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 / 0419 ----------------------------------------------
1-8. 너희는 모른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다시 둥글게 의자에 앉았다.
“알다시피 난 3학년 2반 강찬이다. 오른쪽부터 자기 소개해라. 운동부 가입과 관계없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3학년이 둘, 2학년이 여섯, 1학년이 여섯 명, 도합 열네 명이 차례로 학년과 반, 그리고 이름을 밝혔다.
“가입해도 강제로 나오는 건 없다. 그건 알아서들 하고, 대신 누구라도 힘든 일이 있으면 바로 찾아와라. 내가 빵셔틀의 비애를 누구보다 잘 알잖냐.”
돈가스를 함께 먹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한결 편안했다.
“마지막으로 지금 성적을 기준으로 전체 학년 성적이 한 칸이라도 밑으로 떨어지면 제명이란다. 그건 꼭 명심해라.”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으나 강찬은 상관없다는 투였다.
“선배님.”
“어?”
2학년 이덕기가 손을 들었다.
“격구가 뭔지 모릅니다.”
강찬은 피식 웃으며 석강호를 보았다.
“크흠. 지름 10m 원 안의 중심에 이 페트병을 세워놓고 이걸 맞춰 쓰러트리면 1점으로 계산하는 경기다. 공은 족구공을 사용하고 들고 뛰어가서 공으로 맞추면 된다. 이게 전부다.”
아이들이 눈을 껌벅였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는 뜻이다.
“해보면 알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일부터 수업 시작 전에 한 시간, 그리고 수업 끝나고 두 시간, 이렇게 운동할 거니까 체육복이나 각자 편한 운동복 준비해라.”
“예.”
남학생 몇이 대답했다.
“다시 말하지만, 운동에 반드시 참여하지 않아도 되니까 부담 갖지 마라. 알았지?”
“예.”
“5교시 수업이 끝나면 교실로 가고 가입할 사람은 그 전에 가입신청서에 이름 적고 가.”
석강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기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저는 지금 가입하겠습니다.”
“저도요!”
차소연도 손을 든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하나둘 움직여 신청서를 가져갔다.
14명이 모두 신청서에 이름을 적고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는 사이 5교시 수업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렸다.
아이들이 복잡한 표정으로 돌아가고 석강호와 강찬만 남았다.
“에효!”
“왜?”
“학교가 애들을 제대로 품어주지 못하는 게 속상해서 그렇수. 쟤들 돈가스 먹을 때 표정 봤지요? 가슴이 다 아픕디다.”
강찬은 석강호를 보며 풀썩 웃고 말았다.
“그런 얼굴 하지 마슈. 난 아무래도 이 몸뚱이가 날 잡아먹나 보우.”
석강호는 멋쩍은 모양이었다.
“나 수업 들어가야 하우.”
“가. 난 여기서 몸 좀 풀고 있을게.”
“알았소.”
석강호가 문을 열고 나갔다.
강찬은 상의를 벗어놓고 창가로 가서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어쭈?”
그는 왼팔을 목 뒤로 넘기고 오늘 팔로 당기듯 상체를 기울이다가 놀란 소리를 냈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생각보다 몸이 쭉쭉 늘어났다.
“어디?”
이번에는 다리를 앞뒤로 길게 찢었다.
“아훅!”
짐작보다 길게 벌어지긴 했으나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사타구니 안쪽이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한 10분쯤 몸을 풀었을 때였다.
바깥쪽이 시끌시끌해서 창으로 내다보니 운동장에 석강호가 있었다.
격구다.
석강호가 아이들에게 격구를 시키고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특별한 작전이 없는 날, 대원들은 다른 구대와 종종 격구를 했다.
숨을 토할 때까지 달릴 수 있고, 다음으로 부상의 위험이 적은 운동이어서 부대에서도 별다른 제지는 하지 않았다.
규칙은 단순하다.
공을 들고 뛰어서 페트병만 쓰러트리면 끝이다.
단, 상대편이 공을 든 선수를 터치하면 공을 뺏긴다. 그러니 뺏기기 전에 무조건 패스해야 한다.
슛은 반드시 원 밖에서 해야 하는데 핸드볼처럼 점프해서 발이 떨어지기 전에만 공을 던지면 인정이다.
사실 격구는 다툴 일이 별로 없다.
대신 원을 밟고 점프했다는 것과 발이 땅에 닿은 후에 공을 던졌다는 것으로 가끔 시비가 생긴다.
뭐, 그런 거야 다예루가 거의 해결했지만.
잊고 있었던 격구를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입쟁이 스미든은 페트병을 쓰러트리고 나면 월드컵 결승에서 골을 넣은 선수처럼 세레머니를 펼치곤 했었다.
‘개새끼.’
그가 마지막으로 ‘갓 오브 블랙필드.’라는 말을 뱉을 때의 눈빛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믿음이다.
그 개새끼는 그래서 몰핀을 거절했다.
최후의 순간에도 짐이 되기 싫었던 거다.
덜컹.
하여간 문은 빨리 고칠 필요가 있었다.
“한참 찾아다녔어.”
누구지?
여학생은 거침없이 그에게 다가왔다.
“허은실?”
화장 안 한 허은실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오빠들이 데리러 온대. 지난번 일도 있고 해서 뒷문 쪽에 차 대놓겠다고 전하래.”
예쁘게 생기긴 했는데 어딘지 비례가 맞지 않는 느낌? 아무튼, 이년은 그냥 화장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으니까 가.”
허은실이 입을 모으고 강찬의 눈치를 살폈다.
“왜?”
“나도 운동부 들면 안 돼?”
뜻밖의 제안이라 강찬은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나도 학교 나와서 할 게 없어. 수업은 어차피 못 알아듣는 거고.”
화장은 지웠어도 특유의 삐딱함은 그대로였다. 한쪽 다리가 조금 길게 태어난 건가 싶을 정도로 허은실의 자세는 짝다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그럼 뭐하러 학교 나와?”
“나도 때려치우고 싶어. 그래서 가출도 여러 번 했는데 엄마가 약 먹는 바람에 학교는 졸업하기로 한 거야. 대신 내가 뭘 하든 상관 않는 조건으로.”
이년은 삶 자체가 피곤하다.
“허은실.”
강찬의 음성이 달라지자 허은실이 그의 오른손을 얼른 보았다.
“내일 애들하고 의논해서 알려줄 테니 가 있어.”
“그럴 필요 뭐 있어? 옵…, 아니 네가 결정하는 거잖아?”
이 년은 이미 더럽고 치사하고 한 줌의 가치도 없는 서열과 권력의 맛에 물들었다.
강찬은 허은실이 남자였으면 참 좋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랬다면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서 다시는 근처에 못 오게 했을 텐데.
강찬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었는지 허은실이 홱 돌아서 문 쪽으로 향했다.
콰앙.
저 빌어먹을 문부터 고쳐야 한다.
강찬은 짜증을 털어내고 다시 몸을 풀었다.
확실히 근력이나 속도는 떨어지는 반면에 이전보다 월등히 유연한 몸이다.
깡패? 조직?
너희는 모른다.
포위당한 후, 반달모양의 도를 들고 새카맣게 달려드는 적을 상대할 때의 각오가 어떤 것인지를.
쓰러진 대원 위로 떨어지는 수많은 칼.
끔찍한 비명.
그리고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다져지는 대원 옆에서 단검을 휘두르는 심정을 너희는 정말 모른다.
회칼을 들고 설치는 것이 이권을 위한 것이라면 이쪽은 살기 위해서, 다져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 칼질을 하는 삶을 살았다.
부모? 학교? 인생?
강찬이 피식 웃었다.
그런 거 계산하면 다예루 말대로 경찰에 전화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갓 오브 블랙필드’를 부르며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던 스미든의 믿음보다 중요할까?
여기서 타협하면 결국 지금 누리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길 거다.
‘병신.’
오입쟁이 스미든의 마지막 모습만 아니었다면…….
그래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하여간 강찬은 욕이 튀어나왔다.
덜컹.
강찬이 매섭게 노려본 곳에 김미영이 있었다.
그는 얼른 표정을 풀었다.
“어쩐 일이야?”
“지금 교실마다 난리야. 운동부 어떻게 드는지 알아보려고 쉬는 시간마다 먼저 가입한 애들한테 달려가.”
강찬이 풀썩 웃자 김미영은 마음이 좀 놓이는 모양이었다.
“나도 가입하면 안 돼?”
“뭐?”
김미영은 자꾸 문 쪽을 보았다.
“은실이도 가입하기로 했다면서? 마지막 수업이니까 끝나고 이리 올게. 나 가입할 거야.”
할 말만 마치고 김미영이 달려나가고 손바닥을 마주친 것처럼 석강호가 들어왔다.
“뭐요?”
“운동부 가입하겠다는데?”
“그렇지 않아도 이거 문제 되겠소. 지금 수업 마친 반에도 가입하고 싶다는 애들이 많소.”
“아직 잘 뛰더라?”
“명색이 체육 선생 아니오? 그나저나 한 시간 남았는데 어쩌기로 했소?”
“뒷문에 차를 대겠단다.”
석강호의 눈이 모처럼 다예루의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쩌실 거요?”
“다예.”
“예.”
“무조건 돌아오마.”
“무조건이요?”
강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석강호가 커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병신 새끼들. 건드릴 사람을 건드리지. 하기야 그 새끼들이 재수가 없는 거지. 뭐.”
말투는 석강호의 것이었으나 눈빛은 여전히 다예루의 것이었다.
“대장.”
“뭐?”
“난 지금 마누라 좋아하우.”
강찬이 풀썩 웃었다.
“그러니까 어수룩하게 당해서 체육 선생이 칼질하다 교도소 가게 하지 마쇼.”
“알았다.”
“에이, 시팔! 그러지 말고 같이 갑시다.”
“됐어. 망갈라 기억하지?”
“쳇! 또 그 얘기요?”
석강호가 언짢은 표정으로 고개를 비틀었다.
***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와 동시에 강찬은 운동실 문을 나섰다.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싫어서였다.
출석 체크를 석강호가 하는 덕분에 조회와 종례에 구애받을 것도 없었다.
강찬이 뒷문으로 걸어가자 검은 양복에 흰색 셔츠를 입은 사내 셋이 역시나 검은색 승용차 앞에 서 있었다.
갸름한 체형에 짧은 머리다.
“강찬이냐?”
강찬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타라.”
머리카락만 짧은 것이 아니라 스타킹처럼 양복바지 밑동도 좁다. 잡힐 수 있는 건 가능한 조심한 복장이다. 당연히 넥타이도 매지 않았다.
철컥.
강찬을 조수석 뒤에 태운 사내 셋이 얼른 차에 올랐다. 운전석, 조수석, 그리고 운전석 뒤, 모두 셋이다.
‘멍청한 새끼들.’
양복의 앞 단추를 채운 채로 조수석에 앉은 놈은 왼편 가슴에, 그리고 뒷좌석 옆에 앉은 놈은 다리 춤에 회칼을 찼다.
차는 골목을 따라 커다랗게 학교 앞을 돌았다.
강찬은 시선을 창밖으로 두었다.
학교 문으로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승용차 안은 얼음으로 내부를 꾸며 놓은 것처럼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세 놈 모두 몸뚱이에 핀이라도 박은 것처럼 고개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 한적한 공장쯤으로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승용차가 멈춰선 곳은 뜻밖에도 커다란 호텔 옆에 지어진 2층 건물 앞이었다.
검은색 과자 상자를 엎어놓은 것 같은 형태에 흰색으로 휘갈긴 ‘솜사탕’이란 상호만 있었다.
강찬은 기다렸다.
철컥.
조수석에서 내린 놈이 문을 열어주며 볼을 씰룩였다.
그런다고 볼에 맞아 죽는 것도 아니고, 신경 쓸 필요 없었다.
까딱.
놈이 지하 통로를 가리켰다.
소위 ‘룸살롱’이다.
계단은 남자 셋이 동시에 걸으면 어깨가 끼일 정도의 넓이. 모두 22개. 카펫을 깔았고, 내려서서 왼편에 카운터, 거기에서 양쪽으로 갈라진 복도가 있었다.
카운터 앞에서 처음 보는 놈이 오른쪽 복도를 가리켰다.
복도는 길었다.
좌우로 방문이 있는데 왼편 여섯 개, 오른편 다섯 개.
그중 오른쪽 세 번째 방 앞에 까만 양복을 입은 놈이 서 있다가 강찬을 보더니 문을 열었다.
강찬은 방으로 들어갔다.
문과 마주해서 화장실, 커다란 샹들리에, 그 아래로 대리석 탁자. 생수, 음료수, 엎어진 컵이 대략 열댓 개.
다섯 놈이다.
강찬은 가운데 정면에 앉은 놈이 소위 두목이라 여겼다.
그는 부리부리한 눈과 강찬의 두 배쯤 돼 보일 정도로 두꺼운 목, 팔뚝, 어깨, 가슴을 가졌다.
“살다 보니까 이런 곳에서 교복 입은 놈을 다 보는구만! 네가 강찬이냐?”
나이가 마흔쯤?
“이리와 앉어. 야! 자리 좀 비켜라.”
“예, 형님.”
오른쪽에 있던 두 놈이 얼른 몸을 움직여 자리를 비웠다.
강찬은 주저하지 않고 두목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눈빛 좋아! 어! 눈빛이 아주 좋아! 그래. 어릴 때는 이 정도 돼야지.”
두목은 생각보다 말이 많았다.
그가 탁자에 두 팔을 얹고 상체를 의지했다.
“내가 너하고 술 마실 군번은 아니고.”
입술을 모은 두목이 강찬을 힐끔 보았다.
얼어붙지 않은 강찬의 태도와 눈빛이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너, 어쩔래? 그냥 묻어버리자는 말이 많았는데 옛날에 내가 그랬어! 지금도 나는 내 위로 형님들이 나만 보면 피해! 어쩔래? 조용히 우리 식구 될래? 아니면, 평생 후회하며 살래?”
두목이 강찬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지금껏 깔렸던 긴장감 위로 새로운 긴장감이 덧씌워지는 느낌이었다.
강찬은 잠자코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그는 탁자 위에 올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겁을 준다기보다는 일종의 버릇처럼 보였다.
두목은 율동에 맞춘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 셋을 병신 만들만 하고만. 아야! 거 학교 애기들 다친 게 열 명이라고 했냐?”
“아홉입니다, 형님.”
그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불쑥 강찬을 보았다.
“그럴만해! 이 존만한 건 갈켜도 안 돼.”
강찬은 그만 풀썩 웃고 말았다.
어지간하면 참고 보고 있으려 했다.
그런데 어르고 뺨치다가 제 놈들 마음대로 결정짓는 꼴을 보고 있자니 더는 참기가 어려웠다.
“웃음이 나오냐?”
“그럼 울어?”
옆에 앉은 놈들과 맞은 편의 놈들이 욕설을 퍼붓고 몸을 일으키려다 두목이 손을 들자 자리에 앉았다.
“너 죽는 게 뭔지 아냐?”
강찬은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너는 알아?”
두목은 속이 끓어오르는 모양이었다.
“이거 완전히 도라이 새끼네.”
“그래, 인마. 그러니까 이런 도라이 다니는 학교에 껄떡대지 마.”
“그런데 이 존만한 새끼가!”
느닷없이 얼굴을 향해 오른손이 날아들었다.
따귀를 때리려는 모양인데 팔통이 두꺼워서 그런지 속도는 지루할 정도였다.
촤악.
강찬은 대가리의 손가락을 왼손으로 잡아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뾰족하게 만든 오른 주먹을 놈의 목덜미에 꽂았다.
퍽.
이러면 당장 힘을 쓰지 못한다.
강찬은 꽉 잡은 대가리의 오른손가락을 사정없이 꺾어버렸다.
자가락.
“끄억.”
퍼억.
그때 옆에 앉았던 놈의 주먹이 강찬의 볼을 때렸다.
그럼에도 강찬은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접어 두목의 두 눈을 세차게 찍었다.
“억!”
“야, 이 새끼야!”
옆자리의 놈이 강찬을 덮쳤다.
이런 새끼가 제일 미련하다.
퍼억.
왼손 팔꿈치로 놈의 미간을 찍었을 때,
콰다닥.
건너편의 두 놈은 이미 테이블 위에 있었다.
강찬은 곧바로 몸을 눕히며 두 놈의 정강이를 하나씩 걷어찼다.
콰다당!
두 놈이 강찬의 앞으로 엎어졌다.
퍼억. 퍽.
강찬은 곧바로 두 놈의 목을 가격했다.
“칵!”
“캐핵!”
두 놈이 테이블에 다리만 올려진 채로 버둥댔다.
그 사이 눈을 감싼 두목이 건너편에서 몸을 빼고 있었다.
소파와 테이블 사이가 좁아 엉거주춤한 자세다.
“어딜 가? 이 개새끼야!”
강찬이 재빨리 테이블에 올랐을 때 화장실 쪽에 앉아있던 놈은 회칼을 꺼내 들었고, 문이 벌컥 열렸다.
강찬은 탁자에서 무릎을 세차게 걷어 올렸다.
쩌억.
엉거주춤한 자세라 높이가 딱 좋았다.
여기서 멈추면 이놈은 복수를 노린다.
아드득.
“크헉!”
목을 비틀자 두목의 몸이 축 늘어졌다.
강찬은 가장 안쪽 소파로 뛰어내리며 두목의 몸뚱이를 잡아당겼다.
“너, 이 개새끼! 빨리 안 놔!”
룸살롱 방이 이렇게 넓을 줄은 몰랐다.
새카만 양복을 입은 놈들이 열댓 명이나 들어섰다.
“놓으라고, 이 새끼야!”
휙휙.
화장실 쪽에 앉았던 놈이 위협적으로 회칼을 휘둘러댔다.
“가져가.”
강찬의 대답이 놀라웠던 모양이다.
“이 개새끼가!”
“모가지를 비틀어 놔서 함부로 놓으면 뒈져. 이 병신아! 그러니까 잘 받으라고.”
놈은 당황한 모양이다.
잽싸게 입구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가장 앞에 있는 놈이 고갯짓을 했다.
주춤주춤.
‘모자란 새끼들.’
엉거주춤한 자세로 놈이 다가왔다.
강찬은 놈에게 두목의 몸뚱이를 세차게 밀었다.
목이 비틀려서 뒈질지 모른다고 했으니 화들짝 놀라는 게 맞다.
와락!
강찬은 그대로 달려들며 두목의 뒤통수를 세차게 밀었다.
손을 벌린 놈의 이마를 노렸다.
빠악.
콰다당!
두 놈이 뒤엉키며 테이블 아래로 뒹굴었다.
“이 새끼!”
몇 놈이 테이블을 타고 넘어오려다 주춤했다.
강찬이 방금 넘어진 놈의 회칼을 들고 다시 의자 위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강찬은 모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날카롭게 긴장한 탓이다.
그는 깡패들과 달리 회칼의 끝이 새끼손가락 쪽을 향하게 거꾸로 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날이 적을 향하도록 했다.
의자에 섰던 강찬이 테이블에 왼발을 걸치자 올라섰던 세 놈이 주춤했다.
“야, 이 병신들아. 뭐 할 짓이 없어서 학교에 지랄이야?”
“이 개새끼! 아가리를 찢어버린다!”
터억.
강찬은 테이블에 올라섰다.
쓰러졌던 놈과 뒤에 있던 놈들이 두목을 끌고 나가느라 분주했다.
“밖에 오십 명이야. 이 개새끼야! 너는 오늘 살아서 못 나가! 내가 사형을 처맞아도 넌 절대 살아서 못 가. 이 개 씨발 놈아!”
강찬은 슬며시 왼손을 쥐어보았다.
상처가 벌어졌는지 축축하고 욱신거렸다.
“송사리 떼도 아니고,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고작 한다는 짓거리가 학교 앞에서 폼 잡는 거냐?”
“이 개새끼!”
악을 쓰던 놈이 참지 못한 모양으로 회칼을 찔러왔다.
홱!
강찬은 왼손을 뻗어 회칼의 날이 시작되는 안쪽을 꽉 잡았다.
순간, 놈이 당황한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푹. 푹. 푹. 푹.
팔뚝만 네 번이나 찔렀다.
피윳!
“아아아아악!”
비명은 마지막에 손목을 그었을 때 나왔다.
강찬은 놈의 가슴을 세차게 밀어버렸다.
와장창!
바닥에 컵이 있는 줄은 몰랐다.
“아악! 악!”
바닥에 떨어진 놈이 손목을 부여잡고 악을 써댔다.
동맥이 끊긴 줄로 착각한 모양이다.
병신.
동맥은 근육 가장 아래, 뼈 사이에 숨어 있어서 아예 서걱서걱 썰어야 잘린다.
저 새끼는 그냥 혼자서 놀란 거다.
남은 두 놈은 아예 달려들지도 못했다.
그중 한 놈은 떨고 있었다.
강찬이 피식 웃으며 놈을 보았다.
저런 새끼가 약한 사람 앞에서는 유독 잔인하다.
그 사이 몇 놈이 좌우의 소파로 뛰어 올라왔다.
휙!
왼쪽 소파로 올라온 놈이 강찬의 허리를 노리고 회칼을 휘둘렀다.
위협 칠, 노림수 삼이다.
와락.
강찬은 칼이 지나치는 순간 달려들어 그대로 밀어버렸다.
오른팔이 반대쪽 어깨로 완전히 돌아간 다음이었다.
푹. 푹.
강찬은 놈의 양쪽 어깨 근육을 찍었다.
“끄어어!”
푹. 푹.
다음은 양쪽 겨드랑이다.
이 새끼는 이제 칼을 휘두르지 못한다.
쩌어억.
그래도 강찬은 놈의 안면을 이마로 받아버렸다.
후다닥.
겁에 질려있던 놈이 빈틈을 봤는지 칼을 앞으로 내밀며 달려들었다.
겁을 먹으면 몸이 굳는다는 걸 모르나?
강찬은 달려드는 놈의 오른쪽 팔뚝에 회칼을 사정없이 찍어버렸다.
푸욱.
“끄아아아아악!”
“이리와! 이 개새끼야!”
강찬이 안쪽 소파로 몸을 움직이자 어물전에서 생선을 찍어 당긴 것처럼 놈이 주르륵 달려왔다.
푹. 푹. 푹. 푹.
용서할 마음은 없다.
무릎 위쪽의 근육 두 곳, 어깨 두 곳을 제대로 찍었다.
“으아아! 으흐흐흑!”
이런 울음은 아군의 사기를 꺾는다.
그러나 강찬은 놈의 오른쪽 손목에 회칼을 댔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울던 놈이 고개까지 끄덕인다.
피윳!
“으아아아악!”
강찬은 놈을 던져놓고 다시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주춤주춤.
테이블에 있던 놈이 펄쩍 내려가는 것을 신호로 그 앞에 있던 놈들이 우르르 뒤로 밀려났다.
노래하고 춤추는 곳에 깡패들이 꽉 차 있었다.
강찬은 왼쪽 소파로 내려가 박치기에 기절한 놈의 오른손을 잡아 들었다.
매서운 눈으로 앞쪽에 있는 놈들을 노려본 채였다.
피윳!
어떤 놈이든 걸리면 이 생활이 끝난다는 걸 보여주는 거다.
찜찜함이든, 공포든 좋다.
이런 게 가슴에 남으면 우선 동작이 굳고 다음은 상대하기 싫어진다.
강찬이 소파에서 바닥으로 내려서자 뒤쪽에 있던 몇 놈이 문으로 밀려났다.
그저 독종 새끼인 줄 알았을 거다.
검은 양복 입고, 죽 늘어서 있으면 겁에 질려 잘못했다고 머리 숙일 그냥 독종 고등어.
너희는 사람 잘못 본 거다.
“비켜!”
갑자기 문 쪽이 소란스러워 지더니 야구방망이를 든 두 놈이 들어섰다.
길다고 다 유리한가?
그 말이 맞는다면 아프리카에서 그 기다란 칼에 벌써 죽었다!
“이 씨발 놈. 또 까불어 봐!”
부웅! 부우웅!
덩치가 있어서 방망이는 제법 위력적인 소리를 냈다.
“또 까불어 보라고! 이 씨발 놈아!”
와르르.
강찬이 밀린다고 느껴졌던 모양이다.
방망이를 든 놈을 따라 회칼을 든 세 놈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타악.
강찬은 방망이의 가장 안쪽을 오른발로 걷어찼다.
홱!
그러면서 왼쪽에서 들어온 회칼을 쭉 잡아당겼다.
붕대를 감았는데도 뜨끔한 것이 손을 베인 모양이다.
피윳! 푹!
당기자마자 손목을 긋고, 바로 팔뚝을 찍었다.
그리고 쭉 당겼다.
“끄아아!”
까아앙.
녀석의 머리에서 경쾌한 알루미늄 배트 소리가 났다.
그리고 홈런을 축하하는 것처럼 피가 쭉 뿜어졌다.
와장창!
강찬은 대가리가 터진 놈을 앞에 세우고 그대로 앞으로 달려갔다.
푹. 푹.
회칼 두 개가 방패로 세운 놈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찔렀다.
푹. 푹. 푹. 피윳! 피윳!
방망이를 든 놈의 팔뚝과 어깨를 찌르고 회칼을 든 두 놈의 목 근처를 사정없이 그어버렸다.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사정을 봐주면 이쪽이 죽는다.
피윳!
그때 강찬의 왼쪽 어깨가 뜨끔했다.
피윳! 푸욱!
강찬은 어깨를 찌른 놈의 손목을 그은 다음 그대로 놈의 팔뚝에 회칼을 꽂았다.
“끄아아아아!”
일단 후퇴다.
팔뚝을 찔려 끌려온 놈이 처절한 비명을 질러댔다.
왼쪽 쇄골 바로 아래에 칼이 제대로 박혔다.
반사적으로 어깨를 빼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씨발.
‘많긴 많네.’
강찬은 회칼을 비틀어 올렸다.
“끄아아아아악!”
놈이 몸을 비틀었을 때였다.
퍼억!
왼손으로 목젖을 때렸다.
“커억!”
놈이 강찬 앞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꺽꺽거렸다.
“칼 빼줄까?”
“크헉! 컥!”
이 새끼도 고개를 끄덕인다.
피식.
푹. 푹. 푹.
강찬은 칼을 뽑자마자 어깨와 등 근육을 찍었다.
퍼억!
그리고 무릎으로 얼굴을 걷어 올렸다.
땡강.
그는 들고 있던 칼을 버리고 왼편 어깨에 박혀 있는 회칼을 뽑아들었다.
고장 난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피가 간헐적으로 솟아났다.
슬쩍 왼 주먹을 쥐어보았다.
찌르르.
통증이 신경을 타고 전신을 울렸다.
뚝. 뚝.
왼손 붕대는 피에 담갔다 뺀 것처럼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몸이 문제다.
느린 데다 힘이 부족해서 동작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예전 몸이었다면 이따위 허접스러운 칼질에 당하지 않았을 거다.
처음 얻어맞은 왼쪽 볼도 욱신거렸다.
찌르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반걸음을 나설 때 어깨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때였다.
짧은 대치를 깨고 문밖이 부산스러웠다.
그리고 나타난 놈은 새파랗게 빛나는 일본도를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