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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대로 맞아본 적 없지?
강찬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각나 고개를 돌렸다.
“내가 죽은 거냐?”
“멋지게 목을 관통당했소. 피 하나는 통쾌하게 뿜어냅디다.”
“염병! 너는?”
석강호가 쓴웃음을 터트렸다.
“마빡에 한 방 제대로 맞은 거 같은데 잘 모르겠소. 그냥 이마가 뜨끈한 느낌이 들더니 확 깨니까 마누라가 악몽을 꾸었냐고 다독여줍디다.”
“좋았겠다?”
“살아난 기념으로다가 시원하게 한 판 해줬지요.”
강찬이 피식 웃고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차는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연립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내가 대장 바로 다음이었소.”
연립의 가장 안쪽에 들어선 석강호가 가장 안쪽의 연립 앞에 차를 세웠다.
“여기야?”
“선생 월급으로 더는 무립디다. 여기가 강남이라 이것도 제법 비싼 거요.”
그것까지야 상관할 바가 아니다. 강찬은 입맛을 다시며 차에서 내렸다.
석강호의 집은 3층이었다.
낡은 복도와 높이가 조금씩 다른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 오른쪽 집, 302호였다.
“마누라가 집에 없나?”
철컥철컥.
잠겼다.
석강호는 자동차 열쇠고리의 열쇠 중 하나를 손잡이에 꽂아 돌렸다.
한낮인데도 집은 어두컴컴했다.
입구에서 오른쪽에 방, 오른쪽 벽에 주방, 그리고 소파와 TV가 있는 거실 안쪽에 방, 방, 방.
석강호는 앉으라는 말도 않고 덜컥 가장 안쪽 방을 열고 들어갔다가 곧바로 허름한 운동복 바지와 면티를 들고 나왔다.
“여기가 화장실이요. 대충 피라도 닦고 옷 갈아입고 나오쇼.”
강찬은 교복을 훌렁훌렁 벗어서 던지고 팬티 차림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도, 욕조도, 변기도 누렇게 색이 바랬다.
세면대에 달린 수도꼭지를 돌린 강찬은 우선 손을 닦고 다음으로 허리에 묻은 피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다행히 깊은 상처가 아니라 벌어진 곳은 벌어져 있었고 피가 굳은 곳은 적당히 아물어 있었다.
“여기는 그냥 넘어가도 되겠고.”
이어서 강찬은 피범벅인 오른손을 물에 흔든 다음 손수건을 풀고 왼손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쯧!”
불현듯 짜증이 확 올라왔다. 학교 앞에서 칼을 휘두르는 놈이 있다니.
“개새끼!”
죽여버릴 걸 괜히 살려뒀나?
“왜 그러쇼?”
그가 욕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석강호가 큰 소리로 물었다.
“너 말고!”
끼이익.
“뭐라고요?”
문고리에 의지한 석강호의 머리가 불쑥 들어왔다.
“손을 보니까 성질이 뻗쳐서 그런 거라고.”
“난 또 세면대하고도 싸우는 줄 알았소.”
강찬은 순간 인상을 버럭 썼다.
원해서 싸운 것도 아니고, 깡패를 부른 것도 아니다.
죽기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내가 싸움만 하는 사람이란 뜻인가?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석강호가 긴장한 눈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다예.”
“예.”
“말 좀 가려서 해.”
“알았습니다.”
말이 끝났음에도 강찬의 눈빛이 풀리지 않자 석강호가 시선을 내렸다.
“문 닫아.”
끼이이이익.
조심스럽게 닫는다고 천천히 움직인 만큼 문소리가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
“후우우.”
강찬은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았다.
술만 처먹으면 때리는 아버지와 맨날 얻어맞으면서 살아가는 어머니를 둔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났어?”
강찬은 거울을 향해 이를 깨물었다.
이제 눈빛이고, 인상은 완벽하게 과거의 강찬 것이다.
다시 태어나서도 마찬가지다.
옥상에서 뛰어내렸던 놈이다.
그런 놈의 몸에 태어나게 해놓고 더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냥 빵 사다 주고 돈 가져다주고 담배 심부름하다가 죽이든가 죽으라고?
“씨발!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거울 속에서 눈을 번들거리며 입술을 앙다문 강찬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후우우!”
모른다.
늘 배고팠다.
돈까스 하나가 그렇게 먹고 싶었지만 죽어도 사달라고 하거나 얻어먹고 싶지 않았다.
맹세하건대 남의 것을 빼앗아 본 적도 없다.
대신 무시하는 놈을 가만둬 본 적도 없었다.
엿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아버지한테 무시당하며 산 걸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쯧.”
이 사이로 바람을 세게 빨아들이며 강찬은 마음을 털었다. 못마땅한 일이 있으면 나오는 버릇이었는데 이렇게 하면 기분이 좀 풀리곤 했다.
밖으로 나오자 석강호는 커피를 타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주섬주섬 옷을 입은 강찬은 의자 네 개가 놓인 식탁에 앉아 더럽게 촌스럽게 생긴 머그컵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달다.
봉지 커피는 정말 달다.
“피는 안 나쇼?”
“눈알 굴리지 말고 앉아. 커피나 먹고 가자. 참! 교복 좀 물에 담가놔라.”
“알았소.”
“찬물에 담가.”
“아, 거! 나도 피 많이 흘려봤어요.”
더운물에 담그면 피가 굳어서 빠지질 않는다. 한 마디로 옷 버리는 거다.
강찬은 하얗게 굳은 왼손을 들여다보았다.
“집에 바늘하고 실 있냐?”
“거 무식하게 그러지 말고 병원 갑시다."
“없어?”
“병원 가자니까요! 크흡!”
석강호는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더니 속이 뜨거웠든지 악어 흉내를 내며 버둥댔다.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쩌면 저런 건 아프리카 때와 똑같을까?
강찬은 반쯤 마신 커피를 남겨두고 석강호의 연립을 나왔다.
***
집이 죽여준다고 감탄하던 석강호가 가고 나자 강찬은 아파트 한쪽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왼손엔 거북할 정도로 붕대를 칭칭 감았고 보이지는 않지만, 허리 상처에는 기다란 거즈가 붙어 있었다.
일반 환자로 계산한 석강호는 내일 강찬의 의료보험증 번호를 가져오면 환불을 해달라고 영수증을 챙기는 꼼꼼함과 알뜰함을 보였다.
다예루는 일면 행복해 보였다.
똑같이 외롭게 자란 놈이어서 더 애착이 가던 놈이었는데.
마누라가 좋아서 그런가?
강찬이 허벅지에 팔을 걸치고 왼손의 붕대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찬이니?”
고개를 돌려보니 김미영이 가방을 메고 서 있었다.
“어머! 어떡해!”
“뭐를?”
"손! 손 말이야. 어떡해? 많이 다쳤대? 수술은? 수술은 안 해도 된대?“
숨도 안 쉬고 말을 쏟아낸 김미영이 눈치를 살피며 붕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귀찮았다.
“들어가라.”
어린애랑 얘기할 기분이…….
상체를 수그린 김미영의 젖가슴 위쪽이 그대로 강찬의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브래지어까지 앞으로 쏟아져 훤하게 시야를 확보해 주었다.
강찬은 허리를 세우고 짜증스러운 얼굴을 했다.
애가 아닌 것은 인정이다. 적어도 가슴은.
“과외하기 전에 잠깐 시간 있어.”
김미영이 그와 약간 떨어져 엉덩이만 걸쳤다.
학원을 갔다 왔다더니 과외도 하나 보다.
얘도 어지간히 돌대가린가?
“미안해. 사진 안 찍은 거 알았지만 말 못했어. 그렇지만 내가 그런 말을 할수록 애들이 내 가슴에 집중하는 걸 어떡해! 그게 너무 싫었어. 미안해.”
강찬은 시선이 내려갈 뻔한 것을 억지로 잡으며 고개를 돌렸다.
“누군지 나도 몰라. 체육복 갈아입을 때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네가 옥상에서 떨어지고, 병원 가고. 한동안 아무것도 못 했어.”
“됐다.”
김미영은 허벅지 사이에 두 손을 끼워 넣은 자세로 꼼짝도 않고 있었다.
“은실이 맞는 거 보면서 사실 너무 무서웠거든.”
고개를 숙인 채로 하는 말이다.
제발 상체 좀 수그리지 않았으면 싶었다.
“만약 그렇게 해서 화가 풀릴 것 같으면 나도 때려.”
김미영이 강찬을 향해 홱 몸을 틀었다.
허벅지에 손을 끼우고 고개를 숙인 채로 눈까지 감고서 말이다.
이를 꼭 깨물고 눈이 파르르 떨리는데.
시선이 자꾸만…….
“쯧. 화 풀었으니까 그만하고 가.”
“정말?”
“그렇다니까.”
“그럼 내일부터 학교 같이 갈래?”
전에도 그랬었나?
“알았다.”
“그래, 그럼. 내일 여기서 봐.”
강찬이 고개를 끄덕여주자 김미영이 재빠르게 일어나 달려갔다. 머리 모양만 덜 촌스러워도 훨씬 보기 좋았을 거다.
강찬은 잠시 더 앉아 있었으나 이미 끊겨버린 생각을 다시 잇기가 싫어서 몸을 일으켰다.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서자 유혜숙이 반갑게 나왔다가는 화들짝 놀랐다.
허름한 운동복 바지에 면티에 손에 감은 붕대까지.
“운동하다가 다쳤어요. 학교 선생님 댁에 가서 옷 갈아입고 병원 들렀다 오는 거예요.”
“어디를? 얼마나? 괜찮대? 문제는 없대?”
진심이리라.
그런데 극성스럽고 짜증 나는 모습이었다.
강찬이 인상을 찌푸리자 유혜숙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괜찮대요.”
유혜숙도 피해자다.
멀쩡한 아들을 빼앗기고 엄한 놈에게 잘해주어야 하는 피해자.
강찬은 조금이나마 몸뚱이의 주인에게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짜증을 눌렀다.
“저녁은?”
유혜숙은 서운했는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안 먹었어요.”
“그럼 잠깐 쉬고 있어. 밥 다되면 부를게.”
“예.”
방에 들어온 강찬은 그대로 침대에 털썩 누웠다.
***
퍼뜩 잠이 깼을 때는 이미 방안에 어둠이 가득했다.
손바닥을 꿰맬 때 맞았던 주사의 효과인지 생각보다 깊게 잤는데 기분이 한결 나았다.
“그래서 얘기도 못 했겠네?”
밖에서 강대경의 음성이 들렸다.
“찬이는 내가 미운 가 봐.”
“무슨 소릴 그렇게 해? 사고당하고 신경이 좀 날카로워져서 그럴 거야.”
“아니야. 날 보는 눈이 전과 너무 달라. 이렇게 된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봐.”
유혜숙은 울고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내가 이따가 혼 내 줄게.”
“아니야. 그러지 마.”
유혜숙이 코를 들이마시는 소리가 커다랗게 들렸다.
“당신 말대로 살아 돌아온 걸로 만족할래. 나한테 눈을 부라려도……, 날 원망해도, 난 그걸로 만족해. 흑흑.”
조금 진정이 됐는지 유혜숙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여보. 만약 찬이가 그때 깨어나지 못했다면 난 정말 못 살았을 거야. 그래서 당신 말대로 욕심을 버리려고 해. 성희 아들이 아무리 잘나도 찬이 발가락만큼도 못해.”
강대경이 “아무리 그래도 발가락보다는 낫다.” 하며 유혜숙을 다독였다.
“내가 내일 찬이에게 말해 볼게.”
“하지 말라니깐. 여기서 더 날 미워하면 그게 더 힘들 것 같아서 그래.”
“알았다. 알았어.”
배가 고팠지만,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강찬은 침대에 누운 채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과거의 부모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느닷없이 엿 같은 아들을 얻게 되었는데도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저 두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저 사람들은 원해서 아이를 낳았겠지만 이런 아들을 원한 것은 아니었겠지?
“넌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몸뚱이의 주인에게 묻는 말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거냐고?”
천장은 답이 없었다.
강찬은 새삼 새롭게 받은 인생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
아침이었다.
주사 때문인지 강찬은 잠을 그리 설치지 않았다.
워낙에 전장에서 자던 버릇이 있어서 솔직히 불면증에 시달린 적도 없었다.
일찍 일어나는 버릇도 여전했다.
똑똑똑.
“찬아. 일어났니?”
“예.”
강찬이 문을 열고 나가자 유혜숙이 그의 눈치를 살폈다. 죄지은 사람처럼 말이다.
“밥 먹자.”
유혜숙은 ‘나는 조심할 거야.’ 하는 메시지를 온몸에 붙인 채로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어! 그래. 잘 잤냐?”
“예. 푹 잤어요.”
“손은? 엄마한테 들었는데 많이 다친 건 아니고?”
강대경은 걱정하는 눈빛을 감추려 애쓰고 있었다.
“운동하다 다쳤어요. 한 달 정도 걸린다던데요.”
“큰일 날 뻔했구나. 얼른 먹자.”
“예.”
세 사람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옷이랑 주셨다면서?”
“예.”
“인사를 해야지 않을까?”
“놔두세요. 괜찮을 거예요.”
혼내준다던 강대경도 강찬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으려 애쓰는 모양새였다.
그럭저럭 아침 식사가 끝났다.
“가자. 태워다 주마.”
“미영이란 애랑 같이 가기로 했어요.”
순간 유혜숙이 시선을 들었다가 애써 태연한 척했다.
“주말에는 계획 없지?”
무슨 소린가 했든 강찬은 오늘이 금요일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일요일 아침에 엄마가…….”
“이이는! 하지 말랬잖아!”
강찬에게와 달리 유혜숙이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강대경은 입맛을 다시며 양복 상의를 집어 들었다.
“다녀오세요.”
고개를 끄덕인 강대경이 나가자 강찬은 방에 들어가 여벌로 있던 교복을 꺼내 입었다.
가방을 놓고 온 것이 생각났다.
‘석강호가 알아서 가져다주겠지.’
“갔다 올게요.”
“그래. 조심하고.”
살갑게 대하려고 했다.
그런데 회칼을 든 열 명과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어서 강찬은 좀 더 연습한 후에 시도해 보기로 했다.
아파트 1층 현관을 나가자 김미영이 멀쩡한 바닥을 툭툭 차고 있다가 활짝 웃었다.
‘속없는 년.’
저년은 가슴이 텅 비었을 거다.
강찬이 고갯짓을 하자 김미영이 달려왔다.
“손은 어때?”
강찬은 왼손을 들어서 보고는 그냥 말없이 걸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자 바로 앞이 정류장이었다.
시간이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이 제법 많았다.
그런데 강찬이 도착하는 순간에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시선을 피하는 놈이, 아니 마주치는 놈이 없었다.
강찬이 입맛을 다시는 순간 버스 한 대가 다가오고 학생들이 우르르 움직였다.
끼익. 치이이이.
문이 열리자 학생들이 버스에 올랐다.
같은 학교 학생들이 타고, 김미영이 타면 당연 학교에 가는 버스가 아니겠는가.
강찬은 당당하게 버스에 탔으나 아차 싶었다.
돈이 없는 것이다.
“학생은 카드 안 찍어?”
카드? 뭔 카드?
강찬이 멍하니 기사와 눈싸움을 벌이는 순간에 김미영이 얼른 달려왔다.
“왜?”
그녀는 강찬의 표정을 보고는 “아저씨, 제가 한 번 더 찍을게요.” 하고서 손에 들었던 작은 지갑을 앞에 댔다.
삐익.
세상 참. 혼자 탔으면 큰 망신을 당할 뻔했다.
강찬은 김미영을 따라 뒤편으로 움직였다.
학생들이 참 많이 탔는데 이상하게 통로는 뻥 뚫려 있었다.
강찬이 뒤편 중간에 섰을 때였다.
제일 뒷좌석을 차지하고 있던 불쾌하게 생긴 녀석들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여기 앉으십시오.”
뭐라는 거야?
학생들이 안 보는 척하면서 힐끔거리는 앞이다.
김미영도 놀란 눈을 하고 강찬을 보고 있었다.
“헛소리 말고 그냥 앉아 있어.”
“아닙니다. 다리가 저려서 서서 가는 겁니다.”
여섯 놈이 우르르 강찬의 주위에 섰다.
가뜩이나 학생들이 많이 탄 버스에서 여섯 놈이 내려서자 나머지 학생들이 서글프게 몸을 포개고 그들과 닿지 않으려고 버둥댔다.
이 새끼들은 이런 게 좋은가?
저럴 바엔 뭐하러 학교를 다니지?
그냥 얼른 그만두고 프랑스를 가거나 깡패를 하면 훨씬 더 낫지 않을까?
다음 정류장에서 학생들은 더 많이 탔다.
“아! 거 참! 학생들! 안으로 좀 들어가!”
기사가 답답한 듯 소리를 빽 질러도 중간 문 너머로 아이들이 건너오지 못했다.
강찬의 주위에서 여섯 놈이 가뜩이나 더러운 인상을 벅벅 구기고 있는 탓이었다.
김미영의 난처한 시선이 아니더라도 강찬은 몹시 마음이 불편했다.
그때였다.
“아! 이 씨발. 안으로 안 들어가?”
앞쪽에서 거친 욕설이 나오고 얼굴을 움켰다 놓은 것처럼 생긴 남학생 세 놈이 아이들을 헤치며 나타났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강찬과 눈이 마주치자 놈들은 마치 입영열차에 탄 장정들처럼 창밖을 향해 대가리를 처박았다.
잘하면 손도 흔들 기세다.
교복이 다른 것으로 봐서 같은 학교도 아닌데 말이다.
강찬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의 뒤에 선 여섯 놈의 표정에 만족감이 떠오른 것을 보아서였다.
학교 가는 길이 참 다사다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