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236화 (236/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236화

236화

1442년 6월 중순 모일.

한성부. 정음청.

훈민정음 반포가 결정되면서 설치된 이후로 항상 그러했듯이, 오늘도 정음청은 수많은 관원이 분주히 작업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쌓여 있던 수많은 서류를 전날 도제조 정인지가 순식간에 처리해 준 덕분에 오늘은 세 제조가 모여서 잠시 차 마실 짬을 낼 수 있었다.

"나는 거의 정음청에만 있어서 잘 모르겠는데, 정음에 관한 일을 맡은 다른 관청들도 많이 바쁠 것 같소."

문득 던진 양녕의 말에 최만리가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집현전은 정음청만큼이나 분주합니다. 정음에 관한 직접적인 서적 집필이나 연구는 정음청에서 하지만, 그 기반이 되는 연구나 한자음을 정리하는 일은 집현전에서 하고 있지 않습니까. 집현전에서 틀린 자료를 주거나 너무 늦어지면 정음청 일에 지장이 생기니 바쁘게 할 수밖에 없지요."

"주상께서 문형께 정음청 도제조를 겸임시키신 이유가 있었구려. 집현전과 정음청의 일을 동시에 파악하고 관리하려면 같은 사람이 양쪽 수장을 동시에 맡는 것이 가장 좋으니 말이오."

"예. 게다가 동시에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연구와 정리까지 할 수 있는 인재니까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양녕은 이번에는 이유에게 물었다.

"주자소도 많이 바쁘겠구나."

"예. 지금 당장 급하게 찍어 내야 할 책은 없지만, 정음청에서 책이 편찬된 다음 바로 인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정음 활자를 개발 중입니다."

"그냥 한자 활자와는 다른 점이 많습니까?"

최만리의 질문에 이유가 대답했다.

"그렇소. 한자에 비하면 정음은 획도 적고 모양도 직선과 원으로 단순해서 활자를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소. 문제는 만들어야 하는 수량이오. 조합해서 만들 수 있는 글자의 숫자가 무궁무진한데 그것을 전부 거푸집으로 만들 수가 없어서 말이오."

"큰일이군요."

"그래서 우선 많이 쓰이는 글자들부터 개별 활자로 만들어 두고, 나머지 글자는 자음과 모음을 따로 만들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조합해서 쓰고, 그렇게 조합한 글자가 많이 쓰이는 것 같으면 그때 개별 활자로 만들까 생각하고 있소. 여기에 말 사이를 띄어 인쇄하는 기술과 한자 활자와 섞어서 찍는 기술도 연구 중이고 말이오."

이유의 말에 양녕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나 할 일이 많으니, 사서 편찬이 뒤로 밀릴 만하지."

양녕의 말대로 원래 역법 제정의 뒤를 이어 진행하려던 이도의 계획은 사서 편찬이었지만 지금은 기약 없이 뒤로 밀린 상황이었다. 단순히 보면 이도가 정음을 더 우선시하기 때문이었지만, 실제로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동시에 하려고 해도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요."

그렇게 말한 최만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 정음 작업에 투입되고 남는 인원들로 사서 편찬을 동시에 진행하려던 이도의 계획을 바꾼 것은 양녕과 이유의 건의였다.

"그러게 말이오. 나도 주상께서 이렇게 옛 말에 흥미를 보이실 줄은 몰랐소. 물론 이유를 듣고서는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말이오."

옛 삼국의 말이 사라지기 전에 그 말과 문법을 책으로 정리해 두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냐며 가볍게 꺼낸 양녕의 건의를 듣자마자, 이도는 무언가 떠오른 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옛 삼국의 역사를 정확하게 편찬하려면 옛 삼국의 말을 정확히 알아둘 필요가 있겠을 것이고, 발해사도 편찬하기로 하였으니 발해의 말도 정확히 알아두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점점 일이 더 커졌지요. 사라지거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옛 나라들의 역사나 말이 기록된 책을 찾기 위해 전국에 사람을 보내자는 것이, 기왕 보내는 김에 옛 궁궐이나 성터의 위치, 고을의 옛 이름, 전해지는 옛 이야기까지 모두 조사하게 해 사서에 반영하자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유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백성들의 노래를 기록으로 남기자는 건의를 했을 때도 비슷하셨습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하시더니, 전국에 사람을 보내 백성들의 노래를 모으라 하셨지요. 그런데 정음으로 백성들의 노래를 정리하다 보면 각 지역의 사투리나 특이한 표현도 그대로 적게 될 것이니, 아예 조선의 말을 전부 모아 책으로 정리하는 것도 좋겠다 하셨습니다."

"정음 관련된 일이 다 끝나고 그것까지 다 끝나려면 정말 한참 걸리겠군."

양녕이 피식 웃으며 다시 차를 마시는데, 내관 하나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양녕에게 말했다.

"전하께서 양녕대군을 뵙고자 하십니다."

* * *

잠시 후.

한성부. 경복궁 사정전.

"저를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아, 오셨군요. 다름이 아니라 이것 때문입니다."

양녕이 자리에 앉는 동안 이도가 앞에 꺼내놓은 것은 낯익은 구리 원판, 바로 천문관측의였다. 몇 년 전 조와국 사신이 연회 때 양녕에게 보여주면서 다음번에 올 때 새것을 가져다주겠노라 했는데, 몇 달 전 다시 조선을 찾은 그 사신이 정말로 새것을 몇 개 챙겨와 양녕에게 준 것이었다.

"이것은 혼천판 아닙니까. 설마 조와국 기준에서 조선 기준으로 위치를 수정하면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아닙니다. 조선을 기준으로 한 혼천판을 새롭게 만드는 것은 이 판사(이순지)와 장 부정(장영실)이 아주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와는 별개로 이 판사가 혼천판의 사용에 관해서 제게 물어본 것이 있는데, 아무래도 저 혼자서는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워서 형님께 조언을 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조선에서 천문학으로는 제일가는 학자인 이순지가 이도에게 천문관측 도구에 관해 묻고, 이도는 또 정인지나 다른 학자가 아니라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특이한 상황에, 양녕은 궁금한 표정으로 말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제게 물으시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혼천판이 있으면 별이 떠 있는 위치를 통해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마침 가지고 다니기 좋은 크기이기도 하니, 혼천판을 이용하면 전국의 지리를 정확하게 측량해 정밀한 지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도는 잠시 말을 멈추고 혼천판을 옆으로 치우더니 종이 한 장을 앞에 펼쳤다. 종이에는 가로세로로 바둑판처럼 줄이 그어져 있었고, 그 위에 조선 지도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었다.

"좌표와 같이 쓰셨군요."

"맞습니다. 기존에 있던 경도의 개념은 그대로 날줄로 쓰고, 북극고도를 위도라 하여 씨줄로 삼은 것이지요. 날줄에 더해 씨줄까지 갖추어지니, 땅의 지도를 피륙을 짜는 것처럼 정밀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기 조선에서도 경도와 위도라는 말은 있었지만 천문학에서 하늘의 각 천체 위치를 수치화하기 위한 용도로만 묶여 쓰였고, 땅의 위치를 나타내는 데에는 북극고도와 경도가 따로 쓰였다.

"북극에서는 북극성의 고도가 90도가 되고 적도 아래의 땅에 이르면 0도가 됩니다. 그렇다면 땅에서도 적도 북쪽의 위도는 북위라 하여 0부터 90까지 나누고, 적도에서 남쪽으로 남극에 이르는 위도는 남위라 하여 0부터 90까지 나누면 되겠군요."

이도가 땅을 경도와 위도로 나눈다는 발상에 스스로 도달한 것에 흥미를 보인 양녕이 자신의 지식을 슬쩍 알려 주자 이도가 눈을 빛냈다.

"북위와 남위라. 그러면 되겠군요. 땅만이 아니라 하늘에도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이 판사에게 알려 줘야겠습니다."

"도움이 되면 좋겠군요."

양녕이 싱긋 웃는데 이도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참, 여쭈어본다고 했던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군요."

"아, 그랬었지요. 무엇입니까?"

이도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북극고도, 그러니까 위도를 정하는 것은 북극과 적도라는 명확하고 변하지 않는 기준이 있어서 어렵지 않습니다. 하늘의 축인 북극성이 오랜 옛날부터 기준이 되었던 탓에 북극고도를 측정한 수치는 그대로 두고 이름만 북위라 바꾸어도 될 정도지요. 문제는 경도입니다."

"하늘이 하루에 한 바퀴씩 움직이니, 하늘에서는 경도의 기준으로 삼을 것이 없지요."

"맞습니다. '회회력'에 이르기를 회회력법이 만들어진 것은 서역의 묵적납(메디나)이라는 나라라 하는데, 그 위치가 북극고도로는 24도 반이라고 합니다. 이 수치는 기준이 달라질 여지가 없으니 정확할 것입니다. 문제는 경도입니다. 묵접납은 경도가 서쪽으로 107도 치우쳐 있고, 운남에서 서쪽으로 8천 리에 있다고 하는데, 대체 어디를 기준으로 107도 치우친 것이며, 곧게 가서 8천 리인지 뱃길로 8천 리인지 알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회회력'이 집필된 곳은 남경인데 거리 기준은 운남이니, 대체 어디가 경도 기준일지 알 수 없습니다."

"형님께 조언을 구하는 것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어쩌면 명나라에서는 묵적납국의 경도를 계산한 정확한 기준이 어디인지 알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명나라에 물어볼 수는 없습니다. 묵적납국의 경도는 '회회력'에나 나오는 것이니, 그 기준을 물어보는 순간 조선이 독자적으로 천문관측을 하거나 역법을 제정한다는 것이 바로 들켜 버릴 것 아닙니까."

"몰래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정확성이 떨어지겠지요."

"예. 다른 나라에 있으니 계산하기도 힘들 것이고 말입니다."

이도의 그 말에 양녕이 싱긋 웃었다.

"주상의 방금 말씀에 답이 나왔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회회력'에 회회력법이 만들어진 묵적납국의 북극고도와 경도가 기록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마 회회력법에서 경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바로 역법이 만들어진 묵적납국이었을 것입니다. 묵적납국은 회교의 신성한 땅이기도 하니 회교도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겠지요. 그런데 이것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 그때 조와국 사신이 떠난 다음 논의하면서 제가 말했던 것이군요.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에 있다고 해서 스스로 중국이라 하는데, 땅이 공 모양이라면 중심이라고 할 것이 없으니 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내용을 뺐을 것이라 했었지요."

"맞습니다. 그래서 오차가 생겼다는 추측이었지요. 마찬가지로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동서의 기준이 된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역법을 틀리게 바꾸어 오차를 만들 정도로 오만함이 현명함을 덮은 이들입니다. 땅이 공 모양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데 제대로 경도 계산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요. 그냥 묵적납과 중국이 쓰인 순서와 동서 방향만 바꾸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 설명이 되는군요. 묵적납국에서 보면 중국은 먼 나라이니 대강 동쪽으로 몇 도 치우쳐 있다는 것만 알면 그만이지 굳이 정확한 기준을 정해 계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운남은 중국의 서남쪽 변방이니, 서역에서 와서 운남에 도착하기까지, 즉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기까지 걸린 거리가 아마 8천 리겠지요. 반대로 중국으로서도 묵적납국까지 가서 측정해 볼 재주가 없고, 육로인지 해로인지도 알 수 없으니 그저 숫자만 옮겼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중국 땅에는 경도의 기준이 없을 것입니다. 원래의 기준인 묵적납국은 너무 멀지요. 하지만 회회력법에서 묵적납국이 경도의 기준이 될 수 있다면, 조선의 역법에서 조선이 경도의 기준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어지는 양녕의 말을 들은 이도의 표정은 기대감으로 차올랐다.

"환구단과 관상대를 경복궁의 중심축에서 남쪽으로 뻗은 곳에 짓게 된 것이 실로 이날을 위한 증표입니다. 관상대를 경도의 기준으로 삼고, 그 동쪽을 동경이라 하고 서쪽을 서경이라 하십시오. 그리하면 관상대는 동서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시간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