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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스쿨존.
세 사람이 강찬의 앞에 서서 아이들과 강찬을 번갈아 보았다.
“그건 뭐야?”
“이거, 얘들이 가져왔더군요.”
“누가?”
강찬은 피식 웃었다. 그게 그리 중요한 일인가.
“대답해. 누가 가지고 있었어?”
강찬은 고개를 돌려 등 쪽이 피범벅인 아이를 보았다.
“저놈이라면 그럴만하지. 적당히 하지 그랬냐? 이 정도면 우리도 감싸기 어렵다.”
뭐라는 거지?
“일진이랍시고 애들 괴롭히고 다니더니 꼴좋게 되었다만 당장 네가 문제다. 아무튼, 여섯 놈이 달려든 거고, 흉기도 있고. 학폭위 열리면 우리가 알아서 해 볼 테니까 그 칼 이리 주고 우선 집으로 가 있어.”
각진 턱이 제법 잘 어울리는 선생이 두툼한 손을 내밀었다.
강찬은 말없이 칼을 건네주었다.
“이럴 바엔 처음에 버릇을 고쳐주지 그랬냐?”
선생은 입맛이 쓴 것처럼 강찬을 다독였다.
“집에 가서 말씀 잘 드리고, 내일부터 무조건 학교 나와. 그리고 증거 있다고 했다면서? 왜? 없어? 아까 서 선생이 그러던데?”
강찬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그거 학폭위에 제출하게 내일 가지고 나와.”
“알았습니다.”
선생은 자꾸만 강찬을 훑어보았다.
익숙한 냄새를 풍기는 자세와 눈빛이 그의 시선을 붙잡는 모양이었다.
다른 두 선생이 학생들을 불러 쓰러진 아이들을 부축해 가고 있었다.
“어디서 배웠어?”
강찬은 피식 웃으며 선생을 보았다.
“저런 깡은 반복된 훈련에서 나오지.”
“그냥 되던데요?”
“나중에 얘기하자.”
쉽게 입을 열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지 선생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막 가더라도 학교 운동장에서 담배를 피울 수는 없는 일이라 강찬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개떼처럼 운동장을 향해 내려온 아이들이 배웅이라도 하는 것처럼 지켜보고 있었다.
강찬은 학교 정문의 옆으로 쭉 늘어선 분식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기계음처럼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인사가 강찬을 맞이했다.
“돈가스 하나 주세요.”
“네.”
자리에 앉은 강찬은 TV에 시선을 두었다.
열 개 정도의 테이블에 건너편에 사내 둘, 그리고 그 앞쪽으로 회사원인 듯한 차림의 아가씨가 깔끔한 체하며 떡볶이와 김밥을 먹고 있었다.
“여기요.”
그 사이 상호가 그려진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강찬의 앞에 돈가스를 놓아주었다.
얄팍한 살, 그리고 싼 내가 풍기는 소스향, 오래된 듯한 기름 냄새.
강찬은 말없이 돈가스를 바라보았다.
서울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먹었던 음식이었다.
진저리치게 먹고 싶었지만, 가진 게 없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은 음식이었다.
수 없이 스테이크를 먹으면서도 늘 생각났었다.
강찬은 포크와 나이프로 돈가스를 길게 썰고, 다음으로 네모나게 다시 잘랐다. 이렇게 하고 젓가락으로 먹어야 제맛이 난다.
그렇게 맛이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먹었다.
강찬이 돈가스를 다 먹을 때쯤이었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찬이니? 어디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유혜숙이 다급한 음성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학교 앞에서 돈가스 먹고 있어요.”
[“지금 학교가 난리야. 경찰도 다녀갔다고 그러고. 무슨 일이야?”]
“가서 말씀드릴게요.”
[“찬아. 지금 어딘데? 내가 갈게!”]
“가서 말씀드린다고 그랬죠?”
강찬의 음성이 낮게 깔리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강찬은 통화를 끊어버렸다.
몸뚱이의 주인 아이가 심약한 이유 중에 저 호들갑도 한몫했을 거란 생각에 짜증이 밀려왔다.
“어쨌든 사람을 죽이거나 자살을 한 거보단 낫잖아.”
혼잣말로 핑계를 만든 강찬은 양배추를 잘게 썬 것까지 모조리 먹어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마친 강찬은 조금 더 걸은 후에 편의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담배를 하나 물었다.
“후우.”
이 맛이다.
날아드는 먼지와 언제 달려올지 모르는 총알이 없는 세상, 울긋불긋한 옷에 짧은 치마, 늘씬한 몸매. 고급 차들이 널린 세상을 보며 강찬은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원하는 것을 얻은 거네.’
전에 그랬다. 먹고 살 걱정없는 세상에서 공부만 하라 하면 정말 잘할 것 같았다.
‘졸업하거나 잘리면 그냥 프랑스로 갈까?’
공부도 때가 있는 거지, 덜컥 고3이 되어버리면 어쩌란 말이냐. 전에도 형편없던 공부다.
***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 강찬은 택시를 이용해 아파트로 돌아왔다.
‘비밀번호?’
번호키다. 병원에서 갓 나오는 바람에 기억하지 못했던 터라 강찬은 벨을 눌렀다.
안쪽에서 급한 걸음 소리가 들리고 문을 연 것은 유혜숙이었는데 뒤편에 당황한 얼굴의 강대경도 있었다.
강찬은 당당하게 안으로 들어섰다.
“앉으시죠. 잠시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남자라고 강대경이 볼을 씰룩하더니 주방에 있는 식탁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찬은 이참에 몸뚱이의 주인이 가졌던 억울함과 답답함을 풀어줄 생각이었다. 그는 아이가 속을 풀어놓았던 수학풀이 책을 꺼내어 식탁으로 움직였다.
“이걸 한번 읽어봐 주세요.”
강찬은 유혜숙에게 수학풀이를, 그리고 강대경에게 전화 메세지를 펼쳐주었다.
‘어디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봐라’ 하는 투로 수학풀이와 스마트 폰을 들었던 두 사람은 간간이 고개를 들어 강찬을 보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강대경이 스마트 폰을 내려놓았을 때 유혜숙은 채 반도 읽지 못했다. 그럼에도 입을 틀어막으며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한번 바꿔서 보세요.”
“됐다.”
“보세요.”
강대경의 볼이 다시 꿈틀했다. 그러나 그는 유혜숙이 건네준 수학풀이를 펼쳤다.
그가 마지막 페이지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학교에 갔었습니다. 그동안 밀린 담뱃값과 빵값을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후우.”
“작정하고 갔었습니다. 다시 여섯 명이 몰려오더군요 커터 칼을 들고 있어서…….”
“세상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칼은 선생에게 넘겨주었고, 학폭위란 것이 열린답니다.”
“그동안 왜 한 번도 이렇단 말을 안 했어?”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거기에 적힌 대로 자살하거나 다른 아이들을 죽이는 것보다는 이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강찬이 워낙 냉정하고 사무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람에 두 사람도 흥분을 많이 가라앉힌 모양이었다.
“너무 많은 학생이 봐서 이대로라면 학교에 다니기 어렵겠다고 하더라. 아버지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냐?”
아버지?
강찬은 새삼스럽게 강대경을 보았다.
무언가를 저질렀을 때 이렇게 내 편을 들어준 사람이 있었나? 술 먹고 때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으킨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도움을 주겠다는 건가?
“다친 아이들에겐 미안하다만 너만 무사하면 됐다. 네가 죽는 것도 싫고,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마.”
강대경은 이미 결심한 표정으로 유혜숙의 놀란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병원에 있을 때도 같은 생각이었다. 살아만 났으면 싶었지.”
“여보?”
강대경은 짧은 시선으로 유혜숙을 눌렀다.
“하지만 하나만 약속해다오.”
뭘까? 이런 감정은? 강대경으로부터 전해지는 진솔함이 강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아버지에게 먼저 얘기하겠다고 약속해라. 아버진 그걸로 만족하마.”
“싸움이 더 생길지 모릅니다.”
“죽이거나 죽지는 않을 거지?”
“그건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럼 됐다.”
살아 있어서 고맙다는 강대경의 뜻이 강찬의 가슴에 담겼다. 처절한 전투 끝에 소대장이나 중대장을 만나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내일부터 학교에 나오라고 했습니다.”
“위험하지 않겠냐?”
강찬이 씨익 웃자 강대경은 어처구니없는 얼굴이었고, 유혜숙은 질린 표정이었다.
“흐흠. 그것도 네가 알아서 해라.”
“이이는?”
“그만해. 당신은 그 일기를 읽고도 아들의 심정을 모르겠어? 사내자식들은 저렇게 눌리면 정말 죽고 싶어져. 애가 죽기를 바라? 아니면 살인죄로 교도소에라도 들어갔으면 좋겠어? 당신 친구 애들하고 찬이를 비교하지 마. 그냥 우리 아들이 좀 다른 거야.”
“내가 뭐랬어요? 그래도 고등학교는 나와야지요!”
강찬의 앞에서 유혜숙은 마지막 끈을 놓지 않으려는 것처럼 대꾸하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을 때였다.
- 삐리리리이. 삐리리리이. 삐리리리이. -
강대경의 전화가 용감하게 자신의 임무가 있음을 알렸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강대경은 무척이나 당황한 얼굴이었다.
유혜숙이 지레 겁먹은 눈을 하자 그는 놀라지 말란 뜻으로 짧게 고개를 저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음성이 연속 쏟아졌는데 강대경은 ‘어버버’ 할 뿐 말을 잇지 못했다.
강찬은 귀가 쫑긋했다.
아랍어다. 그것도 불어를 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약간 부드러운 톤의 아랍어. 십중팔구 프랑스에 사는 알제리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줘 보세요?”
“응?”
당황한 강대경의 전화기를 강찬이 당겨왔다.
“여보세요. 강대경씨가 바빠서 대신 받았습니다. 천천히 다시 말씀하세요.”
유창한 불어?
강대경과 유혜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비싼 영어 학원을 보냈더니 불어를 유창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이 급해. 지금 선적해서 보내준 차가 수량과 가격이 안 맞아서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고.”]
상대는 이쪽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역력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서둘러.”]
워낙 흥분을 잘하고, 한번 화가 나면 모조리 쏟아내는 버릇이 있어서 이럴 때는 이쪽도 강하게 나가는 것이 좋다.
“어이. 말 함부로 뱉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잖아.”
워낙 유창한 발음에 분위기까지 콱 잡고 나가니 상대가 움찔했는지 숨소리만 들렸다.
“보내준 차가 수량과 가격이 안 맞아서 통관을 못 한다는 데 무슨 소리예요? 뭐라고 답을 해주면 됩니까?”
“뭐?”
“급하다고 난린데요.”
강대경이 눈을 몇 번 굴린 다음이었다.
“오늘 도착할 차가 50대 있다. 아마 이쪽에서 보낸 서류와 물건이 안 맞는 모양인데 바로 확인해서 그쪽 세관과 사무실에 알려주겠다고 해라.”
강찬은 전화기에 대고 들은 대로 말을 전해주었다.
[“이쪽은 난리야. 어떻게 할 거야. 오늘 중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배송비랑 인건비 손해가 장난이 아니라고.”]
“잠깐 기다려.”
대놓고 거친 말투에도 상대는 반발하지 않았다.
강찬의 말을 전해 들은 강대경은 만약 서류가 잘 못 되어 손해를 보면 이쪽에서 물어주겠노라는 뜻을 밝혔다.
“물어주겠단다. 그러니까 손해가 얼만지 확인하고. 필요하면 내가 그쪽 세관에 직접 전화할 테니까 담당자와 전화번호 알려줘.”
[“뭐?”]
“담당자랑 전화번호 알려달라고.”
강찬은 불쑥 의심이 들었다.
감각이다.
이럴 때는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아니면 그쪽에 용병으로 일하는 내 친구를 보낼 테니 우선 해결해.”
이 자식들이 얕은수를 써?
“여차하면 세관을 아주 날려버릴 테니까 뭐가 문제인지 확실하게 알려주고. 어디야? 있는 곳을 대. 알제리 애들로 셋 보내주지.”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아! 됐다. 제대로 된 서류를 찾았다.”]
강찬은 상대가 들을 정도로 크게 피식 웃었다.
“어이. 다음부턴 서류를 좀 제대로 챙겨. 알았어?”
[“그러지.”]
상대가 전화를 끊자 강찬은 전화기를 강대경의 앞에 놓아주었다.
“제대로 된 서류를 지금 찾아서 해결되었답니다.”
묘한 긴장감이 식탁 위를 떠다녔다.
“밤마다 인터넷으로 익혔습니다. 요즘은 채팅사이트도 잘 되어 있고, 프랑스 사이트도 곧바로 들어갈 수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걸 믿으라구?
강대경의 눈빛이 강력하게 의사를 피력하고 있었으나 어쩔 것인가. 가르친 적 없고, 학원 보낸 적 없는 프랑스어를 척 듣기에도 현지인처럼 지껄이는데 말이다.
“그런 줄 모르고, 나는 네가 밤에 나쁜 거 보나 싶어 괜히 마음 졸였다.”
눈물 자국이 마르지도 않은 유혜숙이 눈빛을 빛내고 있어서 강찬은 무언가 섬뜩했지만, 그저 묵묵하게 있었다.
“지금 거래하는 곳 말고 다른 쪽을 알아보세요.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고 덤터기를 씌울 생각이었던 것 같으니까요.”
강대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맛을 다셨다.
“다음 달에 프랑스 현지에서 사람이 셋 들어온다. 그쪽 차를 판매하기로 했거든. 조건이 워낙 좋기는 하다만 그 일이 끝나면 바로 바꾸도록 해 보마.”
“그러세요. 방에 있겠습니다.”
“그래라.”
얼떨결에 강대경이 허락하였고, 강찬은 방으로 향했다.
“여보! 우리 아들이 사실은 천재 아니에요?”
“저 정도면 적어도 현지에서 십 년은 살아야 가능한 언어 실력인데. 요즘 아이들은 정말 빠른 건가?”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배웠겠어요? 이참에 컴퓨터를 바꿔 줘야 하나? 아 참! 외고 다니는 성희네랑 브런치 먹을 때 프랑스 사람이 하는 식당에 가야겠다. 제 자식 자랑하는 게 보기 싫었는데 잘 됐다!”
손뼉을 마주치는 유혜숙을 보며 강대경은 ‘나도 당신처럼 단순했으면 좋겠다.’ 하는 말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