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240화
240화
1443년 11월 초순 모일.
한성부. 경복궁 사정전.
이도와 양녕, 그리고 중신들이 말없이 지켜보는 가운데, 효령대군 이보는 양녕이 비우진에서 가지고 돌아온 불상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옆에 나란히 앉은 이유에게 의견을 묻기도 하면서 한참 살피던 이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고구려의 것으로 전해지는 불상들과 매우 흡사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불병좌상, 그러니까 두 부처께서 나란히 앉아계신 불상 양식은 당나라 때에 널리 퍼진 것인지라 당나라 초기에 멸망한 고구려의 불상일 가능성은 얼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발해의 불상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형님께서 실로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이보의 말에 양녕이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그렇구나. 그렇다면 사서의 내용과 일치하는 데다가 이리 증거까지 나왔으니, 이번에 비우진에서 발견된 성터는 발해의 동경용원부임이 틀림없겠어."
이도 역시 만족스러운 얼굴로 좌중을 보며 말했다.
"발해의 역대 임금을 사당을 지어 모시려 하자 발해의 성터가 드러나고 증거가 나타나다니, 실로 기이한 일이오."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하늘의 도를 따라 다스리시니 땅조차 감응하여 돕는 것만 같습니다."
빠르게 분위기를 파악하고 영의정 황희가 말하자 양녕이 바로 이어서 이도에게 말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 불상은 그저 그 성터가 동경용원부라는 증표일 뿐만 아니라, 조선이야말로 삼한 땅에 있던 옛 나라들의 천명을 모두 아우르는 나라임을 나타내는 신이한 증표기도 합니다."
불상을 두고 천명의 증표라고 하는 묘한 발언이, 그것도 평소 불교를 유용한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던 양녕의 입에서 나오자 중신들이 슬쩍 서로 눈치를 보았다.
양녕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조금전 효령이 말했듯 이런 불상을 이불병좌상이라 합니다. 그런데 당나라 때에 널리 퍼졌다고는 하지만 삼한 땅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가 없는 양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런 희귀한 것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양녕의 말을 이보가 거들었다.
"맞습니다. 저도 전국 각지의 사찰을 다녔지만 얼마 본 적이 없는 양식입니다."
"그리고 이 불상에 담긴 뜻 또한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이불병좌상은 본디 법화경 견보탑품의 내용을 나타낸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하자 다보탑이 땅에서 솟아 나왔는데, 그 안에는 동방 보정국의 부처인 다보불이 앉아 있었다는 부분이지요."
난데없는 불경 이야기에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양녕은 덤덤히 설명을 이어갔다.
"이 다보불은 법화경이 설해지는 곳이면 다보탑을 통해 나타나 그 설법을 증명하고 찬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뒤이어서 자신이 앉은 대좌의 절반을 내어주어 석가모니와 나란히 앉았지요. 그 모습을 나타낸 것이 바로 이불병좌상입니다."
우의정 황보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것이 천명과 무언가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그렇소. 혹시 우상께서는 석가모니와 다보불이 나란히 앉았다는 것에 무언가 떠오르시는 것이 있소?"
경주목과 맞닿아 있는 영천군 출신인 황보인은 그 질문에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맞소. 그 두 탑의 배치가 바로 견보탑품에서 나온 것이오. 발해의 도읍에서 신라 도읍의 거찰인 불국사처럼 견보탑품을 나타낸 유물이 나왔소. 양쪽 다 돌을 쪼아 만든 것인데 한쪽은 탑이고 한쪽은 불상이니 실로 화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것이며, 견보탑품 또한 두 부처가 한곳에 있는 모습이오. 이것은 발해가 신라와 마찬가지로 삼한에 속한 나라이며 대등한 한 쌍이었음을 나타내는 증표요."
무언가 말려드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황보인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천명을 아우른다 하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견보탑품에서 다보불은 자리를 지킨 것도 아니고 온전히 다 준 것도 아니고, 다만 자리의 절반을 내어주어 석가모니와 나란히 앉았소. 이것은 발해가 나라는 사라졌되 땅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땅을 조선이 이어 천명을 나란히 함을 나타내는 것이오. 또 다보불은 석가모니의 설법이 옳다 증명하려 나타난 것이니, 삼한 땅 옛 나라들의 시조를 기리는 열두 사당을 짓고 그 천명을 모두 계승하려는 주상의 뜻이 옳음을 증명한다는 뜻이기도 하오."
양녕이 당당하게 설명을 마치자 중신들 대다수는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비록 유교에서 괴력난신을 멀리한다고 하지만 제왕의 치세에 상서로운 일이 일어나거나 어떤 징조에서 길흉을 읽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 대상이 유학자들이 멀리하는 불교였던 것이다.
'불상을 증표로 삼고 불경을 고사로 들었으니 다들 꺼려지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중신들이 어쩌겠는가. 돈을 들여 불사를 지내겠다는 것도 아니고, 불길한 징조로 여겨 걱정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주상의 덕이 높고 천명이 따른다는 징조로 해석한 상황이다. 반대하거나 부정해봤자 분위기만 이상해질 뿐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양녕의 생각대로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고 어색한 공기만 이어지는데, 황희가 쓴웃음을 짓고는 수습에 나섰다.
"실로 대군의 말씀이 맞습니다. 태조대왕께서 잠저에 계실 때에 꿈에 나온 신인이 금으로 된 자를 바쳤고, 또 누군지 모를 객이 지리산 바위 속에서 얻었다며 참언을 바친 바 있었는데 둘 다 태조대왕께서 대업을 이루시리라는 증험이었습니다. 부처는 신인이고 불상은 바위이니, 이 또한 상서로운 징조일 것입니다."
부처를 신인의 일종으로 간주하면서 왕에게 무언가 바치는 존재라 하고 불상을 바위로 여기는 황희의 말은, 불교에 기반한 양녕의 해석을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유교가 불교의 위에 있음을 전제로 하는 절묘한 것이었다.
그 말에 이도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불상이 그런 징조라면 잘 보존하여야 할 것이오. 마침 태조대왕의 일과 닮은 점이 있다고 하니, 회암사에 맡겨 잘 관리하게 하시오."
"예, 전하."
그때 이유가 조심스럽게 이도에게 말했다.
"아바마마, 이처럼 상서로운 일을 맞이하여 한가지 주청 드리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지금 조선 땅 곳곳에는 글씨와 그림, 조각과 건물에 이르기까지 진귀한 물건이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 버리기도 하고 약탈당하기도 하고 이 불상처럼 땅에 묻히기도 하는 탓에 없어진 것 또한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 고려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던 대장경판도 부인사에 보관되어있다가 몽골과 전쟁할 때 사찰과 함께 재가 되었으니까."
"예. 그런 것들은 삼한의 오랜 역사와 뛰어난 문화를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옛것을 익혀 새것을 만드는 근간이 됩니다. 또 해인사의 대장경이 일본을 통제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처럼 나라에도 이익이 되지요. 그러니 건물과 물건, 조각과 그림, 공맹과 석가를 따지지 말고 나라의 귀중한 보물을 지정하여 살피고 관리해 후세에 전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몇 년 전 훈민정음 작업을 함께하다가 이유가 양녕에게 말한 적 있던 내용이었다. 이도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라의 보물, 국보인가. 괜찮은 생각이구나. 옛 글씨나 그림이 대단하였다는 기록만 있고 실물은 전해지지 않아 만인이 아쉬워하는 것이 많은데, 그런 일이 더 생기지 않으려면 나라에서 관리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말하는 이도의 표정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양녕이 물었다.
"주상,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이도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예. 사실 지금 도화원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 고려 임금들의 어필이나 영자(어진)가 전해지는 것이 많습니다. 가끔 예조에서 모아서 태우거나 묻자는 건의가 올라오기도 했으나, 지금까지는 도화원에 있던 영자 가운데 초본(스케치)들만 태웠을 뿐이지요. 그런데 만일 옛 그림을 국보로 지정하고 관리한다면 고려 왕실의 영자 같은 것들도 포함해야 하나 싶어서 말입니다."
그 말에 양녕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지정해야 할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그 역시 사라지면 영영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하물며 옛사람의 얼굴이니 비슷하게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양녕은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이 보이는 이도를 향해 말을 이었다.
"전조 임금들의 모습과 글씨가 궁에 남아 있는 것이 꺼려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꺼려짐을 취하시라는 것입니다. 옛 제왕들은 성현께서 남기신 경계하는 말을 그릇에 새겨두고 수시로 살피며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천명을 잃어 나라는 망하고, 언제 불속에 던져질지 모르는 처지가 된 전조 임금들의 어필과 영자는 그 존재만으로도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물건이지 않겠습니까?"
천명을 잃는다면 조선 임금의 어필과 영자도 이런 취급을 당할 수 있다는 경계로 삼으라는 양녕의 말은 직설적이지만 정론이었다. 그 말에 잠시 말없이 생각하던 이도는 이윽고 마음을 먹은 듯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도는 이어서 예조판서 김종서를 향해 말했다.
"대종백께서는 지금 들은 것처럼 국보를 지정하고 관리하는 제도에 관해 검토하고 정리하여 올리시오. 국보에는 이미 확인된 고려 임금들의 어필과 영자는 물론이고, 고찰과 불상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오. 또 장차 각지의 수령들에게 지시하거나 직접 사람을 보내어 국보가 될만한 것들을 조사해야 할 것이오."
말을 마친 이도는 어딘가 홀가분해진 듯 작게 미소 지었다.
* * *
1444년 1월 중순 모일.
스오노쿠니. 오우치 저택 접객실.
며칠 전, 오우치 모리하루가 죽었다. 향년 68세. 천수를 누린 죽음이었다.
"이리 대군께서 직접 조문을 와주신 데다가 장례가 끝날 때까지 참석하여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죽은 오우치 모리하루의 조카이자 계응후이며 오우치 가문 가독인 모치요의 말에 양녕이 말했다.
"아니오. 공의 숙부께서는 실로 나라에 공이 컸을 뿐만 아니라 나와도 친분이 있었으니 이리하는 것이 옳은 일이오. 원래부터 이런 일정으로 온 것이니 부담스러워할 것 없소."
모리하루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양녕은 자신이 조문을 가겠다고 나섰다. 모리하루와 친분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조문 겸 계응국의 정세를 파악하는 데에도 양녕이 적임자였기에 반대하는 의견은 없었다.
그렇게 유골을 담을 항아리를 비롯한 각종 부의품을 가지고 계응국으로 온 이도는 화장과 납골은 물론 그 뒤의 불사까지도 모두 참석한 뒤 잠시 모치요와 독대를 하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대군."
다시 양녕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한 모치요는 여전히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표정으로 옆에 놓인 교의를 보았다. 위패를 놓는 의자인 교의 위에는 계응국의 종묘에 모실, 조선에 내린 충평공이라는 시호가 적인 위패와 사찰에 안치할 불교식 위패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잠시 위패를 바라보던 모치요는 조금 전과는 달라진 눈빛으로 양녕을 보며 말했다.
"상중에 옳지 못한 일이겠으나, 이렇게 대군께서 오신 김에 계응국의 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군주는 국정을 우선하여 일로서 달을 삼아 국상을 빨리 마치는 것이 오히려 예법일 정도인데 내 어찌 공을 두고 어찌 옳지 않다 하겠소. 무엇이오?"
모치요는 다른 듣는 귀가 없는지 접객실 안을 한 번 둘러보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지금 오우치 가문이 일본에서 조선과 교역하는 권한을 독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소. 벌써 20년이 넘었지."
"그 권한을 바치고 척동상단의 고본으로 바꾸어 받고 싶습니다."
뜻밖의 말에 양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