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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오브블랙필드-1화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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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블랙필드.

훅하고 뜨거운 열기와 흙가루가 막사 안을 파고들었다.

“오늘 작전은 수니파 추종세력 SISS의 수뇌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아군은 우리를 포함해 총 다섯 개 구대 49명이며, 적들은 개별 무장을 하였고 예상병력은 대략 350에서 500명이다.”

부대장 샤흐란이 늘어진 지도를 지휘봉으로 짚어가며 작전을 설명했다.

“뭐래?”

“가만있어봐.”

알제리인 다예루가 프랑스어보다 조금 나은 영어로 묻자 강찬은 짧게 답을 했다.

“3구대는 진로개척과 엄호를 맡는다. 명심해라. 작전은 적의 수뇌 마살란을 사살할 때까지다. 작전에 성공하면 남은 적에 상관없이 철수한다.”

“차니?”

“확!”

다예루가 목을 집어넣으며 커다란 눈알을 굴렸다.

“출발은 30분 뒤에 한다. 질문 있나? 거기 강찬!”

말을 마친 샤흐란이 턱짓을 하자 시선이 일제히 강찬에게 쏠렸다.

“낙오시간이 전과 같습니까?”

유창한 강찬의 불어에 샤흐란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작전회의는 끝이다.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장비를 점검하고, 담배 하나 피우면 끝나는 시간이었다.

“차니!”

다예루는 민소매 밖으로 튀어나온 팔뚝이 강찬의 허벅지만 할 정도로 거구다. 대머리에 커다란 눈을 가졌는데 피부색이 검어서 눈과 하얀 이가 유독 밝게 빛나는 알제리 태생이었다.

한번 독이 오르면 물불을 못 가리고 그런 성격 탓에 절대 지고는 못산다. 그런 그도 구대장인 강찬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왔다. 자신보다 더한 독종이기 때문이다.

“다예!”

“예쓰.”

“죽여. 그리고 내가 말하면 빠져. 알았어? 죽인다! 내가 신호한다! 빠진다! 알았지?”

“오케이!”

수십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다예루는 강찬만 따랐다.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급박한 불어를 못 알아듣는 그에게는 강찬의 간단명료한 설명과 지시가 유일한 구명줄이었다.

치잇.“출발한다.”

분대장의 명령이 들려오자 강찬이 일어섰고, 구대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열두 명으로 구성된 구대에 아직 세 명이 충원되지 않았다.

한국인 구대장, 알제리인 셋, 호주인 하나, 미국인 둘, 프랑스인 둘이다. 공식 용어는 불어고, 무엇보다 강조하는 시험이지만 다예루는 강찬이 바득바득 우겨서 통과시켰고 결국 여기까지 데리고 왔다.

아프리카의 바람은 건조하고 뜨겁다.

숨을 쉴 때면 열기가 콧속과 폐를 녹이는 것 같아서 머플러로 코와 입을 덮는 것이 오히려 시원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아직 목적지까지 20분가량 남아서, 강찬은 상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철컹. 칫. 칫. 치이잇.

온도가 높은 날은 지포 라이터의 휘발유가 기화해서 화상을 입는 일이 종종 있고, 주머니 속에서 섬유마찰로 불이 붙는 사고도 생겼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는 지포 라이터에 석유를 섞는다. 대신 불이 단박에 붙지 않는데 어쨌든 휘발유가 다 날아가 불을 못 켜는 것보다는 나았다.

“후우.”

강찬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2007년.’

전투에 나갈 때마다 날짜를 헤아려 버릇하는 게 싫어서 의도적으로 연수를 반복해 떠올렸다. 하루살이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에서였는데 이젠 그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캡틴.”

“뭐?”

강찬이 워낙 한국말을 해 버릇해서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한국말이 통했다. 그리고 긴박한 순간에는 이상하리만치 정확하게 감정전달도 됐다.

“오늘 밤 하렘 오케이?”

“노케이!”

스미든은 무식한 미국놈이다.

놈은 늘 예쁜 프랑스 여자와 결혼해서 목장과 포도밭을 일구며 와인 공장을 세우는 꿈을 떠들곤 했는데 그가 그 꿈을 이루리라고 믿는 동료는 아무도 없었다. 단점은 여자를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것이고, 장점은 그렇게 여자를 찾아 나선 동안은 동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것 정도가 있었다.

“스탑.”

강찬이 혼잣말처럼 내뱉은 한마디에 구대원이 모두 굳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초원이다.

아직은 건기가 오기 전이라 군데군데 수풀이 남아 있었다.

바닥에 던진 담배를 발로 밟으며 강찬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뭐지?’

강찬이 지금껏 이 살벌한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유이자, 구대원들이 그의 말 한마디를 무기보다 믿는 이유는 지금과 같은 감각에 있었다.

목적지까지 2㎞.

구대원들이 필사적으로 주변을 살피며 강찬이 멈춰 선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헤이, 말콥!”

강찬은 말콥을 향해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눈을 가리킨 후 다시 열 시와 두 시 방향을 향해 손가락을 찍었다. 망원경으로 그 방향을 살피라는 것이다.

“노우. 차니.”

말콥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뭐냐?”

특정한 사유 없이 작전에 참여하지 않으면 운이 좋아야 강제 출국이고 재수 없으면 사형도 가능하다.

두근두근.

그런데 심장이 뻑뻑할 정도로 엄습해오는 이 불안함은 도대체 뭐란 말이냐.

강찬은 크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는 검지와 중지를 붙여 좌측에서부터 각자 자리 위치할 곳을 지정해 주었다. 그의 손짓에 이미 교전이 시작된 것처럼 신속하고 날렵하게 대원들이 몸을 움직였다.

파바박.

심지어 스미든은 앞이 훤히 보이는 가녀린 나무 뒤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점프까지 하며 뛰어들고 있었다.

‘저 개새끼!’

스미든이 만들어낸 흙먼지가 신호탄처럼 뽀얗게 피어오른 것을 본 강찬은 살의를 누르기 위해 숨을 두 번이나 거푸 쉬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다예루다.

“다예.”

뒤에 붙은 글자가 일본말 같다고 부르기 시작한 ‘다예’가 언제부턴가 대원들 전체가 그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그가 커다란 덩치를 좌우로 흔들며 재빠르게 다가왔다.

그을려 초콜릿 색이 되어버린 강찬의 얼굴에서 눈이 번들거렸다. 갸름한 얼굴에 큰 눈, 그리고 동양인, 거기에 호리호리한 몸을 보고 덤볐다가 몸뚱이 망가진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하기야 지금은 소문이 자자해서 덤비는 이들도 없지만.

“무조건 죽인다.”

“무조건?”

강찬의 입에서 무조건이란 말이 나왔다. 물론 한국말 ‘무조건’이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함께 지내며 세 번째 듣는 말이었으며, 그렇다면 오늘 하루는 정말 힘든 날이 될 것이란 의미였다.

다예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사람들이 무척 독한 민족이란 생각을 했다. 그가 아는 한국말 ‘무조건’은 보이는 모든 것을 죽이란 뜻이다. 어떤 민족이 그런 단어를 가지고 살아간단 말인가.

“뭐해?”

다예루가 급하게 지시받은 자리로 움직였다.

“흠.”

강찬은 여덟 명의 구대원을 활처럼 벌려놓은 가운데, 다예루의 뒤편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쉬울망정 후회하지 말자.’

지금의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를 대비한 생각이었다. 그간의 공로가 있으니 추방이 거의 확실했다. 이 빌어먹을 땅에서 부하들을 모조리 죽이느니 추방이 되는 것이 낫다.

처음엔 그도 우연인 줄 알았다.

그러나 감각을 무시했다가 죽을 고비를 만나고, 거기에서 몇 차례 동료들을 잃고 나자 생각이 바뀌었고 효과도 거의 완벽했다.

피융. 피이이융. 피융. 피유우웅.

그때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니!”

말콥이 망원경을 내던지다시피 내리며 그를 불렀다.

강찬도 이미 보았다.

걷고 있던 거의 모든 아군이 저격수의 총에 쓰러지는 것을 말이다.

“씨발.”

함정이다. 완벽하게 빠진 것이다.

“어떤 개새끼가.”

이 정도라면 분명 내부에서 정보가 샜다.

강찬이 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서 적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물처럼 널따랗게 둘러싼 채로 말이다.

“잘 들어!”

이럴 땐 무조건 한국말이다.

“무조건 죽여!”

강찬이 동료들을 쭉 훑어보았다.

“퇴각은 알파킬로. 알았어? 퇴각은 알파킬로.”

출발 전에 강찬이 따로 지정한 장소였다. 강찬이 구대장이 되고부터 정한 방식이어서 본부에서는 당연히 모르는 곳이다.

이 빌어먹을 용병은 퇴각시각이 지나면 구출이 없다.

그래서 강찬은 늘 따로 장소를 지정하고 그곳에서 기다렸다가 별도로 합류하곤 했다. 그가 엄청난 공을 세우고도 여태 구대장인 이유고, 대원들이 그의 말이라면 죽음을 각오하고 따라나서는 이유였다.

“차니!”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다예루는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며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오늘 노케이?”

“모조리 죽여!”

다예루가 커다란 주둥이를 길게 벌리며 하얗게 이를 드러냈다. 그도 알았다는 뜻이다. 강찬이 이렇게까지 악에 받쳐 있는 의미를 말이다.

강찬은 얼른 시선을 돌렸다.

열 걸음만 다가오면 적의 얼굴을 구별할 거리다. 두건으로 앞을 가리고 터번의 끝을 왼쪽에서 턱으로 돌렸으니 수니파가 맞다.

“몽!”

강찬이 손가락 두 개를 붙여서 11시 방향을 가리키며 악을 썼다. 프랑스 이름은 길어서 전투 중에 부르기 어렵다고 이것도 잘라낸 것이다.

탱크를 잡을 때나 쓸 중병화기를 든 적을 가리키자 저격이 뛰어난 몽아쉘이 곧바로 그를 겨냥했다.

타아앙.

“야! 똑바로 못 쏴!”

“즈쒸 데졸레!”

철커덕. 타아아앙.

흙먼지가 일면서 유탄발사기를 들고 있던 적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와 동시에 강찬의 발밑에서 흙이 튀어 올랐다.

강찬은 빠르게 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익숙한 화약냄새가 코를 파고들며 표적이 곧바로 바닥으로 사라졌다.

타타타타타타탕.

각양각색의 총소리가 뒤섞여 귀가 얼얼했다.

‘500명.’

타아앙.

그가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하나씩 쓰러졌다.

‘총탄은 충분하고.’

강찬은 엎드려 있던 자세에서 몸을 뒤집어 상체만 들어 올렸다.

“몽!”

그는 좌측 검지를 세우고, 우측 세 손가락으로 둥글게 감쌌다. 작전은 더럽게 간단했다. 저격수 몽아쉘을 셋이 감싸서 엄호하란 뜻이다. 누군가 죽으면 착검한 총을 바닥에 꽂아 기대놓고 아예 엄폐물로 삼는다.

몸을 다시 돌린 강찬은 연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이 빌어먹을 땅은 총소리도 엿같이 울린다.

그는 가능한 한 빠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심장이 아직도 남은 것이 있다고 두근거리는 탓이다.

“뻑!”

순간, 스미든이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돌아볼 틈이 없다. 곁에 동료가 알아서 챙겨야 하는 때였다. 적들이 모조리 엎드리기 전에 한 놈이라도 더 죽여야 했다. 중화기를 든 적과 엎드린 적의 머리를 몽아쉘이 노리고 다른 구대원들은 가까이 오는 자를 죽인다.

70미터.

타앙. 타아앙. 타아앙.

저쪽에서 뭐라 지껄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조리 바닥에 엎드리고 더는 다가오지 않았다. 강찬은 그제야 총을 옆에 끼고 바닥에 붙다시피 스미든에게 다가갔다.

“염병. 많이 아프냐?”

스미든이 숨을 헐떡이며 그를 보았다. 또 다른 알제리인 압살라가 그의 오른쪽 배를 힘껏 누르고 있었는데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몰핀 줘?”

“노 몰핀. 차니. 허억. 허억.”

앞쪽에 구멍이 저 정도면 뒤로 한 뼘이 넘는 구멍이 나서 분명 내장이 흙에 닿았을 거다. 강찬은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니.”

강찬이 고개를 돌렸을 때 스미든은 그 무식하기 짝이 없는 시선으로 한 가닥 희망을 부여잡고자 애쓰고 있었다.

“나 노케이?”

“병신. 내가 누구야? 스미든! 후. 엠. 아이!”

스미든이 주둥이를 커다랗게 벌리며 미소 지었다.

“갓. 오브. 허억. 허억. 블랙 필드. 허어억. 하아아.”

그는 겨우 말을 마치고 커다란 숨을 내쉬었다.

압살라가 시선을 들어 그를 보았다.

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크르르르릉.

그때 요란한 기계음이 주변을 덮쳤다.

‘탱크까지?’

그런데 심장은 아직 요동치고 있다. 무언가 남은 위험이 더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대로 뚫고 나간다.’

적의 수뇌부가 숨어 있다는 본부로 갈 각오였다.

그가 막 상황을 설명하려 할 때.

퍼억.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염병……’

그리고 머리와 목이 찢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

강렬한 빛이 눈을 파고들었다.

뒤통수와 목이 부러진 것처럼 아팠고 온몸을 청소기로 빨아낸 것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죽진 않았나?’

눈을 뜨려 애썼으나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물. 물.’

목이 말랐다. 갈라진 논바닥을 삼킨 것처럼 목 안이 타들어 가고 있어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 여기요!”

‘물을 달라고…….’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누군가 손으로 눈을 뒤집는 것이 느껴졌는데 보이는 것은 여전히 하얀 빛밖에 없었다.

‘물을 달라고.’

“내 말이 들려요? 들리면 눈을 깜박여 봐요.”

‘멍청한 새끼야. 손을 놔야 깜박이지.’

이번에는 손을 잡는 것이 느껴졌다.

“손을 쥐어봐요.”

강찬은 물을 먹고 싶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해 손을 움직이려 애썼다.

“좋아요! 좋아!”

뭐가 좋은지, 연신 떠드는 소리가 들렸는데 정작 물을 주지는 않았다.

‘무울.’

강찬은 다시 잠이 드는 것처럼 의식이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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