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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244화 (244/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244화

244화

1444년 3월 중순 모일.

나주부 무안현. 방직감.

방직감의 한 건물 주변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들어 있었다. 대부분은 개량된 족답직기를 구경하러 온 방직감 관원들과 일하던 여인들이었지만, 양녕이 또 무언가 신기한 것을 만들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일반 백성들도 많았다.

"이렇게 보는 눈이 많으니 좀 긴장됩니다."

방기특이 건물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을 슬쩍 보고 긴장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개량된 족답직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방사철을 비롯한 숙련된 직공들이 여러 번 시연하긴 했으나, 이번에는 아예 새 족답직기를 처음 만져보는 여인에게 시켜보는 자리였다.

성공한다면 이대로 완성이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손보면 되는 일이었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잘 될 거라는 자신이 있어서 밖에서 온 구경꾼들도 방직감 안에 들어오게 하고 이 건물 문도 활짝 열어 잘 보이게 한 것이니, 그리 긴장할 것 없네."

"대군께서 확신하실 정도면 문제없겠지요.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방기특은 방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개량된 족답직기로 다가가 마지막으로 각 구조를 점검했다. 기존 족답직기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두 부분이었다. 하나는 짜려는 면포의 폭이 세 자로 늘어난 만큼 족답직기의 폭도 늘어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늘어난 폭에 맞춰 바디도 길어졌을 뿐만 아니라 좌우에 무언가 덧붙은 것이었다.

"일단 구조는 문제없는 것 같은데……."

양녕은 방기특이 족답직기를 점검하는 모습을 진지한 표정으로 보았다. 바디 좌우에 추가로 단 것은 상자처럼 생긴 나무틀이었다. 그 안에는 틀 안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밖으로는 나오지 않을 크기의 나무토막이 들어가 있었다.

좌우 틀에 들어 있는 나무토막은 중간에 손잡이가 달린 긴 끈의 양 끝에 각각 묶여 있었고, 그 끈은 바디 위쪽에 박아넣은 금속제 고리에 걸려 있었다.

바로 원래 역사에서 존 케이가 만들었던 플라잉 셔틀의 구조였다.

"확인 완료했습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좋아. 시작하게."

양녕의 말에 이번에는 방사철이 옆에 있던 여인에게 말했다.

"자네가 해보게.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잘 될 것이니 너무 겁먹지 말고."

여인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개량된 족답직기에 와서 앉자 방기특이 말했다.

"기본적인 구조는 전에 쓰던 것과 비슷하네. 우선 북이 오른쪽 틀에 들어가 있으니 오른쪽 발판을 밟게."

여인이 지시대로 발판을 밟자 족답직기에 이미 걸려있던 짝수 번 날실과 홀수 번 날실이 각각 위아래로 움직이며 공간이 생겼다.

"다음으로 자네 앞에 끈에 달린 나무 손잡이가 보이지? 그것을 잡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힘껏 당기게."

지시를 내린 방기특은 물론이고 옆에서 지켜보는 양녕과 방사철마저도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여인이 손잡이를 힘껏 왼쪽으로 당겼다.

그러자 오른쪽 나무틀에 들어가 있던 나무토막이 힘껏 당겨지면서 북을 밀어냈다. 북은 빠른 속도로 날실 사이의 공간을 지나가며 옆구리의 구멍으로 씨실을 풀어냈고, 날실을 모두 빠져나온 다음 반대쪽 나무틀에 쏙 들어갔다.

"씨실에 별 이상이 없으면 바디를 당겼다 놓고, 이번에는 발판을 바꿔 밟은 다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손잡이를 당기게."

여인이 지시대로 하자 이번에는 북이 오른쪽 틀로 들어갔다. 여인이 흥미가 동한 표정으로 방기특을 보자, 조금 전보다 한결 안심한 표정이 된 방기특이 끄덕이며 말했다.

"계속하게."

방 안에서 발판 밟는 소리, 북이 튕겨 날아가는 소리, 바디 당기는 소리만이 짧은 간격으로 계속 들리자 건물 밖의 구경꾼들이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냐며 웅성거리기를 잠시. 양녕이 여인을 멈췄다.

"좋아, 이만하면 되었네. 수고했어."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양녕과 방사철, 방기특은 족답직기로 다가가 새롭게 짠 부분을 살펴보았다. 만족스럽다는 듯 끄덕이던 양녕은 밖에 다 들리라는 듯 말했다.

"이 짧은 시간에 벌써 세 치가 넘게 짰고 품질도 문제없군. 이 정도면 정말로 성공일세."

양녕의 말을 들은 건물 밖 구경꾼들이 한층 더 웅성거리는 가운데, 방사철이 양녕에게 말했다.

"폭이 세 자로 늘어났는데도 오히려 이전에 사람이 손으로 짜던 것보다도 속도가 조금 더 빠른 것 같습니다. 이거라면 면포 생산량이 엄청나게 늘어나겠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것을 어떻게 바로 떠올리신 겁니까?"

긴장이 놀라움으로 바뀐 방기특의 질문에 양녕이 대답했다.

"상세한 구조를 떠올린 것이 며칠 전일뿐, 대략적인 구조는 오래전에 생각해 두었던 것이네."

"이미 생각해 두셨다니……. 지금까지 세상에 내놓지 않으셨던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기존의 족답직기로 짜던 면포는 폭이 한 자 세 치에 불과했네. 바디 양쪽에서 손으로 북을 밀고 받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 길이지. 물론 지금 만든 이 구조를 적용하면 조금 더 빠르고 편해지긴 했겠지만,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족답직기마다 이런 구조를 달려고 하면 비용을 생각했을 때 오히려 손해 아니었겠는가."

양녕의 말에 방사철이 이해한 듯 말했다.

"최근까지도 방직감에서는 명나라에 조공품으로 보내는 상급품 면포를 주로 만들었으니, 폭과 속도를 늘리는 것보다도 차분하게 전부 손으로 작업하며 섬세하게 짜는 것이 중요했지요."

"그렇네. 그리고 집에 족답직기를 놓고 쓰는 백성들이 베를 짤 때는 생산 속도에 신경 쓸 이유가 딱히 없으니 이런 구조를 덧붙여 봤자 별 쓸모가 없어. 게다가 모시나 삼베, 명주를 짤 때 이 구조를 썼다가는 섬세하게 짜이지 않거나 실이 끊어질 걸세."

두 사람의 대화에 방기특도 이해한 듯 말했다.

"그때는 이 구조를 만들어 봤자 방직감이나 백성들이나 크게 쓸 일이 없었겠군요. 지금은 조공품에서 상등품 면포를 줄이고 중등품 면포를 늘리게 되었고, 일본에도 면포가 많이 팔리게 되었으니 이 구조를 만드신 것이고 말입니다."

"그렇네."

"그나저나 계속 이 구조라고 부르려니 이상합니다. 북을 던지는 구조이니 던질 투에 북 저를 써서 투저는 어떻습니까?"

"허허허. 특징을 잘 나타내는 이름이긴 하지만, 불길하다고 꺼릴 이들이 있을 것 같군."

방기특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불길하다니요?"

"공자의 제자였던 증자께서는 이름이 삼이셨는데, 하필 그 나라에 성과 이름이 똑같은 자가 있었네. 어느 날 그자가 살인을 저질렀는데, 소식을 잘못 전해 들은 마을 사람들이 증자의 어머니께 찾아와 증삼이 살인을 저질렀답니다 하고 말했지. 하지만 증자의 어머니께서는 그럴 리가 있겠냐며 태연히 짜던 베를 계속 짜셨다네."

방기특만이 아니라 주변 다른 이들도 옛날이야기를 듣듯 귀를 기울인 가운데 양녕의 말이 이어졌다.

"잠시 뒤에 다른 사람들이 또 소식을 듣고 찾아와 증삼이 살인을 저질렀다 했지만, 역시나 또 그럴 리가 있겠냐 하셨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또 찾아와 증삼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자, 이번에는 정말이라 생각하시고 두려움을 느끼셔서 북을 던지고 담을 넘어 피신하셨네. 사기에 실린 내용인데, 북을 던지는 구절에서 투저라는 표현이 쓰였네."

"사람 셋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것과 같은 내용의 고사로군요.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대상이 다른 이도 아니고 증자의 어머니시니, 과연 불길하다고 할 만한 이름입니다. 그럼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양녕은 이미 준비해 두었던 대답을 하며 싱긋 웃었다.

"북이 날아다니는 것이니, 비저라 하면 어떻겠는가?"

* * *

1444년 4월 하순 모일.

타지마노쿠니. 코노스미 성.

타지마노쿠니 동북부의 이즈시군은 야마나 가문의 근거지였다. 그리고 그 이즈시군에서도 분지 안쪽의 언덕 위에 자리한 코노스미 성은 야마나 가문의 요새이자 저택을 겸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로 조선이 다른 슈고와 호족 놈들에게 목화 재배를 직접 가르쳐 주고 있단 말이냐?"

"예. 씨앗만이 아니라 재배 방법도 가르쳐주었고, 수확한 목화솜에서 씨앗을 빼내는 씨아라는 물건도 같이 나눠 주었다 합니다."

상인인 척하고 정탐 다녀온 부하 무사의 말을 듣던 야마나 가문 가독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원래 역사에서는 후에 출가하며 얻은 법명인 소젠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야마나 모치토요였다.

"빌어먹을……. 우리 계획을 조선이 알아채기라도 했단 말인가?"

무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목화솜을 수확해서 씨앗까지만 다 빼놓으면 있는 대로 사 가겠다고 하면서, 조선의 목화 씨앗을 훔쳐 간 도둑들이 있더라는 말을 넌지시 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모치토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단순히 도둑 취급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조선과 거래하고 싶으면 우리와 손잡지 말라는 얘기로군. 애초에 조선에서 직접 씨앗과 도구까지 주니, 우리하고 손잡을 이유도 없겠지만 말이야."

모치토요는 분노가 진정이 안 되는지, 앞에 놓인 상을 쿵 하고 내려치고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오우치 놈들에게 땅을 빼앗긴 것이 내 책임이라며 덤벼드는 친척 놈들을 모조리 꺾어 버리는 데에 몇 년이나 걸렸다! 겨우 내전을 끝내고, 야마나 가문의 모든 영지를 내 손에 넣고, 드디어 오우치 놈들에게 반격하려 했는데! 씨앗을 빼 오려고 고생한 이가 몇이고, 목숨을 잃은 이가 몇이고, 영지마다 나누어서 몰래 재배하고 면포를 짜느라 고생한 이가 몇인데 그걸 조선이 한 번에 무너뜨린단 말이냐!"

"이미 늦어 버린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대신 이번에 상인으로 위장한 김에 조선 상인이 파는 책을 몇 권 사 왔습니다. 이것을 분석하고 익혀서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꿋꿋한 표정으로 무사가 말하자, 모치토요는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 이런 거로 화내 봐야 아무런 도움도 안 되지. 그래, 어떤 책이냐?"

"우선 기술서들입니다."

무사가 옆에 있던 꾸러미를 모치토요의 앞에 놓고 풀자 안에서 책 여러 권이 모습을 드러냈다. 쌓여 있는 책 몇 권을 들고 넘겨보며 모치토요가 말했다.

"이것은 옷 지어 입는 법이고, 이것은 철을 두드려 각종 농기구를 만드는 법이로군. 이건 광맥을 찾고 채굴하는 법이고 말이야. 이런 책들을 파는 것은 아무래도 광물을 캐서 조선에 팔고 면포와 제련된 철을 사가서 쓰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아서 썩 기분이 좋지는 않군. 그래도 익혀 두면 분명히 도움이 될 기술들이야."

"그리 여겨 주시니 다행입니다. 다음은 이것입니다."

무사가 다른 꾸러미를 풀자마자 그 안의 책 제목을 본 모치토요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이걸 사 왔단 말이냐?"

모치토요의 반응에 당황한 무사가 말했다.

"예? 마침 경전을 파는 이가 있어서 사 온 것입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입니까?"

모치토요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불경인 줄 알고 사 온 것이로군. 경전은 맞지만 이것은 불경이 아니라 유교의 경전이다. 이름을 보아 하니 아마도 그 해설서인 것 같군."

"이런, 제가 잘못 사 왔군요."

"괜찮다. 적이 생각하는 방식을 알아야 이길 수 있는 법이라지 않으냐. 사실 나도 이런 책은 귀족들이 연호 정할 때나 보는 책이라 생각해서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이참에 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 어디 좀 볼까."

그렇게 말하며 꾸러미 가장 위에 있던 맹자집주를 집어 들고는 적당히 책장을 넘기던 모치토요의 손이 갑자기 멈추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펼쳐진 부분을 유심히 보던 모치토요가 무사에게 물었다.

"만약 자네가 친한 벗에게 잠시 가족들을 맡기고, 카스가곤겐께 무운을 비는 기도를 올리려 야마토에 갔다 왔다고 해 보세. 그런데 돌아와 보니 처자식이 추위에 떨고 굶주리고 있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무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신의를 저버린 그 친구하고 절교해야지요."

"역시 그렇지?"

모치토요는 무사의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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