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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싫어?
강대경과 헤어진 강찬은 학교로 향했다.
텅 빈 운동장을 배경으로 스탠드 위쪽 길을 따라 걸으면 운동부실이 나온다.
덜컹.
운동부실.
강찬은 안쪽 벽에 기대진 의자 중 하나를 옮겨 창가에 앉았다.
커다랗게 숨을 마시고 커다랗게 내쉬었다.
학교에 나와 앉아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죽어서 몸뚱이가 바뀐 것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일이다.
다시 태어난 것도 정신이 없는 판인데 상처가 빨리 아무는 특수체질이란다.
‘도대체 뭘 요구하려고 이러지?’
살면서 행운이란 걸 잡아본 적은 없었다.
“쯧!”
공짜는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이다.
왜 주는지 설명하고 이런저런 거 해달라는 게 훨씬 낫다.
시간으로 봐서 5교시였다.
강찬이 그렇게 운동장을 바라보는 동안, 수업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렸다.
잠시 후,
덜컹.
석강호가 멈칫하는가 싶더니 곧장 그에게 다가왔다.
“미쳤소? 지금 학교를 나와서 어쩌자는 거요?”
강찬이 풀썩 웃으며 의자를 가리켰다.
“허락받고 나온 거야. 의사도 놀라긴 하더라. 전 세계에 0.1% 정도 있는 특이체질 같다고 하고. 전에 옥상에서 떨어졌을 때도 기적적으로 빨리 퇴원한 거라고 하던데?”
의자를 가져온 석강호가 강찬의 곁에 앉았다.
“정말이오?”
“그렇다니까!”
“듣고보니 그렇긴 하우. 한 달 만에 아무런 이상 없이 학교엘 나왔으니 말이오.”
“좋긴 하면서도 어딘가 찜찜해. 이렇게 얻어걸리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석강호는 공감하지 않는 눈치였다.
“다른 일 없지?”
“깡패들과 연결된 애들 때문인지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쫙 퍼졌소. 칼 맞아서 사경을 헤맨다는 말도 있고, 죽었다는 소문에, 경찰서에 구속된 걸 봤다는 놈도 있습디다. 나야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지 않수?”
“속 후련한 놈들이 많겠구나?”
“푸흐흐흐. 올해 안에는 학교에서 못 본다고 알고 있을 거요.”
석강호가 없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참, 학폭위는 취소됐소.”
“왜?”
“이호준은 맞은 사실이 없다고 하고, 다른 아이들은 스탠드에서 넘어진 거라고 빡빡 우겼답디다. 오늘 아침 소문이 돌았으니까 오후에 진실을 밝히겠다고 할진 모르지요.”
강찬은 허탈한 웃음을 웃고 말았다.
“오늘은 좀 쉬지 그랬소?”
“이상하게 네 얼굴이 보고 싶더라구.”
“난 남자 싫어하우!”
석강호가 툴툴거리면서 웃었다.
“운동부와 관련된 문제는 없지?”
“가입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애들 때문에 귀찮은 거 말고는 특별한 일은 없었소.”
“한 바퀴 돌아볼까?”
“영역표시야 전문 아니오? 살살 다니쇼. 심장 약한 애들 기절하우.”
둘이서 동시에 “푸흐흐흐.” 하면서 웃었다.
“오늘 오전에는 간단하게 규칙만 듣고 헤어졌소. 수업 전이라 땀 흘리게 하기도 뭐했고. 1교시 끝나면서부터 교무실에 말이 돕디다.”
강찬은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선생들은 죽었다고 알고 있을 거요.”
“실망하겠는데?”
석강호가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꼭 그렇지만도 않수. 당하는 애들 때문에 마음 쓰는 선생이 제법 있거든요.”
석강호는 입맛이 쓴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 하지 마쇼. 선생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때리면 고소하는 세상이고, 욕이라도 잘못하면 그날로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도는 세상이요. 얻어맞는 선생도 있고.”
강찬도 석강호만큼이나 입맛이 썼다.
“여기 있을 거요? 허전해서 들렀던 길인데 교무실에 잠깐 가봐야 하우.”
석강호는 운동부 모일 시간에 오겠다는 말을 끝으로 교무실로 향했다.
강찬은 병원에서 준 약이 생각났다.
의사와의 약속이기도 하고, 몸을 만들려면 하루빨리 완쾌할 필요가 있었다.
물을 구하기 위해 운동부 밖으로 나섰다.
본관 건물 안쪽으로 수도꼭지가 있고, 그 외에 매점, 학교 식당도 있다.
강찬은 매점으로 가기로 했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싶지도 않았고, 식사 시간이 아니어서 식당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매점은 운동장과 후문 사이의 가건물에 있었다.
교실과 제법 거리가 있어서 수업 중간에 이곳을 들리려면 아이들은 무조건 뛰어야 했다.
강찬은 매점이 처음이다.
어차피 후문 쪽이라 아예 교무실이 있는 뒤쪽으로 가로지르기로 했다.
주변이 무척 고즈넉했다.
학교가 이렇게 평화로울 때도…….
그런데 건물과 벽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강찬은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남자아이들 넷이 숨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수업시간 아닌가?’
1학년인 모양인데 그중 한 녀석은 정말 앳돼 보였다.
강찬은 피식 웃으며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담배를 권장하거나 잘하는 짓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아이들의 일탈을 일일이 간섭할 마음이 없는 것이다.
부모님이 건네준 용돈으로 제 몸뚱이 상하겠다는 걸 뭐라고 말릴 것인가.
번거롭다.
저런 놈들에게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한다?
생각만으로도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일이었다.
매점에 들른 강찬은 생수 한 병을 샀다.
그리고 운동부실로 돌아왔다.
덜컹.
이젠 정이 들어서 굳이 고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6교시 수업이 끝나자 건물이 떠들썩하게 변했다.
2학년과 3학년은 건물부터 다르다.
강찬은 2학년 건물로 들어섰다.
아이들은 시커먼 망토를 뒤집어쓰고 거대한 낫을 든 사신을 본 것처럼 놀란 얼굴이었다.
피식.
계단을 다 올라간 그가 복도를 향해 몸을 돌리자 놀라움과 침묵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쯧!’
기분이 별로였다.
좀비를 보는 듯한 시선 탓이었다.
2학년 5반.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드륵.
그대로 멈춰라!
누군가 외친 것처럼 아이들이 뻣뻣하게 굳었다.
차소연은 얼이 빠진 얼굴이었고, 엎어졌다가 고개를 든 조세호는 눈을 계속 끔벅거렸다.
강찬은 차소연 앞으로 갔다.
“선배님?”
“별일 없지?”
“에! 예!”
“끝나고 운동부 오냐?”
“예.”
강찬이 씨익 웃어주고 몸을 돌렸을 때, 정신을 차린 조세호가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차소연의 뒤늦은 인사에 강찬은 손만 한번 들어주었다.
다음은 1학년 문기진이다.
‘전쟁터도 아니고.’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눈치를 살피는 녀석, 당황한 녀석, 힘들었던 하루를 보낸 것처럼 지쳐 보이는 1학년.
운동부로 들어서는 아이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면서 신기한 눈으로 강찬에게 인사를 했다.
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조용히 눈치를 살필 때였다.
덜컹!
강찬이 고개를 돌렸을 때 눈물이 그렁그렁한 김미영이 고개를 디민 채로 굳어 있었다.
“들어와!”
김미영이 쭈뼛거리며 들어왔다.
“괜찮아?”
강찬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정말 괜찮은 거야?”
“그렇다니까. 소문이 이상하게 났었다면서?”
“응.”
“봐. 아무렇지도 않잖아.”
교복을 벗지만 않는다면 커다란 부상을 의심할 모습은 아니다.
“으앙.”
뜬금없는 울음이다.
그것도 다른 아이들이 다 있는 곳에서.
“울지마.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울어?”
강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미영을 다독였다.
여자로 좋아하냐고?
설마.
하지만 혼자 얼마나 마음 졸였으면 이런 자리에서 울겠나. 어린아이에게 심어준 환상을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깨고 싶지는 않았다.
마치 오빠가 없어졌을까 봐 애태우던 여동생을 대하는 느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방학이 오면 모두 끝날 일이다.
김미영은 겨우 눈물을 닦았다.
“학원 가야지?”
김미영이 고개를 저어댔다. 학원 수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안 가겠다는 의미로 보였다.
“그러지 말고 학원 끝나고 문자 해. 집에 있을 거야.”
“정말?”
운동부 아이들이 수상한 눈빛을 힐끔거리는 앞이다.
“학원에 가. 문자 하고.”
“응!”
김미영은 이상하게 대답이 강하다. 그래서 나이보다 어린,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치한 느낌이 들었다.
강찬이 두 번이나 고개를 끄덕여주고서야 김미영은 운동실을 나갔다.
잠시 후에, 다시 네 명이 더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석강호가 들어섰다. 둥그렇게 의자가 놓였는데 석강호는 문 쪽에 있는 빈자리에 털썩 앉았다.
석강호는 운동부 아이들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운동복들 가져왔어?”
“예.”
“그럼 여학생들은 상담실에서 갈아입고 오고, 남학생들은 적당히 알아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모여.”
“예.”
아이들이 우르르 나간 다음이었다.
“하여간 유명 인사요.”
“왜?”
석강호는 재미있다는 투로 문을 살폈다.
“학교에 나왔다는 소문 하나로 학교가 발칵 뒤집혔소.”
강찬은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나갑시다. 애들이랑 격구나 한 판 시원하게 해줘야지요.”
석강호가 기분 좋은 얼굴로 일어났다.
“빨리 가서 한판 하자니까요!”
그는 곧바로 운동실을 나갔다.
“저 새끼는 내가 환자라는 걸 잊었나?”
강찬은 풀썩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관심 집중이다.
스탠드에 제법 많은 아이들이 모여 앉아 운동부를 지켜보고 있었다.
강찬이 나서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쯧!”
고등어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보니 무리에 잘못 끼어든 한 마리 정어리가 된 느낌이었다.
강찬은 적당히 빈자리에 앉아 아이들이 편을 나누고 격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직 어설펐다.
하기야 이제 첫날인데 뭐 얼마나 큰 걸 바라겠나.
게다가 왜 이런 운동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달리고 있는 거다.
구경하던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고 있었다.
대강 분위기를 잡아 준 석강호가 느긋하게 걸어와 그의 곁에 앉았다.
“이거 매일 하지는 못하겠소.”
강찬이 슬쩍 돌아보자 석강호가 말을 이었다.
“씻는 것도 그렇고, 얼마 안 있으면 기말고사요. 이렇게 뛰고 나면 제대로 공부하기 어렵소.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모입시다. 그게 좋겠소.”
“알아서 해.”
운동장으로 시선을 돌린 강찬의 옆 얼굴을 석강호가 물끄러미 보았다.
“왜?”
“프랑스…….”
강찬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석강호를 보았다.
“안 가도 괜찮소.”
피식 웃은 강찬이 다시 운동장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1학년 김민수가 페트병을 쓰러트리고 두 팔을 들며 환호하고 있었다.
“미성년자는 부모 동의가 있어야 합디다.”
“다 방법이 있다.”
“쩝.”
석강호가 커다랗게 입맛을 다신 다음이었다.
“다른 놈들은 말할 것도 없고, 스미든 얼굴까지 희미해. 어차피 한쪽은 죽어야 하는 전쟁터였고, 반드시 살아남는다는 보장도 없었으니까 내가 굳이 거길 가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 결국 갈 거 아니오?”
“어떤 놈 수작인지 못 찾으면 다시 돌아오겠지.”
“퍽도 그러겠수. 새로 얻은 동료들 챙기다 보면 적들이 또 멋진 닉네임 하나 붙여줄 거요. 이름까지 같으니까 갓 오브 블랙필드 쥬니어쯤 되겠소.”
“영어 많이 늘었다?” 하는 강찬의 감탄을 석강호는 “직업이 선생 아니오?” 하며 받았다.
아이들이 달리며 외치는 소리가 두 사람의 시선을 빼앗은 다음이다.
“방아쇠야 당연히 적이 당겼겠지. 그런데 우리를 표적으로 내밀어 준 새끼가 누군지, 왜 그랬는지는 꼭 알아야겠다. 작전은 30분 뒤였고, 출발 무전은 25분 전에 들렸다. 앞쪽의 안전이 확보되었다는 뜻인데 저격이 있었지.”
석강호 역시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구대를 제외하고 전원 사살됐다. 그건 미리 숫자에 맞춰 저격수를 배치했다는 뜻이다. 그래놓고 25분이나 먼저 출발시킨 거다. 총구에 대가리를 들이대 준 꼴이지.”
“흐흠.”
“전쟁터에서 죽은 걸 어쩌겠냐? 정 분통이 터지면 미치광이처럼 총 쏘고 칼질하다 죽는 걸로 끝내야지. 하지만 다예.”
“예.”
“나나 너, 그리고 우리 구대원들을 사냥감으로 던져준 건 이야기가 다른 거야. 스미든, 그 개새끼의 눈빛에 진 빚을 갚기 전에는 내가 지금 누리는 것들을 받아들 자신이 없다.”
석강호가 신음처럼 숨을 내쉰 다음이었다.
“이 몸뚱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말 멋진 분이더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분들이 주는 사랑이 느껴질 때마다, 미안하고, 고맙고, 또 그럴 때마다 떠나기 싫어진다. 나를 보내고, 혹은 전사 통지서를 받게 되었을 때 그분들이 감당해야 할 아픔의 무게가 무섭기도 하고.”
“첫사랑은 왜 빼쇼?”
강찬이 피식 웃었다.
“내 것이 아니잖아. 그분들이 알고 믿고 사랑하는 아들이 내가 아니잖아. 사실은 내가 그 좋은 분들을 속이고 있는 거잖아. 그래서 더 가야겠다. 내 것이 아닌 걸 위해서 원래의 날 믿어주던 놈들을 버리는 건 너무 비겁하잖냐.”
차소연이 엎어지자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가 그녀를 일으켜 주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이란 걸 받는데 그게 내 몫이 아닌 게 싫다.”
“끄응.”
석강호가 무릎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개새끼. 누군지 꼭 찾아서 목을 따 준 다음 돌아오쇼.”
“그러자.”
강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차소연은 밝은 얼굴이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여자아이 둘은 당직실에 가서 씻었고, 남자아이들은 수돗가에서 흙먼지를 씻어냈다.
용돈 받은 것이 넉넉해서 강찬이 돈을 냈고, 문기진이 하드를 사와 다 같이 운동장에서 나누어 먹었다.
아직도 볼이 빨간 아이들이 후련한 표정으로 떠들었다.
석강호가 성적이 떨어지면 운동부 탈퇴라는 경고를 하자 차소연이 오전 운동부 시간에 다 함께 공부하는 것은 어떠냐는 의견을 냈다. 석강호는 흔쾌히 원하는 아이들은 그러라고 했다.
단 하루인데 서로 의지가 되는 모양이었다.
강찬은 저녁을 같이 먹자는 석강호의 눈짓을 외면하고 학교를 나왔다.
버스를 타는 아이들이 모두 여섯이다.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며 웃어대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안녕히 가세요.”
차소연이 버스에 탄 것을 보고 강찬은 자신이 버스 번호를 모르고, 다음으로 교통카드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강찬이 설마 그까짓 교통카드 못 사고, 버스 번호 하나 못 알아내겠나.
하지만 그냥 걸었다.
가끔 얼굴도 모르는 고등어들이 인사하는 것만 빼면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아파트.
강찬이 누르는 번호 키 소리를 들었는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유혜숙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들 왔어?”
유혜숙을 보면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몸은 괜찮니? 약은 먹었어?”
강찬은 풀썩 웃고 말았다.
“왜?”
“집에 오니까 좋아서요.”
“얘는! 과일 좀 줄까?”
“드실래요?”
“그래.”
이런 대화도 익숙해졌다.
옷을 갈아입은 강찬은 유혜숙과 함께 참외와 수박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