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300화
300화 후일담. 땅, 금, 병 – 장작백과 (완결)
1. 개요
율도국 나성향교 교수인 니오후루 툰달리의 저서.
어째서 동방 문명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서방보다 앞서가는지, 서방에도 로마처럼 강력한 나라가 있었고 분명히 문명 수준도 뒤떨어지지 않았는데 왜 한참 늦게 각종 기술을 받아들인 에파스 대륙보다도 뒤처지게 되어버렸는지를 색다른 시각에서 다룬 책이다.
서문에서 저자가 쓴 내용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주제는 동방권에서는 다뤄진 지 오래된 주제이다. 다만 그때는 차별적 시각에서 분석했고, 그 분석 결과가 다시 차별의 정당화 수단으로 쓰였다는 한계가 있었다.
모든 이가 노력하면 군자가 될 수 있음은 명확하지만 필요한 노력의 정도는 전부 다르고, 그 평균치는 혈통이나 민족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이 그 당시의 주장이었다.
혈통적으로 동방인들과 가깝고 풍습도 비슷한 면이 있던 에파스 대륙의 원주민이 동방의 문물을 늦게 받아들였음에도 빠르게 교화가 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 근거로 내세워졌다. 반대로 서방인들은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문물이 있었고 동방의 문물도 에파스 대륙보다 더 일찍 접했지만 뒤처진 뒤처진 것을 이런 타고난 혈통의 문제로 여겼고, 이것은 또다시 서방인들이 태생적인 소인성을 극복하고 군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동방인들이 이끌어줘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이 서방인들에게조차 자학적으로 만연하고 있다면서, 문명의 차이는 혈통이나 민족이 아니라 지리적인 것이 요인이라는 것을 설명하고자 책을 썼다고 밝혔다.
2. 내용 요약
2.1. 긴 땅과 둥근 땅
동방과 서방 문명을 차별적으로 비교할 때 거의 언제나 거론되는 내용이 있다. 근세 이후 동방의 여러 나라는 중앙집권을 확고히 하고 안정된 환경 속에서 기술과 문화, 탐험에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서 발전을 이루었지만, 서방 국가들은 민족성 때문에 서로 갈라져 싸우기만 하느라 국력을 소모해서 늦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지리의 문제인데, 저자는 이것을 긴 땅과 둥근 땅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에우로파는 전체적으로 동서로 긴 지역이다. 일부 지역은 면적 자체는 넓더라도 산맥이 지나는 경우가 많아서 결과적으로는 긴 땅이 겹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긴 지형의 가장 큰 문제는 교류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물론 지중해가 있어서 배로 오갈 수는 있지만 지중해 역시 동서로 긴 데다가 중간중간 좁아지는 곳이 있어서, 해협 좌우의 육지나 해역 중앙의 섬을 지배하는 세력이 차단하기도 쉬웠다. 이러한 지리적 문제로 에우로파는 고대 로마 이후로 여러 작은 나라로 분열되었고, 통합해서 큰 나라를 이루더라도 중앙집권은 힘들었다. 안 그래도 거리가 멀어 기술 전파가 힘든데 이렇게 각 지역이 분열되고 그 안에서 또 나뉘어서 다투기까지 하니 기술이 퍼지기는 더욱더 어려운 일이었다.
반면에 동방은 전체적으로 큰 덩어리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산맥과 하천, 고원 등이 각 지역을 나누고 있다. 역사적으로 다소의 변동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러한 자연장벽을 기준으로 몽골 분지에는 몽골, 그 동쪽으로는 산맥을 경계로 금나라, 금나라 남쪽 송화강을 경계로 대한, 대한 서쪽으로 산해관 회랑을 경계로 청나라, 서북쪽 알티샤흐르 분지의 위구르스탄, 서남쪽 뵈 고원의 뵈첸포, 청나라에서 회하 이남으로 명나라, 그 서쪽 대리 고원에는 대리국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처럼 산맥과 하천, 고원 등이 각 지역을 나눈 것은 에우로파와 비슷하지만 나눠진 크기가 적당하고 형태가 둥글어 독자적 정체성을 가진 국가가 형성되기 유리했다. 거기에 주변으로 여러 나라를 접하게 되어 경쟁 요인이 되면서도 기술 전파는 빠르다는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즉 동방은 지리적으로 서방보다 중앙집권이 빨리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이런 지리적 이점은 에파스 대륙에도 적용된다. 북에파스와 남에파스를 나눠놓고 보면 각각 동방처럼 큰 덩어리를 이루고 있고, 대부분이 평야와 초원이면서도 산맥과 하천, 사막, 밀림으로 적당하게 나뉘어있다. 동방과 같은, 문화와 기술이 사방으로 퍼지기 좋은 지리적 조건인 것이다.
게다가 북에파스 중심부로 처음 이주해온 이들은 거리가 가까웠던 여진인들이 대다수였는데, 이들은 마침 초원에 익숙하면서 농사에도 능하고 각종 기술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런 여진인들의 기술은 비슷한 환경에서 이미 초보적인 유목을 하던 북에파스 초원 부족들을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가 그들이 서방을 단숨에 앞지를 수 있게 했다.
이러한 흐름은 후에 남에파스에서도 재현되었다.
2.2. 자원 접근성
각종 자원은 기술 발전의 재료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이동과 교역을 촉진하게 된다. 이 점에서도 동방이 지리적으로 유리했다.
우선 동방과 서방 모두가 원하던 자원인 향신료 산지인 남방이 있다. 동방 기준으로 남방은 해안선이 길고 섬이 많았다. 덕분에 섬 사이가 멀지 않고 기항지가 많아서 배로 오가기 어렵지 않으면서도 항해 기술이 쌓이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남방을 지나면 나오는 천축은 인구가 많아 수요도 많고, 여러 자원이 풍부한 곳이라 공급에도 도움이 되는 이상적인 교역 교역 대상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동방에서는 남방까지 갈 수 있으면 천축에 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서방은 달랐다. 천축에 가기에 육로는 거리가 멀고 중간에 큰 사막도 있는 데다가, 종교적으로 적대하는 강성한 회교 국가들이 막고 있기까지 했다. 그러니 해로로 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을 한참이나 돌아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지리적 한계는 결과적으로 서방의 향신료 교역을 동방처럼 다수의 상인이 활발하게 오가는 시장이 아니라, 소수의 모험가가 일확천금을 노리고 목숨을 거는 모험으로 만들었고, 자연히 항해 기술의 발달도 늦추게 되었다.
다시 동방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교역이 활발해진 남방과 천축에는 다른 중요한 자원도 풍부했다. 우선 보르네오국의 우수한 목재는 좋은 선박의 재료가 되었다. 이 선박들은 동방인들이 더 먼 곳을 탐험하고 이주할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는 뛰어난 군함으로서 활약하기도 했다.
또 천축 각지에서는 그야말로 땅에서 잡초가 자라듯 염초가 맺히는 지역이 많이 있고, 대양판의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조와국의 막대한 유황도 있다. 이 염초와 유황은 화약이 되어서 역시나 동방인들의 탐험과 전쟁에 도움이 되었다.
대양판의 화산활동은 다른 이익도 가져왔다. 바로 광물이다. 금, 은, 구리 등의 화폐 금속은 땅속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뜨거운 물의 열과 압력으로 지표 가까이 올라와 큰 광맥을 형성하곤 하는데 대한의 석견 은광과 아이누국의 구리 광산들이 대표적이다.
이 풍부한 화폐 금속들은 동방 전역으로 풀려 경제 발전을 촉진했고, 더 나아가서 에파스 대륙 진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3. 진출의 동기
애초에 서쪽으로 항해한 목적부터가 동방과의 교역이었던 극서인들에게는 에파스 대륙을 사방으로 다닐 필요가 없었다.
이스파니아 반도에서 해류를 타고 오면 바로 파나마 일대에 도착하는데, 파나마 일대에는 이미 동방에서 온 도자기와 향신료 등의 교역품이 가득했다. 아프리카 서부에서 가져온 상아를 팔아 그 교역품들을 사고, 다시 해류를 타고 에스파냐로 돌아가서 팔면 상당한 이윤이 남는다.
때문에 굳이 마땅한 교역품도 없는 에파스 대륙 다른 곳을 돈과 시간을 들여 탐험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다가 괜히 동방인들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오히려 교역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상인들 말고는 에파스 대륙에 갈 이유 자체가 딱히 없는 것이다.
반면에 동방인들에게는 에파스 대륙에 갈 매우 큰 이유가 있었다. 대양판을 접한 에파스 대륙 서안에는 부상 열도처럼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북에파스의 율도 금광과 남에파스의 포톡시 은광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금은 광산이 있던 것이다.
동방인들은 서쪽에서 왔으니 당연히 이 광산들을 발견하기도 쉽고, 발견하고 나서 채굴 목적으로 사람들이 이주해오기도 수월하고, 채굴된 금은이 다시 동방으로 가 경제를 발전시키기도 좋았다.
하지만 극서인들이 이 광산까지 오려면 넓디넓은 대륙을 횡단해야 하고, 그 사이에는 사막이나 밀림이 있는 데다가, 광산이 있는 서안 가까이 오면 대양판이 만들어낸 산맥까지 넘어야 했다. 채굴과 운반 이전에 발견부터가 어려웠던 것이다.
2.4. 기후와 질병
사실 서방에서 최초로 에파스 대륙을 밟은 것은 북에우로파의 해양인들이다. 그들은 북에파스 북동부에 정착을 시도했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다시 에파스 대륙에 온 에스파냐인들은 파나마 일대에 정착했지만, 역시나 곧 밀려나서 쿠바 열도에만 남게 되었다.
에파스 대륙 전역에 정착한 동방인들과 달리 서방인들이 정착에 실패한 이유는 바로 기후 때문이다. 흔히들 구세계라고 부르는 섬부 대륙, 에파스 대륙 모두 대륙 서안은 건조하면서 온난하고, 대륙 동안은 습하고 한랭한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섬부 대륙에서 에파스 대륙으로 건너가면 자신들이 살던 곳과 딴판인 기후 지역에 닿게 되는 것이다.
즉 제법 온난한 기후인 북에우로파 해안에 살던 해양인들이 건너간 북에파스 북동부는 분명 위도는 더 낮음에도 해양인들 고향의 내륙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추운 지역이니, 정착이 힘든 건 물론이고 정착할 이유도 없었다.
에스파냐인들이 정착한 파나마 일대는 기후는 반대였지만, 온대 지역에 살던 이들에게 덥고 습하고 질병이 창궐하는 열대지역은 정착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동방인들에게 에파스 대륙 서부는 고향보다 훨씬 쾌적한 땅이었다. 남쪽의 열대지역도 여진인이나 몽골인들은 적응하기 어려워했지만 대한인이나 대화인은 빠르게 적응했고, 같은 열대 기후인 대월국이나 안락국, 조와국에서 온 이들은 굳이 적응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수준이었다. 거기다 이미 오랜 기간 열대지역을 개간해온 이들이니, 개간하면서 정착하는 데에 큰 어려움도 없었다.
서방인들의 정착을 어렵게 한 다른 요인은 질병이다.
에우로파는 기후상 모기가 많지 않아서, 모기에 시달리던 동방인들처럼 향이나 모깃불로 모기를 쫓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다. 결국 서방인들은 모기가 옮기는 각종 질병들에 시달리면서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반대로 병을 옮겨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가축에서 유래한 전염병이 있고, 정착지의 에파스 대륙 원주민들이 그런 전염병에 취약했던 것은 동방과 서방 모두 비슷하다. 하지만 에스파냐인들은 따뜻한 기후와 높은 인구밀도 덕에 질병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이들이 옮겨온, 원주민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은 당장 적대하는 부족들과 싸울 때는 좋았지만 싸움이 끝나고 남은 우호적인 부족들도 모두 죽게 만들어 버렸다.
에스파냐인들이 진출을 시도한 파나마 동쪽에서 이 문제가 특히나 심각했는데, 원주민들이 몰살당하는 바람에 옥수수를 석회수로 처리하는 법은 배우지 못하고 종자만 에우로파로 가져가는 바람에 에우로파 각지에서 홍반병 환자 속출했고, 한동안 옥수수는 원주민 아닌 사람이 먹으면 병에 걸리는 작물로 여겨졌을 정도였다.
반면에 동방에서 처음으로 에파스 대륙에 정착한 이들은 아이누인과 여진인들이다. 이들은 해류나 거리 등의 조건이 에파스 대륙을 발견하기 좋다는 점은 에스파냐인들과 비슷했지만, 원래 살던 지역이 서늘하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서늘한 지역에 흩어져서 살다 보니 목축을 주로 하면서도 대창진에 취약할 정도로 치명적인 전염병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원주민들과 섞여 살더라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고, 이후 종두법까지 퍼지면서 원주민들도 각종 전염병에 내성을 얻게 되었다.
이처럼 질병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가진 에스파냐인들은 인구 부족으로 에파스 대륙 본토에 정착하고 개발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이후에 동방처럼 열대 기후에 익숙한 이들을 이주시키자는 생각을 떠올렸고, 실제로도 아프리카 서부에서 사람들을 데려오려는 시도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유사점이 많은 동방인들과 달리 서방인들과 아프리카인들은 문화적으로 크게 달랐고, 무엇보다도 배에 태울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있어서 많이 데려올 수도 없었다.
이렇게 서방인들은 에파스 대륙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2.5. 바닷길의 이점
서방과 에파스 대륙 사이의 바다보다 동방과 에파스 대륙 사이의 바다가 더 큰데 동방의 진출 속도가 더 빨랐던 게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다의 크기 대신 항해라는 요소에 집중하면 이런 의문은 풀린다.
서방에서 에파스 대륙으로 갈 때는 카나리아 제도를 지나면 마땅히 정박할 곳이 없다. 카나리아 제도 원주민들도 그리 항해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서방인들은 알아서 무풍지대를 피해가며 항로를 개척해야 했다.
반면 동양은 거리 자체는 멀어도 오히려 조건이 더 좋았는데, 대양에 있는 여러 작은 섬 덕분이었다. 동방에서 쉽게 접근 가능한 루손 열도의 동쪽으로는 벨라우섬, 차모로섬, 폰페이섬 등의 주요한 섬과 그 사이사이를 잇는 섬들이 그리 멀지 않은 간격으로 에파스 대륙 가까이까지 줄지어 있다.
이 섬의 원주민들은 항해에 능해서 서로 교류도 잦았고, 전부 타이완섬에서 기원한 이들이라 말도 쉽게 통했다. 섬 주민들과 우호 관계를 맺고 기항지를 만든 다음 원주민 몇 사람을 선원으로 들이기만 하면, 에파스 대륙을 오가면서 섬에서 섬으로 항해하는 것과 거기서 의사소통하는 데에 아무런 장벽도 없어지는 것이다.
2.6. 잉글랜드의 경우
이런 요소들을 조합하면 어떻게 잉글랜드가 에우로파에서 가장 먼저 동방화를 이루고 앞서나갔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 기존에는 강국인 이스파니아와 프랑스가 동방 세력에 맥없이 당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적극적으로 개혁했다는 것만이 강조되었고, 이것은 잉글랜드가 다른 에우로파 국가들보다 우월하다는 사상으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리적 조건의 영향이 컸다.
우선 북에파스 대륙에서 해류를 타고 에우로파로 오면 가장 먼저 닿는 곳이라는 이점 덕분에 잉글랜드는 이미 동방과 어느 정도 교류가 있었다. 7년 전쟁의 패배 이후 에파스 대륙에 교역 거점을 만들어서 극복하겠다며 크로아탄 일대에 무단으로 상륙했다가 처참하게 패배하고 쫓겨났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 이후 한동안 쇄국을 고수하던 잉글랜드가 동방화에 성공한 것도 지리와 관련이 있다. 포우하탄국이 에우로파에 진출하고자 함대를 이끌고 가서 잉글랜드를 강제로 개항시켰지만, 하필 그 직후 이로쿼이국과 분쟁이 생겨서 잉글랜드에 제대로 간섭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동안 잉글랜드는 개항을 두고 벌어진 귀족들 사이의 내전과, 동방의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여서 아서왕이 다스리던 영광스러운 시대의 위상을 되찾자며 일어난 카멜롯 혁명을 거쳐 동방화에 성공하게 된다.
잉글랜드가 이 사이에 일어난 다른 에우로파 지역의 혼란에 휘말리지 않은 것 역시 섬이라는 지리적 이점 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배해서 잉글랜드 본토를 제외한 모든 영토를 상실하긴 했지만, 한때나마 잉글랜드는 웨일스, 스코틀랜드, 에이레를 모두 병합해 대(大)브리튼을 재선포하고 홀란드를 번국이자 발판으로 삼아 에우로파 전역을 지배하려 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던 동력원은 잉글랜드 우월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잉글랜드인이 다른 에우로파인들보다 유전적으로 월등해서가 아니라 그저 지리적 조건이 좋았을 뿐인 셈이다.
3. 평가
이미 부정된 지 오래인, 한 인물의 행적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영웅주의적 역사관의 반대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역사관을 세운 기념비적인 책이다. 운명론적이고 결정론적이라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러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과 이래야 한다는 당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을 뿐이다.
소수지만 그저 실제로 일어난 역사에 지리적 요인을 끼워 맞췄을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그럼 진짜로 역사를 움직인 요인이 뭐냐는 질문에 비판자들이 마땅히 답을 내놓지도 못했고, 만약 그런 요인이 없다면 역사는 정말로 우연의 연속일 뿐인 게 되어 버린다.
애초에 역사라는 것은 비교 대상이 없는 물건인지라 이런 무의미한 비판이 주류가 될 일은 없어 보인다.
작가의 말
공상하던 것을 글로 옮겨보려고 시작했던 게 이렇게 300화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장편을 쓰는 것도 연재하는 것도 처음이라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보아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리며, 언제가 될지는 확실치 않지만 차기작에서 더욱 좋은 글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