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오브블랙필드-9화 (9/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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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너하고만 할게.

교문에 들어서자 석강호가 훈육봉을 들고 서 있었다.

굳이 아는 척해서 서로 곤란할 일이 무에 있겠나.

강찬은 그대로 교실로 향했다.

그는 계단과 복도에서 엄청난 시선을 받았고, ‘소리를 먹는 자’라고 외친 것처럼 지나가는 곳마다 침묵을 만들어냈다.

교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잘거리던 아이들이 놀란 개구리처럼 입을 다물고 제 자리를 찾아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석강호가 가져다 놓았는지 책상 의자에 그의 가방이 올려져 있었다.

강찬이 가방을 치우고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앞문으로 머저리들이 우르르 들어와 그의 앞에 세 줄로 섰다.

“나오셨습니까?”

한 번에 하는 인사도 아니다.

앞줄부터 순서대로 고개를 숙이며 영락없이 깡패 흉내를 내고 있었다.

첫날은 몰라서 그랬지만 더는 이런 꼴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너희는 뭐야?”

“2학년, 1학년들입니다.”

“누가 시켰어?”

“아닙니다.”

줄의 가장 왼편에 선 사내아이가 꿋꿋하게 대답했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라.”

“그게…….”

강찬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녀석이 움찔했고, 책상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급하게 고개를 처박았다.

“가. 그리고 앞으로 이런 짓 하지 마.”

이렇게 떼로 몰려다니며 힘을 과시하는 일은 역겹다.

강찬은 금방이라도 손이 올라갈 것 같아서 애써 마음을 다잡았는데 그만큼 눈빛이 살벌해졌다.

강찬의 눈을 상대하기에 고 2는 터무니없이 어린 나이다. 녀석들은 묘한 인사를 다시 하고는 교실을 빠져나갔다.

조회에 들어온 담임은 어제보다 좀 더 긴장한 얼굴로 간단하게 말을 마치고 사라졌다.

그리고 수업.

선생들은 주로 강찬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왼손을 보며 들어왔다가 종이 울리기 무섭게 튀어 나갔다.

인고의 시간이었다.

‘이건 서로 못할 짓이네.’

수도승처럼 경건하게 화장실을 다녀야 하는 학생들이나 포로로 잡혀 고문당하는 것처럼 앉아있는 강찬이나 정말이지 못할 짓이었다.

마침내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배가 고팠지만, 식당에서 받아야 하는 시선과 뻑뻑한 분위기가 싫어 강찬은 잠시 고민했다.

“강찬.”

그런데 그때 그를 구원해주는 음성이 들렸다.

석강호가 그를 찾아온 것이다.

“나와라.”

“예.”

강찬은 기쁜 마음으로 교실을 나섰다.

모세의 기적처럼 열리는 복도와 계단을 지나 건물을 빠져나오고서야 석강호는 입을 열었다.

“나 잘하지 않았소?”

“이번 건 정말 고맙다.”

“푸흐흐. 뻑뻑할 것 같아서 갔더니 다행이지 뭐요. 점심은 뭐가 좋으쇼?”

“돈가스.”

석강호는 시선만 한번 주었을 뿐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점심시간이라 근처의 직장인들로 분식점은 제법 손님이 많았다. 두 사람은 적당한 곳에 자리한 다음 돈가스 두 개를 시켰다.

돈가스가 나왔다.

강찬이 버릇대로 다 썰어놓고 젓가락으로 먹는 것을 보자 석강호도 그대로 따라 했다.

“이런 방법이 있네. 젓가락, 이거 정말 대단한 거야.”

다른 사람들이 많아서 석강호의 혼잣말을 제외하고 두 사람은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채로 식사가 끝났다.

물론 계산은 석강호가 했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다시 학교로 들어가 많은 시선을 받으며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덜컹.

옥상에는 아이들이 제법 있었는데 석강호를 보고 움찔했다가 강찬이 뒤에 있는 것을 알고는 잽싸게 옥상을 빠져나갔다.

두 사람은 옥상 출입문에 기대고 앉아 석강호가 가져온 담배를 하나씩 피워물었다.

“여긴 좀 잠가두면 안 되냐?”

“학생이 떨어지기까지 했는데 왜 안 잠그겠소? 그런데 아무리 잠가도 귀신처럼 열고 나옵디다.”

석강호가 길게 연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여길 잠그면 그날부터 학교 변기가 다 막혀서 적당히 봐주기도 하나 봅디다.”

그럴 수도 있겠다.

“부탁이 하나 있소.”

“뭔데?”

다 피운 담배를 바닥에 문지른 석강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학교에 왕따 당하는 애들이 넷 있는데 상태가 심각해요. 걔들 좀 챙겨주쇼.”

강찬이 손을 내밀자 석강호가 담배 한 개비를 더 건네주었다.

“후우. 그랬다가 한 달 반 뒤에 내가 없어지면 걔들은 정말 살기 어려워진다. 적당히 하자.”

“수업을 빼 드릴게.”

천하의 강찬도 속을 읽힐 만큼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체육 특기생으로 올릴 생각이오. 실기로 대학 간다고 하면 선생들도 오히려 반길 테니 서로 좋지 않겠소?”

이 자식이 왜 이렇게까지 하지?

“운동도 좀 해야겠습디다. 시시껄렁한 칼에 손을 베일 정도라면 어차피 아프리카에선 살아남지도 못하잖수.”

강찬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석강호가 입맛을 다셨다.

“외톨이로 살다가 처음 의지한 사람이 대장이요. 대장의 목에서 피가 쏟아지는 걸 보면서 씨팔, 세상이 날 버렸구나 싶었수. 그런데 다시 태어난 거요. 대장이 병원에 있는 동안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듭디다.”

“뭐? 왕따를 구하는 거?”

“내가 다시 살아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지? 작은 것에 만족하는 마누라와 아직은

정이 안 가는 딸년 하나랑 고작 월급 받고 그냥저냥 살라고 이런 황당한 기회를 준 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 말이오.”

강찬이 피식 웃고 말았다.

“너는 몸뚱이 주인의 생각이 어느 정도 남았나 보다?”

“그런 거 같수. 학교에 나와서 할 일이 짜르르 생각나는 거 보면 말이오.”

“난 아냐. 전혀 기억이 없어.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수업을 받는데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강찬은 담배에 남은 불씨를 검지로 툭 쳐서 날려버렸다.

“혹시 왕따 당하던 학생이 너무 간절하게 복수를 원해서 그런 거 아니겠소?”

“너 드라마 너무 보지 마라.”

석강호가 히죽거리며 웃었다. 이럴 때는 영락없이 다예루다.

“나나 너는 이렇게 다시 살았다 치자. 그날 그 자리에서 우리 말고 다른 구대까지 엄청난 인원이 죽었다. 어차피 죽고 죽이는 싸움이었지만 누군가 함정에 밀어 넣은 거라면 얘기가 달라. 난 그걸 꼭 확인해야겠어.”

강찬은 하얀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익숙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갑시다. 수업 시작하겠소.”

“쯧!”

“왜 그러쇼?”

“왕따가 몇 명이라고 했냐?”

“넷이오.”

강찬이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는 앞에서 석강호는 만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다음 주부터 수업을 빼겠다는 석강호의 약속을 뒤로하고 강찬은 교실로 향했다.

아직 점심시간이 끝나지 않아서 군데군데 빈자리가 있었다.

교실로 들어선 강찬은 의아한 시선으로 이호준을 보았다. 제대로 얻어맞은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엔 자리에 없었다.

강찬을 본 녀석이 움찔하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에라, 이 한심한 자식아.’

강찬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뭐 먹었어?”

“돈가스.”

백설공주가 서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아이라 강찬의 거친 모습에 잠시 빠져들 수 있으리라. 강찬은 적당한 기회에 김미영을 떼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문과 같은 오후 수업이 모두 끝났다.

종례도 끝났다.

강찬은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가 교실 문을 나설 때였다.

“같이 가.”

김미영이 그를 불렀다.

다른 아이들이 다 지켜보는 앞이다. 여기서 매몰차게 대하면 김미영은 두 번 다시 다가서지 못할 거다.

그런데 강찬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시선 때문이었다.

김미영이 편하게 대하는 만큼 거리가 좁아 드는 느낌.

물론 그게 엄청나게 중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저런 아이들 앞에 군림하고 싶지는 않다.

“빨리 나와.”

그가 받아주자 김미영이 밝은 얼굴을 했고, 교실의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어차피 다음 주부터 교실에 있을 것도 아니다.

이쯤 해두면 좋으리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뒷문을 나선 강찬은 단박에 기분을 잡치고 말았다.

은실이와 병풍 셋이었다.

강찬은 눈빛을 가라앉히고 은실이를 보았다.

얼굴과 목, 팔, 그리고 치마 아래로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잠깐만 시간을 내줘.”

무서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시선이 시종일관 강찬의 오른손에 있는 것만 봐도 확실한 일이다. 그런데 무엇이 공포를 이기게 하는 걸까?

강찬은 우선 백설공주를 보았다.

“교실에서 기다릴까?”

“학원 안 가도 돼?”

“응.”

눈치도 속도 없는 아이다.

‘혹시 저 애가 정말 날 좋아하나?’

불안함과 약간의 질투가 뒤섞인 얼굴로 김미영이 교실로 들어간 다음이었다.

“옥상으로 가.”

강찬이 피식 웃는 순간이었다.

“아니야. 정말 그런 거 아니야.”

“뭐든 상관없지만, 허튼소리라면 여기까지만 해라.”

은실이가 강력하게 고개를 젓는 것을 본 강찬은 그녀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병풍 셋은 충실한 개처럼 계단 앞에 멈춰 섰다.

옥상은 여전히 붐볐다.

여기저기서 담배를 피우던 학생들이 급하게 빠져나갔다.

“허은실이야.”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난간에 서서 허은실이 가장 먼저 밝힌 것은 제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왜 명찰을 안 달고 다니지?

“화내지 말고 들어. 정말 화나게 하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

“알았으니까 본론만 말해.”

허은실이 커다랗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에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어제 오빠들이……, 너 데려오래.”

허은실이 재빠르게 그의 오른손을 보았다.

“안 그러면 호준이랑 나, 가만두지 않겠다고…….”

허은실의 짙은 화장 위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 팔아 버린대. 그 오빠들은 그러고도 남아.”

제대로 겁먹은, 공포를 느낀 사람의 얼굴이었다.

“경찰에 신고해.”

허은실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호준이나 너나 다른 애들을 괴롭힐 땐 깡패 새끼들 믿고 설쳤던 거 아냐? 그때 당하는 애들 심정 생각해 봤어?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애들 심정 생각 봤냐고? 까는 소리 하지 말고 몸뚱이를 팔든, 존나게 맞든 너희가 알아서 해.”

허은실은 절박한 얼굴이었다.

완벽하게 포위되었을 때 부하들은 종종 이런 얼굴을 한다. 그가 무언가를 해주고 답을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긴 얼굴.

“오늘 널 못 데려가면……. 나 오빠들 삼십 명을 상대해야 해.”

강찬이 피식 웃어 버렸다.

한 마디로 뭐 까는 소리다.

수니파에 잘못 걸린 여자아이들은 오십 명쯤 상대하고 코와 귀를 잘린 다음 마지막에 나무에 걸린다. 남자들에게 성욕을 불러일으켰다는 엄청난 죄명을 달고 말이다.

“살려줘. 제발. 그럼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

허은실은 두 손을 빌고 있었다.

“언제든 하고 싶을 때 하고, 네가 하라는 애하고도 할게. 제발 팔려가지만 않게 해 줘. 섬에 가면 나 죽어야 해. 제바알.”

폭력에 대해 공포를 느끼게 되면 이런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 순간을 모면하고 싶다는 욕구가 터져 나오는 거다. 그 뒤에 더 끔찍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모른 채로 말이다.

허은실은 강찬의 서늘한 눈빛을 보더니 난간 벽을 타고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이대로라면 옥상에서 뛰어내릴 확률이 70%쯤 된다.

거짓말처럼 신병 중에서도 자살하는 놈이 나온다.

전투는 지면 죽고 이기면 산다.

그런데도 악을 쓰고 달려드는 다예루 같은 놈이 있는 반면에 적들이 섬뜩한 칼로 수도 없이 아군을 찔러 죽이는 것을 본 신병은 고통을 줄이고 싶다는 욕구에 제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그래서 검은 땅의 전투는 잔인했다.

아군이고 적이고 백병전이 벌어지면 최대한 잔인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쪼그려 앉은 허은실의 허벅지 사이로 분홍색 속옷이 보이자 강찬은 시선을 멀리 운동장에 두었다.

몸뚱이의 주인이, 혹은 이렇게 새로운 삶을 준 누군가가 정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다예루 말대로 왕따를 없애 달라고?

고작 그걸 위해서 아프리카에서 죽어 나자빠진 놈을 이 먼 곳에 보낸 걸까?

강찬은 갑자기 담배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너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어?”

번쩍 들린 허은실의 눈빛이 강찬을 놓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벌떡.

“지금 할래?”

그런데 허은실은 정답을 잘 못 알았다. 대뜸 치마를 걷어 올려서 분홍색 팬티를 드러낸 것이다.

“확! 헛짓거리하지 말고 가서 담배나 구해 와.”

허은실이 치마를 들어 올린 채로 멍하니 강찬을 보았다.

“담배 못 구해?”

“구해! 애들한테 있어! 얼른 가져올게.”

치마나 내리고 뛰어가지.

“에휴. 더럽게 걸렸네.”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 강찬은 느닷없이 유혜숙의 얼굴이 떠올랐다. 거실에서 울며 하던 말과 자신을 보며 조심하려 애쓰는 얼굴이 말이다. 그리고 그 뒤에 가난과 불행을 덕지덕지 단 또 하나의 얼굴이 그려졌다.

덜컹.

철퍼덕.

치마폭이 좁아서 그런지 급하게 올라오던 허은실이 옥상 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가지가지 한다.

“오빠, 여기.”

무릎과 손바닥이 까져서 피가 배어 나오는데도 허은실은 기쁜 얼굴로 담배를 꺼내 주고 라이터를 켜고 있었다.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 숙련된 솜씨였다.

찰칵.

“후우우.”

뭔 놈의 학교가 아프리카만큼이나 살아가기가 빡빡한 건지.

허은실은 그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너 담배 피우지?”

허은실은 고개를 까닥거렸다.

“나 하나 더 주고 피우고 싶으면 피워.”

“정말? 고마워, 오빠.”

허은실은 능숙하게 담배를 물고는 얄상하게 연기를 뿜어냈다.

“어디로 가면 되냐?”

“응? 후후.”

재빨리 연기를 뱉어낸 허은실이다.

“오빠가 나오겠다고 하면 장소를 알려 줄 거야.”

“오빠 소리하지 마라.”

아닌 게 아니라 소름이 끼쳤다.

“그럼 뭐라고 불러?”

“그냥 이름 불러. 징그럽게 오빠 오빠 하지 말고.”

허은실이 머뭇거렸지만 그야 상관할 바가 아니고.

“주말까지 바쁜데 월요일에 만나도 되냐?”

허은실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하기야 그 새끼들이 어디 말을 들어 먹겠나.

“오빠가……. 아니 찬이가…, 전화해주면 될지도 몰라.”

번거롭기도 하다.

강찬이 고갯짓을 하자 허은실이 또 급하게 뛰어갔다.

이번에는 용케 넘어지지 않고 돌아왔는데 손에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번호를 누른 허은실이 잠시 후에 떨리는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했다.

“여보세요? 오빠? 전데요, 강찬이가 오늘 바쁘다고…….”

전화기 밖으로 거친 욕이 터져 나왔다.

강찬은 대뜸 전화기를 뺏어서 귀에 댔다.

[“이 씨발년이 뒈질라고…….”]

“나 강찬이다.”

갑자기 수화기 너머에 침묵이 흘렀다.

“내가 바빠. 그러니까 월요일 날 만나기로 하고 어디로 가면 좋은지나 말해.”

[“월요일 약속은 틀림없겠지? 안 그러면 애들이 많이 다쳐.”]

전화기 저쪽에선 생각 밖으로 점잖게 나왔다. 깡패들 특유의 어눌하고 깔린 음성이었지만 말이다.

“쯧. 시시껄렁한 소리 말고 어디로 가면 되는지나 말해.”

[“그럼 월요일 전에 은실이 년한테 전해 놓을 테니까 장소는 그년한테 들어.”]

강찬이 힐끔 보자 허은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에라, 이 불쌍한 년아.

“그렇게 하기로 하고, 부탁 하나 하자.”

당황했는지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오늘부터 은실이 내가 데리고 있을 거다. 그러니까 약속 장소는 문자로 전하고 얘한테 전화하지 마. 기분 잡치니까.”

폐로 웃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알았다. 은실이 년 좀 바꿔.”]

강찬은 수화기를 건네주었다.

“네, 오빠. 예. 예. 제가 알아서 잘할게요. 예, 오빠. 아니에요. 정말 강찬 맞아요. 예. 들어가세요, 오빠.”

아주 지랄을 한다.

전화기를 끈 허은실은 편안한 얼굴이었다.

“고마워.”

그리고는 긴장이 풀렸는지 휘청거렸다.

물론 강찬이 잡아주지는 않았다.

“전화번호 알려줘.”

허은실은 아예 번호를 찍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내 번호 찍어 놓을게. 혹시 시킬 일이 있거나 생각나면 전화해.”

오입쟁이 스미든이 살아 있다면 천생연분일 텐데.

“까불지 말고, 월요일에 학교 올 때는 그 모자라게 생긴 년들하고 너, 화장 지우고 와.”

김미영의 속옷을 벗기면 아마 저런 표정이 나오지 싶을 만큼 허은실의 표정은 복잡했다.

강찬은 그 말을 끝으로 옥상을 내려왔다.

이것들은 트랜스젠더 아냐?

병풍 셋이 있다가 움찔해서 물러났다.

도대체 저런 짓을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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