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30화 (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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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새로운 시작.

유혜숙을 다독인 강찬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잠이 들었다.

푹 잤다.

고개를 털고 일어나보니 6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어후.”

잠에서 깼을 때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갈비뼈와 오른쪽 어깨가 욱신거렸다.

강찬은 천천히 몸을 풀며 상처가 난 곳들을 보았다.

병 조각이 박혔던 오른손, 꿰맨 자리가 흉터로 남은 왼손, 뜨끔거리는 옆구리, 새로운 실밥으로 묶어놓은 오른쪽 어깨까지.

아프리카에서도 이렇게 심하게 다친 적은 몇 번 없었다.

오랜 전투에서 휴가를 받은 기분.

푹 잤으니 남은 것은 편안한 바에서 기분 좋게 술이나 마시는 것인데 현실은 고등어다. 석강호가 없이 어설프게 설치다간 공연히 망신만 당한다는 말이다.

바깥에서 소리가 나서 강찬은 몸을 일으켰다.

편한 운동복 바지와 허름한 티로 상처를 감추고 거실로 나갔다.

“뭐 하세요?”

“저녁 먹어야지.”

솥을 들어 올리는 유혜숙은 아직 기운이 부족해 보였다.

“이리 나와보세요.”

“왜? 엄마 괜찮아.”

“먹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강찬은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기름을 둘렀다.

계란, 올리브 기름, 피망, 채소 몇 가지.

나가서 먹자고 할까 했는데 유혜숙이 싫다고 할 것 같았고 강찬도 내키지 않았다.

채소를 잘게 썰어 잘 풀어놓은 계란에 넣는다. 여기에 소금 간을 한 다음, 윗면이 살짝 덜 익었을 때 둘둘 말면 그럭저럭 먹을만한 오믈렛이 된다.

먹고, 먹고, 또 먹어서 이가 갈릴 정도로 물린 음식이지만 아픈 유혜숙이 해주는 밥을 먹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유헤숙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칼질이며, 계란을 두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서였다.

“정말 잘하네.”

“인터넷에서 배웠거든요.”

“그래? 엄마도 인터넷을 좀 더 해봐야겠다.”

유혜숙은 좀 순진한 면이 있다. 그래서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았다.

강찬은 먼저 물과 포크를 준비해 준 다음, 가로로 널따란 접시에 오믈렛을 얹어 유혜숙 앞에 놓아주었다.

“이건 제 거!”

그리고 유혜숙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녀가 오믈렛에서 시선을 들어 강찬을 보았다.

“왜 그러세요? 속이 안 좋으면 드시지 않아도 돼요.”

“아들이 처음 해 준 음식이라 먹기 아까워서 그래.”

“그럴 게 뭐 있어요. 드시고 싶다고만 하면 매일이라도 해드릴 테니까 얼른 드세요. 계란 요리는 식으면 정말 맛없어요.”

유혜숙은 포크로 오믈렛의 한쪽을 잘라 입에 넣었다.

“음!”

적당한 간에 촉촉한 속, 그리고 아삭거리는 채소까지.

실제로도 맛이 좋았다.

“괜찮으세요?”

“이거 정말 맛있다. 엄마가 브런치 가는 식당보다 훨씬 더.”

“드시고 싶으시면 언제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정말이다.”

“그럼요.”

오랜만에 먹으니까, 그리고 유혜숙과 함께 먹으니까 제법 먹을만했다.

“난 아직도 안 믿겨.”

“뭐가요?”

오믈렛 한쪽을 입에 넣으며 강찬이 물었다.

“아빠 계약한 거.”

그럴 수도 있겠다. 고등학생 아들이 인터넷으로 알게 된 사람을 통해 계약을 따냈다는 말을 쉽게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런데 유혜숙의 얼굴에 그늘이 담겨 있었다.

“왜 그러세요?”

“혹시 계약 때문에 다치고 그런 거니? 오늘 학교에서 전화 왔었어. 너 결석했다고. 아빠가 모른척하라던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무 말 못 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었던 거구나.

그렇다면 계약이 기쁘지만은 않았을 거다.

강찬은 강대경과 유혜숙의 마음을 풀어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죄송해요. 오늘 학교에 안 간 건, 프랑스로 출국하는 분이 있어서 함께 시간 보내느라 그런 거예요.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계약 때문이라고 마음 아파하실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말을 마친 강찬은 석강호를 흉내 내는 느낌으로 히죽 웃었다.

“그리고 저 운동으로 대학 가볼려구요. 그래서 운동부 가입했어요. 석강호 선생님이 지도교사시구요.”

“대학?”

유혜숙의 눈에서 반짝하는 빛이 나면서 한순간에 그늘을 싹 지워버렸다.

“그럼 요즘 그 선생님하고 자주 뵌 것도 그것 때문이니?”

“예. 어쩌면 앞으로 더 자주 만나게 될지도 몰라요.”

이럴 때 미리 다져 놓는 것도 나쁠 것이 없었다.

“아들은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어?”

유혜숙이 기쁜 얼굴로 오믈렛을 입에 넣었다.

“거기까진 생각 못 해 봤어요. 우선 대학갈 준비하고 프랑스 유학도 생각 중이에요.”

“유학?”

“예.”

유혜숙의 얼굴이 너무 환하게 피어서 강찬은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어떻게 될지 몰라 말한 것인데 뜻밖에 저토록 반길 줄은 몰랐다.

“프랑스 유학, 어머! 멋있다. 그래. 아들은 프랑스어를 잘하니까 어렵지 않을 거야.”

강찬은 그만 풀썩 웃었다.

“왜?”

“성희 이모 생각하셨죠?”

유혜숙이 멋쩍게 미소 지었다.

고작 오믈렛 하나다.

그런데 유혜숙은 풀코스 만찬이라도 대접받은 것처럼 기쁘고 즐거운 얼굴이었다. 결석과 상처에 대한 걱정을 대학과 프랑스 유학이 완벽하게 이겨낸 모양이었다.

“아들 덕분에 정말 맛있는 저녁 먹었어.”

이왕 손을 댄 김에 유혜숙을 억지로 앉혀놓고 설거지까지 했다.

유혜숙은 강찬이 정리를 마치자 소파에 가서 앉았다.

“이제 기운 내는 일만 남은 거 아시죠?”

“고마워, 아들.”

몇 마디 말을 더 나누고 강찬은 방으로 들어왔다.

저녁 7시였다.

책상에 올려놓은 전화기에서 파란 불이 깜박여 확인해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전화 좀 주쇼.]

내가 전화기 받은 걸 얘기했던가?

저장된 이름이 없어도 단박에 정체를 알아볼 만한 문자였다.

강찬은 전화를 걸었다.

[“나요.”]

“무슨 일이야?”

[“저녁은 먹었소?”]

“지금 막 먹었다. 무슨 일 있냐?”

[“학교에서 전화가 왔었소. 지도교사가 없어서 내가 출근할 때까지 운동부는 잠시 닫겠다고. 다른 선생 중에 맡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답디다.”]

이런 뭐 같은 경우가…….

“그럼 어떻게 되는 거냐?”

[“당분간 수업 들어가야지요.”]

“너 퇴원은 언제쯤 할 수 있대?”

[“박박 우기니까 2주쯤이면 된답디다.”]

“쯧!”

[“지겨워도 좀 참으쇼.”]

“알았다. 내일 학교 끝나면 들르든가 할게.”

강찬은 전화를 끊었다.

“하아.”

커다랗게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는 일이다.

학교를 나가서 그냥 운동부실에서 죽치면?

일진 놈들과 똑같은 짓거리를 하는 꼴이다.

“염병.”

지긋지긋한 싸움이 끝나니 그만큼 지겨운 일이 또 앞에서 기다리는 꼴이다.

웅웅웅.

문자가 또 왔다.

[차니. 아직도 연락 못 해? 괜찮은 거지?]

이것도 누군지 감이 딱 왔다.

강찬은 전화를 걸었다.

[“차니?”]

“응. 걱정 많이 했어?”

[“괜찮아? 아무 일 없어?”]

“그래. 잘 해결됐어. 아무 일 없고.”

[“아후. 정말 잘 됐다. 우리 걱정 많이 했었어. 지금 어디야?”]

“집. 이번 주는 그렇고, 다음 주쯤에 제대로 저녁 먹자.”

[“그전에 차라도 한잔 마시면 어때?”]

“다른 일이 좀 있어. 그러니까 그냥 다음 주에 보자.”

[“오케이, 차니. 또 연락할게. 안녕.”]

그날 미안하기도 하고, 또 스미든 생각이 떠오르기도 해서 다음 주쯤 밥을 먹을 생각이었다.

일상이다.

고맙고 감사한 일상.

평소라면 귀찮을지 모를 일들이 반갑게 느껴졌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을 때였다.

번호 키가 울리더니 “오늘 회식 안 했어?”하는 유혜숙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찬은 거실로 나갔다.

“오셨어요?”

“그래. 몸은 괜찮니?”

“예. ”

강대경은 감정이 복잡한 모양이었다.

“여보. 회식은?”

“저녁 다 같이 먹었고, 다른 자리 간다고 해서 먼저 빠져나왔어.”

“이이는. 이런 날 수고한 분들을 끝까지 챙겨야지.”

“전무랑 상무가 계시네요. 게다가 어찌나 찬이 얘기를 해대는지 더 앉아있기도 그렇더라구.”

“그래도.”

강대경은 고개를 숙여 가며 유혜숙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이구? 우리 마누라 살아났네?”

“이그.”

아직은 기운이 부족했지만, 유혜숙은 좋아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일은 우리 저녁 먹는 거 맞지?”

강대경이 유혜숙과 강찬에게 답을 듣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강찬의 상처와 결석이 내내 마음에 걸렸고, 어쩌면 혼자 온갖 상상을 하며 시달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끝내 강찬이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사실대로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강찬은 시간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방으로 들어왔을 때 또 문자가 와 있었다.

바쁘다.

[나 8시 30분에 아파트 도착해. 많이 아파? 오늘 학교 안 나와서 걱정돼.]

[문자 확인하면 아무 때고 답 줘.]

이렇게 연달아 보낼 거면 한 번에 보내는 게 낫지 않을까?

강찬은 전화를 걸었다.

[“나야!”]

“어디니?”

[“5분 뒤면 도착해. 많이 아파?”]

“지금은 괜찮아졌어.”

[“못 나와?”]

어떻게 할까?

옆구리와 어깨의 통증 때문에 별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맥빠진 음성을 듣자 얼마 전 운동부실에서 울던 김미영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갈게. 벤치에서 보자.”

[“응! 나 금방 도착해.”]

전화를 끊은 강찬은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던 만 원권 하나를 챙긴 다음 거실로 나갔다.

“저 미영이 좀 만나고 들어올게요.”

유혜숙이 안방에서 나왔다.

“아빠, 샤워하셔. 다녀와.”

강찬은 금방 올라올 거란 말을 하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날이 더워져서 그런지 벤치에 사람들이 있었다.

어차피 나갈 생각이어서 강찬은 아파트 입구로 걸어갔다.

잠시 뒤, 노란 학원 버스에서 김미영이 내리더니 엉성한 자세로 그에게 달려왔다.

“넘어진다.”

“많이 아팠어?”

“이제 괜찮아.”

김미영의 눈을 보자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벤치에 사람이 많더라. 그냥 조금 걷고 들어올까?”

“그래도 돼?”

“괜찮다니까.”

김미영이 “흐흐흐.” 하는 웃음을 웃으며 그의 곁을 걸었다.

휴가나와 여동생과 걷는 듯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내일부터 학교 같이 가자.”

“운동부 때문에 먼저 가야잖아.”

“석강호 선생님이 교통사고가 나서 2주쯤 운동부를 닫는대.”

“정말?”

석강호가 무척이나 서운해할 정도로 김미영은 그의 교통사고를 반기는 얼굴이었다.

“2주 뒤면 기말고사 바로 전이네?”

강찬은 알지 못했던 이야기다.

“시험! 나 꼭 전교 일 등 할 거야. 자신 있어. 요즘 공부가 너무 재밌어.”

김미영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궜다.

에효. 이 병아리야.

이 녀석은 정말 중학생이 연예인 좋아하는 느낌인 게 맞다. 그나마 공부가 재미있다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은 2주 동안 적당한 핑계를 만드는 과제가 남았지만 말이다.

아파트 바깥쪽 길을 타고 커다랗게 돌았다.

“빵 먹을래?”

“아니.”

“나 케익 하나 사려고. 아버지가 오늘 커다란 계약을 하셨는데 그거 축하해 주고 싶어.”

“흐흐흐흐.”

얘는 이게 뭐가 좋은 거지?

아무튼, 둘이 제과점에 들어가 김미영이 골라주는 단순한 모양의 9천 원짜리 케이크를 하나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힐끔거리는 놈들이 있긴 했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파트로 들어왔을 때는 30분쯤 지난 다음이었다.

“들어가. 공부 열심히 하고.”

“응! 내일 아침에 봐. 안녕.”

김미영이 뛰어갔다.

그래. 이렇게 공부에 전념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강찬은 김미영이 아파트 입구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케이크를 꺼낸 다음 가운데 세 개의 초를 꽂았다.

쪼그려 앉아서 하는 일이다.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전에 누군가 이런 짓을 하라면 단박에 케이크를 밟아 버렸을 거다.

불도 붙였다.

케이크가 올려진 상자를 들고서 강찬은 현관문을 열었다.

“찬이니?”

유혜숙이 현관으로 나오다 두 손으로 입과 코를 감쌌다.

“왜? 왜 그래?”

샤워를 마친 듯한 강대경이 따라 나오다 멈칫하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계약 축하드려요. 아버지.”

“그건 네가 받아야지.”

유혜숙이 얼굴을 가린 손끝으로 눈물을 훔치며 강대경을 보았다.

“아버지가 계획하고 준비했던 일잖아요. 어머니와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게 맞지요. 얼른 초 끄세요. 대신 내일 맛있는 거 사 주시구요.”

강대경이 그나마 마음을 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더 다치지 않아도 되는 거냐?’

‘예. 정말 다 끝났어요.’

그저 서로의 눈을 바라볼 만큼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고맙다. 그럼 우리 셋이 함께 끄자.”

강대경이 유혜숙의 등과 강찬의 어깨를 안았다.

“고마워, 아들. 고생했어요, 여보.”

“울어?”

“아냐! 아들이 고마워서 그래!”

강대경은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듯 활짝 웃었다.

“축하드려요! 고생하셨어요!”

“여보, 당신 정말 고생 많았어.”

“케이크 녹는다. 자, 하나, 둘, 셋! 후우우.”

셋이 식탁으로 가서 케이크를 한 조각씩 나누어 먹었다.

유혜숙은 대학진학과 프랑스 유학 이야기를 전하며 너무도 행복한 얼굴이었다. 이러다간 가기 싫어도 프랑스를 가야 할 판이다.

한 시간쯤 회사에서 떠도는 강찬의 이야기와 계약할 때의 상황을 실감 나게 들은 다음, 방으로 들어왔다.

이젠 편하게 잘 시간이다.

침대에 눕자 상처가 욱신거렸는데 의외로 잠은 쉽게 들었다.

***

평화로운 아침.

푹 자고 나면 상처 부위가 훨씬 편하다.

이제야 마음이 놓인듯한 강대경, 훨씬 좋아진 유혜숙과 함께 식사를 했고, 내려와선 김미영과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교통카드도 챙기고, 아침에 따로 용돈도 받았다.

당분간은 학교생활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이제는 거치적거릴 것도 없다.

버스에 오르자 뒤쪽에 앉아 있던 놈들이 우르르 일어섰다.

저놈들은 종점에서 타나?

놈들이 강찬 주위에 둘러서는 것도, 죄 없는 다른 아이들이 한쪽에 몰려 있는 것도 싫었다.

“앉아.”

강찬이 인상을 버럭 쓰자 놈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눈치만 살폈다.

강찬은 일부러 가장 뒤편으로 움직였다.

그래야 가운데 있는 다른 아이들이 편하게 간다.

학교다.

반가웠다.

강찬은 김미영과 함께 교문을 들어섰다.

늘 있던 석강호의 자리에 다른 선생이 있는 게 낯설었으나 2주면 끝나는 일이다.

“선배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차소연이었다.

밝고 주눅 들지 않은 얼굴로 하는 인사가 반가웠다.

“2주간 운동부 닫는단다. 얘기 들었지?”

“예, 어제요. 선배님 몸은 괜찮으세요?”

“그래. 괜찮아. 나중에 보자.”

“예, 안녕히 가세요.”

차소연과 갈라선 강찬은 3학년 건물로 올라갔다.

계단과 복도에서 눈치를 살피고 교실로 들어서자 반 전체가 급속도로 조용해진 것도 변함이 없었다.

에효.

암담했지만, 방법이 없다.

이호준은 강찬이 들어서는 것을 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데 놈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그야말로 대놓고 두들겨 맞은 얼굴이었다.

하는 짓으로 봐선 충분히 저런 꼴을 당할 만한 놈이다.

그런데 저 정도 얼굴이면 부모가 알아보지 않나?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강찬은 착잡한 심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지금 교실에서 유일하게 밝은 얼굴은 김미영뿐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책과 복사한 종이를 펼쳐놓고 집중하고 있었다.

저걸 전교 1등 못하게 방해를 해?

강찬은 혼자 풀썩 웃고 말았다.

그런데 야릇한 긴장감이 교실 전체를 맴돌았다.

강찬이 뒷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계집애 하나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나비부인?

허은실도 놀란 모양이었다.

하기야 가부키 배우를 연상시키는 하얀 분장으로 들어서다 강찬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하여간 저런 년은 둘 중의 하나여야 한다.

정말 죽도록 두들겨서 근처에 못 오게 하거나, 아예 두들겨서 죽여버리거나.

“쯧!”

그것도 관심이 있을 때 하는 짓이지 뭐 미쳤다고 그런 곳에 헛심을 쓰겠나.

강찬은 관심과 고개를 동시에 돌렸다.

과거를 하나씩 정리할 생각이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크레디엣 파리’ 은행에 있는 통장을 찾는 일이다.

웅웅웅.

조용한 교실이라 진동음은 더 요란하게 들렸다.

샤흐란의 일을 겪고 나서 가지고 다니기로 했는데 역시나 거추장스럽고 짜증 나는 일이었다.

석강호였다.

‘선생이란 놈이.’

문자를 켰다.

[스미든이 계좌 보내달랍니다. 제 놈이 가진 주식 나눠 넣겠다는데요?]

웅웅웅.

멍한 순간에 재차 문자가 들어왔다.

[미친 새끼가 병원 직원한테 통역 부탁하는 바람에 마누라가 정신을 못 차려요. 빨리 수습 좀 해주쇼.]

강찬은 깊게 한숨을 내쉬고 전화기를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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