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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일진?
다음 날 아침까지 강찬은 학교에 가는 대중교통수단을 뒤지고 타는 법을 알아봤으며, 도대체 3학년 몇 반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찾는데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다시 태어난 인생이다.
그것도 그토록 바라던 부유한 집.
공부를 제대로 한번 해볼까 했던 강찬은 채 한 시간이 못 되어서 마음을 접었다. 당최 뭘 알아먹어야 말이지. 가장 기가 막힌 것은 영어와 수학이었다. 실생활에 전혀 쓰이지 않을 문장도 그렇거니와 도대체 전공자들이나 익힘 직한 수학은 또 뭐란 말인지.
‘이놈은 책도 없어?’
시간표야 책상에 붙었다만 어째서 책이 몇 권밖에 없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음엔 자습서인 줄 알았던 것이 교과서인 것도 뒤지기 시작하고 한참 뒤에 알았다.
그렇게 아침을 맞았다.
일찌감치 식사를 마친 다음에 “내가 태워다 줄까?”하는 강대경의 말에 강찬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가는 것이 불편한 것보다 대중교통수단을 아침에 적응하는 것이 더 불편해서였다.
차는 지하 주차장에 있었다.
어색한 가운데 강대경은 능숙한 솜씨로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에 합류했다.
강찬이 조수석 창문을 통해 아침 풍경을 살필 때였다.
“너 내 아들 맞지?”
뜻밖의 질문이 건너왔다.
“어떤 모습이어도 좋다. 살아 돌아왔으니까. 어제 본 일기와 문자를 보니까 네가 이렇게 변한 것도 이해가 가고. 하지만 얼른 예전으로 돌아와 줬으면 싶다. 가끔은 네가 웃는 게 보고 싶거든.”
‘내가 이 사람의 아들 노릇을 할 수 있을까?’
강찬은 대답하지 못했다.
“어제 네가 전화받고 일을 해결해줄 때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자식 자랑하는 놈들보고 속없다고 했는데 오늘 내가 그럴 모양이야.”
강찬은 처음으로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사람들의 아들로 태어났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저기지?”
강대경은 답을 하지 않는 것에 상관하지 않고 그를 학교 앞에 내려주었다.
“저녁에 뵐게요.”
“그래. 다치지 말고.”
강찬이 문을 닫기 전에 고개를 집어 넣어보니 강대경은 감정이 올라온 모양으로 눈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피식.
그것이 전부였다.
강찬은 할 말이 없었고, 강대경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난 후였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리고 바로 위쪽이 정문이었다.
커다란 입을 벌린 문으로 학생들이 몰려들고 있었는데 강찬이 등장하자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잽싸게 앞서서 피하는 아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아이, 대놓고 구경하는 아이 등등.
공통점도 있었는데 한결같이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찬은 오른쪽 어깨에 가방을 걸친 채로 교문을 들어섰다.
그는 가장 먼저 어제 익숙한 냄새를 피우던 선생을 보았다. 기다란 훈육봉을 들고 매서운 눈초리로 학생들을 노려보고 있던 선생 역시 강찬이 들어서자 곧바로 눈길을 주었다.
“가방 똑바로 메고 들어와.”
피식.
학생들이 죄다들 눈알을 굴리며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찬은 그대로 선생 앞을 지나쳤다.
고개가 어깨를 지나칠 때까지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한번 봐준다.”
“고맙죠.”
선생이 비슷하게 웃었다.
‘이름이나 알아 두어야겠는데?’
마음에 들었다.
나이가 좀 있는 게 걸리지만 말이다.
***
3학년 2반.
강찬이 교실에 들어섰을 때의 반응은 복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리저리 소란을 떨던 아이들이 한순간에 입을 다물고 조심스럽게 자리로 옮겨갔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선에서 강찬을 살폈다.
교실을 둘러본 강찬은 의외로 학생 수가 적은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자리가 어디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는 커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할 수 없지.’
“야. 내 자리가 어디야?”
“어? 어! 저기. 저기야.”
강찬은 문가에 앉은 사내아이가 가리킨 곳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앞에서 두 번째 줄, 좌측에서도 두 번째 줄이다.
‘저격당하기 딱 좋은 곳이네. 시선을 피할 곳도 없고.’
그가 ‘쯧.’하고 불만을 토해낼 때 묘한 긴장이 교실에 돌았다.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본 강찬은 문을 들어서던 이호준과 눈이 마주쳤다.
흠칫 놀라기는 했으나 이호준은 굽히지 않겠다는 몸짓을 분명하게 보이며 뒤쪽 가운데에 앉았다.
‘설 때리면 저런다니까.’
강찬은 이호준의 눈에서 언제고 기회를 노리겠다는 감정을 보았다.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내가 너에게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아이들이 알아주었으면 싶었으리라.
같잖은 생각이다.
‘체면을 살리기 위해 수업 중에 덮칠지도 모르지.’
누구보다 예전에 자신이 그러지 않았던가.
그러나 강찬은 머리를 흔들고 나쁜 생각을 지웠다.
애들이다.
아직 어린 애를 상대로 질리게 만들어서 무슨…….
“야! 강찬!”
강찬은 한숨을 짧게 내쉬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점심시간에 옥상으로 올라와.”
이호준이었다.
이를 악물며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이호준.
왼쪽 볼에 멍이 퍼렇게 들었고, 입술과 눈가에도 상처가 있었다.
“알았다. 데려올 놈들 있으면 귀찮으니까 한 번에 데려와라.”
대답조차 못 하는 녀석이 한편으론 귀엽기도 했다.
***
수업은 참으로 인내의 시간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선생의 조례와 이어지는 네 시간의 수업,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분위기가 싸했는데 그 점은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강찬은 미련하지 않다. 다만, 무식할 뿐이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연신 듣고 있자니 귀에서 벌레가 기어 나올 것만 같았다.
쉬는 시간의 분위기는 왜 그리 숙연한지.
딩동댕.
마침내 점심시간이 되었다.
끼기깅!
이호준이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나 대차게 교실 문을 열고 사라졌다.
‘배고픈데?’
국과 카레, 그리고 다른 반찬 냄새가 강찬을 유혹했으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먼저였다.
강찬이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찬아.”
왼쪽 첫째 줄 네 번째에 앉은 여학생이 그를 불러세웠다.
큰 눈, 백설공주 흉내를 잘못 낸 것처럼 이마를 가린 앞머리에 어깨에 닿은 뒷머리, 제법 오뚝한 코, 우와! 가슴이 참외? 그것도 세워놓은?
“아침에 들었어. 심덕 일진 애들도 왔대. 밖에 무서운 아저씨들도 기다리고.”
강찬은 얼른 시선을 들어 여자아이를 보았다.
용기를 낸 모양이다. 약간의 의협심과 안타까움이 적절하게 섞인 표정이 꼭 그랬다.
‘잘 커라.’
스타일만 좀 좋았으면…….
“안 갈 거지?”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데?”
강찬은 참외의 끝에 달린 명찰을 그때야 보았다.
김미영.
사진을 어쩌고 했던 아이가 이 아인가?
“피하면 되잖아.”
다른 아이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도 쫓아오면?”
“그땐 담탱이에게 말해.”
강찬은 숨을 길게 쉬었다.
“너 내가 사진 안 찍은 거 알고 있었지?”
순간 다른 아이들이 바짝 긴장하는 것을 강찬은 알아차렸다.
“내가 조용하게 있고, 멍청하게 당할 때는 한 새끼도 안 돕다가 이렇게 되니까 위하는 척하는 거냐?”
김미영은 울컥 눈물이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강찬은 천천히 몸을 돌려 교실을 빠져나왔다.
어린아이들이다.
그런데 어떤 모습은 참 잔인했다.
‘그래. 뒷마무리를 못 해서 이런 거지.’
강찬은 오늘로 학교를 그만둘 결심을 세웠다.
피식.
그는 옥상에 빨리 들렀다가 돈가스를 먹으러 갈 생각이었다.
‘프랑스로 가자. 가서 다시 시작하자.’
남의 부모에게 조금씩 정이 느껴지는 것도 번거로웠고, 왜 죽어야 했는지 모른 채로 죽어간 부하들을 생각하면 일 본 후 뒤를 닦고 나오지 않은 것처럼 찝찝했다.
‘이왕 돌려보내 줄 거면 과거로 보내지.’
당연히 강대경과 유혜숙이 부모라는 전제조건에서다.
강찬이 옥상을 올라갈 때 껄렁한 남학생들과 술집에서 퇴근한 듯한 화장을 한 여학생 몇이 뒤를 따랐다.
강찬은 계단을 오르다 말고 덜컥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앞에 있는 여자아이는 얼마나 치마통을 줄였는지 계단을 오르기 위해 속옷이 보일 만큼 걷어 올린 모습이었다.
“내려가.”
강찬은 사람 말을 먹는 여자아이를 처음 봤다.
“아, 씨발! 네가 뭔데?”
내려가란 말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여자아이가 홀랑 잡아먹었다. 프랑스에서도 저런 여자애들은 많다. 깡도 있고, 주먹에 끼우는 쇠링도 가지고 다니고.
강찬은 여자아이 앞으로 두 계단을 내려갔다.
눈가에 바른 검은 선이 얼마나 진한지 눈을 따로 끼워 넣은 것처럼 보였다.
“왜? 한번 줘?”
쫘아아아악.
계단의 아래에 있던 사내 녀석들이 여자아이를 받쳤다. 의도했던 대로 기절한 것이다.
“꺼져. 죽여버리기 전에.”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며 강찬은 오늘 학생이나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상대하는 마음으로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이것들은 아이가 아니다.
아이의 탈을 쓴 괴물들이다.
어른이 되면 최소한의 분간을 하지만 이 녀석들은 그런 것도 없다.
그의 눈이 번들거리자 계단에 있던 아이들이 주춤거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프랑스에서와 똑같은 대접이라 강찬으로서는 내국인이라 차별하지 않고 국제적인 대우를 한 것이다.
강찬은 아이들이 내려갈 때까지 지켜보다가 다시 옥상을 향해 걸었다.
‘아예 아작을 내주마.’
어차피 그만둘 학교.
이런 녀석들은 쓸어버리는 것이 좋으리란 결심이었다.
그는 옥상 문의 손잡이를 잡고 크게 앞으로 밀었다. 갑자기 밝아져서 시야가 가리는 것이 싫었고, 다음으로 기습적으로 달려드는 놈과 드잡이를 하고 싶지도 않아서였다.
‘멍청한 놈들.’
대략 열 명 정도가 쭈그리고 앉아 다리에 팔을 걸친 채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자신이 있어서 그런지 기습조차 하지 않는다.
강찬은 옥상으로 나간 다음 문을 꼭 닫았다.
“알아서 잘하네!”
‘저 새끼가 대가리구나.’
서른은 넘어 보일 정도로 삭은 인상이 강찬을 보며 느물거렸다. 녀석이 피우던 담배를 던지자 아이들이 죄다 일어나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강찬은 세 녀석이 든 무기를 보고 마음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회칼, 쇠파이프, 그리고 못을 박은 각목.
이런 놈들이 학교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한번 떨어져 보니까 깡이 좀 생긴 모양인데 오늘은 주차장 쪽으로 떨어져 봐. 꽈앙 하고 대가리가 터져버리게.”
강찬은 숨을 골랐다.
“지난번에 내가 떨어진 게 네놈들 때문이었다 이거지?”
“병신. 살려달라고 존나게 주접떨다가 네가 달려갔잖아? 씨발 놈이, 한 대도 안 때렸는데. 저 새끼 완전히 돌아버린 거 아냐?”
강찬은 슬쩍 시선을 흘려 이호준을 보았다.
잔뜩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잘 됐어. 요즘 가뜩이나 수금이 안 돼서 존나 짜증 났거등.”
대가리라고 짐작했던 녀석이 느물거리며 강찬을 향해 걸어왔다.
감각이 있는 놈이다. 저런 자세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오는 것이 맞다. 어설픈 것을 빼면.
어깨가 처지고 거리를 맞추고 걷는 것은 기회를 봐서 발을 뻗을지 주먹을 내지를지를 계산한다는 뜻이다.
“이 씨발 놈이 그래도 눈깔을 똑바로 뜨고!”
대가리는 단박에 주먹을 날려왔다.
강찬은 날아오는 오른팔을 감싸듯 몸을 돌리며 왼 팔꿈치로 녀석의 목을 세차게 가격했다.
“큭.”
나머지가 우르르 달려들었다.
강찬은 우선 껴안은 팔을 뒤틀어 오른 손바닥 안쪽으로 녀석의 팔꿈치를 세게 올려쳤다.
뚜욱.
“아악! 아아악!”
팔이 바깥쪽으로 완벽하게 꺾였음에도 강찬은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녀석의 목 뒤를 잡아 쇠파이프가 날아오는 곳으로 밀어 넣었다.
퍼억.
때린 놈이 놀란 틈이다.
대가리가 터졌는지 잡고 있는 녀석의 머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부러진 오른팔을 던지며 잽싸게 녀석의 왼팔을 잡아 짧게 비틀었다.
퍽. 퍼벅. 퍼버벅.
왼손으로 녀석의 왼손목을 꺾어 쥔 상태에서 세 놈의 목젖을 때리자 잠시 틈이 생겼다.
강찬은 커다랗게 몸을 띄워 옆에 있는 두 놈의 얼굴을 걷어차고 잡고 있는 녀석의 왼팔을 가랑이에 끼우며 내려섰다.
우드득.
“끄아아아악!”
기괴하게 양팔을 흔들며 녀석이 몸부림쳤지만, 강찬은 놈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리와!”
그가 왼팔을 쭉 당기자 녀석의 팔이 기괴할 정도로 길게 늘어졌다.
“끄악. 끄아아악.”
“개새끼. 더럽게 시끄럽네.”
퍼억.
강찬은 몸을 수그린 녀석의 뒷목을 찍듯이 내려 찼다. 바닥에 처박힌 녀석은 죽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은 녀석들이 주춤거리며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강찬은 놈들을 향해 눈을 번득였다.
“너!”
회칼을 든 놈이 움찔하는 순간이었다.
강찬은 쇠파이프를 든 녀석에게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퍽. 퍽. 퍽.
엄지로 목과 명치, 그리고 옆구리를 찌른 강찬은 속도를 이용해 무릎으로 녀석의 허벅지를 강하게 찍었다.
“크흑.”
쇠파이프는 이미 강찬의 손에 있었다.
“이런 걸 들고 다니면.”
부웅. 파악.
그는 녀석의 구부러진 무릎 한중간을 쇠파이프로 세차게 내려쳤다.
“아아아아악!”
이번에는 무릎을 싸안고 뒹구는 녀석의 어깨다.
부웅. 퍼억.
“끄아아아아!”
부웅. 퍼억.
털썩.
이번만큼은 힘 조절을 했다.
목을 부러트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죽거나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바로 어기고 싶지는 않은 탓이었다.
쇠파이프를 맞은 녀석도 죽은 것처럼 바닥에 늘어졌다.
“이 병아리 새끼들아.”
강찬은 쇠파이프를 멀찍이 던져버리고, 회칼을 든 녀석을 노려보았다.
“적어도 칼을 들고 다니려면 말이야.”
“죽인다아!”
놈이 악을 쓰며 칼을 앞으로 뻗는 순간이었다.
홱!
강찬은 녀석의 손목을 번개처럼 낚아채서 몸쪽으로 쭉 당겼다. 그리고는 녀석의 면상에 오른 팔꿈치를 세차게 디밀었다.
쩌억.
왼손을 한번 감아 돌리자 회칼이 위로 올랐고 강찬은 오른손으로 칼을 받아들었다. 날이 새끼손가락을 향하도록 거꾸로 든 것이다.
푹. 푹. 푹. 푹.
양쪽 어깨와 그대로 내려가 허리의 양쪽 두 곳.
멍청한 놈들은 꼭 허벅지를 찌른다.
10㎝만 찔러도 대동맥이 터져 뒈질 수 있는 곳인데도 말이다.
“끄아아악.”
녀석의 상의와 하의가 온통 피로 물들어 버둥거렸으나 강찬은 놈을 놓아주지 않았다.
퍼어억.
그는 회칼의 손잡이로 녀석의 목 뒤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털썩.
앞으로 고꾸라진 녀석도 죽은 것처럼 조용했다.
못 박은 각목을 들고 있는 녀석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었다.
강찬은 고개를 갸웃하며 녀석을 보았다.
“네가 존나게 유리한 거야. 난 짧은 거 들었잖어?”
“이 씨발 놈이!”
녀석이 욕을 뱉는 순간, 검지와 중지를 구부려 바로 곁에 있던 녀석의 눈을 때렸다.
푹. 푹. 푹.
삽시간이었다.
녀석의 오른 팔꿈치와 어깨, 그리고 왼쪽 어깨를 찔렀다. 이래 놓으면 최소한 두 달은 전투능력을 상실한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기가 죽은 아이들이다.
봐줄 수도 있다.
하지만 강찬은 이호준과 각목을 든 두 놈을 남겨두고 모조리 세 곳씩을 칼로 찍어버렸다.
“으으으!”
비명이 아니라 질려서 나오는 소리다.
근육을 짧게 찌르면 실제로도 뜨끔한 다음 욱신거리기만 하지 죽을 것처럼 아프지는 않다.
“이호준이.”
이호준은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불행하게 싸움이 시작된 순간부터 강찬이 옥상문의 앞에 계속 서 있어서 도망갈 구석도 없었다.
“너는 제일 나중이야. 눈깔을 파줄 거거든. 그러니까 어느 쪽이 좋은지 저 새끼 몸뚱이에 구멍 내기 전에 결정해 놔. 아니면 두 개다 파버릴 테니까.”
이호준은 완전히 질려 있었다.
저 상태라면 도망도 가지 못한다.
차라리 그날 이렇게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강찬은 새삼 마무리가 중요함을 깨달았으나 지금은 아직 남은 일이 있었다.
강찬은 각목을 든 놈을 향해 똑바로 걸었다.
“에이! 씨팔!”
부웅.
강찬은 날아드는 각목을 향해 달려들며 녀석의 오른팔이 왼쪽 어깨에 걸치게 한 다음 팔꿈치를 반대로 꺾어버렸다.
콰자작.
“끄아악! 끄아아!”
“시끄러, 씨발놈아.”
봐주면 또 이런 일이 생긴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을 괴롭힌다.
그는 부러진 녀석의 팔을 커다랗게 비틀어 가랑이 사이에 넣었다.
콰자작.
그가 거칠게 녀석의 팔을 잡아채는 순간에 어깨에서도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나왔다.
“후우!”
강찬은 녀석의 팔을 놓은 다음 바닥에 떨어진 각목을 주워들었다.
10인치짜리 대못이 열 개 이상 박혀 있었다.
“우린 때는 자전거 체인이 유행이었는데.”
강찬은 침을 흘리며 흐느끼는 녀석을 향해 섰다.
부우웅. 퍼어억.
그리고는 녀석의 목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죽이지 않을 생각에 못이 박힌 바로 아래쪽을 이용했다.
각목이 부러져 나가며 녀석이 바닥에 처박혔는데 앞에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죽은 것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이호준이. 결정했어?”
의식을 잃지 않은 녀석들이 이호준보다 더 놀라는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이호준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비겁한 표정도 잊지 않았다.
강찬은 잠시 고민했다.
이호준은 다시 덤벼들지 못한다.
이미 완전히 기가 꺾였기 때문이다.
저런 걸 본때를 보여줘야 하나?
“우선 담배 하나 갖고 와.”
이호준은 움직이지도 못했다.
“씨발놈아! 귀찮으니까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허둥지둥 움직인 이호준이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찰칵.
“후우.”
강찬은 담배와 라이터를 이호준에게 내밀었다. 녀석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너는 어제 맞은 게 있으니까 한번 봐준다.”
의심스러운 눈초리였으나 이호준은 입을 열지 않았다.
덜컹.
“억!”
그때 옥상 문이 벌컥 열리며 칼에 찔려 있던 녀석을 때리는 바람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올라온 사람은 아침에 만난 선생이었다.
당황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 선생이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덜컹.
그리고는 얼른 옥상 문을 닫았다.
“담배 안 꺼?”
“분위기 파악 좀 하십쇼. 이런 순간에는 한 번쯤 눈감아 주실 수 있잖습니까?”
선생은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가 곧바로 체념하는 얼굴이 되었다.
“나도 하나 주라.”
강찬이 고갯짓을 하자 이호준이 담배를 건네주었다.
“나도 하나 더 줘.”
이호준은 착실한 학생처럼 말을 잘 따랐다.
“후우.”
두 사람은 아예 바닥에 철퍼덕 앉아 담배를 피웠다.
“병원 급한 놈은 없지?”
“서너 달 정도 싸움질만 못 하게 해 놓았습니다.”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우리 학교 놈이 아니네?”
그는 고개를 디밀어 엎어진 녀석의 얼굴과 같은 방향으로 비틀고 있었다.
“심덕 일진이라던데 맞냐?”
강찬의 질문에 이호준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학교 나오지 마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으로 이런 겁니다.”
“왜? 조폭이라도 할 생각이냐?”
“프랑스로 갈 겁니다.”
강찬의 대답에 선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짧게 저으며 꿈에서 깨어나는 얼굴이었다.
“너는 내가 아는 누구랑 정말 많이 닮았다.”
“푸흐흐.”
강찬은 폐로 웃는 것처럼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내 정체를 알면 정말 많이 놀랄 겁니다.”
강찬의 대꾸에 선생은 픽 하고 웃으며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가자. 저 병신들 병원에 보내줘야지.”
“난 집에 갈랍니다.”
“까불지 말고, 교실에 가 있어. 뒷마무리를 하고 가야 출국이라도 하지. 이건 형사로 걸리면 크다. 어떡해서든 정당방위나 대항폭력으로 몰고 가볼 거니까 학교에 있어. 교복을 입고 있어야 정상참작에 도움도 되는 거야.”
선생은 바지를 털듯이 일어나 이호준을 노려보았다.
“저 새끼가 유리하게 진술하도록 손 볼 수 있어?”
강찬은 천천히 일어나며 이호준에게 시선을 주었다.
“며칠 전 사건이랑 엮어서 보복폭행을 하려고 했던 거고, 오늘 네가 끌려왔다가 대항한 거로 하자. 네가 가져온 무기는 없지?”
“구차스럽게 그런 걸 뭐하러 가지고 다녀요?”
“그렇긴 하다.”
선생이 몸을 돌릴 때였다.
“그런데 왜 나를 챙겨줍니까?”
강찬의 질문에 그가 고개를 돌리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못하는 일을 해준 게 고마워서 그렇다.”
강찬의 눈을 한번 바라본 선생이 옥상 문을 열자 아이들이 그 앞에 가득 있었다.
“안 내려가!”
그가 빽 하고 지른 고함이 복도를 쩌렁쩌렁 울린 다음 후다닥 옥상으로 튀어나왔다.
“휴후. 보고서랑 경찰 상대하려면 오늘은 아무래도 노케이겠는데?”
그때 선생이 혼잣말처럼 던진 말에 강찬은 세상이 온통 멈춘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서.”
선생은 먼저 상체가 들썩일 정도로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 인마! 담배 하나 나눠 피웠다고 이따위로 막 나오는 거냐? 아무리 내가 선생이라 해도 정도가 넘어가면 후회할 일이 생겨.”
강찬은 돌아선 선생을 의심스럽게 노려보았다.
“정체가 뭐야?”
“이 자식이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요강을 닦아서 찬장에 넣네.”
선생은 더 참기가 어려웠는지 강찬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다시 태어나고 처음 느끼는 긴장감이 강찬을 감쌌다.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목숨을 건 전장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긴장이었다.
“이제 겨우 마음 잡았는데 너무 설치지 마라, 꼬마야. 가뜩이나 나도 이 짓 때려치우고 프랑스 갈까 고민 중이었으니까.”
“나이가 너무 많잖아?”
“그래도 이 새끼가! 이제부터 꼬박꼬박 존댓말 써.”
선생은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반말 때문이라기보다는 나이 얘기가 더 기분 나쁜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잡아먹을 듯, 한 치의 양보 없이 상대의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
“야 인마! 강찬!”
“내 이름을 알고 있었지?”
선생이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로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이호준과 칼에 찔려 주저앉은 놈들이 지켜보는 앞이었다.
“이름을 알고 있었지?”
두 번째 같은 질문에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이름인 건 맞다.”
설마……?
두 사람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찬은 선생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후 엠 아이?”
그리고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다음 대답도 해 봐.”
선생이 질린 음성으로 뱉어낸 대답이었다.
“갓. 오브.”
강찬이 또박또박 끊어 내뱉는 말을 선생이 툭 자르고 나섰다.
“블랙필드.”
참으로 믿기 어려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