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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분배.
스미든은 미국 놈이라 영어를 지껄인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몇은 있었을 거다.
1,200만 유로면 우리 돈으로 얼추 180억 언저리.
그중 얼마를 주겠다고 했는지는 몰라도 교사를 남편으로 둔 평범한 가정주부가 감당할 금액은 아니다.
‘통장의 돈을 나누라더니 갑자기 왜 그런 거지?’
강찬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으나 당장은 어쩔 방법이 없었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언젠가 야쿠자를 만날 것만 같은 철수는 아직도 일본에서 가격만 물어보며 주인을 약 올리고, 수학은 용어부터 알아먹지 못하겠는데다, 스파이나 저격수가 될 것도 아닌데, 왜 달리는 차에서 쏜 총알이 표적에 도달하는 시간을 알아야 한단 말인가.
모르나 본데 사격은 감각과 경험, 그리고 타고난 배짱이 있어야 한다.
백날 답을 구해봐라.
사람 몸뚱이를 겨눈 채로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지.
수업을 견디다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점심시간이 강찬을 구해주었다. 돈가스를 사주던 석강호의 존재가 이렇게 크게 느껴질 줄은 정말 몰랐다.
“밥 먹으러 가자.”
김미영이 밝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생 식당에 간다고?
생각만 해도 뻑뻑했다.
매점에 가서 라면이나 하나 사 먹을까?
“안 가?”
에효. 간다. 가.
특별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다 보면 다른 아이들도 조금씩 편하게 대하겠지.
염병.
그러나 강찬의 기대는 복도를 나서는 순간 완전히 무너졌다. 북적이며 식당으로 가던 아이들이 복도의 양편에 쫙 달라붙어서 고개마저 떨구고 있어서였다.
아이들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강찬에게 전달되었다.
‘쯧!’
저 아이들을 욕할 것만은 아니다.
학교 앞에서 회칼로 손을 잘라댔는데 그걸 만만하게 보고 덤비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프랑스에 갈 이유가 사라진 지금, 2학기에도 학교를 다녀야 한다면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봐라.
백설공주는 이렇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옆을 걷고 있지 않으냐.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찬이 결의를 다지자 아이들이 시선이 더 빨리 돌아갔다.
학생 식당은 교무실이 있는 건물 지하였다.
강찬은 무심코 지하 계단으로 내려갔다.
“찬아.”
왜 그러지?
시선을 돌렸을 때 김미영은 계단의 끝에 서 있었다.
“줄 안 서?”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아직 계단을 두 번이나 돌아야 식당인데 여기서부터 줄을 서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특혜를 원할 바에야 차라리 매점에서 라면이나 빵을 먹는 게 낫다.
강찬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단을 올라갔다.
학생식당은 처음이다.
강찬은 일부러 백설공주를 벽 쪽에 세우고 그쪽을 향해 섰다. 오가는 아이들이 놀라거나 공연히 긴장하지 않았으면 싶어서였다.
“아, 씨발, 구내식당은 존나 구려!”
그때 쫄쫄이처럼 바지를 줄인 사내 녀석 둘이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로 그를 지나쳐 건들건들 계단으로 내려갔다.
“새우젓 다시 식당에 다닌담서?”
“운동부라고 존나 깝쳐! 냄새 존나 나는 계집애가.”
백설공주가 잽싸게 강찬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차소연 이야긴가?
강찬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일단 모른 척했다.
몇 마디 말 좀 했다고 불러서 윽박지르기도 그렇고, 무슨 정의의 사도라고 줄 서라, 마라, 일일이 악을 쓰겠나 싶어서였다.
줄은 예상보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줄 설만 하네.’
김미영은 벽에 붙어서 무척 행복한 얼굴이었다.
“카레가 정말 맛있어.”와 “국이 짤 때가 많아.” 등 학생 식당의 메뉴와 간 등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학교에서, 그것도 같은 반에서 이렇게 편하게 대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만약 백설공주마저 없었다면 지금쯤 매점에서 라면을 사 먹으며 겉돌고 있었을 거다.
계단을 두 번 돌아서 가자 활짝 열린 철문 안에서 여러 가지 음식 냄새가 훅 끼쳤다.
얼핏 보니 철문을 들어가 오른편으로 배식대가 있고, 그 앞으로 기다란 탁자가 일정하게 놓였다.
각자 식판에 밥을 타서 원하는 자리에서 먹는 모양이었다.
그동안 껄렁대는 몇 놈이 줄을 무시하고 스쳐 지나갔는데 그때마다 강찬의 앞뒤에 있는 아이들이 그의 눈치를 살폈다.
왜 가만 있냐?
저런 놈들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되나?
눈빛에 담긴 뜻은 알았다.
하지만 조금 전에도 생각했듯이 저런 놈들을 일일이 불러 세우는 것은 강찬의 스타일이 아니다.
처음 와보는 식당이었다.
슬쩍슬쩍 안을 들여다보던 강찬은 한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차소연?
북적이는 식당에서 그녀 주위만 텅 비어 있는 바람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차소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식판만 보고 있었다.
운동부를 벗어나면 저렇게 지내고 있었던 건가?
말은 들었지만,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밝은 얼굴로 인사하는 아이가 혼자 있을 때는 저런 꼴을 당하고 있었던 거다.
프랑스, 아프리카에서도 인종차별은 있었다.
그러나 저렇게까지 대놓고 사람을 몰아세우진 않는다.
이를 꽉 깨물었던 강찬은 커다랗게 숨을 쉬었다.
아서라.
여기서 뭐라고 애들을 두들길 건가?
껄렁대는 놈, 몇 놈 윽박질러봐야 차소연만 멀리 떨어트려 놓는 꼴이 된다.
강찬의 앞뒤에 서 있는 아이들이 그의 표정과 차소연을 번갈아 살피며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강찬은 냉정한 얼굴로 끝까지 줄을 지켰다.
그의 눈빛이 번들거리자 김미영도 긴장한 얼굴로 차소연과 강찬을 번갈아 보았다.
마침내 철문 안으로 들어섰다.
강찬은 당당한 자세로 식당 안쪽을 느긋하게 훑어보았다.
시선이 하나둘 몰리기 시작하더니 한순간에 식당 안이 조용해졌다.
끼기깅. 끼깅.
제법 인상 더럽게 생긴 2학년 몇 놈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인사했다.
눈치 없는 아이들이 뒤늦게 강찬을 발견한 이후로 식당은 젓가락 움직이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배식하던 아주머니 몇 명이 무슨 일인가 머리를 내밀고 식당 안을 보았다가 강찬의 정체를 묻는 듯 앞에 있는 학생에게 눈짓을 했다.
2학년 한 놈이 달려왔다.
“앉아 계시면 제가…….”
“가라.”
샤흐란의 일 때문인지 한번 독기가 오르면 눈이 쉬 풀리지 않는다.
참으로 고요하고 경건한 배식이었다.
차소연은 바짝 긴장한 얼굴을 숙인 채로 수저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왜 저런 아이가 있어야 하지?
여기 있는 새끼들이 다 개 코라 강찬이 못 맡는 냄새를 맡기라도 하는 건가.
마침내 그의 차례였다.
아주머니조차 긴장한 듯 보였다.
식판과 우유를 든 강찬은 차소연 앞으로 갔다.
달칵.
그는 식판을 내려놓고 다시 한 번, 식당 안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밥을 먹던 몇 놈이 얼른 수저를 내려놓는 것이 보였다.
김미영이 강찬의 옆에 앉자 차소연이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놀라고 당황하고 반가운 얼굴이었다.
길을 잃었던 아이가 보호자를 만난 듯한 눈빛이었다.
아직 강찬은 앉지 않았다.
탁자 세 개를 건너서 쫄바지를 입고 순서를 지나쳐 갔던 놈들이 보였다. 강찬이 그쪽에 시선을 주며 피식 웃자 놈들이 겁먹은 개처럼 대가리를 떨어트렸다.
이 씨발 놈들을 어떻게 할까?
불러서 식판으로 대가리를 한 번씩 갈겨줄까?
“찬아.”
김미영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를 부르지 않았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난 다음이면 이런 적이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다가 날이 서면 유독 독해진다.
아프리카에서도 이런 때 강찬을 건드리는 놈은 없었다. 다른 구대의 알제리 놈 하나가
“몇 놈 죽었다고 더럽게 인상 쓰네.” 라며 껍죽대다가 피떡이 된 이후로는. 여담이지만 그 일로 훈장과 포상금이 날아갔었다.
“찬아. 밥 먹자.”
칭얼거리는 것처럼 김미영이 또 그를 달래주었다.
여동생이 있는 자리다.
참으려고 고개를 돌리던 강찬의 눈에 차소연의 주위가 텅 빈 것이 보였다.
번득.
“찬아. 제발.”
“후우.”
강찬이 다시 시선을 들었을 때, 이번엔 서 있던 놈들의 고개가 뚝 떨어졌다.
아직껏 아무도, 누구도, 밥을 먹지 못한다.
그때 김미영이 강찬의 손을 살짝 잡았다.
뭐지?
고개를 돌렸을 때 겁먹은 얼굴로 김미영이 웃고 있었다.
웃기는 일이다.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와 김미영의 얼굴을 보자 독기가 쓱 풀어지면서 죄 없는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강찬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자 숨 막히던 긴장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다시 강찬과 김미영, 그리고 차소연이 밥을 먹기 시작하자 비슷한 소리가 식당 안 전체로 차츰 퍼져나갔다.
추모식에 나온 학생들처럼 숙연하게 하는 식사다.
살벌한 분위기를 풀고 싶었는지 김미영이 자주 질문을 던졌고, 차소연이 답을 했다.
주로 공부에 관한 이야기여서 강찬은 끼어들지 않았다.
“언니. 저 그럼 아침에 한 시간씩 수학 가르쳐 주실래요?”
“해보자. 재밌겠다.”
식사가 끝날 때쯤 강찬은 무사히 학교에 나올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차소연은 점점 더 고립되었을 거다.
이건 때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가까이 앉으라고, 친해지라고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놓고 멸시하지 못하게 할 수는 있어도 강제로 친해지게 하기는 어렵다.
방법이 필요했다.
점심을 먹고 운동장 근처에서 잠시 노닥거리다가 교실로 향했다.
“백설공주.”
“응?”
“아까 손잡아 줘서 고마웠어.”
“흐흐흐.”
아무래도 웃음은 고쳐줄 필요가 있다.
손잡아 준 것을 고마워하는 의미도 잘못 이해한 거 같고.
오후 수업이 강찬을 옭아맸는데 의외로 국어 수업은 들을 만했다.
게다가 차소연이나 문기진 같은 아이들에게 찍힌 낙인을 지워줄 방법이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 보니 수업이 그렇게 지루하지 않았다.
마침내 길었던 봉인이 풀리는 듯 수업이 끝났다.
강찬은 우선 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 난리를 쳐놓고 교복 차림으로 병원에 가기는 좀 그랬다.
“걸어가자.”
“그래.”
나쁠 것 없다.
김미영은 식당에서 무서웠다느니, 나쁜 애들이 정말 많다느니 하며 조잘거렸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다.
“들어가고, 내일 보자.”
“안녕.”
김미영과 헤어져 아파트 현관에 들어설 때였다.
웅웅웅.
진동음이 울려서 전화기를 확인했다.
석강호인 줄 알았다.
[강찬. 이제부터 시작이다.]
뭐지?
발신자 번호가 ‘000000’ 이다.
‘이 병신은 또 뭐야?’
딱 거기까지였다.
강찬은 피식 웃으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자신 있는 놈은 절대 이런 짓 안 한다.
어설프게 이럴 게 아니라 그냥 한 방에 달려든다.
집에 들어간 강찬은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병원으로 향했다.
강찬은 우선 유헌우를 찾아가 갈비뼈 사진을 먼저 찍었다. 사진을 들여다본 그의 표정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다음은 어깨의 상처였다.
입술을 모아 좌우로 움직이던 유헌우가 커다랗게 숨을 내쉬며 소독을 하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안 좋은가요?”
“너무 좋아서 걱정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강찬 씨 같다면 의사들 밥 굶기 딱 좋겠어요.”
유헌우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시간 될 때 조직 검사 한 번 해봅시다. 세포의 재생과 분열이 너무 빠르면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올 수도 있거든요.”
“나중에 하죠.”
“비용이 드는 일이라 강요하긴 어렵지만, 조만간 꼭 시간 내서 오세요.”
유헌우 정도 되는 의사가 돈을 더 벌기 위해 이런 권유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유혜숙에게 걱정거리를 안기고 싶지 않아서 강찬은 우선 검사를 뒤로 미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석강호의 병실로 들어갔다.
“어서 오슈.”
“하이, 차니!”
석강호가 못마땅한 얼굴로 강찬을 맞았다.
“저 새낀 왜 여기 누워 있어?”
석강호의 맞은 편 침대에 스미든이 왼쪽 눈을 내놓고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심심하고 무섭다고 저 지랄이우. 말이 통해야 뭐라고 할 텐데 난 한국말과 알제리 말만 하고, 저 새낀 불어와 영어밖에 안 되니 갑갑해 죽을 판이우.”
강찬은 시선을 피하는 스미든을 보았다.
“넌 왜 여깄어?”
“혼자 있으려니까 심심하고 이참에 한국말이나 배워보려고 그랬소.”
지랄도 참.
강찬은 다시 석강호를 보았다.
“안 식구는 갔냐?”
“애들 챙긴다고 갔수. 내가 움직일 수 있으니까 자고 내일 오라고 했수.”
“커피나 한 잔 타라.”
“그럽시다.”
석강호가 봉지 커피를 타자 스미든이 잽싸게 “다예!” 하고 먹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냥 타 줘라.”
목에 뻣뻣한 플라스틱 깁스를 하고 눈알을 부라리는 석강호를 강찬이 말렸다. 두 놈이 함께 있는 것을 보니 벌써부터 골이 지끈지끈 아픈 것 같았다.
“이 맛은 정말 환타스틱 하네요.”
머리카락부터 온 몸뚱이에 북슬북슬 노란 털이 가득한 놈이 붕대를 칭칭 감은 상태에서 봉지 커피를 마시는 꼴이라니.
왼쪽 눈과 주둥이만 내놓고 종이컵을 홀짝이는 것이 안 돼 보이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감정이 복잡했다.
“너는 또 왜 갑자기 주식은 나눠준다고 지랄을 떨어?”
창문을 열고 담배를 하나씩 문 다음에 강찬이 던진 질문이었다.
커피 마시랴, 담배 피우랴, 스미든이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내려놓고 강찬을 보았다.
“통장에 3백만 유로, 내게 1,200만 유로의 주식이 있으니까 그걸 셋으로 쪼개면 한 사람당 5백만 유로씩 되잖소? 공평하게 나눕시다. 대신 나도 당장 현금이 필요하니까 통장에서 백만 유로는 쓰게 해줘요.”
“주식은 갖고 있고, 돈은 찾아줄 테니까 그냥 써, 인마!”
“노우, 차니.”
스미든이 뜻밖에도 진지한 외눈으로 강찬을 보았다.
“오른쪽 눈과 망가진 몸뚱이를 봐서 옛날의 죄를 용서하고 동료로 인정해 줘요. 여기서 내가 더 가지면 언젠가 나도 샤흐란 꼴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소. 돈 욕심을 내란 게 아니라 내게 다시 기회를 달란 거요. 갓 오브 블랙필드의 부하가 될 기회.”
“개새끼가 점잖은 척 말할래?”
“예쓰, 차니. 그렇게 예전처럼 날 대우해 줍시다.”
반가운 눈으로 욕 처먹는 놈은 또 처음이다.
“알았으니까 주식은 그냥 갖고 있어. 여러 가지로 번거롭다.”
“차니.”
스미든은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셋 남았으니까 이제부터라도 셋이 공평하게. 정 그러면 내가 알아서 보낼랍니다.”
한번 고집을 피우면 어지간히 패서도 안 듣는 놈이다.
강찬이 심오한 표정으로 스미든을 노려볼 때였다.
“이런 도라이 같은 새끼가.”
석강호가 짜증을 내며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뭔데?”
“아, 어떤 미친 새끼가 ‘넌 조만간 죽을 거다.’ 라고 문자를 보냈지 뭐요. 어이, 재수 없어.”
“발신 번호가 어떻게 되는데?”
“어디 보자, 뭐야 이거? 영이 여섯 개요.”
강찬은 찝찝한 기분이 들어 석강호에게 다가갔다.
“이거 보슈.”
강찬에게 문자를 보여준 석강호는 아예 삭제버튼을 누르고 전화기를 침대에 던졌다.
“어떤 새끼지?”
강찬은 전화기를 꺼내 아까 받은 문자를 보여주었다.
“얼래? 이게 뭐요?”
석강호가 전화기에서 시선을 들어 강찬을 보았다.
“너랑 내 번호를 아는 새끼란 뜻이잖아?”
“이거, 학교에서 줘 맞은 애새끼들 장난 아뇨? 왜 그러쇼?”
강찬은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내가 호텔에서 잃어버린 전화기를 주운 놈 아닐까?”
“에이, 샤흐토 브니므부터 다 해결됐는데 그걸 주워서 달랑 우리 둘에게 문자 보낼 놈이 누가 있소? 청소도 오광택이 똘마니가 했다면서요.”
“그런가?”
“너무 날카로워지지 맙시다. 아직 안 풀어진 거 같은데 어디 가서 시원하게……. 아, 참. 아직 학생이지.”
석강호가 안됐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예민해지지 말라니까요. 정 안 풀어지면 나랑 술이나 한잔 하던가요.”
“됐어. 아까 낮에 아슬아슬했던 것도 그냥 넘어갔어.”
말이 나온 김에 강찬은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하여간 애 새끼들이 어떤 면에선 참 잔인해.”
맞는 말이다.
“그나저나 저 새낀 어쩌우?”
강찬은 얼결에 스미든을 보았다.
“저 새끼는 주식이랑 통장에 든 돈을 셋이 공평하게 가르자는 거야. 그래서 주식 삼 등분, 통장에 있는 돈 삼 등분하고 깨끗하게 다시 출발하자는 거지.”
“대장 생각은 어떻소?”
스미든은 고개를 숙인 채로 슬쩍슬쩍 눈치만 보고 있었다.
“저놈은 생각이 바로 박힌 놈이 아니야. 처음에 돈을 가지라고 할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주식까지 나누자고 하는 걸 보고나니 뭔가 미심쩍다.”
“한 편으로 넣어달라고 했담서요?”
“그러니까. 너 같으면 우리 곁에 있고 싶겠냐? 가진 주식 처분해서 눈치 안 보고 편안하게 살 곳으로 가면 되는데?”
“그러네!”
석강호와 눈이 마주친 스미든이 잽싸게 시선을 피했다.
“저 새끼, 눈을 피하는 게 정말 이상하우. 원래 저놈은 날 만만하게 봐서 어지간한 일로는 저러지 않거든요. 심지어 내 지갑을 들고 튄 다음 날도 오히려 큰소리를 치던 놈인데.”
강찬이 무슨 소린가 해서 석강호를 보았다.
“내가 말했던 것보다 돈이 많았다고 악을 씁디다. 그런 새끼가 공평하게 셋이 나누자고 하고는 내 눈을 피한다는 게 말이 되우? 이거 아무래도 이상해요.”
“쯧!”
당장 급한 일은 아니다.
그러니 잠시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마쳤을 때였다.
“대장. 이런 말 한다고 오해하지 마슈.”
“뭔데?”
“주식이랑 돈, 셋이 나눕시다. 아이, 참. 오해하지 말라니까요.”
석강호가 억울하다는 얼굴로 강찬에게 항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