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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245화 (245/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245화

245화

1444년 7월 중순 모일.

한성부. 양녕대군 사저.

몇 달만에 방직감에서 돌아온 양녕은 집에 이유를 초대해 조촐하게 둘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축하한다. 역시 너의 공로가 실로 컸음을 주상께서도 알고 계신 것이야."

양녕의 말에 최근 진양대군에서 수양대군으로 개봉된 이유가 기쁜 얼굴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것도 다 백부께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양녕이 따라준 술잔을 비운 이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백부께서 이번에 방직감에 가셔서 면포 기술을 크게 발전시키고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척동상단과 중신들은 물론이고 아바마마까지 기뻐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것들을 하신 겁니까?"

"족답직기를 개량해 비저라는 것을 만들어 달았다. 그것으로 면포 생산량이 크게 늘었지. 몇 대만 만들었을 뿐인데도 방직감에 있던 실들을 전부 써 버릴 정도였으니까."

"아, 그 폭이 엄청 넓은 면포가 백부께서 만드신 것이었군요. 하긴, 그렇게 넓은 걸 금방금방 짜낸다면 실이 부족해지는 것도 당연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서 다음으로는 실 만드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방적기를 개량했다. 물렛가락을 네 개에서 열여섯 개로 늘렸을 뿐이었지만 효율이 네 배가 된 덕에 방직감에 있던 목화솜도 전부 실로 만들어서 면포를 짤 수 있었지. 하지만 그랬더니 이번에는 재료가 없더군."

"이제 알겠습니다. 이번에 일본에 목화 재배 기술을 전수한 것이 그것 때문이었군요?"

양녕은 이유의 말에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계산해 보니 이대로는 작년만큼 목화솜을 생산하더라도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전부 면포가 되는 탓에 방직감이 놀게 되지. 하지만 일본에서 목화솜을 사 오면 꾸준히 면포를 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목화솜이나 면포 값이 폭락하거나 폭등해서 백성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도 없다는 결과가 나오더구나."

"다행입니다. 다른 폐해 없이 면포 생산만 늘어난다면 나라에 큰 이익이 되겠지요.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일본에서 목화솜을 사오려면 재배 기술을 전해 줄 뿐만 아니라 목화 씨앗도 같이 줘야 하지 않습니까? 그 양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인데 다 충당이 되었나 해서 말입니다."

"물론이다. 원래도 목화 씨앗은 다음번 농사지을 만큼 빼놓더라도 많이 남는 편이었어. 내년에는 삼남과 칠주도에서도 목화 농사를 조금 더 크게 할 예정이라 그만큼은 추가로 더 남기고 나머지 목화 씨앗만을 팔았지만 그래도 충분하더구나."

"목화 씨앗에서는 기름을 짤 수 있다고 들었는데 씨앗이 그냥 남는단 말입니까?"

그 말에 양녕이 웃으며 말했다.

"네 말대로 목화 씨앗에서는 기름을 짤 수 있다. 하지만 냄새가 그리 좋지 않은 데다가 독까지 있어. 잘 걸러내면 냄새는 어떻게 잡을 수 있지만, 독은 어찌할 방법이 없지."

"독이 있단 말입니까?"

"사내가 그 기름을 자주 먹으면 아이가 잘 들어서지 않게 되는 독이다. 그게 백성들 사이에서는 목화 씨앗 기름에는 고자 되는 독이 들어있다는 식으로 퍼져 있지."

그 말에 이유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사내들이 기겁을 할 만하군요."

"그렇지. 그게 그리 무서운지 등잔 기름으로도 안 쓴다더구나. 차라리 아주까리 농사를 따로 지어서 기름을 짤지언정 목화 씨앗은 기름낼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해. 덕분에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는 사찰에서 목화 씨앗을 싸게 사 가서 등잔 기름으로 유용하게 쓰곤 한다더군."

"목화 씨앗이 남는 이유가 있었군요. 이제 일본에서도 목화 농사를 짓게 되었으니, 일본 승려들도 기름 걱정을 덜겠습니다."

그 말에 양녕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참, 내가 없던 동안 뭐 별다른 일은 없었느냐?"

"별다른 일이라……. 아, 비우진이 비우군으로 승격되었습니다. 발해의 옛 도읍이자 그 시조의 사당을 지을 곳이니 격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대종백의 주장이 있었지요."

"그럼 이제 경원부에 속한 고을 중에 진은 하나도 없고 목, 군, 현만 남게 되었구나. 정말로 확실히 조선의 땅이 되었다는 실감이 나. 또 다른 것은 없느냐?"

"국조들을 모시는 사당, 그러니까 십이전을 이루는 각 사당 건물은 그 나라의 양식대로 짓기로 했습니다."

이유의 말에 양녕이 흥미를 보였다.

"그 나라의 양식대로라니?"

"말 그대로입니다. 숭덕전은 신라의 양식으로, 숭명전은 고구려의 양식으로 하는 식이지요."

"고려 때 몽골과 전쟁한 이후로 어지간한 옛 건물은 전부 타서 없어져 버렸는데 그게 가능하단 말이냐?"

"마침 전국에서 국보가 될 만한 물건들을 조사하기 시작한 덕분입니다. 드물지만 무사한 건물이 있기도 하고, 새로 지었지만 이전 건물의 양식이 남아 있는 건물도 있습니다."

"그 건물들을 참고하는가 보구나."

"건물들만이 아닙니다. 당시의 건물을 그린 그림을 참고해서 모습을 알아낼 뿐만 아니라 터만 남은 건물에서도 단서를 얻고 있습니다."

"호오라. 신기하구나. 어떤 방법이냐?"

양녕이 관심을 보이자 신이 난 이유가 들뜬 얼굴로 말했다.

"저도 정확한 방법은 모르지만 기와 조각이 발견되면 그걸로 기와 크기를 알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주춧돌이 있으면 기둥 지름과 간격을 알 수 있고, 그 둘을 계산하면 지을 때 어떤 자를 썼는지 알 수 있는데, 그러면 기둥의 높이도 추측할 수 있다 합니다."

"그런 것을 전부 종합하는 것인가. 잘만 하면 양식을 알아낼 뿐만 아니라 없어진 건물을 옛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다시 지을 수도 있겠어. 정말로 신기하구나."

"그렇지요? 저도 정말로 신기합니다. 만일 그렇게 알아낸 건물로 십이전을 각 나라의 양식대로 짓는다면, 정말로 조선이 삼한 땅의 모든 천명을 아울렀음이 잘 드러날 것입니다."

"허허허. 네가 정말로 큰 관심을 보이는구나."

양녕의 말에 이유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이렇게 지금 남은 흔적으로 미루어 옛 모습을 알아내는 것이, 꼭 말을 분석해 문법을 정리하는 것과 닮아서 흥미가 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이것도 문법처럼 어떤 학문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충분히 학문이 되고도 남을 것 같으니, 네가 한번 정리해 보면 어떻겠느냐?"

"제가 말입니까?"

"그래. 내가 도와주마. 우선 이름이 있어야겠군. 옛것을 고찰하는 학문이니, 고고학이라 하면 어떻겠느냐?"

* * *

1444년 8월 초순 모일.

상경부. 금나라 궁궐.

금나라의 한 야르하치는 접견실에서 훌룬부의 버일러 도르호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그대를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화약에 관해서 좀 논의하고 싶은게 있어서요."

"화약이라면 몽골에 파는 것과 관련된 것입니까?"

재작년에 만둘과 밀약을 맺고 화약 사용법을 가르쳐 주고, 작년부터는 몽골에 화약을 조금씩 팔기 시작한 것을 떠올리고 물어본 것이었지만, 야르하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오. 조선과 관련된 것이오. 정확하게는 국경에 관한 것이지."

이 시대의 국경은 바다나 강처럼 자연적으로 구분되어있거나, 장성처럼 인위적으로 선을 만들지 않은 다음에는 점으로 이루어진 불명확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조선만 하더라도 일본과는 적간관의 바다, 명나라와는 요하를 국경으로 삼아 명확한 경계를 이루고 있었지만, 금나라와는 별다른 자연지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별도로 국경을 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변경에 분포한 요새들이 두 나라의 통제권을 흐릿하게 나타낼 뿐이었다.

"조선이 또 요새를 짓기 시작했다는 보고 때문이시군요."

"그렇소. 이번에 짓는 요새도 역시 높이는 낮지만 대포로 철저히 방어되는 구조라 하오. 이게 그냥 조선이 지금 국경을 굳히려는 생각이면 좋겠지만……."

"조선이 심양성에 부여 시조의 사당을 지으려 한다는 보고도 같이 들어왔지요. 언젠가는 부여성으로 옮겨 지을 것이라는 소문도 같이 말입니다."

도르호치의 말에 야르하치가 끄덕였다.

"그렇소. 지금 조선이 가장 북쪽에 지은 요새라고 해도 명나라 시절 삼만위가 있던 자리에서 조금 북쪽에 있을 뿐이오. 그런데 부여성은 그것보다 한참 북쪽, 차라리 이곳 상경부에서 더 가까운 곳에 있지. 만일 조선이 정말로 부여성을 얻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 남쪽의 넓은 땅을 모조리 잃게 될 것이오."

"장차 조선을 막으려면 화약이 더 필요하다는 말씀이었군요. 그렇지만 몽골에 화약 파는 것을 줄이거나 없앨 수도 없지 않습니까?"

"몽골에 파는 것과는 크게 상관없소. 애초에 중요한 교역품인 데다가, 조금씩만 팔아서 그 가치를 유지하는 중이지 않소. 그만큼 더 아껴봤자 조선을 막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약 생산량 자체를 늘리는 것이오."

금나라 영토는 숲이 많아 숯을 구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초석 역시 사방에 널린 것이 묵은 흙인지라, 퍼다가 소쿠리에 담고 물을 부어 내린 다음 그 물을 졸이면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화약 생산량을 늘린다…. 그렇다면 유황이 제일 문제로군요."

"그렇소. 지금은 제대로 된 유황 광산이 없어서 다른 광석에서 최대한 뽑아서 쓰는 탓에 생산량이 턱없이 적지 않소. 그렇다고 화약에서 유황을 빼면 제대로 된 성능을 낼 수 없고 말이오."

야르하치의 그 말에 도르호치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방해하지 않으려고 야르하치도 가만히 있으면서 적막이 흐르기를 잠시, 이윽고 도르호치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입을 열었다.

"폐하, 몇 년 전 조선하고 몰래 교역을 재개하기 전까지 소금을 어떻게 구했는지 기억하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야르하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기억하오. 사할리얀강(흑룡강) 하구까지 배를 타고 간 다음, 거기서 바닷물을 퍼서 끓여서 소금을 만들어서 싣고 왔지. 금나라에서 배 타는 일에 제일 능숙한 게 훌룬부라서 버일러께서 맡아서 하셨잖소."

"예. 효율은 비참할 정도였지만, 가축은 물론이고 사람이 먹을 소금마저 부족한 상황이었으니 그렇게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랬었지. 그런데 그것과 유황이 관련이 있소?"

"한께서는 사할리얀강 하구에 큰 섬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큰 섬? 아, 들어 본 적 있소. 원 세조 때 몽골이 공격하려다 실패했다는 그 섬 말이지?"

"예. 맞습니다. 그 섬을 통해서 유황을 구하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야르하치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 섬에 유황이 나는 것이오?"

"저도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애초에 저도 듣기만 했을 뿐, 소금을 만들러 사할리얀강 하구에 갔을 때도 그 섬에 직접 가본 적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일본에는 유황이 많이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얼핏 들은 것 같소."

"또 제가 조선인들한테 들은 것이 있습니다. 동쪽 바다에는 남으로는 유구국에 이르고 북으로는 흑룡강 하구까지 이르도록 섬이 여럿 이어져 있는데, 일본은 남쪽과 중간 섬만을 지배하고 나라로 삼았다가 그나마도 남쪽 섬은 조선에 빼앗겨 쪼그라들었다는 것입니다."

"흑룡강 하구의 섬이라면……."

"예. 그 조선인들이 자신들이 강성하다는 것을 자랑하면서 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같은 섬을 말하는 것임이 확실합니다. 일본은 중간 섬만을 지배하고 있다고 했으니 북쪽 섬에는 일본의 지배가 미치지 않겠지만, 땅의 성질이 같다면 유황이 나지 않겠습니까?"

"정말로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가서 우리 땅으로 삼고 유황을 캘 수 있겠군."

"예. 만약 북쪽 섬에서 유황이 나지 않더라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일본이 있는 중간 섬이 나올 것입니다. 그럼 그들하고 교역해서 얻을 수도 있겠지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야르하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소. 해볼 만한 일이군. 버일러께 맡기겠소. 다만 규모는 좀 더 키워서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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