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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241화 (241/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241화

241화

"독점 교역권을 고본으로 바꾸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무슨 일이 있었소?"

당황한 양녕의 질문에 모치요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군께서도 아시다시피 계응국의 도읍인 이곳 요시키군은 남쪽으로 나가야 바다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소. 평소에 교역품을 싣고 내리는 것도, 이번에 내가 온 것도 다 여기 남쪽의 교역항인 요시키항을 통해서지."

"예. 그런데 요시키항 자체가 적간관(아카마가세키) 안쪽에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전에는 조선에서 가져온 교역품을 요시키항에 내려서 보관해두면 나니와(현 오사카)의 상인들이 와서 사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무라카미 해적들이 설치는 통에 기존에 계응국과 나니와를 잇던 항로를 쓸 수 없게 되었지요."

"그래도 그걸 해결하기 위해 잇시키 가문의 땅을 사 전변항을 만들지 않았소?"

"맞습니다. 덕분에 미야코로 바로 향할 수 있게 되었지요. 하지만 전변항 역시 적간관 바깥쪽에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양녕은 모치요가 말하려는 것을 이해했다.

"이제 알겠소. 조선에서 오는 물자의 목적지는 전변항이고, 마찬가지로 전변항에서 나오는 물자와 이와미 은광에서 나온 은의 목적지는 조선이지. 그런데 그것들은 전부 적간관 밖에 있으니, 물자와 은이 오갈 때마다 굳이 적간관을 들어와 교역항에 내렸다가, 다시 싣고는 또 적간관을 나가서 목적지로 가게 되니 비효율적이라는 것이겠군. 맞소?"

"예. 저희가 싣고 오더라도 괜한 시간과 수고가 들고, 척동상단에 운송을 맡길 때면 그 때문에 돈이 더 들게 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요시키항을 거칠 것 없이 부산포와 전변항, 이와미 은광 사이에서 바로 물자를 오가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이번에는 사람이 오가며 관리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지지요."

"그러니 차라리 교역 자체를 척동상단에 맡기고 배당금을 받겠다는 생각이겠군. 하지만 정말 괜찮겠소? 아무리 관리가 번거롭다고 해도 조선과 일본 사이의 모든 교역을 독점하는 것이고, 척동상단이 아무리 크다 한들 관청도 아닌 일개 상단일 뿐이오. 배당금을 많이 받는다 해도 기존의 교역 이익보다 못할 수도 있소이다."

걱정스러워하는 양녕의 말에 모치요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고려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계응국에는 여전히 조선에서 들여오는 식량과 각종 물자가 필요하고, 이와미 은광에서 은도 계속 채굴할 것이니 교역이 아예 끊기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배당금이 기존의 교역 이익보다 클 수도 있습니다."

"직접 교역하는 것보다 배당금이 더 크단 말이오?"

"지금까지 저희가 얻던 교역 이익은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만 나오는 것이었지만, 척동상단은 여진족은 물론이고 명나라와도 교역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지금 기준으로 따지더라도 척동상단의 배당금이 저희의 교역 이익보다 훨씬 클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척동상단이 일본과 직접 교역할 수 있게 되면 중간에 저희를 거치며 생겼던 비효율이 사라질 것인데, 그렇게 비효율이 사라진 교역 이익이 더해지면 배당금은 더 커지지 않겠습니까?"

제법 타당한 그 말에 양녕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소."

"그리고 설령 이익이 조금 줄어든다 하더라도 감수해야 할 상황이기도 합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모치요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양녕이 말했다.

"호족들 때문이오?"

"예. 특히 십여 년 전에 다시 오우치 가문 영지가 된 이와미와 아키 두 지역의 호족들이 문제지요. 당시에는 전쟁 직후라 그들도 세력이 약해져 있었고, 야마나 가문 편에서 저희와 싸웠던 상황이라 눈치를 많이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별 위협이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세를 회복한 뒤로는 달라졌지요. 놈들이 먼저 저희에게 자신들도 교역에 끼워 달라고 했습니다."

모치요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답답한지 작게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여차하면 놈들이 다시 야마나 가문에 넘어가 버릴 수도 있는데, 이와미에는 은광이 있고 아키에는 넓은 분지로 이루어진 농토가 있으니 그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결국 교역에 끼워 줘야 하는데, 독점 교역권은 오우치 가문에 속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호족들이 교역에 참여해서 이익을 얻는 식입니다. 호족들이 자신들의 몫을 내어줄 리도 없고, 그렇다고 저희가 교역하던 분량을 내어준다면 저희가 호족들에 밀려 버리지요."

"그래서 고본으로 바꾸려는 것이겠소. 어찌 되건 독점 교역권은 오우치 가문의 것이니, 그것을 바꾼 고본도 전부 오우치 가문의 소유가 될 테니 말이오."

"예. 물론 기존에 하던 교역이 끊어지게 되는 것인지라, 처음 이 얘기를 꺼냈을 때는 기존 호족들도 불만스러워하는 모양새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바꾼 고본을 나누어 줄 것인데, 고본을 가지고 있으면 기존의 교역 이익에는 미치지 못할지 몰라도 배당금이 꾸준히 들어오고, 교역 대신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생기니 어쩌면 더 이득일 수도 있다고 하자 다들 생각을 바꾸더군요"

양녕이 작게 감탄하며 말했다.

"그러면서 이와미와 아키 지역 호족들에게도 고본을 나누어 준다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균형을 잡을 수 있겠구려. 게다가 조선이나 조선의 봉신인 오우치 가문을 배반하는 순간, 꾸준히 배당금을 가져다주던 고본은 그냥 종잇장이 되고 말 것이니 말도 잘 듣게 될 것이고 말이오."

"예. 가만히 있어도 들어오는 배당금을 버릴 만큼 더 큰 이익이 있고, 조선과 계응국의 응징을 면한다는 보장이 없는 다음에야 감히 배반은 생각하지도 못하겠지요."

고개를 몇 번 끄덕인 양녕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일본과 교역할 때 계응국을 거치고 또 잇시키 가문을 거쳐야 하니 비효율적이긴 하다. 솔직한 얘기로 왜경에 가깝고 귀족들 사이에 기반도 있고 항로도 편하고 전변항과 인접하기까지 한 잇시키 가문만 남겨서 효율을 높이고, 계응국은 다른 것을 시키는 게 낫다. 물론 계응국을 안정시키는 것이 조선의 변방을 튼튼히 하는 중요한 일임도 당연하고, 이렇게 계응국이 알아서 조선에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길을 택한다면 마다할 이유도 없어. 다만…….'

양녕은 자신이 생각하는 동안 가만히 앉아 기다리던 모치요에게 말했다.

"충분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일이긴 하지만 내가 바로 결정할 수가 없는 일이오. 우선 지금 존재하는 고본만으로는 독점 교역권을 바꿔 줄 수가 없소. 고본이란 척동상단에서 나오는 이익을 어떤 비율로 배당할 것인지를 나타내기 이전에, 척동상단의 종잣돈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나타내는 것이지 않소."

모치요는 양녕의 말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과의 교역이라는 수익원 자체가 종잣돈에 더해지는 상황이오. 당연히 그만큼의 고본을 새로 찍어내야 맞겠지. 문제는 그러면 기존에 고본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가져가는 배당금의 비율이 달라진다는 것이오. 이전에 고본이 총 10매 있었다 치고 누군가 3매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척동상단이 배당하기로 한 전체 돈의 3할을 가져갔을 것이오. 하지만 고본을 5매 새로 찍어서 총 15매가 되었다면?"

"이런, 15매 가운데 3매를 가진 것이 되니, 배당하기로 한 전체 돈의 2할만 가져가게 되는군요."

양녕이 당혹스러워하는 모치요에게 말했다.

"물론 종잣돈이 늘어난 만큼 기존 3할의 배당금보다 새 2할의 배당금이 더 클 수도 있소. 그렇다면 그들이 환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기존에 고본을 가지고 있던 이들을 모아놓고 그런 것도 모두 포함해서 잘 설명하고 설득한 다음 동의를 얻어 진행해야 할 것이오. 아무리 척동상단 고본의 대부분이 내탕금과 국고에 속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정해 버리면 안 되는 것 아니겠소."

"물론입니다. 신용이란 지극히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또 하나, 고본을 더 찍는다고 하면 오우치 가문 말고도 사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소. 이미 고본을 가지고 있던 이들일 수도 있고, 새롭게 고본을 갖고자 하는 이들도 있겠지. 그 또한 고려해야 하오. 반대로 갖고 있던 고본을 팔고자 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오. 어쩌면 이렇게 고본을 사고팔 수 있는 곳을 따로 만들어 둘 필요도 있겠고."

떠오르는 것을 계속 말하던 양녕은 긴장한 표정의 모치요를 보고 미소 지으며 이어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계응국과 오우치 가문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척동상단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 결국 조선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지 않소. 내 최대한 잘 해결되도록 힘써보겠소."

그 말에 모치요가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군."

"다만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니, 혹시라도 괜히 다른 곳에 이 얘기가 새어 나가지만 않게 해 주시오."

"물론 그래야지요. 그런데 저기, 대군……."

갑자기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모치요를 보고 양녕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무슨 일이오? 뭔가 또 있소?"

"확실한 것은 아니고 소문에 불과합니다만, 그게 가능성이 좀 큰지라……."

"대체 무엇이기에 그러시오? 괜찮으니 어서 말해보시오."

돌아온 대답을 들은 양녕은 조금 전까지의 모치요만큼이나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목화 씨앗이 일본에, 그것도 야마나 가문의 손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 * *

1444년 1월 하순 모일.

일기부. 대마군 척동상단 지부.

대마군 중심부의 천모만은 20년이 넘는 간척의 결과, 만 안쪽의 바다부터 넓은 평지로 변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평지의 안쪽, 관아 가까운 곳에는 소삼판으로 겉을 꾸민 척동상단 지부가 있었다.

그 안의 대행수 집무실에서는 급히 찾아온 양녕에게서 목화 씨앗 유출 이야기를 들은 대행수 권람이 놀라고 있었다.

"목화 씨앗이 넘어갔다니, 큰일 난 거 아닙니까? 거참, 그렇게 철저히 막았는데 결국에는 넘어가고 말다니……."

"야마나 가문은 오우치 가문을 적대하는 이들일세. 오우치 가문이 면포 교역으로 큰 이익을 얻을수록 자신들이 밀리게 되니, 목화 씨앗을 구해 오우치 가문의 이익을 줄이고 자신들이 이득을 보려고 온갖 노력을 했을 것이야. 그렇게 생각해 보면 오히려 지금까지 엄청나게 잘 지켜왔다고 해야겠지."

"그럼 어쩌면 목화 씨앗을 빼돌린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벌써 재배는 물론이고 면포를 짜는 것까지 성공했을지도 모릅니다. 야마나 가문도 자신들이 목화 씨앗을 얻었다는 것을 철저히 숨겼을 텐데, 그렇지 않고서야 이 정도로 확실시되는 소문이 퍼질 리 없지 않습니까."

"내 생각도 그렇네. 그래서 이렇게 급히 자네를 찾아온 것이고."

목화 유출 사실을 알게 된 양녕은 한성부에 급보를 보내는 것과 동시에, 일본을 포함한 조선 동쪽의 해상 교역을 담당하는 척동상단 대마군 지부를 찾아와 상황을 알린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들도 목화 씨앗과 재배 기술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노력할 것 같다는 점입니다. 어렵게 얻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오우치 가문을 통해 조선에서 사 오지 않고도 면포를 만들어 팔 수 있다는 것은 큰 이점이 되니까요."

"그건 아닐 걸세."

"예? 아니라니요?"

"지금은 오우치 가문에 영지를 잃고 밀려나 있지만, 한때 그 영지들을 오우치 가문에서 빼앗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야마나 가문일세. 왜경에 가까운 큰 영지들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도 하지. 그런 강성한 이들이 조선에서 들어오는 것에 비해 품질도 떨어지고 생산량도 턱없이 부족한 면포를 팔아 얻을 작은 이익을 노리겠는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는 권람을 향해 양녕이 짧게 이어 말했다.

"놈들은 아마 일본 전국에 목화 농사를 보급하려 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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