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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206화 (206/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206화

206화

1434년 9월 하순 모일.

한성부. 경복궁 사정전.

아룩타이의 시체를 확인한 명나라가 약조대로 요하 동쪽의 땅을 조선에 넘기고 며칠이 지났다.

이도는 중신들을 모아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토론 중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일이 점점 커졌소. 당초에는 국초의 국경을 되돌리려는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그게 고려 때의 국경인 거양성까지 올라가고, 옛 발해 땅의 솔빈성까지 얻게 되었소.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요동까지 얻게 되었지. 실로 기쁜 일이오."

"조종의 경사로운 땅을 되찾으려 시작하신 일이니 실로 효심의 귀감이며 군왕의 덕이십니다. 그러니 하늘도 감복하여 이리 새롭고 큰 경사를 내리신 것 아니겠습니까."

예조판서 신상의 말에 이도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 말해 주니 고맙소. 여하간에 본론으로 돌아와서, 두만강 일대까지만 확보할 생각으로 만들었던 기존의 체제로는 요동까지 제대로 다룰 수가 없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경들의 의견을 듣고자 하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병조판서 황상이었다.

"지금 동북면은 여진족들이 많이 줄어든 데다가, 야르하치 세력도 멀어져서 큰 위협이 없습니다. 굳이 정예병을 계속 둘 이유가 없으니 남은 회경군 병력도 마저 요동으로 보내고, 동북면에는 새로 뽑은 병사들을 주둔시키는 게 좋을 듯합니다."

"맞습니다. 조선이 아룩타이를 죽여 원수지게 된 북원은 물론이고, 금나라도 잃은 땅을 되찾겠다며 요동을 노릴 수 있습니다. 정예병은 요동에 두어야지요."

신상에 이어 영의정 황희가 말했다.

"이번에 옮겨간 하르빈이 옛 금나라의 도읍이었던 중요한 땅이라, 심양성은 굳이 무리해서 되찾으려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진족들이 개척도 했고, 철 생산과 농경, 수운 등에서 확실하게 이득을 보았던 호이파 강 일대는 계속 노릴 것이 확실합니다. 거기는 조선에서도 제대로 점령하지 못한 상태 아닙니까."

"그래도 금나라는 이번 전쟁에서 진 데다가 버일러까지 둘 잃어서 약해진 상황입니다. 또 북원 역시 명나라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약해졌을 것입니다. 요동의 방비를 너무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양녕의 말에 이도가 기억나는 것이 있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아룩타이 제거를 논할 때, 아룩타이는 북원이라는 게르의 중심을 받치는 기둥과도 같은 자라서, 그가 죽으면 북원이 휘청거릴 것이라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동북면에 남은 회경군을 요동으로 옮겨오는 정도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룩타이의 중요성도 잘 모르고, 금나라가 세력을 많이 보존해서 달아났다고 생각하는 명나라 눈에는 방비가 조금 부족해 보일 수 있겠지만, 어차피 명나라에게는 조선이 약간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안심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명나라가 요동을 순순히 포기할 리가 없지요. 지금은 자신들이 다루기 어려우니 조선에 주었지만, 만약 여건이 괜찮아지거나 북원과 금나라가 위협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면 언제라도 다시 빼앗아 가려 들 것입니다. 적어도 요동은 조선 땅이라는 인식이 사방에 자연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시간이 흐르기 전까지는, 명나라가 요동을 조선에 떠넘기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도의 말이 끝나자 우의정 허조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당장 요동을 방어하는 것은 그렇게 하면 크게 더 돈이 나가지도 않고 명나라도 안심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동은 지금 명나라도 손을 놓을 정도로 황폐해진 상황입니다. 조선이 돈과 인원을 들여 제대로 재건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난 다음 세를 회복한 북원이나 금나라에게 요동을 빼앗길 위험이 있습니다."

호조판서 안순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실로 진퇴양난입니다. 돈을 쓰자니 재정에 무리가 갈 것이 분명하고, 돈을 안 쓰자니 제대로 재건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재정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돈을 많이 쓸 수가 없습니다. 지금 명나라에는 조선이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나라 안의 은을 모두 긁어모아 군량과 화약을 사 간 것처럼 해 두지 않았습니까."

"그러게 말이오.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돈을 많이 쓰더라도 명나라에는 시간이 지나서 여유가 좀 생겼다고 주장할 수 있고, 실제로도 재정에 여유도 생겼을 것이지만, 돈을 써야 하는 상황은 지금 당장이지 않소."

그때 양녕이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요동을 재건하려고 돈을 많이 쓰면 재정에 무리가 가고 명나라의 견제를 받는 문제가 있다면, 돈을 많이 안 쓰면 됩니다."

"요동을 재건하는 데 돈을 많이 안 쓴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궁금해하는 이도와 중신들의 시선을 받으며 양녕이 말했다.

"요동 재건에 같은 돈과 인원이 들어간다면 명나라보다도 조선에 더 무리가 갑니다. 그래서 아마 명나라도 조선을 약하게 만들 책략을 겸해서 요동을 넘겼을 거라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그랬지요."

"하지만 명나라가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은 모르는 게 많아서입니다. 북원과 금나라는 상황이 크게 좋지 않고, 칠주도는 풍요롭고 큰 섬이고, 조선은 오우치 가문을 통해 일본과 교역하며 많은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조선이 가진 많은 기술입니다. 그 기술들로 지금까지 여러 문제를 해결해왔지요."

그 말에 이도가 끄덕였다.

"확실히 4윤작법과 점석회만 하더라도 동북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지요. 그 기술의 도움을 받아 요동 재건에 드는 돈과 인력을 줄이신다는 것이군요."

"예. 물론 조선이 가진, 혹은 개발해 낼 기술들이 요동의 재건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전부 쓸 수는 없습니다. 명나라가 요동을 재건하고 유지하는 데에 유용한 기술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요동을 다시 빼앗아 가려 들 것이 분명한 데다가, 이미 인력과 돈이 풍부한 명나라가 기술까지 얻는다면 장기적으로도 조선에 불리합니다."

"그렇지요. 제철 기술과 4윤작법이 여진족에 넘어간 것만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명나라에 넘어간다면 정말 끔찍할 것입니다."

"하지만 요동 동부의 산지 일대, 야르하치가 파괴한 탓에 명나라가 척박한 곳이라 여기고 있는 지역은 생각 외로 넓을 뿐만 아니라, 요동성과 심양성의 후방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야르하치가 했던 것처럼 명나라의 눈이 바로 닿는 곳에 성읍을 크게 만들어 시선을 거기로 돌리고, 그 뒤에서 세를 키우려 하시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야르하치는 명나라와의 경계인 무순관 가까운 곳에 허투 알라를 두어 명나라의 시선을 돌리고 그 뒤에 후방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조선과 명나라의 경계는 요하와 심양성이니, 그 동쪽의 무순성까지도 후방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양녕의 의견에 이도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명나라는 조선이 본토에서 물자를 끌어와 요동을 재건한다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요동 안에서 물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로군요. 그렇게 후방을 키워두면 장기적으로도 두고두고 유리한 점이 많겠습니다."

"예, 신도 그리 생각합니다."

황희가 동의하고, 다른 중신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렇게 기술의 도움으로 요동을 재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제가 도제조로 있는 정착도감은 본디 국초의 국경을 되돌리고, 비었던 고을에 조선 백성을 다시 채우려는 목적으로 만든 관청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동북면의 국경은 저 멀리 미타호에 이르렀고, 거양성과 솔빈성은 군대가 주둔해야 하니 그나마 정비되었을 뿐, 거기서 조금만 멀리 벗어나도 사람의 손길은 찾아볼 수 없는 땅입니다. 빈 고을이고 뭐고 없으니 아예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야 하는 지경이지요."

이도와 중신들이 집중하는 가운데 양녕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요동도 비슷합니다. 비록 사람이 오랫동안 산 땅이긴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거의 다 끌려가다시피 했습니다. 본디 요동에는 삼한 혈통 주민들이 많았었지만, 지금은 그들마저도 끌려가고 없는 상황이지요. 게다가 조선에 적대적인 북원과 금나라를 마주하고 있으니, 백성들은 위험한 요동에 가느니 차라리 동북면에 가겠다 할 것입니다. 오히려 동북면에는 여진족이 많이 줄었으니까요."

"맞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지금 회경군이 동북면에서 마저 철수하기로 했지만, 회경군 도원수가 관찰사를 겸직하던 거솔도는 유지하실 거지요?"

"예. 아직도 거양성과 솔빈성 말고는 제대로 된 고을이 없으니 거솔도라는 이름도 유지하면서 새 관찰사를 보낼까 합니다."

양녕이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요동에도 적용하는 것입니다. 요동의 중심이 되는 두 고을이 각각 심양성과 요동성이니, 거솔도처럼 이름을 짓는다면 심요도가 되겠군요."

"심요도라. 괜찮군요. 사실 요동이 원래는 요하 동쪽이라는 뜻이지만, 명나라가 요하 서쪽까지도 합쳐서 요동이라 부르는 탓에 요동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범위가 하나가 아닙니다. 그 탓에 지금 조선이 새로 얻은 요하 동쪽을 계속 요동이라 부르면 혼선이 생기지는 않을까 했는데 그리하면 되겠군요."

"예. 그리고 심요도에도 관찰사를 두는 것이지요. 그리고 정착도감은 경원부 일대에 조선 백성을 이주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거솔도와 심요도 일대를 확실한 조선 땅으로 만드는 일을 두루 보조할 수 있게 바꿔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건의 드리고자 하는, 기술의 도움으로 요동을 재건하는 방책입니다."

잠시 생각해 보던 이도가 말했다.

"괜찮군요. 정착도감이 하는 일이 커지니 이름도 아예 개척도감이라 바꾸면 좋겠습니다.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우의정 맹사성이 말했다.

"신 또한 그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적한 거솔도는 관찰사가 바로 개척도감의 보조를 받아 개척해도 괜찮겠지만, 심요도는 관찰사가 금나라와 북원, 명나라까지 신경을 두루 써야 해서 개척까지 하기에는 바쁠 것입니다. 그러니 심요도 개척사라는 관직을 추가로 두어 개척만 전담하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할 거라면 거솔도에도 개척사를 두는 게 좋을 것입니다."

허조의 짧은 한마디에 맹사성이 무언가 눈치챈 듯 동의했다.

"아, 그게 낫겠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양녕은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거솔도는 심요도와는 반대로 주변에 다른 세력이 없어서 한적하다. 그런 데다가 중앙에서 멀고 초원이 넓어 기병을 키우기 좋으니, 만일 누군가 다른 마음을 먹고 군사를 키운다면 위험할 수 있지. 그러니 중앙에서 관리 하나를 더 보내서 권한을 분산시키고 서로 감시하게 하자는 얘기겠군.'

이도 역시 이해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소. 그리하겠소. 그럼 새로 얻은 요하 동쪽 땅에 심요도를 설치하고 관찰사를 두겠소. 또 거솔도와 심요도에 개척사를 두어 개척을 전담하게 하고, 정착도감을 더 크게 개편해 개척도감으로 만들어 개척사들을 보조케 할 것이오."

이도는 만족스럽게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좋소. 이제 전조 고려가 그 이름을 이었으면서도 끝내 이루지 못했던,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는 일은 우리 조선이 이루게 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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