀가 강찬의 테이블을 향해 걸어왔다. 뒤쪽의 테이블로 지나가겠거니 싶었다.

“안녕하세요? 언니?”

그런데 뜻밖에도 미쉘을 향해 반갑게 인사하고는 강찬을 살핀다.

“어머! 여긴 어쩐 일이니?”

미쉘이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쏟아내며 일어서자 힐끔거리던 테라스의 모든 시선이 노골적으로 달려들었다.

“행사 끝나서 인사드리려고 찾아다녔어요. 정 기자님 말씀이 이쪽으로 오셨다고 해서요.”

“그래, 잘했다. 인사해. 얘는 아까 자동차 모델을 했던 은소연이고, 이쪽은 강찬 씨. 강유모터스 강대경 대표 아들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지랄도 참.

소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인사까지 함부로 할 일은 아니어서 강찬은 일어서서 간단한 목례만 했다.

“그럼 난 갈게. 둘이 얘기 나눠.”

헤어지기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사람 일이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어서 미쉘의 서운한 표정을 본 은소연이 “저 때문이시면 제가 갈게요. 저 그냥 인사만 하러 왔어요.” 하고 강찬을 말리고 들었다.

가뜩이나 시선이 몰린 상황이다.

서로 마음 불편한 상황이 싫어서 강찬은 차 한잔 같이 마시기로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은소연이 강유모터스 모델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자연스럽고, 건강한 미인이란 생각은 들었는데 미쉘만큼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은소연은 허브 티를 주문했다.

“다른 일은 없니?”

“내일 드라마 촬영 한 꼭지 있는 게 전부예요.”

“이번엔 내 맘대로?”

“예. 드라마가 워낙 인기 있어서 다행이에요. 지난번에 언니가 특별기사 써주신 것도 반응이 좋았구요.”

강찬은 관심도 없는 얘기다.

몸뚱이가 바뀐 직후에 몇 편 보았던 것이 살면서 본 드라마의 절반쯤 되는 터이고, 그 방면엔 아는 것도 없었다.

차를 반쯤 마신 은소연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이만 가볼게요. 뵙게 돼서 반가웠어요.”

공손하게 인사를 마친 은소연이 먼저 자리를 떴다.

“우리도 가야지.”

“내가 쓸데없는 말 해서 그래?”

“그런 것도 좀 있구.”

미쉘이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 이 맥주만 마시고 가자.”

“그래.”

감정을 정리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개방적으로 살아온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참, 차니. 회사 하나 인수해라.”

강찬은 멀거니 시선만 주었다.

“쟤 소속된 회사 괜찮아. 사장이 좀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돌더니 이번에 팔려고 내놨나 봐.”

“미쉘. 내가 그걸 할 거 같냐?”

“아니.”

강찬이 풀썩 웃자 미쉘이 따라 웃었다.

“절대 안 할 거 같아. 그런데 반대로 차니라면 정말 잘할 거 같거든. 무엇보다 어려운 애들 힘들게 해서 돈 벌지 않을 것 같고.”

“됐다.”

미쉘도 더는 권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시간을 끌지 않고 시원하게 맥주를 다 마셨다.

“일어나자, 차니.”

강찬이 일어서자 미쉘이 얼른 계산서를 집었다.

“이건 회사 카드로 살게.”

맥주 두 병, 차 한잔이다.

그리 불편하지 않게 계산을 맡겼다.

호텔의 입구로 나왔을 때 로비 소파에서 기자 두 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왔다.

“차니. 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질척거리지는 않을게. 대신 밀어내진 마.”

강찬이 미쉘을 잠자코 보았다.

지금은 진심이라 느껴졌다.

“그게 더 힘들지 않어?”

기자 둘이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눈치만 살폈다.

“편하게 보자. 그러다 내가 좋아지면 되는 거지?”

강찬이 풀썩 웃자 미쉘도 만족한 듯 따라 웃었다.

***

강찬이 집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을 때, 강대경과 유혜숙이 들어왔다.

“아들! 언제 왔어?”

“지금 막 옷 갈아입었어요. 모처럼 오붓하게 저녁이라도 드시고 오시죠.”

“안 그래도 아빠가 꼬드겨 봤는데 너 없이 못 그런다고 해서 그냥 왔다.”

그보다는 지쳐 보이는 강대경을 위한 것이라 여겼지만, 굳이 확인할 필요 없는 일이다.

간단하게 씻고 난 강대경과 유혜숙은 긴장이 풀린 것처럼 소파에 축 늘어졌다.

“아차! 아들 점심 안 먹었잖아?”

“괜찮아요. 아까 친구와 간단하게 간식 먹었으니까 저녁 맛있게 먹죠.”

“그래. 그럼 그럴까?”

어지간히 피곤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들, 아까 미쉘이란 아가씨랑 그동안 만난 적이 있었던 거야?”

“걔는 한국어, 저는 프랑스어를 배울 겸해서 통화 가끔 하고 한 번인가 만났었어요. 오늘 우연히 만나서 반가웠었나 봐요.”

갈수록 거짓말만 는다.

그래도 유혜숙이 안심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참! 여보, 프랑스 대사가 찬이 국비 유학 제안했대요.”

유혜숙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며 강찬은 또 한 번,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샤흐란의 일을 설명할 수는 없어서였다.

***

일요일 오전에 아침을 먹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을 때 문자가 왔다.

[나올 수 있소?]

이놈은 목에 깁스를 하고도 지칠 줄을 모른다.

강찬은 일단 전화를 걸었다.

[“나요.”]

“집에 있어. 돌아가지도 않는 목을 해 가지고 어딜 돌아다니려고 그래?”

[“아파트 앞이요.”]

헛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론 반갑기도 했다.

해 줄 얘기도 있었다.

강찬은 석강호 핑계를 대고 집을 나섰다.

현관을 빠져나오자 석강호의 차가 멀리서 뛰뛰거렸다.

“좀 쉬어라.”

“그럴까 했는데 심심합디다. 얼굴도 보고 싶고.”

차는 아파트를 빠져나와 큰 도로에 접어들었다.

“어제 행사는 기사로 봤소. 못 가서 미안해요.”

“됐어. 거기서 인사하기도 그렇고, 목에 깁스하고 와봐야 좋은 소리도 못 듣는다. 아! 미쉘이 취재한다고 왔더라.”

“그래요? 잡지사 다닌다는 게 맞았나 보우.”

“그러게.”

승용차가 외곽 도로를 탔다.

“전에 갔던 집에 가서 커피나 한잔 마시고 옵시다.”

강찬의 마음에 꼭 드는 제안이었다.

20분쯤 걸려서 둘이 전에 앉았던 탁자에 자리 잡고 커피를 주문했다.

강찬은 라노크가 했던 말을 석강호에게 전해주었다.

“어째 일이 점점 더 커지우.”

“우리 입만 다물면 그만이지.”

“우리야 그렇지요. 그런데 스미든 그 새끼가 알리스인가 뭔가 하는 여자애에게 주절거리면 어쩌우?”

그건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하여간 피곤한 놈이다.

“내일부터 학교 나가우. 운동부는 금요일부터 열기로 했고.”

“나오는 대로 연다더니 무슨 문제 있냐?”

수업보다는 운동부 애들 챙길 것이 걱정돼서 던진 질문이었다.

“내일부터 목요일까지 시험이잖소. 거, 아무리 상관없이 지낸다지만 그 정도는 압시다.”

석강호가 짓궂게 웃을 때 강찬은 멀리 강 너머에서 입술을 길게 내민 김미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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