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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싫어?
방으로 들어온 강찬은 책상에 놓인 스마트 폰을 보았다. 충전된 배터리를 끼워 넣고 전원을 넣자 문자가 연달아 들어왔다.
김미영이 보낸 문자가 잔뜩 있었고, 그 뒤로 모르는 번호의 문자가 몇 개 담겨 있었다.
[하이, 차니. 미쉘. 전화 부탁해.]
[전화 부탁.]
[이럼 매력 떨어져.]
[이런 식이면 곤란해.]
[알아서 떨어지란 뜻인 모양이지? 고민 중.]
다섯 개의 문자였다.
강찬은 잠시 문자를 들여다보다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알로?”]
“미쉘? 강찬이야.”
[“차니?”]
“그래. 문자 했던데?”
[“봤어? 전화를 안 받아서 실망하고 있었어.”]
“병원에 있다가 오늘 나왔어.”
[“어디 아파? 그날 붕대 감았던 손 때문이야?”]
여자들은 왜 질문을 두 개씩 붙여서 할까?
“괜찮아. 무슨 일이야?”
[“숙녀들을 흥분시켜 놓고 모른 척하는 건 도리가 아니잖아. 친구들도 엄청 기대하고 있다구.”]
“내가 고등학생인 건 알지?”
[“프랑스 알만도 한데? 그런데 그날도 그러더니 전화도 그러네! 뚝뚝 자를 때 너, 묘한 매력있는 거 알아? 꼭 상처받은 맹수 느낌 나거든. 나 지금 또 흥분됐어. 친구들도 그렇대.”]
후우!
스미든 아닌지 한번 물어볼까?
[“오늘 어때?”]
미쉘의 목소리가 촉촉했다. 아니지. 끈적거렸다.
“상체에 온통 붕대 감았다.”
[“꺄아! 섹시해!”]
미친 년인가?
[“우리가 혈액 순환시켜줄게.”]
“오늘은 그렇고…….”
[“넌 정말 이상하다. 우리 때문에 무릎 꿇고 애원하는 남자도 있어.”]
“그럼 그런 애들 만나.”
[“아후! 느낌 정말 좋다. 그럼 일단 만나서 밥 먹자. 혹시 아니? 네 맘이 바뀔지.”]
“그러자.”
강찬은 토요일 오후로 시간을 정하고 장소는 정해지는 대로 문자 하기로 했다. 안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돕겠다고 나섰을 때 확실하게 거절하지 못했으니 유혜숙이 없는 장소에서 분명하게 선을 그을 생각이었다.
여자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프랑스에서 만난 여자도 있었다.
하지만 욕정에 휩싸여 함께 있었던 여자는 없었다.
사랑조차 시궁창에서 건지고 싶지 않아서였다.
인터넷 검색에 매달리다 보니 저녁 시간이었다. 프랑스와 아프리카, 그리고 그날의 교전과 관련된 용어들을 아무리 검색해 보아도 걸리는 것은 없었다.
하기야 그런 내용이 인터넷을 떠도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저녁은 유혜숙과 둘이 먹었다.
계란찜이 맛있어서 깨끗하게 비워냈는데 유혜숙은 요리대회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행복하고 기쁜 얼굴이었다.
잠시 TV를 본 후에 약을 먹었다.
강대경은 9시경 들어왔다.
“오셨어요?”
“여보오. 피곤하지?”
“당신하고 찬이 보니까 확 풀린다.”
“이이는!”
닭살이 돋게 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강찬은 강대경의 표정에서 어딘지 어색한 구석을 보았다.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도 아무것도 아닌척하는 대원들과 같은 얼굴이었다.
그럴 때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동료들의 사기를 꺾고 싶지 않은 거다.
강찬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방으로 들어갔다.
감추고 싶어하는 부분을 보았다면 그렇게 해주면 된다.
강대경이 원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리라.
30분쯤 되었을 때 강찬은 벤치로 나갔다.
잠시 후에 김미영이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문자 보내고 답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백설공주!”
화들짝 고개를 든 김미영이 그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강찬이 잔인하게 내치지 않는 이유를 눈에 가득 담고 말이다.
“힘들지?”
“응!”
오랜 행군 끝에 안전한 휴식처를 찾은 눈.
“배 안 고파?”
“집에 가서 먹으면 돼.”
기껏 만나서 벤치에 앉아 떠드는 게 전부다.
지겹거나 귀찮지 않냐고?
나이보다 유치하고, 어딘지 모자란 것 같지만, 김미영의 존재가 그렇게 불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얻을 수 없었던 감정.
전쟁터가 아닌 사회에서 지켜주고 싶은 여동생이 생긴 느낌이어서 크게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잘 다독이다가 ‘프랑스에 유학 갈 거니까 서로 성공해서 만나자,’ 정도면 훌륭한 핑계가 되지 않겠나.
강대경과 유혜숙에게도 같은 이유를 댈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6개월쯤 지나 바로 지원하면 된다.
눈에서 멀어지면 조금씩 무뎌지는 것이 사람이다.
지금 스미든의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것처럼.
김미영은 강찬을 바라보며 ‘으흐흐흐.’하는 웃음을 웃거나 학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댔다.
조금씩 알았다.
김미영의 모든 것을 어머니가 결정해 왔다는 걸.
심지어 친해도 되는 친구와 아닌 친구마저 어머니의 의사를 따라야 했던 모양이다.
시간을 뺏긴다는 이유로 전화기도 구형인 아이.
“참!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갑자기 석강호가 해준 말이 떠올라서 던진 질문이었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나온 질문이기도 했다.
“음! 외교관.”
“그래?”
“응!”
강찬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장래 희망이야 얼마든지 바뀌는 것이 아니던가.
원래 좀 엉뚱한 구석이 있는 아이다.
그때 김미영의 전화가 웅웅 거리며 떨었다.
“지금 아파트 앞이에요. 금방 올라갈게요.”
강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
금요일까지 지루할 정도로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병원에 들러 소독을 했는데 어깨와 왼손을 제외하곤 붕대를 풀고 거즈를 붙일 정도로 상처도 호전되었다.
“다음 주 월요일이면 샤워도 가능하겠네요.”
“벌써요? 그럼 운동을 해도 될까요?”
강찬도 놀랄 정도였다.
“근력 운동은 어렵고, 빠르게 걷는 정도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무리하면 안 돼요.”
의사는 푸근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몸을 감고 있던 붕대의 절반을 풀어낸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게다가 샤워를 한다는 게 어딘가.
집에 돌아온 강찬은 유혜숙과 저녁을 함께 먹었다.
“무슨 걱정 있으세요?”
“응? 아니야.”
강대경이 감추려 했던 것을 유혜숙도 알아차린 것이 분명했다. 강찬이 방으로 들어가면 유혜숙은 외로움 속에서 걱정거리를 안고 있어야 한다.
옥상에서 떨어졌고, 교통사고까지 있어서 그런지, 유혜숙은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올해는 쉬게 하고 내년쯤 재수를 권해 볼 생각일까?
함께 TV를 보다가 유혜숙은 전화가 오면 얼른 안방으로 들어가 받고 나왔는데 그럴 때마다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9시가 넘어서 강대경이 귀가했다.
“다녀왔어.”
그가 억지로 웃는 것을 유혜숙이 안쓰러운 얼굴로 받았다.
어쩔까?
끝까지 모른 척해야 하나?
그때 강찬은 유혜숙이 가슴을 두드리는 것을 보았다.
저녁을 억지로 먹은 것이 분명했다.
강찬이 혼자 먹지 않게 하려고 넘어가지 않는 밥을 억지로 넣었을 거다.
강대경이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올 때 강찬은 마음을 굳혔다.
“산책하실래요?”
“응?”
유혜숙은 아직 방에 있다.
잠시 망설이던 강대경이 “그래. 아들하고 좀 걸을까?”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밤에 어딜 가려고?”
“남자들끼리 시간이야. 샘나더라도 오늘은 참아주라.”
가디건을 들고 나온 강대경이 억지로 만들어낸 농담을 던졌다.
“여보!”
“응?”
유혜숙이 얼른 강찬을 보았다.
걱정될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뜻이었으리라.
“너무 늦지 마.”
그러나 그녀는 전혀 다른 말로 마음을 감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두 사람은 한쪽에 있는 벤치로 향했다.
강찬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왜 내려왔는지 강대경은 안다. 그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아빠가 프랑스에서 자동차를 수입할 예정이었다. 우선 50대를 구매 하기로 했지. 진열 차량과 시승 차량인데 이후부터는 고객 주문분을 따로 신청하는 거라 승산이 있었다.”
강대경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정그룹 알지? 거기에서 서정모터스라는 계열사를 만들더니 아빠가 수입하기로 한 차를 병행 수입하겠다고 오퍼를 냈단다. 아빠가 개척한 시장이 욕심이 난 거지.”
강대경은 조금이나마 후련해진 얼굴이었다.
“프랑스에서 연락이 왔더구나. 500대를 일시에 구매하면 독점권을 주겠다고. 우리가 먼저 거래한 곳이라 그 조건이 최선의 배려라고도 하고. 아빠가 그렇게 못할 거라는 걸 알고 내건 조건이겠지. 그래야 대기업과 손을 잡을 테니까.”
“어떤 차를 수입하시는데요?”
“쉬프라는 승용차다. 들어봤지?”
강찬은 조심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쉬프는 고급 세단이다.
현지 가격을 한화로 계산하면 대략 9천만 원이다.
9천만 원이 500대면……?
많은 돈이다.
“포기하시면 손해가 큰가요?”
“50대 계약금으로 나간 돈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나머지 잔금을 모두 내고 사서 되팔아야 하는데 둘 다 손해는 비슷할 거다. 너와 엄마에게 정말 미안한데 집을 담보로 빌린 돈이 거기에 들어갔다. 만약 이번 일이 잘못되면 정말 힘들어질지 몰라. 미안하다.”
“전 괜찮아요.”
강대경이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는 슬프게 웃었다.
“너도 그렇지만 엄마도 걱정이다. 어떡해서든 감춰보려고 했는데 아빤 그게 잘 안 되더라. 특히 엄마를 속이는 건 더.”
“표시 많이 나던데요?”
“그랬냐?”
“예.”
강대경은 표정관리가 안 되고 있었다.
“너 사고 당했을 때도 겨우 위기를 넘긴 건데 이번에 아빠가 또 사고를 쳤으니. 이러다 엄마가 잘못되면…….”
유혜숙이 지병이라도 있나?
“담당 의사가 한 번 더 하혈을 하게 되면 정말 위험하다고 했었는데……. 혹시 아빠 없을 때 엄마가 쓰러지거나 하혈하는 것 같으면, 어떡해서든 삼성병원 응급실로 가야 돼. 엄마 챠트가 있어서 알아서 해줄 거다.”
목숨 걸고 강찬을 낳고, 중환자실에서 피를 흘렸다는 게 그럼…….
강대경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다음 주 약속 되었던 프랑스 임원들이 이번 주에 온다더구나. 서정모터스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한국 지사장을 제안했다더니 우리와 빨리 끝내고 저쪽과 지사장에 관한 조건을 맞출 생각이지 싶다.”
얼핏 들어도 끝난 이야기였다.
전투라면 빨리 생존자를 파악하고 후퇴명령을 내려야 할 때였다.
“잘 되실 거예요.”
“후우! 아들이 의지가 될 때가 있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아직 어린 너에게 충격이 크겠지만, 아빠도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혹시 당분간 어려워지더라도……, 이건 다 아빠 잘못이지, 엄마는 잘 못한 거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원망하고 싶으면…….”
“솔직히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강대경이 억지로 웃어주었다.
“이번 주면 내일이나 모레 들어오는 거네요?”
“내일. 하루 쉬고 일요일 점심때 만나기로 했다.”
“제가 같이 가기로 했었잖아요?”
강대경은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인데 같이 가지요.”
“아니다. 아빠가 잘하고 올게.”
머리를 숙이거나, 계약이 깨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리라.
“도움 드릴 게 통역밖에 없잖아요. 어머니도 여기저기 전화로 도움 청하시는 것 같던데, 힘을 합쳐서 노력해보고 안 되면 할 수 없는 거지요. 나가게 해주세요.”
강찬의 눈을 본 강대경이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러자. 결과가 안 좋더라도 아빠를 끝까지 도와다오. 엄마가…….”
강대경이 이를 꽉 깨물며 감정을 추슬렀다.
“엄마가 견딜 수 있게 너와 나, 둘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노력하자.”
말을 마친 강대경이 집이 있음 직한 7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먼저 들어갈게요.”
남자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강찬이 현관에 들어섰을 때 유혜숙이 뒤를 살폈다.
“아버지는 바람 좀 더 쐬고 들어오신다던데요?”
유혜숙이 핼쑥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힘겨울지 모를 미래에 대한 두려움, 강대경에 대한 염려, 강찬에 대한 안쓰러움이 모두 섞인 얼굴이었다.
강찬은 방으로 들어갔다.
프랑스에서 통장에 넣어두었던 급여를 찾아야 한다.
몇 푼되지 않지만, 거의 손댄 적이 없으니 한화로 대략 1억 5천쯤 될 거다.
‘내가 사망한 걸로 처리됐을 테니 옛날 부모가 대신 수령하게 되나? 아니지. 그건 내가 개인적으로 만든 통장인데. 비밀번호도 내가 알고.“
잘하면 찾을 수 있겠다.
그때 문자가 와서 강찬은 전화를 넣었다.
[“알로, 차니!”]
“미쉘. 약속을 일주일만 미루자.”
[“차니. 이건 너무 큰 무례야.”]
“집에 워낙 큰일이 생겨서 그래. 다음 주에 보자.”
수화기 너머에서 커다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월요일.”]
“알았다.”
[“월요일 약속은 실수 하지 마.”]
“장소와 시간을 문자로 보내. 반드시 지킬 테니까.”
[“알았어.”]
전화를 끊은 후에 강찬은 인터넷을 뒤졌다.
“있다!”
‘크리디엣파리’ 사이트를 찾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애초에 인터넷 뱅킹을 신청하지 않아서 접속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계좌번호도 가물가물하고.
강대경이 들어오는 소리가 나더니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갔다.
돕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작은 힘이라도 되어주고 싶었다.
***
이번 토요일은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강찬은 석강호에게 강대경의 일을 이야기했다.
“어쩌우? 난 프랑스에 월급 남은 것도 없고.”
석강호가 퍼뜩 고개를 돌리며 허공을 보았다.
“가만있자. 지금 사는 집을 대출받을 수 있을 건데?”
“너무 앞서 가지 말자. 우선 크리디엣파리에 있는 예금을 찾는 게 제일 좋아. 홍콩에 유일하게 지사가 있으니까 월요일에 우선 전화해보면 알 수 있을 거다.”
“그나저나 어머님이 걱정이우.”
“잘 되겠지.”
그래도 석강호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토요일 밤에 김미영이 문자를 보내왔지만 감기 기운이 있다는 핑계로 통화만 했다. 온통 정신이 유혜숙에게 쏠려있어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기도하면 들어줄까?’
수많은 전투에서, 새카맣게 달려드는 적 앞에서도 찾아본 적 없었다.
***
일요일 아침을 먹는 자리에서 유혜숙은 울기 직전의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꿋꿋하게 참아냈다.
강대경이 안쓰럽고, 강찬에게 미안한 얼굴.
체할 것이 염려돼서 못 먹게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것이 유혜숙에게 더 큰 고통일 것 같아서였다.
무겁게 짓누르는 오전을 보내고 양복을 차려입은 강대경과 깔끔한 면바지에 셔츠를 입은 강찬이 현관에 섰을 때였다.
“다녀와.”
유혜숙은 결국 눈물을 보였다.
“잘하고 올게. 미안하다, 여보.”
강대경이 그녀를 안아 줄 때 강찬은 조용히 현관을 나섰다.
잠시 후, 눈가가 벌겋게 변한 강대경이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동안, 차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큰 도로에 진입하는 순간에도 강대경은 말이 없었다.
남산 자락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서 차를 세운 다음에야 강대경은 입을 열었다.
“아들이 함께 있으니까 마지막까지 당당할 수 있을 것 같구나.”
강대경이 강찬을 향해 웃어주었다.
그의 몸에 남은 모든 기운과 용기를 짜내 만든 미소였다.
“아빠 회사 임원 두 명과 통역 한 명이 나와 있을 거야. 그 사람들에게는 아들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거고, 저쪽 임원들에게는 통역 보조라고 말하마.”
절대로 그럴 리 없지만, 정말 잘 되길 바랐다.
로비로 들어서기 직전에 강찬은 슬쩍 하늘을 보았다.
‘그냥 원래대로 나 데려가고 두 분 도와줍시다.’
회전문을 통과할 때였다.
강찬은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태어나 처음이잖아요. 씨발. 엿 같은 인생 빙빙 돌렸으면 이럴 때 한 번쯤은 내 소원도 들어달라고요! 그 대가가 아프리카에서 난도질을 당하는 거라도 웃으면서 죽을 테니까, 그러니까, 한 번만 좀 봐 줍시다.’
강찬이 이를 악물었을 때는 이미 로비였다.
라운지는 로비의 안쪽에 있었다.
“벌써들 나와 있구나.”
강대경과 시선이 마주친 회사 관계자 세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강대경이 테이블에 다가갈 때쯤, 프랑스인 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봉쥬르.”
샤흐란이다.
그날의 작전을 설명하던 분대장.
그리고 그 옆에 스미든.
두 사람이 강대경을 맞기 위해 서 있었다.
강찬은 심장과 뇌가 얼어붙은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