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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201화 (201/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201화

201화

분노가 담긴 고함을 치며 성큼성큼 걸어간 동권두는 무타우타를 힘껏 걷어찼다. 죽을 위기에서 솟아났던 흥분과 괴력이 채 가라앉지 않은 그 강한 발길질에, 여전히 어지러움에 휘청이던 무타우타는 그대로 힘없이 뒤로 나뒹굴었다.

"차라리 나자빠지니 좀 덜 어지럽네. 진작 드러누울 걸 그랬다야."

태연하게 중얼거리던 무타우타는 험악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동권두를 보고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아구, 네가 그런 표정 짓는 건 또 처음 보네. 꼭 나찰 같다야. 으허허허!"

"지옥 죄인을 벌주는 게 나찰의 일이니 지금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다. 그럼 칭찬 값을 해줘야겠지."

무타우타 바로 옆까지 온 동권두는 무타우타의 손목을 잡고 팔을 들어 올렸다. 무타우타는 붙잡힌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조금 전 투구 위로 총을 맞은 충격이 아직 남아있는 탓에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사이 동권두는 무타우타의 팔을 양손으로 단단히 잡고 겨드랑이 쪽에 발을 댄 다음, 단숨에 힘을 주어 무타우타의 팔을 비틀자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다.

"으어억!"

어깨 관절을 비틀려 뽑힌 고통에 무타우타가 꿈틀거렸다. 동권두는 힘없이 축 처진 무타우타의 팔을 내려놓고 반대쪽 팔로 걸어가며 말했다.

"네놈을 내 손으로 죽일 수만 있다면야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와 주다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구나."

고통에 숨이 거칠어진 무타우타가 비웃듯 말했다.

"성문이 두 개나 무너진 다음에는 어차피 여기서 탈출할 가망도 안 보였으니 죽을 각오는 이미 하고 있었어. 그런데 마침 네가 보여서 너라도 저승 길동무로 삼으려고 했을 뿐이지. 그리고 그리 좋아할 것 없다. 네 힘과 실력만으로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지만 저 멀리서 날아온 총알 덕분에 목숨을 건졌을 뿐이잖아."

동권두는 무타우타의 반대쪽 팔을 들어 올리며 역으로 비웃었다.

"내가 좋아한다는데 네가 어쩔 거냐? 불만이면 야르하치 같은 놈 편에 붙지 말고 조선에 충성을 다하지 그랬느냐? 그랬으면 너도 저런 든든한 엄호를 받았을 것 아니냐. 그리고 너야말로 잘난 척할 것 없다. 어느 편에 서야 할지 분간도 못 하는 놈이 죄까지 지으면서도 운이 좋은 덕분에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해 왔을 뿐이잖느냐."

무타우타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동권두가 반대쪽 어깨도 꺾어 버리는 바람에 고통에 찬 소리가 대신 나왔다.

"으어어억!"

이번에 꺾은 팔도 내려놓자, 무타우타는 양쪽 어깨 관절이 모두 뽑힌 상태로 바닥에 대자로 뻗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그 모습을 싸늘하면서도 증오로 타오르는 눈빛으로 내려보며 동권두가 말했다.

"네놈이 아버지를 해치던 날, 아버지께서 널 짐승 같은 놈이라고 하자 네놈이 자기야말로 진짜배기 짐승이라 대꾸했었다지?"

"그랬지. 그건 또 어디서 들었냐?"

동권두는 대답 대신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정말이었군. 그럼 넌 지금 나에게 붙잡힌 짐승이다. 내 사냥감이니 사냥감답게 다뤄 주마."

동권두가 단검을 들고 자신을 향해 몸을 낮추자, 어깨에서 느껴지는 고통마저 잊을 만큼의 불길한 두려움이 무타우타를 엄습했다.

* * *

1434년 5월 초순 모일.

심양성 북쪽 평야.

기병여단의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이징옥이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아예 작정하고 달아나려는 놈들이라 이거 뭐 따라잡을 수가 없구만!"

기병여단 전 병력이 심양성 북쪽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야르하치와 여진족 기병대는 돌파구를 뚫고 달아나던 상황이었다. 정로군은 제대로 된 기병이 없던 데다가 야르하치의 퇴로를 만들기 위해 달라붙은 여진족 보병들을 막는 데에 정신이 없었다.

결국 기병여단만이 그대로 야르하치를 계속 추격하고 있었다.

"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이징옥이 저 멀리 앞에서 달려가는 여진족 기병들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뒤쪽에 있던 여진족 기병들이 말 위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만지더니, 동시에 뒤로 집어 던졌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본 이징옥이 다급하게 외쳤다.

"진천뢰다! 전원 속도를 줄여라! 놈들이 진천뢰를 던졌다!"

그대로 갑자기 멈췄다가는 대열이 무너지고 엉키는 것은 물론, 자칫하면 아군에게 밟혀 죽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다행히 앞에 진천뢰가 있다는 말이 기병여단 뒤쪽까지 금방 전해졌고, 진천뢰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기 전에 기병여단 전체가 무사히 멈출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심지가 다 타들어 가고도 남을 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바닥에 던져진 진천뢰는 그대로였던 것이다.

"당했다! 빈 통이었구나!"

하지만 예상 밖의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앞에서 달리던 여진족 기병대도 기병여단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따라서 멈춘 것이다. 기병여단이 화살을 쏘려고 하면 바로 말을 달려 달아날 수 있을 정도의 절묘한 거리를 유지한 상황에서, 여진족 기병대 뒤쪽으로 야르하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냐 대체. 이렇게 우리를 멈췄으면 달아나야 하는 것 아니냐? 왜 오히려 임금인 네가 뒤로 오는 거지?"

제법 멀리 떨어진 거리를 두고 이징옥이 외치듯 말하자 야르하치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얘기를 좀 할 게 있어서 말이다. 어차피 너희도 더 못 따라올 것 같으니 내가 뒤로 온다고 문제 될 것도 없고 말이야."

그 말에 이징옥의 눈썹이 살짝 흔들렸다.

'놈의 말대로 더 따라가긴 힘들다. 굳이 뒤를 돌아보고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중기병들 말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을 거다. 게다가 이미 한 번 멈춘 이상 다시 달리게 하기도 힘들지. 반면에 저놈들이 탄 여진족 말은 품종과 사육법 덕분에 지구력이 뛰어나 여전히 잘 달릴 수 있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우리 말의 장기인 질주력을 살려서 초반에 따라잡았어야 하지만, 놈들이 정로군을 공격할 때마다 달려가서 막아 주느라 힘이 빠져서 그러질 못한 게 문제로군.'

그렇지만 순순히 인정해 줄 수는 없던 이징옥이 말했다.

"중기병들이야 지쳤겠지. 하지만 궁기병들은 아직 달릴 만하다!"

"하하하하! 아직은 그렇겠지! 하지만 좀 더 달리면 결국 너희 궁기병들이 우리보다 먼저 지치는 건 똑같다. 그리고 이미 우리 영역 깊이 들어와 놓고서 여기서 더 북쪽으로 가면 뭐가 나올 줄 알고 쫓아오려는 것이냐?"

그 말에 이징옥이 혀를 찼다. 야르하치의 말대로였다. 여기서 더 북쪽으로 가면 여진족 영역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꼴이었다. 지리를 잘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갑자기 적 원군이 튀어나와 퇴로를 막을 수도 있었다.

이징옥이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말을 타고 나타난 양녕이 야르하치를 향해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는 너야말로 땅도 성도 병사들도 다 잃었는데, 뭐가 남았고 뭘 할 게 있다고 그리 열심히 도망치느냐?"

"오, 대군께서 직접 나오셨구만!"

양녕의 얼굴을 알아본 야르하치가 웃으며 이어 말했다.

"많이 잃기는 했지만, 아직 다 잃은 건 아니야! 여기서 더 북쪽으로 가면 옛 금나라가 나라를 일으키고 첫 수도로 삼았던 상경회령부의 옛 땅이 있다. 금나라가 멸망하고 오래 지난 지금은 그저 강에서 고기 잡는 이들의 마을이 되어, 그물 너는 곳이라 해서 하르빈이라 불리는 한적한 곳이지만, 여전히 여진족들에게는 중요한 땅이다. 거기로 천도할 것이다."

"도읍을 옮긴다 한들 그 추운 땅에 농사를 지으면 얼마나 지어서 백성들을 먹여 살리겠느냐? 아니, 이미 병사들도 많이 잃었는데 농사지을 장정은 있느냐? 게다가 너도 이미 알겠지만, 우리 별동대가 너희 제철 시설을 파괴하고 기술자들도 많이 죽였다. 농사짓는 법은 남아있다 쳐도, 무기는 고사하고 농기구 만들 재료와 기술자부터가 부족한데 무슨 수로 너희가 다시 일어난단 말이냐?"

양녕의 말에 야르하치가 껄껄 웃더니 말했다.

"설령 네가 맞는 말을 한다고 해도 내가 항복하고 순순히 잡혀줄 일은 없으니 포기해라! 그리고 기술자가 아예 몰살당했다면 모를까, 많이 죽은 것만으로는 기술이 사라지지 않는다. 무사한 기술자들을 선생으로 삼고, 공짜로 기술을 가르쳐 준다고 하면 여진족들이 많이 모여들 것이야. 그들을 가르쳐서 새롭게 기술자를 키우면 된다."

"이번 패배로 네 위신도 떨어졌을 텐데 순순히 그리되겠느냐? 기술만 배우고 네 밑으로 들어오지는 않으려는 부족이 더 많을 게다."

"나는 여진족들을 모아 가르친다고 했지, 내 밑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 가르쳐 준다는 소리는 안 했다. 애초에 내 편이 된다는 놈한테만 가르쳐서 어느 세월에 기술이 퍼지겠느냐?"

"네 세력에 들어오는 것과 상관없이 기술을 가르쳐 준다고?"

어이없음이 섞인 양녕의 물음에 야르하치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래야 모든 여진족에 지식과 기술이 널리 퍼질 것 아니냐. 그럼 그들은 다른 부족을 이기기 위해서건, 더 잘 먹고 살기 위해서건 열심히 기술을 활용하고 개량할 것이다. 그렇게 제철도, 화약도, 각종 화포도 점점 기술자가 늘고 기술이 발전하겠지."

"그 기술이 네 자리를 탐내는 자의 손에 들어가 네 목을 노릴 수 있는데도 그리한단 말이냐?"

"그래. 내가 무사히 다시 일어나면 좋겠지만, 내가 죽어도 상관없고, 여진족이 다시 분열되더라도 상관없다. 이미 두 번이나 금나라의 깃발 아래 뭉치는 경험을 해본 여진족들은 분열되더라도 금방 다시 뭉치려고 할 테니까. 내가 퍼뜨린 기술은 그렇게 다시 뭉칠 때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언젠가 그렇게 여진족을 새로 통합한 이가 나온다면, 그 누구라도 이 여진족의 한이자 대금황제인 야르하치의 이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천하에 이름을 그 정도 남기면 충분한 것 아니냐?"

여진족 전체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려 한다는 야르하치의 말에 양녕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계획을 품고 있다면 널 더더욱 살려서 보낼 수 없다. 무리해서라도 너희를 추격해 잡아서 그 계획을 꺾어 놓을 것이다."

"와하하하하!"

한참을 호탕하게 웃던 야르하치가 말했다.

"나는 너희가 흔히 말하는 오랑캐지만 바보는 아니야. 내가 천하에 이름을 남길 기회를 네가 망쳐 버릴 가능성이 있는데도 여기서 다 떠들었을 것 같으냐?"

"너, 설마……."

야르하치는 양녕을 보고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 달 전에 이미 시작했다."

양녕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물었다.

"한 달 전? 회경군이 다시 출진해서 요동성을 향해 갈 때 이미 시작했단 말이냐? 너희가 요동을 거의 다 손에 넣었고 아직 패배를 겪기도 전인데 그때부터 이렇게 패배한 이후의 상황을 대비했다고?"

"그래. 현명한 토끼는 달아날 굴을 셋 만들어 둔다고 하지 않느냐. 그리고 그런 굴은 미리미리 파둬야 하는 법이다. 이렇게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굴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지금 당장 여기서 야르하치를 죽일 수 있다 하더라도, 여진족 전체로 각종 기술이 퍼져 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 양녕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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