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 / 0419 ----------------------------------------------
1-8. 너희는 모른다.
어설프게 몸뚱이를 가져다 대면 그대로 잘린다.
“토막을 쳐서 천안에 가져가야 돼.”
일본도를 든 놈이 잔인하게 웃었다.
사람을 죽여본 눈빛이었다.
“거기서 개를 키우거든.”
뭔 소린가 했다.
적의 도발에 침묵하면 기가 산다.
“개새끼! 친구 챙기는 마음은 인정해 주지.”
“흐흐흐흐.”
이 새끼는 위험하다.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강찬의 죽은 모습을 상상한다. 이전에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뜻이다.
강찬은 지금까지와 달리 왼쪽 어깨를 내밀고 자세를 낮췄다.
한 번이다.
여기서 부상을 심하게 당하면…….
강찬이 눈빛을 번득일 때였다.
“뭐야!”
“이런 개새끼!”
“와아악!”
욕설과 고함이 저 멀리에서 복도를 타고 방으로 들려왔다.
문을 막고 섰던 놈들이 복도 저쪽을 보며 술렁였다.
“퉤!”
강찬은 마른 침을 바닥에 뱉었다.
“씨발. 목이 말라서 침도 안 나오네.”
일본도를 든 놈이 얼굴을 우그러트리며 웃었다.
강찬은 놈의 시선을 똑바로 노려보며 왼손을 들어 붕대를 입에 가져갔다.
“쭉. 쭉.”
그리고 피를 빨았다.
왼쪽 어깨를 후벼 파는 것 같은 통증에 저절로 눈빛이 독해졌다.
밖에서 소란이 커지자 일본도를 든 놈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강찬은 천천히 붕대를 입에서 떼었다.
입을 중심으로 얼굴의 절반이 피범벅이었다.
“퉤!”
한순간, 강찬이 머금었던 피를 놈에게 뱉었다.
놈이 고개를 우측으로 꺾으며 피하는 순간,
“퉤!”
강찬은 남은 피를 또 뱉으며 앞으로 달려드는 것처럼 몸을 움찔했다.
쉑.
중심이 흐트러진 놈은 크게 휘두르지 못한다.
강찬은 검이 지나가는 순간, 오른발을 뻗어 놈의 손목을 걷어찼다.
와락.
단 한 번이다.
일본도가 올라오기 전에.
푹.
강찬은 놈의 오른손 팔꿈치 바로 위에 회칼을 박고 그대로 그어 올렸다.
“끄으아아아!”
푹. 푹. 푹. 푹.
그리고 두 팔꿈치와 양쪽 가슴 옆구리를 재차 찔렀다.
쨍강.
일본도가 떨어지는 순간.
피윳! 푹.
강찬도 왼쪽 팔뚝과 오른쪽 어깨를 베였다.
일본도를 들었던 놈으로 막지 않았다면 목을 찔렸을 만큼 위험한 순간이었다.
푹. 피윳! 피윳! 푹.
피를 보고 놀라는 놈이 있고 흥분하는 놈이 있다.
지금 달려드는 놈들은 피와 공포에 질려서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무작정 달려드는 놈들이다.
강찬은 왼손 붕대로 대강 막아가며 닥치는 대로 찌르고 베고 또 찔렀다.
“헉. 헉. 헉. 헉.”
숨이 가빴다.
도대체 어떤 운동을 했길래 이따위로 체력이 약한 건지.
방 안쪽에 서 있는 사람은 강찬이 유일했다.
대략 열댓 명이 엎어지고 자빠져서 버둥대고 있었는데 신발이 쩍쩍 달라붙을 만큼 바닥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독기 있는 놈들이 죄 엎어졌는지 더는 방으로 들어서는 놈은 없었다.
강찬은 눈이 하얗게 변한 것을 알았다.
어깨도, 온통 칼질을 당한 왼손도 전혀 아프지 않다.
아프리카에서도 이런 눈이 되면 적들이 쉽게 달려들지 못했다.
갓 오브 블랙필드.
모르나 본데 이건 적군이 만들어 낸 말이다.
죽음을 선사하는 신이라는 뜻이다.
‘다 죽여주마.’
강찬은 고개를 좌측으로 비틀었다.
눈이 뒤집히면 이상하게 살아있는 새끼들이 거슬려서 견딜 수가 없다.
그가 다가가자 문 앞에 있던 놈들이 좌우의 복도로 흩어졌다.
“어디 가?”
아우성은 점점 더 가깝게 들렸다.
강찬은 천천히 문을 나섰다.
휘익.
회칼이 달려왔다.
이건 정말 늦다.
완전히 겁에 질려서 마지못해 찌른 거다.
피윳! 푸욱!
“크흑!”
놈이 팔을 구부린 채로 뒤로 물러났다.
몸이 이전처럼 빨라졌다.
“이리 와!”
그가 노려보자 몇몇 놈들이 주춤거리다 가까운 방으로 튀어들어 갔다.
강찬은 복도에 남은 놈들을 노려보았다.
다 죽인다!
내 사람, 내가 가진 것을 건드린 놈들은 다 죽여버린다.
내가 뭘 가졌나?
가족? 돈? 행복? 명예? 사랑?
고작 구대원, 사람 몇이다.
그걸 뺏어가?
피윳! 푹. 푹.
강찬은 뒤로 주춤대는 놈에게 번개같이 달려들어 팔과 어깨를 찍었다.
“끄으응!”
비명을 지르던 놈이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강찬은 잡고 있던 놈의 셔츠와 양복을 당겼다.
“고작 사람 몇 명 지키는 것도 안된단 말이지?”
“으으으…….”
강찬이 놈의 울대 바로 밑, 목줄을 노려보는 순간이었다.
“야-아!”
그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맞은 편 복도 끝에 원숭이가…….
“다예?”
“죽이는 건 안 돼!”
털썩.
강찬은 잡고 있던 놈을 밀어버렸다.
미친 새끼.
세상에 이런 싸움에 원숭이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놈이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싸움은 이미 끝나 있었다.
강찬의 앞에 있는 놈들도 그렇거니와 석강호 쪽에 있는 놈들도 주춤거리기만 할 뿐 달려드는 놈은 없었다.
“앞으로 학교 근처에 얼씬거리는 새끼가 있으면 반드시 모가지를 따 주마.”
지하의 복도다.
강찬의 목소리를 막는 것은 간혹 들리는 처참한 신음밖에 없었다.
“싸우기 싫은 새끼는 앞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
강찬이 목을 한번 비틀고 노려보자 한 놈, 두 놈씩 방으로 들어갔다.
강찬은 천천히 석강호를 향해 걸었다.
이성이 돌아와서 그런지 걸을 때마다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비척. 비척.
어디를 찔렸는지 왼쪽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석강호는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커다랗게 숨을 쉬어댔다.
“씨발.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소.”
눈병이 났나?
가면에 파인 눈구멍을 통해 보이는 석강호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런 건 도대체 어디서 구하는 거냐?”
원숭이는 뭐가 좋은지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이거 영어 이름까지 있는 원숭이요. 얼른 갑시다.”
석강호가 강찬의 상체를 안아 들고 입구를 향해 걸었다.
“이대로 차를 타면 신고 들어갈 텐데.”
석강호 말이 맞다.
어쩌지?
담요라도 있으면 뒤집어쓰고 나갈 텐데.
“잠깐 계쇼.”
강찬을 부축한 탓에 석강호의 앞쪽도 온통 피범벅이었다.
석강호는 카운터에 들어가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여기저기를 뒤졌다.
그때였다.
활짝 웃는 원숭이가 다급하게 고개를 드는 순간에, 입구 계단으로 우르르 새로운 놈들이 밀려들어 왔다.
벽에 기대고 서 있던 강찬은 얼른 몸을 세웠다.
쇠파이프, 회칼을 든 놈들이 그의 앞에서 거리를 두고 섰다.
놈들은 노려보기만 할 뿐, 당장 달려들지는 않았다.
강찬이 목을 비틀 때였다.
“교복? 정말 고등학생이 맞나 보네?”
앞에 선 놈이 놀랐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너희는 빨리 안으로 들어가서 살펴봐!”
“예, 형님.”
대답한 놈이 고갯짓을 하자 대기하던 놈들이 우르르 안쪽으로 달려들었다. 곧바로 악쓰는 소리가 들렸으나 싸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광택이다. 신사동 광택이라고 하면 다 알 거다.”
깡패치고는 몸이 호리호리해서 체형이 강찬과 비슷했다.
“그렇지 않아도 벼르고 있던 참인데 주차장 기범이가 병원에 실려갔다는 말을 듣고 달려온 거다.”
“담배 있냐?”
“저 새끼…….”
오광택이 홱 욕을 뱉은 사내를 노려보았다.
“씨발 놈이, 왜 아무 데나 끼고 지랄이야?”
녀석의 고개가 뚝 떨어졌다.
“야, 이 새끼야. 너라면 혼자서 이렇게 밀어버릴 자신 있어? 나이 따지고 싶으면 경로당 가, 이 개새끼야.”
“죄송합니다, 형님.”
오광택은 눈을 위아래로 한 번 더 부라리고 다시 강찬을 보았다.
그리고는 반쯤 남은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 주었다.
그는 강찬이 내민 손을 보더니 풀썩 웃으면서 담배 두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다음 그중 한 개비를 강찬에게 건네주었다.
“후우.”
살 것 같았다.
강찬은 벽을 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예. 이리 와.”
“알았소.”
카운터에 있던 석강호가 사내들 사이를 뚫고 강찬의 곁으로 왔다.
“담배 하나 더 줘.”
“그러지.”
다예루가 담뱃갑과 라이터를 받고는 스마일 표시처럼 뚫린 주둥이에 물었다.
“거 참. 고등학생에 원숭이 가면이라. 주차장 박기범이가 어디 가서 말 못할 만하네.”
오광택이 기가 막힌 투로 담배 연기를 뿜어낼 때 안쪽에서 한 놈이 돌아 나왔다.
“죽은 놈은 없고, 심각한 놈이 다섯쯤 됩니다. 주차장 애들은 이걸로 끝난 것 같습니다.”
오광택이 고개를 끄덕인 후 강찬을 보았다.
“우리가 통하는 병원이 있다. 그리로 가자. 저 새끼들도 치료해야 하고. 고등학생이 낀 칼부림이라고 어설프게 뉴스에 나오면 강남 바닥 깡패들 죄 박살 난다.”
“담배 하나만 더 피우고.”
오광택이 풀썩 웃으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앞쪽 막고 차 바싹 대 놔. 건너편 건물에서 못 보게 무조건 막아. CCTV 녹화된 거 다 뽑아서 가져가고.”
“예, 형님.”
두 놈이 후다닥 올라갔다.
“서둘러. 정보과에서도 냄새 맡았을 거다.”
“후우!”
강찬은 담배를 바닥에 비벼껐다.
“끄응.”
몸을 일으키려는데 신음이 절로 나왔다.
석강호가 얼른 그를 부축했다.
“야! 그 원숭이 가면 좀 치워.”
“병원에 가면 벗겠소.”
오광택은 두 사람을 의아한 표정으로 보았다.
강찬이 겨우 일어섰을 때 계단을 뛰어 내려온 놈이 준비가 끝났다고 보고했다. 놈은 실제로 담요도 들고 있었다.
“나는 병원에 같이 갈 거니까, 다친 애들 병원에 나눠 넣고 뒷마무리 잘해라.”
강찬이 걷기 시작하자 한 놈이 담요를 크게 펼쳐 강찬과 석강호에게 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