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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228화 (228/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228화

228화

1439년 6월 하순 모일.

한성부. 경복궁 사정전.

조와국과 섬라곡국 사신이 척동상단의 호위를 받으며 떠나자마자, 이도는 양녕과 중신들은 물론이고 집현전과 서운관 관원들 몇 명까지 사정전으로 불러모았다.

"내가 경들을 이리 급히 모은 이유는 다들 아시겠지만, 이번에 조와국 사신에게 들은 내용이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기에 그것에 관해 논의하고자 해서요. 그야말로 땅이 뒤집어질 만한 내용이지 않소."

개천설 이후에 등장한 동양의 우주관은 혼천설이었다. 하늘은 구형이고 그 안에 땅이 있으며, 하늘은 특정한 축으로 기울어져서 회전한다는 혼천설의 우주관은 원래 역사에서 21세기까지도 천문관측에 쓰이는 지평좌표계와 거의 유사한 형태였다.

지평좌표계처럼 천문관측에 유용한 혼천설은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보다도 실제 천문관측을 중요시한 동양에 널리 퍼져서 천문관측 도구인 혼천의의 이름에도 쓰일 정도였다. 하지만 땅을 평평하게 인식하는 것만은 개천설과 다르지 않았는데, 그것이 이번에 부정된 것이다.

"하지만 사신을 맞이하느라 지금까지 내용을 제대로 듣지는 못했고, 그것은 여기 모인 다른 중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그래서 이렇게 모여서 정확한 설명을 듣고 논의하고자 하오."

이도가 말을 마치자 이순지가 말했다.

"우선 조와국 사신에게서 들은 것은 셋입니다. 첫째는 북극성입니다. 원래도 북극성의 고도는 북쪽으로 갈수록 높아지고, 남쪽으로 갈수록 낮아집니다. 이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일이지요."

그 말에 영의정 황희가 말했다.

"그래서 북극성의 고도를 한성부에서 측정하면 38도가 나오고, 경사(북경)에서는 40도가 나온다 하여서 경사가 한성부보다 북쪽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지. 하지만 북극성의 위치가 하늘에 고정되어 있으니, 가까이 다가갈수록 올려다보는 각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설령 세상의 남쪽 끝에 가서 본다 하더라도 북극성은 어느 각도 아래로 내려가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조와국 사신의 말에 따르면 남쪽으로 갈수록 북극성이 점점 지평선에 가까워지다가 마침내 그 아래로 내려가 보이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바다에서 봤을 테니 산이나 땅에 가려진 것도 아닐 터."

이도의 말에 이순지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새로운 별자리입니다. 마름모꼴로 생긴 별자리인데, 조선에서는 보이지 않고, 남쪽의 유구국에서는 봄과 여름에만 보이고, 거기서 남쪽으로 더 간 조와국에서는 일년 내내 보인다고 합니다."

"조선에서는 땅 아래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별이 남쪽으로 갈수록 점점 보이게 된다라……. 마지막은 무엇이오?"

"마지막은 삼형제성이 조선에서는 기울어서 뜨고 지지만, 조와국에서는 동쪽에서 떠서 하늘 꼭대기를 지나서 서쪽으로 진다고 합니다. 즉 적도가 머리 위에 오는 것이지요."

"전부 다 땅이 공 모양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이로군. 땅이 평평하다면 세상 어디에서나 북극성이 보여야하고, 땅 아래에 가려진 별은 절대로 볼 수 없으며, 삼형제성은 무조건 기울어서 뜨고 져야 할 테니 말이오."

이도의 말에 우의정 최윤덕이 당황스럽다는 듯 말했다.

"혼천설에서는 하늘은 달걀의 껍데기와 같고 땅은 노른자와 같다고 하는데, 그게 땅이 우주의 중간에 있다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노른자처럼 공 모양이라는 뜻이었단 말입니까? 정말 그렇다면 혼천설처럼 하늘과 땅이 모두 물 위에 떠 있는 것입니까?"

마주 앉아 있던 좌의정 허조가 최윤덕에게 말했다.

"하늘과 땅이 모두 물 위에 떠 있는 것이라면, 조선에서는 땅 아래 가려서 보이지 않는 별들이 보이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전부 물속에서 산다는 말이 되지 않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면 땅은 무엇으로 하늘 가운데에 떠 있으며, 땅이 둥글다면 그 옆에 사는 이들은 어찌 떨어지지 않는단 말입니까?"

"주자께서 이미 답을 알고 계셨소. 하늘과 땅은 처음에는 그저 음양의 기운이었으나, 기가 끊임없이 한 방향으로 운행하면서 무거운 찌꺼기는 가운데에 모여 땅을 이루고, 가볍고 맑은 것은 바깥으로 가 일월성신이 되었으며, 기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덕에 하늘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땅은 그 중앙에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셨지 않소."

"예. 주자어류에 그리 나와 있지요."

"땅은 기의 끊임없는 움직임으로 하늘 가운데에 떠 있소. 이 큰 땅을 띄우고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을 보면 그 기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엄청 강할 것이오. 그리 강한 힘으로 사방에서 누르고 있으니 땅도 공 모양으로 뭉쳐 있을 것이고, 땅을 뭉칠 정도니 사람과 사물도 당연히 땅의 중심을 향해 기에 눌리고 있을 것이오. 그러니 당연히 공 모양 땅 어디에 있다고 한들 어딘가로 떨어질 일이 없지 않겠소?"

땅이 공 모양이라는 충격적인 얘기를 원칙주의자인 허조가 오히려 주자학을 통해서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주변에 설명하는 역설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좌중은 설득되고 말았다. 그때 이순지가 말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대군께서 은근슬쩍 땅이 공 모양인 것을 전제로 한 말씀을 사신에게 몇 번 하셨는데, 사신이 이상하다는 듯 반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땅이 공 모양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겠지요."

그때 최만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제가 뱃멀미가 심해서 배를 타면 항상 생강을 씹고, 바다에서는 먼 곳을 보는 게 좋다 해서 수평선을 보며 갑니다. 그럴 때면 항상 수평선이 조금 둥글게 보인 탓에 내가 멀미가 심해서 땅까지 둥글게 보이는구나 했었는데, 지금 듣고 보니 그게 멀미 증상이 아니라 제대로 본 게 맞았나 봅니다."

"허허허. 천원지방이라는 말은 정말로 하늘과 땅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일 수밖에 없을 것 같소. 모양을 그대로 나타내려 한다면 천구지구라 하는 게 맞지 않겠소."

이도의 그 말에 양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지구라……. 그 표현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땅이 공 모양, 그러니까 지구라고 할 경우에 이상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순지의 말에 정인지가 물었다.

"이상한 것이라니? 오히려 공 모양이라고 생각하니 계산하기 더 괜찮았던 것 같은데?"

"바로 그 부분이 이상한 것입니다. 이전에 회회력을 보다 보면 계산이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조금 있었습니다. 회회력은 1년의 길이가 다르고 윤달조차 쓰지 않으니, 거기서 나온 오차라 생각하고 넘어갔었는데, 이번에 다시 계산해 보니 땅을 공 모양이 아니라 평평한 모양으로 두고 계산하면서 생긴 오차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 회회력이…… 어라?"

갑자기 정인지가 놀란 표정이 되자 옆에서 최만리가 물었다.

"왜 그러는가?"

"회회력에서는 원래 땅을 공 모양으로 두고 계산했다는 말이지 않은가. 회회력에 기반한 역법을 쓰는 조와국과 섬라곡국 사신도 땅이 공 모양인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고 말이야."

"그렇지?"

"그런데 왜 우리가 기존에 쓰던 회회력에서는 땅을 공 모양으로 둔 부분이 빠져 있단 말인가?"

그 말에 최만리가 멍한 표정이 되고 다른 이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것 같소."

그 짧은 한 마디로 좌중을 조용하게 한 이도가 말을 이었다.

"회회력이 중국을 거쳐서 삼한으로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오."

"지금 쓰는 회회력이 서역말이 아니라 한문으로 된 것이니, 번역되는 과정에서 빠졌다는 말씀이십니까?"

황희의 질문에 이도가 고개를 가로젓고 말했다.

"빠진 게 아니라 뺐을 것이오. 중국인들이 왜 스스로를 중국이라 하오?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에 있다고 해서 그리 부르는 것 아니오. 하지만 땅이 공 모양이라면 거기에는 세상의 중심이라고 부를 것이 없지 않소. 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뺐을 것 같소."

"세상의 중심……. 하지만 땅이 공 모양이라고 해도 위쪽 중앙에 중국이 있다면 세상의 중심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주에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과 바깥만 있는데 어디를 위쪽이라 하고 어디를 중앙이라 할 것이오? 서 있는 자리와 보는 방향에 따라서 모든 곳이 위쪽이고 모든 곳이 중앙이 될 수 있지 않소."

이도의 말에 황희가 말문이 막혀있는데 양녕이 입을 열었다.

"중국에서는 자미성, 그러니까 북극성이 하늘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다며 중원을 다스리는 천자의 상징으로 삼았지요. 하지만 북극성이 남쪽으로 갈수록 지평선에 가까워진다면, 반대로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높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북쪽 끝까지 간다면 거기서는 북극성이 하늘 가장 높은 곳에 있겠지요. 그렇다면 차라리 북극성은 그곳 군주의 상징이라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허조가 동의하듯 말했다.

"예. 자미성이 곧 천자라면 북극성이 기울어서 뜨는 땅인 중국이 아니라 머리 위에 뜨는 그 북쪽 끝 땅을 다스리는 이를 천자라 해야겠지요. 말 그대로 그 땅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춥고 척박한 북쪽 땅에 천하를 다스릴 천명이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세상의 남쪽 절반은 북극성이 보이지 않는 땅입니다. 하지만 남쪽 끝에서는 또 그곳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고 있겠지요. 남북만이 아니라 동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가 온 세상을 비춘다고 하나 사실은 세상의 절반만을 비출 뿐이며, 어딘가에서 지면 어딘가에서 뜨고 있는 것 아닙니까."

양녕은 진지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땅은 눈으로 보아서는 공 모양인 것을 알 수 없을 만큼 넓고, 세상이 그리 넓으니 세상 사람들이 동시에 하늘을 보아도 저마다 보는 모습은 다 다를 것입니다. 이런데 어찌 땅이 둥글다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고, 그 큰 하늘의 천명을 혼자 받는단 말입니까?"

강경한 양녕의 말에 다들 침묵한 가운데 허조가 말했다.

"맞습니다. 땅과 하늘에는 중심이라고 할 것이 없고, 넓은 세상 곳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올려다보는 그들만의 하늘이 있을 뿐이겠지요. 그리고 그들만의 하늘이 각각 있다면, 그 하늘의 천명을 받은 이들도 각각 있을 것입니다."

그 말에 이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세상은 넓고, 그 넓은 세상 곳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천하가 있고, 천하마다 천자가 하나씩 있는 것이 맞다라……. 천문학이나 우주의 모양을 알고서 한 소리는 아니겠지만, 야르하치가 사신을 보내서 했던 말이 결국 맞은 셈이구려."

이도가 야르하치의 말이 맞을 것이라고 하지 않고 맞았다고 한 그 속뜻을 읽은 신하들도 이도를 따라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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