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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209화 (209/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209화

209화

양녕의 말에 한명회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백성들은 한 번 자리 잡은 곳에서는 잘 이주해 가려 하지 않는 법인데 그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당연히 강제성이 없을 수는 없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도 불가능하네. 다만 둘 다 문제가 되지 않을 범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야."

여전히 의아한 표정의 한명회를 보며 양녕이 이어서 질문을 던졌다.

"이 금주위라는 지역은 원래는 그냥 금주였다가 위가 되면서 금주위라는 이름이 된 걸세. 그 위라는 게 뭔지 아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명나라의 군역부터 설명해야겠군. 여러 집 가운데서 민호와 군호를 지정하네. 민호는 일반 백성이고, 군호는 군인을 내는 집이지. 그리고 군호에서 장정 하나를 병사로 뽑은 다음, 방어를 위한 고을인 위, 혹은 거기 속한 소로 보내는 걸세. 보통 묶어 위소라 하지."

"천호소라는 말은 많이 들어서 소는 알았지만 위는 뭔지 잘 몰랐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조선의 진과 비슷한 것이었군요. 그 군호라는 것도 이전 조선 제도와 비슷합니다."

"물론 다른 점이 더 많네. 일단 군호는 각종 역에서 면제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농사지을 땅을 주네. 병사로 뽑힌 이는 위소에 가서 둔전을 경작하며 지내다가 전쟁이 있으면 소집되네.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다시 위소로 돌아와서 지내게 되지."

"괜찮은 방식인 것 같습니다. 군호에서 장정 하나를 데려가지만 대신 땅을 주니 먹고사는 데에 큰 부담이 없지 않겠습니까?"

관심을 보이는 한명회에게 양녕이 설명을 이어 갔다.

"그리고 군호에서 뽑은 병사는 출신지에서 먼 곳에 배치하네. 아예 탈영할 엄두가 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지. 그런데 어차피 명나라에서 인구가 많은 곳은 강남이고, 오랑캐들의 위협이 큰 것은 북방이니, 강남 출신이 장성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네."

"엄청 멀리도 보내는군요. 그래도 조선에서도 일부러 멀리 배치하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구가 많은 삼남에서 현역으로 뽑힌 병사들이 북방의 거솔도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것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네. 군호는 세습이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게 아니라 물려줘야만 하는 것이지."

지금까지 괜찮은 제도라 생각하며 듣고 있던 한명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제로 승계된단 말입니까?"

"그렇네. 어차피 세습될 것이니 군역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더라도 자기 자식이 또 먼 길을 끌려가 위소에 배치될 것이 뻔하네. 그 탓에 생이별을 대대로 반복하느니 차라리 위소로 가족들을 이끌고 이주해 버리는 이들이 부지기수야. 뭐, 결과적으로 가족들이 위소에 있으니 위소에서 혼자 탈영할 일은 없어지긴 했지."

"너무한 처사입니다. 물론 요충지에 알아서 주민이 이주해 간 셈이고, 안정적으로 병사를 공급할 수 있다는 이점이야 있겠지만, 그건 나라에 이로운 일이고 당사자인 백성들은 지극히 괴롭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양녕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툭 대답했다.

"딱히 병사 공급에 이로움이 있지도 않네."

"이로움이 없다니요? 아, 세습하게 해봤자 군인의 자식이라고 군인감은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그 정도면 양호하지. 어차피 지금 조선의 군역 제도라고 해서 군인감인 사람만 병사로 뽑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로움이 없는 이유는 세금과 관련이 있네."

"명나라의 세금 말씀입니까?"

"그렇네. 명나라의 세율은 지역마다 이것저것 덧붙여서 실제로는 더 높지만, 일단 원칙적으로는 소출의 3푼가량일세."

"3푼이라니, 조선 세율의 절반도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명나라가 부유한 나라라고는 하지만 그만큼 걷어서도 나라를 굴릴 수 있단 말입니까?"

"당연히 힘들지. 그래서 부족한 만큼은 군호들의 피땀으로 채워 넣네. 군호들은 군대에 쓸 물자와 관리들 녹봉도 대야 하네. 군호가 세습되니 자식들이라고 해서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한명회가 경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군께서 기술을 만드시기 전, 염부들이 염간이라 불리던 시절에는 소금을 만드는 일이 고된 일이라 강제로 세습하게 했다는 게 떠오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을 그렇게 취급받게 만들었단 말입니까?"

"그렇네. 위소에서 벗어나 이사를 갈 수도 없으니 그 위소를 맡은 지휘사나 천호에게 종속된 것이나 다름없네. 그리고 만일 지휘사나 천호가 자기 자식에게 자리를 물려준다면, 일본의 영주들이 영지와 거기 속한 백성들을 재산처럼 상속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지지."

"명나라가 왜 원정만 갔다 하면 졸전을 거듭하고, 장성을 지어 놓고도 오랑캐들의 약탈을 막지 못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양녕이 피식 웃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심요도가 조선의 땅이 되었지. 지금까지 그렇게 헐값에 마음대로 굴려도 저항하지 못했던 다루기 좋은 군인들인데, 설마 명나라가 심요도에 있던 군인들을 조선에 그대로 넘겨줬겠는가?"

"그럴 리가 없지요. 애초에 심요도를 조선에 넘길 정도로 방어가 힘든 상황이었으니 군인들까지 넘겨줄 리가 없습니다. 데려가서 다른 위소에 배치……."

한명회가 말하던 도중에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눈을 크게 뜨며 이어 말했다.

"대군께서 말씀하신 위소의 특성상 군인만 있는 게 아니라 그 가족들, 즉 군호가 함께 살고 있었겠군요. 그리고 명나라에서는 그 군호를 통째로 데려갔을 것이고 말입니다."

"그렇네. 그럼 남겨진 백성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나? 열심히 생업에 종사해 위소를 유지해 온 것은 자신들도 마찬가지인데, 군호들만 데려가고 자신들은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그리고 좌절한 이들은 다루기가 쉬운 법이지요. 이주시키는 데에 강제성이 조금 있고, 몇몇은 남는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일 거라는 대군의 말씀을 이제 좀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일단 나는 금주위와 복주위 일대의 백성을 최대한 비우겠네. 자네는 그동안 여순구를 교역 거점으로 만들고 척동상단 지부를 세울 준비를 해 두게나."

"물론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한명회의 눈빛에는 야심과 의욕이 가득했다.

* * *

1434년 11월 중순 모일.

심요도. 금주위.

관리들이 모두 명나라로 떠나가고 텅 빈 관청 건물의 가장 안쪽에는 양녕이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최만리를 비롯한 개척도감 관원들과 회경군 병사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리고 양녕의 앞에는 금주위와 복주위는 물론이고, 거기 속한 여러 마을에서 대표로 온 이들이 앉아 있었다.

"좋아. 다 모인 것 같으니 시작하지. 나는 대조선국 주상전하의 형제인 양녕대군이다. 새롭게 조선의 땅이 된 이 심요도를 재건할 개척도감의 도제조기도 하지. 내가 알기로는 원래 있던 관리와 군호들은 전부 명나라로 이주해갔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양녕의 질문에 금주위 대표로 온 노인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모인 이들 중에도 관리나 군인 출신은 하나도 없습니다."

"너희는 따라서 이주해 가지 않은 이유가 있는가?"

"명나라에서 데려간 관리와 군호들은 새 위소에 가서 살게 될 것입니다. 여기보다 힘들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어찌 되건 먹고살 수는 있게 해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희는 다릅니다. 명나라로 이주하려면 땅도 집도 새로 사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변방이고 그곳은 장성 안쪽이니, 여기 있는 재산을 다 팔더라도 턱없이 모자라겠지요."

"안 간 게 아니라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못 갔다는 얘기로군."

그 말에 노인이 화들짝 놀라 말했다.

"그렇다고 저희가 조선이 싫어서 명나라로 가고 싶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저 다른 곳으로 옮겨가 살 여력이 없다는 것뿐입니다."

양녕이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으니 그리 겁먹을 것 없다. 그래도 관리와 군호들이 두고 간 땅이 있으니, 그 땅을 너희 것으로 삼아서 농사를 지으면 좀 사는 게 나아지지 않겠느냐?"

"그자들이 가지고 있던 땅이나 둔전이 제법 있기는 하지만, 그걸 얻는다고 해도 크게 나아질 것은 없습니다. 이곳은 여름에는 푹푹 찌고 겨울에는 살을 에듯 춥습니다. 땅이 비옥한 것도 아니고 바닷바람까지 불어오니 농사를 짓기 좋은 땅이 아니지요. 이번 겨울은 어떻게 넘긴다 해도, 내년부터는 농사지어서 먹고 살 만큼 거둘 수 있을지가 걱정입니다."

"관리와 군호들이 두고 간 땅까지 새로 얻었는데 농사지어서 먹고살 걱정을 한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는 여기서 계속 농사지어서 먹고 살아왔지 않느냐?"

"이곳은 척박해서 농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금까지는 명나라 조정에서 위소를 유지하기 위해 산동성에서 구입한 식량을 보내 주어서 그것으로 충당해 가며 지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위소를 유지하기 위해서 보낸 식량이라면 군량인데, 그걸 일반 백성인 너희가 어떻게 썼으며, 애초에 병사들이 다 먹었을 것인데 남는 게 있단 말이냐?"

양녕의 질문에 노인은 슬쩍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지휘사나 천호가 조정에 식량을 요청할 때면, 으레 병사 숫자를 부풀려 보고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식량을 받은 다음 남는 것은 제 주머니에 넣었지요. 그 식량을 돈 대신 펑펑 쓰면서 사치를 부렸지만, 덕분에 저희는 그 식량으로 버티고 살 수 있었습니다."

양녕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관리가 백성들의 먹고살 길을 터주지는 못할망정 횡령으로 제 주머니를 불리고 사치를 했단 말이냐? 그래도 이번에 관리와 군호가 모두 복귀했으니 횡령한 것이 들켜서 경사로 압송되었겠구나?"

"아닙니다. 오히려 뇌물을 주고 더 좋은 자리로 갔습니다. 아마 이번 원정에서 병사들이 많이 죽은 탓에 원래 병사 숫자를 속인 것이 들키지 않은 모양입니다."

"허, 참. 대단하다면 대단하구나."

'알면서 물어봤던 것이지만 직접 들으니 더 어이가 없군. 그래도 내가 알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확인해서 다행이야. 요동은 척박한 땅인지라 스스로 농사지어서 자급하기가 어려운 곳이다. 원래 역사에서 조선이 겪은 두 번의 호란 역시 식량난을 타개할 목적도 있었지.'

양녕은 모인 대표들을 둘러보며 이어 말했다.

"좋아. 어떤 상황인지는 이제 알겠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지. 심요도를 재건하려면 식량과 물자가 많이 필요하다. 그걸 조선 본토에서 가져오거나 산동성에서 가져온 다음, 요동성과 심양성 쪽으로 보내는 거점으로 가장 적합한 곳이 여순구다. 따라서 장차 여순구 일대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쳐 큰 항구로 만들 것이다."

여순구 대표로 온 사내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다른 대표들은 신경 쓰지도 않고 양녕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민들이 여진족에게 많이 잡혀간 탓에 심요도 북부에도 인구가 부족하다. 그곳에도 백성들을 옮겨 마을을 유지할 것이다."

그 말에 다른 대표들의 표정도 일제히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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