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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블랙필드.
강찬이 두 번째로 의식을 차렸을 때는 뒤통수와 목 말고도 코가 무지하게 아팠다.
“무우우우울.”
“선생님!”
‘제발 부르지만 말고 물을 달라고.’
“무우울.”
잠시 소란스러운 다음에 그의 입으로 마침내 물기가 느껴졌다. 물을 넣어준 것이 아니라 젖은 헝겊을 물려준 것이다.
아무렴 어떠냐?
당장 타는 것처럼 갈라진 목구멍만 진정시킬 수 있다면 뭐라도 좋았다.
“운동하던 몸이라 그런지 확실히 빠르네.”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몸이긴 한데 운동을 하던 몸이란 소리는 처음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한국말을 하지?
조금이나마 물을 빨아들이고 나니 그만큼 정신이 드는 느낌이었다. 강찬은 억지로 눈을 뜨려 애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쯤 뜬 눈 속에서 눈동자를 굴릴 수 있었다.
병원이다.
복잡하게 연결된 기계들이 침대마다 붙어있었다.
코가 아픈 이유도 알았다. 커다란 노즐이 코를 통해 목구멍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보여요?”
강찬은 짧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여자 하나, 둘, 셋.
녹색 복장. 커트 머리. 단발머리. 그리고 묶은 머리.
160에서 조금 빠지는 키. 사발 가슴. 키위. 사과.
그는 본능적으로 상대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었다.
“물 좀.”
여자 하나가 능숙하게 새로운 거즈를 입에 물려주었다.
“퉤! 물 달라고.”
이것들이 누굴 훈련병으로 아나?
“아직은 안 돼요.”
또다시 입에 젖은 거즈를 물려주었는데 뱉었던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제법 물기가 흥건했다. 그렇게 두 번이나 물을 보충하자 강찬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눈알을 움직여 좌우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목을 묶어놓았는지 고개를 제대로 돌리기 어려웠다.
“여기가 어디야?”
“정신이 들었어요?”
강찬은 짧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요?”
이것들이 누굴 바보로 아나?
“알아. 그러니까 이 목 좀 풀어줘.”
“목은 안 돼요.”
커트 머리에 키위 가슴을 한 여자가 단호한 음성으로 답을 했다. 아프리카에는 이런 시설이 없으니 분명 비행기로 옮겨왔다는 건데 그렇다면 시일도 꽤 지났으리라.
“내가 며칠 만에 깨어난 거지?”
“사흘이요.”
“이곳은 어디야?”
“삼성병원이에요.”
“한국, 삼성?”
카트 머리가 이상한 눈으로 강찬을 봤다. 스물일곱쯤 되어 보이고 작은 눈에 콧대만 높은 코를 가져서 참 뾰족한 인상이었다.
그때 수술복을 입은 의사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기분은 어때요? 아픈 데는 없고?”
압축 렌즈 안경에 밑으로 처진 눈, 이틀 정도 못 잔 것처럼 부스스한 몰골에 통통한 인상, 그리고 서른 초반.
“이것 좀 풀어주죠.”
강찬이 목을 움직이려 해 보았다.
“아직은 경과를 봐야 하고요. 당분간은 기브스를 하는 게 좋아요.”
의사가 대답할 때 딩동댕하는 벨이 울렸다.
“면회 잘하고, 부모님이 기뻐하시겠어요.”
부모님? 뭔 부모님?
의사가 가고 나자 잠시 뒤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찬아! 우리 찬이!”
파마머리. 사십 후반. 눈 크고, 코가 약간 들렸고, 키가 작음. 수더분한 인상에 무척 핼쑥함. 아줌마?
“엄마 보여? 엄마 알아보겠어?”
강찬은 눈을 껌벅이며 여자를 확인하려 애썼다.
모르는 여자가 엄마라고 달려드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꿈인가 싶기도 했다.
***
면회가 끝나고 다시 이틀이 흐르도록 강찬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 묻고 또 물어서, 듣고 또 들은 것을 종합해 보면 지금이 2010년이고, 이름은 강찬이 맞는데 신묵고등학교 3학년이다. 학교 5층 건물 옥상에서 떨어졌는데 나무에 걸렸다가 바닥에 거꾸로 떨어지는 바람에 병원에 왔고, 다행히 크게 뼈가 부러지지 않았지만, 일종의 기억상실과 과대망상 증상이 있다, 대충 이 정도였다.
아버지는 강대경, 어머니는 유혜숙.
외아들이고, 공부는 그럭저럭, 염병 말 잘 듣고, 운동을 좋아해서 꾸준히 했다.
***
“선생님. 우리 아들, 고칠 수 있을까요?”
유혜숙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그 옆으로 멋대가리 없이 키가 큰 강대경이 앉아 있었는데 침통한 표정인 건 마찬가지였다.
“우려했던 경추의 부상이 기적이라 할 만큼 경미한 것은 좋은데…….”
강찬의 담당 의사 허지환이 컴퓨터를 들여다본 후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정신과의 말로도 당장은 방법이 없답니다. 기억상실이야 이해하지만 아무래도 망상이 심한 것은, 죄송하지만 당분간 그저 감싸고 다독이시는 것이 최선입니다.”
고개를 떨군 유혜숙의 어깨를 강대경이 다독였다.
***
강남구 논현동의 초록 아파트에 들어선 강찬은 유혜숙이 이끄는 대로 얌전히 따랐다. 고급 승용차도 그렇고 아파트 주변의 모습도 그렇고 제법 여유 있는 살림이 분명했다.
701호.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강대경이 문을 열었고, 유혜숙이 현관을 들어서 왼쪽에 있는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강찬은 방에 들어서서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기억나니? 네 방이잖아?”
유혜숙은 또 눈물을 보였다.
“또 그런다. 잠시 쉬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쉬어라.”
강대경이 유혜숙을 다독여 밖으로 나갔다.
창가에 머리를 둔 침대와 그 반대쪽 벽에 놓인 책장과 옷장. 그리고 입구에서 바로 앉을 수 있게 된 책상, 그 위에 컴퓨터가 살림의 전부였다.
강찬은 벽에 걸린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꿈인가? 죽은 건가? 도대체 뭐지?’
그러고 보니 생긴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상에 앉은 그는 두 팔에 머리를 걸쳤다.
‘혹시 뒈진 놈들이 억울해서 저주를 걸었나?’
주술사?
웃기는 일이다. 그런 주술이 있다면 어떤 놈이 죽어 나자빠지겠는가. 게다가 강찬은 목이 잘려 죽은 주술사를 여럿 본 경험도 있었다.
“어후! 모르겠다. 일단 지내보자. 그러다 보면 답이 있겠지.”
강찬은 책상에 앉아 서랍을 뒤졌다.
“이 새끼는 담배도 안 피웠나?”
당장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담배였다. 이왕 뒤지기 시작하자 강찬은 이참에 몸뚱이의 주인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고 싶어서 책상과 책꽂이를 뒤지기 시작했다.
키는 179쯤 되고 근육이 제법 있는 것으로 봐서 약골은 아닌데 인상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딘지 착해 보이는 눈꼬리와 강대경을 닮아 끝이 둥글게 돌아간 콧날도 영 그의 취향은 아니었다.
강찬은 내친김에 책장에 꽂힌 책을 하나씩 펼쳐보았다. 참고서, 자습서, 문제집이 반복되어 한숨을 쉴 때쯤 강찬은 고개를 디밀고 책을 들여다보았다.
수학풀이라는 겉표지의 앞뒤 10페이지가량을 제외한 나머지가 잡다한 메모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 죽인다. 날 괴롭히는 놈들을 모조리 죽인다. -
‘이 새끼도 참. 죽일 거면 그냥 가서 죽여야지, 이렇게 증거를 남기면 어쩌냐?’
강찬은 침대에 걸터앉아 천천히 읽어보기로 했다.
- 오늘도 돈을 가져다줬다. 그렇게 운동을 했지만, 가슴이 떨리고 숨이 막혀 결국 못했다. 왜 그러지? 난 정말 멍청인가? 왜 그놈들 앞에만 가면 그렇게 가슴이 떨리고 숨이 막히지? -
‘뭐야? 이거 정말 따돌림당하고 뭐 그런 거야?’
- 내가 미영이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을 다 알면서 다른 놈들도 나를 욕한다. 비겁하다. 알면서 그런 거다. 다 죽일 거다. -
“휴후.”
강찬은 책을 덮어 침대 옆으로 던졌다.
갑자기 담배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
강찬은 무려 일주일이 지나서야 아파트란 삶과 문물에 그나마 적응할 수 있었다.
당최 비데에 정수기도 엿 같지만 당장 손에 쥔 휴대전화를 어떻게 쓰는지 아는 데만 제법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텔레비전이었다. 그동안 강찬은 최대한 말을 자제하며 밥 먹고 거실에 앉아 이리저리 리모컨을 돌려가며 물정을 익혔다.
강대경과 유혜숙은 작정한 모양으로 그를 지켜보기만 했는데 걱정하는 표정만은 감추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난 다음에야 강찬은 스마트 폰이라 불리는 휴대전화의 사용법을 제대로 익힐 수가 있었다.
물론 그 외에도 궁금한 것들은 많았다.
‘놔두자. 하나씩 알아가면 되지.’
그러나 질문하지는 않았다. 그놈의 ‘엄마’ 혹은 ‘어머니’란 소리가 입에서 나오지 않는 탓이었다.
***
강찬은 집에 온 지 2주가 되어서야 어느 정도 삶에 적응할 수 있었다. 첫 주와 다르게 두 번째 주에는 주로 컴퓨터와 인터넷을 뒤지며 지냈는데 이것이야말로 강찬에 있어서는 가히 신세계와 같은 일이어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그럭저럭 이해하던 유혜숙이 강찬이 컴퓨터를 하는 것에 유독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다고 강찬이 마음에 둘 것은 아니어서 그는 잠을 줄여가며 새로운 세계를 마음껏 접했다.
***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강대경은 차 한잔을 마시며 유혜숙과 마주앉아 있었다.
“아직도 컴퓨터만 파고 있어?”
“아주 걱정돼 죽겠어.”
강대경은 대머리 예비증상이 분명한 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일단 놔둬. 살아 돌아온 게 어디야?”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는데 잘 안돼. 거기다 날이 갈수록 찬이의 눈빛이 무서워져서 그것도 걱정이야. 당신 보기엔 어때?”
“흠.”
강대경이 입을 뾰족하게 모으며 긴 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 생각을 하긴 했어. 가끔 눈길을 줄 때면 가슴이 철렁하던데, 쯧! 사고가 워낙 컸던 만큼 충격이 가시지 않아서 그럴 거야. 살아 돌아온 아들이잖아. 지금은 그냥 그것만 감사하자고. 중환자실에 있을 때 당신이 그랬잖아. 살아만 나면 이제 다신 공부니 뭐니 신경 쓰지 않겠다고. 그러니 우리 지금은 감사한 마음만 갖자. 응?”
유혜숙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잘까?”
그때 강대경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유혜숙의 눈치를 살폈다.
“이이는? 다 큰 애가 있는데?”
“살아났잖아. 우리 아들이 돌아온 기념으로, 응?”
강대경이 일어나 유혜숙의 손을 잡고 당겼다.
“왜 이래?”
“남자는 다 애 아니면 개라면서? 오늘 밤 난 개다.”
유혜숙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얼른 자자.”
“이 판국에 그게 생각나?”
“찬이 온 날부터 생각나더라.”
“이그!”
그러나 유혜숙은 침대로 이끄는 강대경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
강찬은 컴퓨터 앞에 있었다.
2005년에서 2007년까지 아프리카 교전 내용.
그러나 강찬은 특별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프랑스 용병기록을 찾아볼 수도 없었으며, 그 외에 자질구레한 인명록을 뒤져도 얻는 것은 없었다.
“천천히 하나씩 알아보자.”
어차피 단번에 무언가를 얻을 기대는 하지 않아서 강찬은 숨을 고르고 천천히 다음 문장을 입력했다.
우우웅.
그런데 그때 그의 스마트 폰이 짧게 울었다. 소리를 죽여놓아서 그런 것이야 이해가 되는데 켜놓은 지 이틀 만에 처음 울리는 것이어서 강찬은 얼른 전화기를 들었다. ‘이호준’이란 이름으로 온 문자였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그가 문자를 확인하려 했을 때였다. 연달아 세 개의 메시지가 더 날아왔다.
[븅신. 너 집에 왔다며? 그런데 보고를 안 해? 죽고 싶어? 얼른 전화해.]
[내 말 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까불지 말고 얼른 전화해라. 지난 한 달간 밀린 돈도 챙겨오고.]
[야! 전화하라고! 죽여버린다!]
[야! 전화 안 해?]
강찬은 문자를 확인하며 피식 웃고 말았다. 전화라는 게 누구든 아쉬운 사람이 먼저 하면 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전화하라고 악을 쓰는 것을 당최 이해하지 못하겠는 데다 한편으론 내용이 우습기도 했다.
‘아버지나 어머니란 사람은 아들이 이런 꼴을 당했는데 전혀 몰랐다는 건가?’
우우웅.
[이 씨발 놈이. 카톡은 왜 지워놓고 지랄이야? 빨리 카톡 안 깔아? 전화부터 해라.]
“바쁘다아.”
강찬은 우선 전화부터 해보기로 했다. 그가 전화기 모양의 파란 그림을 터치하자 텔레비전에서 들었던 것과 비슷한 빠른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곧바로 음악이 그치더니 대뜸 욕이 흘러나왔다.
[“야! 강찬! 이 개새끼야, 너 뒈지고 싶어?”]
피식.
강찬은 그만 웃고 말았다. 근 칠 년 만에 처음 들어보는 욕이었다. 구대원들이 들었다면 아예 믿지 않을 일이었다.
[“너 웃었어? 이 새끼가 대가리가 터지더니 완전히 돌았구나! 야! 야! 대답 안 해?”]
“이호준?”
[“그래. 이 새끼야. 이제 정신이 좀 돌아 오냐? 병신같은 새끼가 빨리 대답을 해야지. 야! 너 돈 준비했어?”]
“무슨 돈?”
[“하! 이 존만이가 미쳤나? 병원 갔다 오더니 간이 부었어? 약 처먹고 주사 맞으니까 간이 부었냐고? 이 씨발놈아!”]
“흐흐흐흐흐.”
[“이 새끼가 근데 정말 대가리가 돌았나? 너 나와!”]
“꼬마야. 밤이니까 내일 보자. 어디서 볼래?”
[“야 이 씨발놈아!”]
“푸흐흐.”
강찬은 정말 귀여워서 웃었다. 마음 같으면 당장 나가서 어떤 녀석인지 얼굴을 보고 싶기도 했는데 이 밤에 나간다고 강대경과 유혜숙에게 설명하기도 싫었다.
강찬이 전화기에 대고 웃자 이호준은 미친 듯이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만하고 내일 전화해라.”
강찬은 전화를 끊고는 곧바로 전원마저 꺼 버렸다.
“휴후. 너는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살았던 거냐?”
그는 방의 한쪽에 걸린 거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강찬은 기회를 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잠시 나갔다 올게요.”
“어? 어디를?”
그가 먼저 입을 연 것에 놀랐던지 강대경이 덜컥 질문을 던졌고, 유혜숙은 씹던 것마저 멈춘 채로 그를 보았다.
“그냥 친구들 좀 만나고 여기저기 돌아보기도 하려고요.”
“그래! 그것도 좋지. 그래야지.”
애써 태연한 얼굴을 하는 강대경이 유혜숙을 보며 고갯짓을 했다.
“아버지는 출근하니까 이따가 엄마한테 용돈 받아서 바람 좀 쐬고 와.”
“예.”
그것으로 대화는 끝이었지만 강대경과 유혜숙의 얼굴에 깃든 흥분과 걱정만큼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온 강찬이 전화기를 켜자 실로 어마 무시한 내용의 문자가 오십여 통 쏟아졌다.
“푸흐흐.”
이번 것은 기가 막혀서 웃었다.
문자 수만큼이나 진동이 울리고 나서 강찬은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것들은 뭐야?”
그가 전화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릴 때였다.
우우웅.
[수업 끝나기 전까지 학교로 와라.]
짤막한 문자가 전화기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