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13화 (1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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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잘 알면서 그래?

아마 다섯 번쯤 될까?

집으로 돌아온 유혜숙이 강대경에게 오전의 상황을 설명한 횟수가 말이다.

놀라운 것은 강대경의 반응이었다.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들을 때마다 헤벌쭉한 얼굴로 함께 웃었다.

강찬은 방에서 컴퓨터에 몰두했다.

어떡해서든 아프리카에서의 교전 기록을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지금껏 얻어낸 것은 없었다.

웅웅웅.

전화기를 집어든 강찬은 풀썩 웃었다.

[집에 왔어?]

김미영이 보낸 문자다.

그는 역시나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응.”

[“어디야?”]

“집.”

[“잠깐 나오면 안 돼? 학원 끝나고 시간 있어.”]

“일요일도 학원 가니?”

[“내신 하잖아.”]

무슨 소린지 모르지만 그런가 보다 싶었다.

[“못 나와?”]

“어딘데?”

[“트론 스퀘어.”]

강찬은 모르는 곳이다.

잠시 망설였지만 이미 그곳에 가 있는 김미영을 실망 시키고 싶지 않았다.

“어디서 만나?”

[“3층에 은보문고.”]

전화기 너머에서 기쁨에 찬 답이 들려왔다.

강찬은 청바지와 면티를 꺼내 입은 다음 거실로 나갔다.

“응! 아들.”

“미영이 좀 만나고 들어올게요.”

“미영이? 같은 반 김미영?”

유혜숙은 걱정되는 얼굴이었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강찬은 그런 것을 꼬치꼬치 묻는 성격이 아니다.

그가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을 때였다.

“용돈은 있니?”

“어제 주신 거 그대로 있어요.”

“그래.”

강찬은 유혜숙을 향해 웃어주고는 현관을 나섰다.

***

“왜?”

강대경이 보기에도 유혜숙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걔 엄마가 또 나서서 뭐라고 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

강대경은 눈만 껌벅거렸다.

“그 엄마, 이 아파트에서 유명해. 지난번에는 걔랑 친한 여자 친구네 집에 가서 그 부모한테 그랬대. 자기 딸 공부 방해하지 않게 떨어져 달라고.”

“뭐?”

“아빠가 판사래.”

“그게 애가 친구 사귀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당신은! 엄마들은 그런 게 아냐. 그런 소리 들으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데. 만약 걔 아빠가 판사 아니었으면 걔는 정말 왕따 당해서 학교 못 다녔을 거야. 학교에도 찾아간대잖아. 수업 분위기 해치는 애들 같은 반에 없게 해달라고.”

“별!”

강대경은 기가 찬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겠지?”

“왜? 성희네 아들이 찬이 발가락만도 못하다고 하더니?”

“찾아오면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알았다고 하면 되지.”

“당신은!”

“오늘은 성희네 만난 거만 생각하자. 왜 좋은 날,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을 먼저 해?”

강대경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유혜숙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들도 나갔는데 우리 모처럼 오붓하게…….”

유혜숙이 어이없는 모양이었다.

“지난밤에 찬이가 나가는 바람에 제대로 못 했잖냐.”

“당신 요즘 나 몰래 무슨 약 먹어?”

“여기서 약까지 먹으면 큰일 난다. 그러지 말고. 응?”

유혜숙이 다가가서 소파에 앉은 강대경에게 올라앉았다.

“찬이 덕분이야.”

그리고는 강대경을 꼭 안아 주었다.

***

트론 스퀘어는 택시로 기본요금 거리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규모가 대단했는데 안으로 들어서자 축구장 넓이의 로비에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강찬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향했다.

은보문고의 입구는 괴물이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주둥이를 벌린 모양이었는데 이 사이에 낀 고춧가루처럼 김미영은 입구 한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찬아!”

김미영은 폴짝폴짝 뛰며 그를 반겼다.

귀엽다. 막내 여동생처럼.

“흐흐흐흐흐.”

웃는 건 아니다.

“책 사려고?”

“아니.”

강찬은 김미영을 물끄러미 보았다.

지금 알았다.

활짝 웃고 있는데도 김미영은 외로운 이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아이에게는 강찬이 유일한 숨구멍인지 모른다.

용병으로 오는 놈 중에 유독 이런 얼굴이 많았다.

외롭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 놈들은 거칠었다.

싸움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영화 보고 싶어. 나 돈 있어.”

김미영의 눈이 그랬다.

“그러자. 뭐 보고 싶은데?”

죽을 만큼 두들겨 팬 다음에 맥주 한 병을 건네면 대개 저런 표정을 짓는다.

김미영과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강찬은 다예루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싸움에서 하마터면 죽일 뻔했었다.

“나 오늘 생일이야.”

“응?”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그렇구나.

강찬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김미영이 서운한 얼굴로 강찬을 보았다.

혹시 선물이라도 해 달라는 건가?

지금껏 살면서 생일을 챙겨본 적 없었고, 챙겨달라는 놈을 본 적도 없었다.

일단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좌석이 없다.

일요일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멍청하게 생긴 남자 옆에서 예쁘장한 여자가 활짝 웃고 있는 포스터의 영화는 물론이고 최소 3시간 이내에 시작하는 모든 영화의 표가 다 팔린 것이다.

김미영은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리고 강찬은 방법이 없었다.

영화 한 편 못 보는 게 저렇게 실망할 일인가?

‘어쩌지?’

뭔가를 해주고 싶어도 알아야 해 줄 것이 아닌가.

강찬이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김미영이 바지에서 전화기를 꺼내 보고는 곧바로 겁먹은 얼굴이 되었다.

접었다 폈다 하는 오래된 전화기였다.

김미영은 강찬을 한번 보고는 전화를 받았다.

“응. 엄마.”

그녀의 시선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아냐. 학원 일찍 끝나서 가는 길에 책 사러 은보문고 잠깐 들른 거야.”

김미영은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엄마. 나 여기서 읽고 싶은 책 좀 읽다가 가면 안 돼요?”

전화기 너머의 답이 어떤 것인지를 강찬도 알 것 같았다. 김미영의 표정에 고스란히 올라 있었다.

“엄마. 오늘 내 생일이잖아.”

저런 반항은 의미가 없다.

공연히 상대가 더 강하게 나올 명분만 준다.

“알았어요.”

그리고 강찬의 예상과 다르지 않게 통화가 끝났다.

억울하고, 뭔가 폭발할 것 같고, 실망스럽고,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복잡한 심경이 김미영의 시선 속에 뒤엉켜 있었다.

강찬은 고갯짓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우선 혼란스러운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폴짝폴짝 뛰던 아이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걷는다.

“백설공주.”

“학원에서 전화했나 봐. 오늘 학원 시험 일찍 끝내려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학원에서 시험도 보냐?

“틀린 거 있으면 그거 풀 때까지 있어야 하거든. 그래서 한 번에 통과하려고 정말 애썼는데. 엄마가 학원에 문자 보내라고 시켰었나 봐.”

‘너도 참 힘들게 사는구나.’

위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강찬은 피식 웃고 말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자상한 사람이 되셨나?

석강호가 배배 꼬아대는 말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강찬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김미영의 손을 잡았다.

놀란 눈이 그를 보았을 때였다.

“생일이 중요하긴 한데 난 네가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전교 1등 했으면 좋겠다.”

닭살이 등을 타고 허리 아래로 달려갔으나 강찬은 몸의 반응을 완벽하게 무시했다.

“약속만 아니면 오늘 뽀뽀했을 텐데. 아깝다.”

“정말?”

“그래.”

김미영의 붉어진 얼굴을 보지 말 걸 그랬다.

고작 말 한마디에 저렇게 행복해하는 눈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강찬은 그녀의 손을 당겼다.

“어?”

얼떨결에 그의 품에 안긴 김미영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관계조차 아무렇지 않게 말하더니 막상 포옹 한 번에 바짝 긴장한 것이다.

“기운 내. 그리고 시험 잘 봐.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만, 내년 생일은 근사하게 챙겨 줄게. 알았지?”

백설공주가 머리를 파묻으며 그를 꼭 안았다.

그러면서도 허리 아래는 떨어져 있었다.

강찬은 김미영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유혜숙이 그를 안아주었을 때처럼 말이다.

“생일 축하해.”

지나치던 사람들과 버스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몹시 고약했다.

뭉클.

더 이상은 위험하다.

막냇동생이라 여기는 것과 가슴으로 전해지는 감촉은 전혀 별개였다.

“가자.”

강찬이 김미영에게 물러나 걸음을 옮겼다.

김미영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었다.

“행복해.”

피식.

오전엔 유혜숙이 그러더니 오후엔 김미영이 행복해한다.

살면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했던 적이 있던가?

처절한 전투에서 악착같이 대원들을 구해냈을 때 고맙다는 말을 들었던 적은 있지만, 행복하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강찬은 그렇게 손을 잡고 아파트까지 걸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김미영의 모친은 나와 있지 않았다.

“들어가. 공부 열심히 하고.”

“응!”

강찬은 김미영이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론 걱정도 됐다.

맹목적으로 집중하는 눈빛 때문이었다.

“얼른 들어가.”

“응!”

김미영은 껑충대며 아파트 안쪽을 향해 달렸다.

‘잘못한 건가?’

이러다가 덜컥 프랑스로 사라졌을 때 저 단순한 아이가 괜찮을까.

유혜숙도 그렇고, 프랑스에 갈 적당한 핑계를 생각해 둘 필요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남은 시간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다음날 깡패를 만날 것보다 수업을 좀 더 걱정하면서 강찬은 그렇게 일요일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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