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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일진?
오후 수업이 시작된 시간에 강찬은 석강호 선생과 상담실 안쪽에 앉아 있었다.
“거 참.”
강찬의 탄식에 석강호가 슬쩍 눈치를 살폈다.
“담배 있냐?”
“상담실에서는 담배 못 피워…….”
“확!”
“요.”
“반말하지 마라.”
석강호가 각진 턱을 들었다가 강찬이 눈을 매섭게 뜬 것을 보고는 입맛을 다시며 시선을 떨궜다.
미칠 노릇이다.
다예루가 석강호의, 아니지. 석강호가 다예루의 분신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놈이 이놈인 것이다.
시기도 비슷했다.
강찬이 병원에 있는 동안 다예루는 마누라의 품에 있었던 것을 빼면 말이다. 덕분에 마누라와 밤마다 홍콩을 거닐었을 텐데 강찬은 불쑥 빈정이 상했다.
“좋디?”
“뭐가……요?”
“마누라 품에 있는 거.”
“늙어서 물이 별론데, 그게 동양 여자는 묘한 맛이 마누라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합디다.”
“에라, 이 병신아.”
“거, 누가 듣습니다.”
“지랄한다.”
상황이 이렇게 꼬이자 석강호는 얼른 화제를 바꾸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정말 학교 그만둘 겁니까?”
“프랑스 간다고 했잖아!”
“그 지옥을 또 들어가려고요?”
강찬은 입술을 모으며 탁자를 검지로 콕콕 때렸다.
“이상해. 분명 내통한 놈이 있거든. 그런데 이유가 뭔지, 왜 그런 건지를 밝히지 않으면 억울하게 죽은 놈들이 눈에 치여서 가만있을 수가 없다.”
“방학 때 갑시다.”
석강호는 이전의 버릇대로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한 달 반 뒤면 방학이잖소. 그때 나랑 같이 갑시다. 방학 동안만이라도 내가 힘이 될 거요.”
“소풍 가냐?”
“그럼 어떡합니까? 나이가 있어서 안 받아 줄 텐데.”
“넌 그냥 여기서 살아. 마누라 있겠다, 안정된 직장 있겠다, 뭐가 문제야?”
“후우.”
석강호는 답답한 듯 커다란 손으로 머리를 쓸어댔다.
나이도 걸리지만, 그보다는 강찬의 말대로 이곳에 정이 든 것이 분명했다.
마누라에 새끼들에, 이놈은 그 짧은 순간에 지금 가진 것에 이미 마음을 뺏긴 것이다. 하긴, 외롭게 살았던 놈이긴 하니까.
“너 알제리 말은 기억나냐?”
“희한하게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쓰면서도 알제리 말이 고스란히 있어서 처음엔 무척 당황스럽더라구요.”
그렇기도 하겠다.
“그러지 말고 방학 때 갑시다. 몇 놈 손 봐주고 싶어서 여기가 터질 지경이었으니까 그놈들 좀 해결하면 시간도 마치 맞을 겁니다.”
석강호가 자신의 심장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때렸다.
“오늘 본 놈들이 원래 연합이란 걸 하거든요. 그런데 그 뒤에 조폭 새끼들이 껴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날 잡으려고 하던 참이었소.”
강찬은 피식 웃었다.
“어? 장난이 아니라니까요.”
“시끄러.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애들을 상대하겠다고 그래?”
“오늘 봤잖아요. 쟤네들, 말이 학생이지 하는 짓은 완전 동네 깡패라니까요. 그러니까 좋은 일 한다 치고 그냥 방학 때까지만 딱! 어때요?”
“네가 하려고 했다면서?”
“그게 난 선생이라 걸리는 순간, 가혹 행위에 바로 형사 입건 아닙니까? 복면도 써야 하고. 이거저거 걸리는 게 많더라구요.”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너 정말 다예루인 건 맞냐?”
“왜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갓 오브 블랙필드를 압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좀생이가 된 거야?”
“기껏 다시 태어나서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습디다. 그래서 그렇수.”
그거야 그럴 수도 있겠다.
“쯧.”
“도와주실 거요?”
“담배나 하나 가져와 봐.”
“알았소.”
석강호가 반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달?”
기간이야 그리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병아리 같은 애들과 싸우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강찬이 상담실의 창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석강호가 돌아와서 소파를 끌어다 문을 막았다.
“상담실은 여자아이들도 드나드는 곳이라 문을 못 잠그게 되어있소.”
“아 참! 아까 따귀 때린 년이 있는데 잘 처리했냐?”
“그 계집애 술집 나가는 거 같지요?”
“그런 것도 같더라.”
“생활화가 된 애라 그리 큰 탈은 없을 거요. 다른 놈들은 내가 적당히 둘러서 병원에 보냈고. 집단에 흉기 소지라 놈들도 그리 크게 악을 쓰진 못할 겁니다. 선생인 내가 그렇게 진술한다고 했더니 대강 무마했으면 싶은 모양이기도 하고.”
치익.
강찬은 말없이 담배를 하나 피워물었다.
“한 달 있다가 방학 때 가자니까요.”
석강호의 표정이 하도 애잔해서 강찬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안 잘리면 그렇게 하자. 대신 애들 상대하는 것도 그만할란다.”
아쉬워하는 석강호의 앞에서 강찬은 다시 길게 담배 연기를 내 뿜었다.
***
인생이 어디 뜻대로 풀리는 것이던가.
석강호의 노력은 병원의 신고로 모두 헛것이 되고 말았다. 자상을 입은 환자가 너무 많은 탓에 응급실에서 규정대로 신고해버린 것이다.
강찬이 학교에 나오고 순찰차가 출동한 것이 벌써 두 번째였다. 지구대로 연행해야 한다는 것을 석강호가 보증서를 써가며 우겨서 강찬은 상담실에서 조서를 받을 수 있었다.
“너 도대체 뭐하는 놈이야?”
조서를 다 받은 경찰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흉기를 들고 기다린 열 명이 그를 옥상으로 유인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다음을 믿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그는 쓰게 입맛을 다시며 곁에 앉은 동료를 보았다.
“서로 넘기시죠?”
“그럼 이놈 잘려. 억울한 구석도 많고.”
“잘못하면 사건 덮으려 했다고 다칠 수도 있어요.”
“쩝.”
눈치를 살피던 석강호가 나선 것은 그때였다.
“병원비는 우리 쪽에서 부담할 거고, 피해자들이 고소하는 일이 없도록 선생인 제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선처 좀 해주십시오.”
“선생님 뜻이야 잘 알겠지만 사람 마음이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달라서 자칫하면 제 목이 달아납니다. 워낙 다친 애들이 많고 부모들이 어쩔지 몰라서요.”
“어떤 부모가 제 자식 학교 잘리길 바라겠습니까? 그리고 여기 생활기록부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 아인 원래 내성적이고 착했던 녀석입니다. 사고로 병원에 한 달 넘게 있어서 망상 증상도 있다고 되어 있구요. 학교 다니실 때 정말 고마웠던 선생님이 계셨을 것 아닙니까?”
경찰 둘이 입맛을 다시며 조서를 들여다보았다.
“보복 폭행이고, 다수인데다 입원한 애들이 소위 일진이라는 녀석들이어서 따로 고소는 없을 겁니다. 문제가 된다면 제가 교직을 그만두겠습니다.”
“선생님께서 그러실 필요가 없지요.”
“이런 제자를 버리고 어떻게 선생이라 하겠습니까?”
각진 턱 안에서 이를 악물었는지 석강호의 볼이 씰룩이고 있었다.
“흠. 정말 고소 안 하게 하실 수 있으십니까?”
“소장님?”
“그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병원에서 연락만 없었다면 아무 일 없었을 겁니다.”
걱정이 가득한 부하직원의 시선에도 담당 경찰은 입술을 꾹 다문 채로 강찬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다시는 이런 짓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
강찬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기 위해 이를 꽉 깨물었다.
“그래, 인마. 선생님을 뵈니까 알겠지? 선생님이 너 구해서 밥이 나와, 떡이 나와? 죄송한 거 알겠어?”
“예.”
학교에 다니고 싶다기보다는 강대경과 유혜숙에게 미안해서 한 대답이었다.
“선생님. 그럼 제가 병원에 가서 피해자들을 만나보고 그 아이들이 고소 않겠다고 서명하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대신 싸워서 다친 것이 아니라 뭐 다른 적당한 핑계를 좀 만들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제가 먼저 병원에 가서 아이들을 다독여 놓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요새 아이들 가르치기 힘드시죠? 선생님을 뵈니 예전에 절 아껴주시던 선생님이 생각나서 오늘 저도 각오한 겁니다. 뒤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꼭 좀 부탁드립니다.”
경찰이 일어서는 것을 따라서 석강호도 몸을 일으켰다. 분위기가 그러니 어쩔 것인가.
강찬은 시선을 떨군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석강호의 곁에 섰다.
“참아, 자식아. 앞으로 누가 괴롭히더라도 선생님의 은혜를 생각해서 참는 거야. 알았어?”
“예.”
석강호가 일진들을 두들겨 주자고 했던 말을 들으면 경찰들의 표정이 어떨까? 강찬은 재차 이를 악물며 진중하게 대답했다.
“그럼 선생님 믿고 갑니다. 병원에는 두 시간쯤 뒤에 갈 거고, 중앙센터에 신고 들어간 거라 절대로 폭행이 아니라고 해줘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저도 어쩌지 못합니다.”
“신고하려고 했으면 병원에서 연락할 때까지 그 아이들이 가만있었겠습니까? 그 점은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저야말로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것에 감동받고 갑니다. 자, 그럼.”
경찰 둘이 나가고 나자 강찬은 털썩 자리에 앉았다.
석강호는 두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나갔다가 잠시 뒤에 돌아왔다.
“교실에 가 계쇼.”
“수업을 들으라고?”
“난 병원도 가봐야 하고 무엇보다 여기 너무 오래 계셨잖소?”
“너 말이 점점 짧아진다?”
“허흠. 나이도 있고,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십시다.”
강찬은 피식 웃고 말았다. 하기야 원래대로 따져도 다예루가 그보다 한 살 많았었다. 굳이 이 이상의 존대를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강찬은 어쩔 수 없이 교실로 향했다.
수업 중이라 교실은 조용했다.
드르륵.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선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호준은 화들짝 놀란 얼굴을 재빨리 돌리고 있었다.
서른 중반쯤 된 여선생도 뭐라 하지 못하고 강찬의 눈치를 살피는 지경이다. 그는 천천히 자신의 자리에 앉았고, 선생을 바라보았다.
“아, 수업하자.”
선생이 최면에서 깨어난 것처럼 수업을 진행했다.
일본어 수업이었는데 눈이 내리는 마을에 들어선 철수가 처먹지도 않을 우동과 정식의 가격을 물어보며 주인을 약 올리는 내용인 듯싶었다.
수학보다 훨씬 나았지만 멍하긴 마찬가지였다.
수업이 끝났다.
끼기긱.
선생이 서둘러 나간 다음, 앞쪽에 남학생 하나가 일어서다가 의자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자 엉거주춤한 자세로 강찬의 눈치를 살폈다.
쉬는 시간도 뻑뻑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강찬은 입맛을 다시며 의자에 몸을 한껏 기댔다.
화장실에 가는 아이들이 수도원의 사제들처럼 엄숙하고 장엄한 태도로 움직였다.
그때 강찬의 곁으로 이호준이 다가왔다.
날카롭게 시선을 주었을 때 녀석은 쥬스 한 캔과 빵을 그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정말 뼛속까지 썩은 놈인가?
강찬은 어이없는 시선으로 이호준을 보았다.
“수업 끝나고 1, 2학년 애들이 인사 올 거야.”
강찬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이거 가져가.”
당황한 이호준이 강찬의 눈빛에 눌려 쥬스와 빵을 들고 제 자리로 움직였다. 다들 지켜보고 있어서 그런지 엄청난 긴장감이 교실을 짓눌렀다.
강찬 역시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라 작게 한숨을 내쉴 때였다.
아이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을 느낀 강찬은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았다.
여학생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아는 아이다.
왼쪽 뺨이 퉁퉁 부어 있었다.
“야! 강찬!”
이호준을 완벽하게 무시한 채 걸어온 여자아이가 그의 곁에 섰다. 이마에 ‘날라리’라 쓴 것처럼 유치찬란한 화장을 한 여학생 셋을 뒤에 거느린 채였다.
“끝나고 시간 좀 내.”
“까불지 말고 가라.”
“야!”
끼기깅.
강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아이를 향해 섰다. 훅하고 화장품 냄새가 끼쳐왔다.
학생들이 부리는 객기와 강찬이 뿜어내는 살기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여자아이는 분한 얼굴만 할 뿐 입을 열지는 못했다.
계집아이의 시선이 툭 하고 강찬의 오른손을 살폈다. 틀림없이 따귀를 날릴까 봐 겁을 먹은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이런 일은 많았다.
두들긴 녀석의 애인이 손에 끼우는 쇠링을 감춘 채 접근한 적도 있었고, 손가락 길이의 송곳을 머리에 꽂고 옷을 벗는 여자도 봤다.
봐주면 꼭 탈이 생긴다.
‘이것도 뒤탈이 없게 해야 하나?’
교복을 입은 것을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약해졌다.
‘여긴 전장이 아니잖아.’
조금은 봐줘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강찬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저런 여자아이가 같은 여자아이들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음을 굳혔다.
한 마디만 더 지껄이면…….
그런데 계집애는 강찬의 생각을 홀랑 잡아먹은 것처럼 단칼에 몸을 돌렸다. 뒤에 있던 떨거지 셋이 같잖다는 눈으로 강찬을 흘겼는데 뭐 그 정도까지야.
‘피곤한데?’
강찬은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 앉다가 참외 가슴을 단 백설공주 앞머리와 눈이 마주쳤다.
번거롭다.
빨리 프랑스로 가서 절차 밟고 아프리카로 가고 싶었다. 살다가 그 흙먼지와 총알이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다시 두 시간, 인고의 시간이 지나자 수업이 끝났다.
“휴후.”
강찬이 커다랗게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교실 앞문으로 껄렁한 아이들 열댓 명이 우르르 들어섰다. 녀석들은 곧바로 강찬의 앞에 세 줄로 늘어서더니 앞줄부터 순서대로 허리까지 숙이며 인사했다.
울고 싶었다.
이런 놈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도 그렇고, 이따위 인사를 받고 있는 것은 더더욱 그랬다.
“꺼져.”
“알겠습니다.”
녀석들은 아무리 때려도 꼬리를 흔드는 똥개처럼 그의 말 한마디에 똑같은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집이 그리웠다.
강찬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같이 가.”
그때 조심스러운 음성이 들렸다.
흘깃 보니 백설공주였다.
“집에 가는 거 아냐?”
방향이 같은가?
강찬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대중교통 이용하는 법을 제대로 몰라서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찬이 앞서서 걷고 참외 가슴 백설공주가 따랐다.
뒷문을 나설 때였다.
따귀를 맞았던 계집애가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다가 그를 노려보았다. 뒤에 서 있던 병풍 셋은 백설공주의 위아래를 거칠게 훑는다.
강찬이야 신경 쓸 이유가 없었지만, 백설공주는 잔뜩 겁을 먹은 눈치였다.
“넌 뒈졌어.”
강찬의 귀에도 분명 들린 경고였다.
백설공주는 눈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바닥을 보았다.
하지만 뭐 강찬에게 시비 건 것은 아니다.
따귀를 맞은 계집애가 왜 이렇게 따라 붙는지는 모르지만 단지 서 있다고 따귀를 때릴 수는 없잖은가.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강찬을 알아본 아이들이 급하게 벽으로 달라붙으며 길을 열어주었다. 심지어 앞서 가느라 그를 보지 못한 친구를 잡아당겨 주는 놈도 있었다.
전염병 환자도 아니고.
입맛이 썼지만, 강찬은 모른 척 계단을 내려갔다.
건물을 빠져나오자 운동장 옆으로 아이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학원 갈 거야?”
“학원?”
“벽상. 안 다닐 거야?”
학원이름이 벽상인가?
정문을 향해 걸으며 백설공주는 마음이 편해진 모양이었다. 강찬의 신경이 곤두선 것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은실이가 너 찍었나 봐.”
“은실인 또 뭐야?”
“은실이! 복도에서 기다리던 애.”
“아!”
“조심해. 걔는 남자애들하고 자고 다닌대.”
그게 조심할 일인가.
‘프랑스 애들을 보면 기절하겠구나.’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정문을 나서기 위해 몸을 돌리자 시커먼 양복을 입은 덩치 넷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복을 입은 애 하나가 덩치의 곁에 있다가 잽싸게 아이들 틈으로 사라졌다.
‘이건 뭐 아프리카보다 더하네.’
강찬은 도롯가에 세워진 검은색 승용차를 확인하고 다시 덩치 넷을 보았다.
“어이, 이리와 봐.”
덩치 하나가 두툼한 볼을 구겨가며 구부정하게 손을 들어 검지를 까닥거렸다.
강찬은 우선 덩치 앞으로 걸어갔다.
백설공주는 꼼짝도 하지 못했고, 주변에 학생들이 새카맣게 몰려 있었다.
덩치가 짜증 나는 얼굴로 학생들을 훑어본 다음 강찬에게 시선을 주었다.
“네가 강찬이야?”
“그런데?”
“씨발 놈이 개기기는.”
사람을 망가트려 본 자의 눈빛이었다.
갱은 조심하는 게…….
‘참! 한국은 총이 없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좋은데 가려는 거야, 인마. 얌전히 타.”
덩치가 고개를 까닥하며 차를 가리켰다.
“쯧.”
“시팔놈이. 짜증 나게 하지 말고 빨리 안 타?”
강찬이 피식하고 웃을 때였다.
“오빠!”
두 번이나 맡았던 화장품 냄새가 그의 곁을 스쳤다.
은실이라는 계집애였다.
뒤처리를 제대로 안 하면 지금처럼 꼭 탈이 난다.
은실이란 계집애는 골반을 희한하게 뒤틀어 짝다리로 섰다. 자신 있다는 뜻이다.
덩치가 은실에게 고개로 차를 가리켰다.
“이 새끼야, 너도 빨리 타!”
그리고는 강찬을 향해 으르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