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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224화 (224/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224화

224화

1436년 10월 하순 모일.

한성부. 척동상단.

전변항에서 돌아온 권람의 보고를 받던 양녕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자광사(지코지)에 장보고 사당과 원효대사를 모시는 조사당을 짓고, 원효대사의 염불을 퍼뜨리기 시작하라는 게 내 지시였는데, 한번에 그걸 전부 달성함은 물론이고 왜경의 본산인 묘심사(묘신지)에까지 영향력을 퍼뜨릴 수 있게 만들었군. 아주 잘했네."

"감사합니다, 대군. 조금 전 말씀 드린 것처럼 묘심사파가 다른 종파에서 다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실추된 위신이 채 돌아오지 않았다 합니다. 원효대사 초상을 받고 위신이 높아진다면 분명히 조선에 감사해할 것입니다."

"그래야지. 그러면 그걸 시주한 잇시키 가문, 정확히는 잇시키 요시츠라의 위신도 높아질 것이고, 잇시키 가문은 다른 보물도 조선에서 구해서 시주하려 할 것이야. 그렇게 위신이 높아질수록 다른 가문원들이 요시츠라의 권위에 도전하기 어려워질 테니 말이야."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듣던 한명회가 말했다.

"결과적으로 묘심사파의 위신은 조선에 의지하게 되고, 요시츠라와 잇시키 가문의 위신 역시 더욱 조선에 의지하게 되겠군요."

"그렇네. 그 구조만 확고해지면 사실 요시츠라가 권력을 잃어도 큰 문제는 없어."

"요시츠라가 권력을 잃으면 묘심사와의 연결도 끊어지는 것 아닙니까?"

의아해하는 한명회에게 양녕이 대답했다.

"조선과 교역해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조선의 것을 묘심사에 시주해서 위신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검증된 상황이네. 요시츠라의 권력을 빼앗은 이가 그걸 제 손으로 버리고 조선더러 일본에서 손을 떼라 하겠는가?"

"아닙니다. 오히려 요시츠라의 권력을 노리는 이유가 조선을 통해 얻는 이익과 위신을 빼앗으려는 것일 수도 있게 되겠지요. 아. 설마 격이 하나 낮은 부가 아니라 국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인정해 주신 것도 그것 때문입니까?"

양녕이 씨익 웃었다.

"역시 자네는 이해가 빠르군. 맞아. 일본 조정에 책봉 사실을 들키더라도 원래 한자를 그대로 썼으니 조선의 봉토인 단후국인지, 일본의 지역인 탄고노쿠니인지 알 수 없다네. 직위에 들어간 백이라는 글자는 조선에서는 지방관의 미칭으로도 쓰이니 조선에서 잇시키 가문이 탄고의 태수임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내린 도장일 뿐이라 둘러댈 수 있지. 권 대행수의 말을 들어보면 요시츠라는 이 말에 안심한 것 같지만, 사실 이건 양날의 검이야."

"예. 요시츠라가 권력을 잃을 때 조선이 그 논리를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외번으로 책봉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지역 태수임을 인정해 주었던 것뿐이니, 굳이 조선이 요시츠라를 지켜줄 필요가 없다고 하면 되겠지요."

"그래. 그리고 새롭게 권력을 잡은 이를 그 지역 태수로 인정한다며 단후국백의 자리를 내리면 되는 것이지. 그렇게 새 단후국백이 된 자는 조선의 눈치도 더 볼 것이고 이득과 위신에도 더 집착할 테니 어쩌면 조선에서 부리기 더 좋은 장기말이 될 수도 있어."

양녕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어 말했다.

"물론 그렇게 단후국이 뒤집히면 우리도 여러모로 귀찮을 테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게 좋긴 하네. 하지만 만일에 대비해 두는 건 언제나 필요한 일이니 해 두어서 나쁠 것은 없네. 요시츠라가 이게 양날의 검임을 눈치채면 자리를 지키고자 조선의 말을 더 잘 듣게 될 것이고."

"예. 요시츠라도 더러운 놈이지만 그 자리를 빼앗은 놈은 더 추악한 놈일 수도 있으니, 차라리 요시츠라를 잘 부리면서 유지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권람의 말에 양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금 전에 보고할 때도 느꼈지만, 일본 귀족들이 생각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군."

"맞습니다. 제가 불교에 박식한 것은 아니지만, 불교의 중요한 가르침에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가르치라는 말이 있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어 유교와 불교가 통하는 것이라 하는 학자들도 있지요. 그런데 어째서 일본의 불교는 저렇게 귀족들만의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네가 이번에 간 목적을 생각해보면 거기 이미 답이 있을 걸세."

"이미 답이 있다니요? 설마……. 원효대사입니까?"

"정답일세. 삼한에서는 원효대사가 백성들에게도 불교의 가르침을 펴고, 여러 종파를 한데 아우르려 했네. 그 중요성을 알고 공감한 신라 왕실에서도 원효대사를 왕실의 사위로 받아들여 뜻을 널리 펴는 데에 도움을 주었지. 하지만 일본에는 원효대사 같은 이가 없었어."

"그래도 일본에도 정토종이 있는 것을 보면 백성들에게도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려고 한 이가 있던 것 아닙니까?"

"일본 정토종의 개조는 법연(호넨)이라는 승려일세. 그가 정토종을 새롭게 열 때 누가 쓴 책의 영향을 받았을 것 같나?"

권람이 작게 탄식하며 말했다.

"원효대사겠군요."

"그렇네. 게다가 그 과정도 쉽지 않았어. 요시츠라에게서 천태종이 정토종을 싫어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지? 정토종 개창 초기에는 더 심했네. 천태종에서 나서서 정토종 승려들을 유배 보내고, 법연의 묘를 부수고 그 유해를 강에 버리려고 들었을 정도니까."

양녕의 말에 한명회와 권람이 깜짝 놀라 말했다.

"불교에서는 승려를 박해하고 승가를 깨뜨리는 것은 무간지옥에 떨어질 죄라고 하는데, 그걸 아무리 다른 종파라도 승려들이 저질렀단 말입니까?"

"허허……. 그런 짓을 했는데도 천태종이 아직도 무사하다니, 왜황과 일본 조정이 얼마나 힘이 없는지 알겠습니다. 만약 원효대사가 일본에서 태어났더라도 조정의 후원은커녕 보호도 못 받았겠군요."

"그랬을 걸세. 이게 바로 원효대사의 가르침과 책은 일본에 많이 건너가 있고 존경하는 이도 많지만, 그 염불만은 퍼지지 않았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지."

"하지만 막상 원효대사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은 종파들이 크게 일어나 자신들의 자리가 위험해질 것 같으니 이번에는 받아들이려 한 것이로군요. 참으로 추한 일입니다. 그런데 요시츠라의 임제종은 정토종을 마냥 싫어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권람의 의문에 양녕이 대답했다.

"일본에 임제종을 비롯한 선종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정토종과 비슷한 시기네. 어차피 서로 역사가 길지 않은데, 배척하고 밀어내고 할 것도 없지."

"같은 굴러온 돌 처지라는 것이군요."

"그렇네. 거기다 주로 따르는 이들도 다르니, 더더욱 싸울 이유가 없고 말이야."

"따르는 이들이 다르다니요?"

"정토종은 복잡한 수행 없이 염불만 열심히 외우면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하네. 글도 모르고 수행할 시간도 없는 백성들이나 하급 무사들이 선호하지. 반면 임제종은 화두를 가지고 수행해서 깨우침을 얻으려 하는 종파야. 이렇게 화두를 가지고 번뇌를 이겨내고 깨우침을 얻는다는 것이, 칼 한 자루로 적과 싸워 승리를 얻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귀족들이 선호하네."

양녕의 설명에 한명회가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화두를 가지고 깨우침을 얻는 선을 간화선이라고 하고, 그 간화선이 조선 선종의 주류지요. 임제종도 같은 간화선이라면 조선 선종이 영향력을 끼치기에도 좋겠군요."

"그렇겠지. 그렇게 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픈 백성들을 치료해가며 원효대사의 염불을 퍼뜨리는 것이 우선일세."

그 말에 권람이 양녕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대군께서는 조선의 사상을 일본에 퍼뜨려서 그것을 일본을 속에서부터 터뜨릴 화약으로 삼겠다 하셨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했습니다. 혹시 원효대사의 염불이 퍼지는 게 일본을 속에서 터뜨리는 방책입니까?"

"아닐세. 염불만 가지고 나라를 터뜨릴 수 있다면 정토종이 퍼졌을 때 이미 일본이 터졌겠지. 원효대사의 염불은 정토종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임제종을 통해서 퍼질 것이니, 오히려 일본을 쪼갤 정도로 급진적인 진종과 일련종을 막는 수단이 될 걸세."

"그러면 다른 방책이 있겠군요."

양녕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원효대사의 염불이 퍼지면 자광사에 가면 병자를 치료해 준다는 소문도 같이 퍼질 걸세. 그렇게 자광사를 찾는 이들은 주로 백성들과 하급 무사들이겠지."

"그렇겠지요. 부유한 귀족들은 의원을 부르면 그만이니까요."

"그렇게 자광사에 백성들과 하급 무사들이 많이 몰려들면 그 많은 환자를 다 수용할 수 없고 승려들의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를 대고 치료해 주는 곳을 전변항으로 옮길 걸세. 그쯤 되면 이미 자광사와 잇시키 가문의 명성도 높아졌을 테니 딱히 붙잡으려 들지는 않겠지."

"원래대로라면 교역하려는 이들만 찾아왔을 전변항에 백성들과 하급 무사들이 모이게 되고, 전변항은 조선에서 산 땅이니 일본의 눈도 닿지 않는군요. 거기서 무언가 하시려나 봅니다."

"맞아. 병자들을 계속 치료해 주면서, 서당을 짓고 사람들을 가르칠 걸세."

원래 역사에서도 많은 종교가 의료와 교육을 앞세워 교세를 퍼뜨려 나갔으니 검증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은 모르더라도 잠재력을 간파한 권람이 말했다.

"조선을 은인으로 여기고 스승으로 여기는 이들이 늘어나겠군요. 조선이 일본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두보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르치시려는 겁니까? 설마하니 불교는 아닐 것이고, 사람들이 배우러 모이게 하려면 기술을 가르쳐야 할 것 같습니다."

"맞네. 정확하게는 조선에서 산 것을 이용하는 기술, 이를테면 조선산 면포로 옷을 짓는 기술을 가르칠 걸세. 그러면 그 기술을 활용하려면 조선에서 더 많은 재료를 사가야 할 테니 교역 이익이 늘겠지."

"그래도 기술을 배우면 일본이 발전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무작정 다 가르치면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일본은 무언가 자리 잡으면 쉽게 바뀌지 않는 나라야. 아직도 당나라 복식을 그대로 예복으로 쓰고, 송나라의 차 마시는 예법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잖은가. 그러니 그들이 조선의 발달한 기술을 들여오려고 하기 전에 미리 한 단계 뒤처지는 기술을 가르쳐서 널리 퍼뜨려 버릴 걸세."

양녕의 말에 한명회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 기술에 만족하고 멈춰 서게 만드시려는 것이군요."

"그렇네. 그리고 그동안 조선은 더 앞서가는 것이지. 만일 일본이 발달한 기술의 존재를 알고 들여오려고 하더라도, 기술을 들여오고 익혀서 생산하는 것보다 조선에서 사 오는 것이 차라리 더 싼 상황이 될 정도로 격차를 벌리는 것이 목표일세."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아니, 그렇게 되더라도 일본이 최대한 기술의 존재를 모르도록 전변항에 머무르는 조선인들 입단속을 잘 시켜야겠군요. 그런데 일본을 속에서 터뜨리는 것은 사상이라 하셨는데, 기술은 사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냅다 사상만 가르치면 배우러 오는 이들도 없고, 일본이 그 위험성을 눈치채고 막으려 들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일단은 기술을 중심으로 가르쳐서 일본의 눈을 가리고, 배우고 이해하는 속도가 빠른 이들을 추려서 사상을 조금씩 가르치는 것이지. 지금 조선의 인쇄술이 발전 중이니, 그들을 가르치는 데 쓰고 또 일본 전국에 조금씩 퍼뜨릴 책을 찍어 내는 데에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야."

"그런 것이군요. 하지만 위험한 사상을 배운 이들이 퍼진다면 쉽게 들키지 않겠습니까?"

"내가 가르치려는 것은 사서삼경일세. 아무리 일본인들이라 한들 사서삼경이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겠는가? 오히려 호족들은 하급 무사들이 똑똑해져서 일 시키기 좋아졌다고 좋아할지도 모르네."

"사서삼경이 나라를 터뜨릴 수 있는 위험한 사상인 겁니까?"

이상하다는 듯 물어보는 권람에게, 양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일본은 가능하다네. 제대로 단합되지 않아서 그저 같은 왜황을 섬긴다는 점 하나로만 겨우 뭉쳐 있는 이 나라에, 천명이니 역성혁명이니 하니 공맹의 가르침이 퍼진다면 재미있어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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