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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296화 (296/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296화

296화 후일담. 칠주도 주요 관광지 안내

[칠주도 부별 주요 관광지 안내 요약본]

1. 일기부

일기부는 중심 고을인 일기목이 있는 일기도를 비롯한 칠주도 서북쪽의 섬들과 칠주도 본섬 서북부 해안으로 이루어진 부입니다. 육로로 오가기보다는 선박으로 오가는 게 더 수월한 지역들을 묶어 만들어진 부답게 일기부는 항구와 교역소를 중심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시간이 흘러 선박 기술이 발달하고 교역로가 바뀌면서 기항지로 번성하던 일기부는 경제 중심지로서는 다소 쇠퇴했지만, 오랜 시간 쌓아온 문화를 기반으로 관광 명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1) 부상백 박물관(대마군)

칠주도만이 아니라 대한의 많은 고을이 양녕공과의 관련성을 내세우지만, 그중에서도 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대마군입니다.

양녕공이 양녕대군이던 당시 부상백으로서 가장 처음 받은 영지가 바로 대마군이었고, 주민들 역시 양녕공이 해적들을 소탕하고 본토에서 데려와 새 터전을 마련해준 화전민들의 후손이어서 그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그런 대마군 시가지의 가장 좋은 자리, 대마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양녕공 사당 옆에 지어진 이 부상백 박물관은 그 이름대로 양녕공과 연고가 있거나 사당에서 전해지던 유물들의 전시는 물론이고, 대마군의 역사에 관해서도 종합적으로 다루는 박물관입니다.

2) 간척 기술 박물관(대마군)

대마군 중부, 천모만 동쪽의 넓은 평지는 6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복잡한 해안선과 섬으로 가득한 바다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양녕공의 지시로 대마군 주민들이 섬과 산을 깎아 바다를 메우면서 육지가 된 것입니다. 물론 그 모든 땅이 한꺼번에 전부 간척된 것은 아니지만,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양녕공 당대에 이미 자고 일어나보면 한 마지기씩 땅이 생긴다고 표현될 정도로 간척 속도가 빨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마군 주민들은 이런 뛰어난 간척 기술로 대마도만이 아니라 칠주도의 다른 고을, 특히 좌하부 남쪽 해안을 간척하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웠습니다.

부상백 박물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곳 간척 기술 박물관에는 각종 간척 기술과 그 역사는 물론, 간척 이전의 천모만 일대 모형 등의 다양한 전시품이 있습니다.

3) 구 척동상단 대마지부 건물(대마군)

양녕공 이후로 수백 년간 대마군은 대한 동부 해운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고 대마군을 중심으로 본토, 칠주도, 거솔도, 대화국은 물론이고 아이누에 이르기까지 대한해를 오가는 거의 모든 교역을 관리했던 곳이 바로 이 척동상단 대마지부였습니다.

척동상단이 해산되면서 이곳 대마지부 건물도 민간 상단으로 넘어갔지만, 그 이후로도 백여 년간 그 민간 상단의 본부로서 기능했습니다.

몇 년 전 상단 본부가 석주목의 신축 건물로 옮겨가면서 수백 년에 걸친 상단 건물로서의 역사는 끝났지만, 내외부 모두를 양녕공 당시의 모습에 가깝게 되돌리는 복원 공사를 거쳐서 척동상단 대마지부와 대한해 해상 교역의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으로 새롭게 개장했습니다.

2. 석주부

칠주도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인 석주부 일대는 칠주도에서 양녕공이 가장 오래 머무른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한때 바다였던 냉천 지역이 간척으로 육지가 된 것처럼 급격한 발전을 거치면서 사라진 것도 많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습니다.

1) 축자행궁(석주목)

양녕공이 축자후로서 칠주도를 다스리던 곳이고 이름도 행궁이지만 사실 양녕공 당시에는 궁궐이 아니라 석주목 관아로만 썼던 곳입니다. 하지만 당대에 이미 양녕공의 궁궐로 여겨졌고, 양녕공이 칠주도를 떠난 뒤 부윤들이 새롭게 관청을 지어 그곳을 관아로 쓰면서 정말로 행궁의 지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석주목 일대에 있던 사당 건물들을 옮겨와 만든 축자행궁의 건물들은 대한과 옛 일본의 건축 양식이 섞인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어 예술적, 건축학적, 역사적 가치가 매우 뛰어날 뿐만 아니라, 사진 촬영 장소로도 인기가 많습니다.

2) 성복사(석주목)

칠주도가 대한 땅이 되기 전부터 있었던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양녕공의 칠주도 정복 당시에 많은 역할을 했고, 충신을 여럿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석주 등씨 가문의 원찰이기도 합니다.

칠주도가 일본 땅일 당시부터 전해지는 법구나 현판 등의 유물이 많았다고 전해지지만, 크고 작은 화재를 거치며 소실되어 아쉽게도 남아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3) 석주부 석탄 박물관(원하현)

석주부 동부에는 석주탄전으로 불리는 대규모 석탄 산지가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석탄 사용이 줄면서 석탄 산업도 쇠퇴했지만, 석주탄전에서 채굴된 석탄은 대한의 산업 발달에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특히 전국 각지에 철도가 깔리던 시기에는 대한 남부의 기차는 석주부 소석탄을 써서 만든 철로 위에서 석주부 석탄을 때지 않으면 갈 곳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석주탄전의 석탄을 각지로 옮기던 수운의 중심지였던 원하현의 석주부 석탄 박물관에서는 석주탄전의 발견부터 지금까지에 이르는 역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3. 대분부

칠주도 동부의 대분부는 일기부나 석주부처럼 큰 군현이 있지는 않지만,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양질의 온천이 많아 겨울철 휴양지로 인기가 많습니다.

1) 과생온천(속견현)

속견현의 과생온천은 그 유서가 깊고 온천 수질이 좋은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가장 높은 곳에 있던 객실을 개조해서 만든 전망대에서 보는 경치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앞바다인 대분만에는 과생도라는 섬이 있었고, 과생온천이라는 이름도 과생도가 잘 보이는 곳이라서 유래한 것입니다.

과생도는 지진으로 지반이 액상화되어 하루 만에 가라앉아버린 섬으로 유명한데, 전망대 벽면에는 객실이던 시절 만들어진, 과생도가 가라앉기 전의 대분만 경치를 그린 벽화가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문화재 보존을 위해 원본 벽화는 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정밀복제된 벽화가 대신 걸려있어서 전망대에서 보이는 경치와 벽화의 풍경을 비교해보는 묘미는 예전과 다름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4. 동사부

칠주도 동남부의 동사부는 수려한 산지와 아름다운 해변, 오랜 역사를 두루 갖춘 칠주도의 대표적인 휴양지입니다.

1) 정가왕 문화지구(동사목)

칠주도 정복 당시 양녕공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백성들을 잘 보살펴달라고 했다는 일화로 유명한, 의자왕의 고손자인 정가왕의 사당을 중심으로 한 전통 건축 보존 지역입니다.

다시 대한의 백성이 되기까지 수백 년간 삼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왔던 동사부 사람들은 그 사실에 강한 자부심이 있고, 대한의 역사와 기술, 문화를 익히고 계승하는 데에 열의가 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유무형의 문화재가 전승되어온 중심지인 정가왕 사당 일대에 지정된 정가왕 문화지구는 평소에 방문해도 충분히 보고 체험할 것이 많지만, 열흘에 걸쳐 거행되는 정가왕과 그 아들들의 제사가 있는 12월에 방문하면 더욱더 알찬 관광이 가능합니다.

5. 녹주부

녹주부의 역사는 일본의 태수였던 심구풍이 양녕공을 통해 대한에 귀순하고 초대 녹주백이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첫 백여 년간은 녹주 심씨가 녹주백을 세습하며 통치했지만, 조정의 통치가 제대로 닿지 않는 곳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대소신료들의 건의에 따라 조정에서 파견된 승상이 녹주백을 보좌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몇백 년에 걸쳐 녹주백의 실권은 승상에게로 넘어갔지만, 녹주 심씨 내에서 누가 녹주백이 될 것인지를 둘러싼 정치싸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끝에 마침내 152년 전, 소모적인 싸움에 지친 녹주백 심무구가 가문원들의 동의를 얻어 작위 세습 권한과 녹주부 통치 권한을 포함한 녹주백의 작위를 조정에 바치고, 이후로는 조정에서 녹주부윤을 직접 임명하게 되면서 대한 최후의 내번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제외하고는 역사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한적하고 평온한 농업 지역인 녹주부지만, 천축 교역을 둘러싸고 서방 각국과 싸웠던 7년 전쟁 당시 충무공 휘하에서 용맹하게 싸운 군인들 대다수가 이곳 녹주부 출신이기도 합니다.

1) 어모도 국립공원(어모현)

녹주부 남쪽 바다, 웅모도 서쪽에 있는 어모도는 이끼 낀 거목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게 들어선 원시림으로 잘 알려진 섬입니다. 수령 천년은 가뿐하게 넘기는 어모도 삼나무들은 그 목질이 뛰어나 한때는 어모현의 특산물로서 벌목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보호를 위해 벌목이 금지되었고 강풍이나 태풍 등 자연적인 요인으로 넘어지거나 부러진 나무나 가지의 일부만이 환경성의 허가를 거쳐 유통되고 있습니다.

어모도 국립공원에는 이런 원시림 외에도 섬 서북쪽과 서남쪽의 바다거북 산란지, 폭포 등 많은 명승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6. 포전부

칠주도 중앙부의 포전부는 다양한 품종의 귤, 넓게 펼쳐진 목초지의 유서 깊은 목장, 그곳에서 육종된 세계적인 준마 품종, 활화산 등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1) 구중산(아소현)

포전부의 동쪽이자 칠주도의 중심에 있는 구중산은 먼 옛날 화산이 폭발하며 생겨난 거대한 분지 안에 화산이 또 솟아올라 만들어진 세계적인 규모의 활화산입니다.

구중산 일대는 온천이나 등산, 자전거 도로 등으로도 유명하지만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화산활동이 심하지 않을 때만 접근 가능한, 황량하고 깊은 분화구 안에서 유황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으로 유명한 구중산 화구 관광입니다.

한때는 이곳 구중산에서 생산되는 유황이 대한의 각종 화학 공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조와국에서 고순도의 유황이 더욱 저렴하게 들어오면서 지금은 공업용보다는 입욕제로 더 많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7. 좌하부

일기부 육지 지역과 석주부 사이에 있는 좌하부는 간척으로 만들어진 남쪽의 넓은 평야의 목화 농장, 서남쪽 산지의 거대한 차 농장, 서북쪽에서 생산되는 고품질 도자기 등을 바탕으로 존재감 강한 칠주도 고을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인지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1) 도산군 도자기 특구(도산군)

400여년 전 공주부 공주목 출신 도공인 이삼평이 온천에 갔다 오다가 우연히 도토를 발견하고 가족과 제자들을 데리고 와 정착했고, 산 하나가 전부 백자토로 이루어져 있다시피 하다며 도산마을이라고 이름했던 것이 도산군과 세계적 명품인 도산 도자기의 시작입니다.

초기에는 소박한 실생활용 도자기가 대부분이던 도산 도자기지만, 마침 명나라에 혼란기가 찾아오고 세계 각지로 팔려나가던 명나라산 고급 도자기의 공급이 줄어들면서 그 수요를 파고들어 고급 도자기의 생산을 늘리게 됩니다.

명나라의 혼란기가 끝나고 다시 도자기 수출이 활발해졌을 때에는 이미 도산군에서 생산된 도자기가 북쪽 항구와 평호도 교역소를 거쳐서 세계 각지로 판매되는 유통망이 자리 잡은 뒤였습니다.

지금도 도산군 각지에는 크고 작은 가마와 공방이 쉴 새 없이 각종 도자기를 구워내고 있어서 직접 보고 구매하거나 각종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백자로 화려하게 치장된 사당이나 사찰 등의 볼거리도 풍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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