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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177화 (177/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177화

177화

1431년 10월 하순 모일.

경원부 비우진. 회경군 도원수 집무실.

등자사에게 보고를 받던 양녕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또 조선 편 부족이 습격당했다는 것이로군. 그것도 굉장히 처참하게 당했고 말이야."

"예. 조선이 배반한 부족들을 찾아내는 족족 몰살하기 시작하니 아직 편을 정하지 않고 있던 부족들이 조선 쪽으로 기울고 있지 않습니까. 이만주 쪽에서는 어차피 그 부족들을 포섭해 데려가기 어렵다면 조선에 넘어가는 부족이라도 줄여 버리겠다는 심산인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동권두가 굳은 표정으로 양녕에게 말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유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습니다. 판차 놈의 저를 향한 증오지요. 아마 자신이 미워했던 형의 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자기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라 생각해서 그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증오라. 그리 생각하는 이유가 있는가?"

"요즘 습격당한 조선 편 부족들 상황을 보면 저와 친분이 있는 부족들일수록 더 심각하게 당했습니다. 이전까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이번에 습격당한 부족이 저하고 조금 친하게 지냈을 뿐 조선과 크게 가까이 지냈던 것도 아닌데 처참하게 습격당한 걸 보고 확신했습니다."

자신의 탓으로 여기는 듯한 말투로 말하는 동권두에게 최윤덕이 말했다.

"증오만 있지는 않을 걸세. 자네하고 가까이 지내다 보면 조선에 더 가까워질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조선과 친하게 지낼 낌새만 보이더라도 보복하는 모습을 보여서 아직 편을 정하지 못한 부족이 섣불리 움직일 수 없게 만들려는 것이겠지. 조선처럼 땅이나 자원으로 포섭하거나, 병력을 크게 동원하는 수단을 쓸 수 없으니 공포를 이용하려는 것일 게야."

등자사도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주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제가 건의 드리려던 게 있었는데 그건 이제 못 쓰겠군요. 사실 이만주 세력과 내통했다가 적발된 부족을 몰살했다고 여진족들 사이에 소문내긴 했지만 실제로는 주동자와 저항하는 자들만 죽이고 나머지는 산 채로 끌고 가지 않았습니까."

"국경에서 많이 떨어진 경원부 쪽에 몰아넣고 감시하면서 일을 시키고 있었지. 그런데 무슨 건의였는데 못 쓰겠다 하는가?"

"어차피 배반자들도 잡을 만큼 잡았으니, 사실 그 부족들이 전부 죽은 게 아니라 일부는 살아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걸 여진족들에게 알리는 거였습니다. 그리하면 여진족들은 물론이고 이만주 세력도 동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보복이 격해지면 쓸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조선에는 좀 등을 돌려도 나중에 공격당할 때 항복만 잘 하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만주 세력에 등을 돌리면 무조건 처참한 꼴을 당하게 되니까."

대화를 듣던 양녕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결정을 못 내린 부족들이 이만주 쪽으로 넘어가지는 않더라도 조선에 협조적으로 나올 수도 없게 되고 말았소. 그저 이미 조선과 가까이 지낸 부족들이 보복을 피하고자 조선의 지시를 순순히 따라 국경에서 먼 안전한 곳으로 이주하고자 할 테니 그거 하나는 좋겠구려."

양녕은 다시 등자사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럼 국경지대에 남은 여진족들 상황은 전체적으로 어떤가?"

"조선 편 부족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대군께서 방금 말씀하신 대로 이들은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겠다 하면 금방 따르겠지요. 또 지금까지 이만주와 내통한 것이 분명한 부족은 전부 처리한 상황입니다."

"나머지는 어떤가?"

"아직 다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편을 정하지 못한 부족들도 있겠지만, 원래부터 이만주 편이었거나 새로 넘어간 부족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까지도 못 찾아냈을 정도면 치밀하게 숨기는 놈들이지 않겠습니까. 괜히 파악하거나 포섭하려다가 저희 움직임을 이만주 쪽에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아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선과 가까이 지낼수록 보복이 심해지기까지 하니 앞으로 더 어려워지겠군. 어떻게 해야 하려나……."

그때 동권두가 양녕에게 조용히 말했다.

"남은 부족들을 강제로 다 끌고 오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만주와 내통한 부족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말입니다."

"강제로, 그것도 어느 편인지 확인도 거치지 않고 말인가?"

"예. 강제로 끌고 오다 보면 그중에는 물론 배반한 부족도 섞여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만주가 보기에는 그 부족이 억지로 끌려간 것인지, 아니면 조선하고 이만주 세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거나 혹은 조선 편이면서 정체를 숨기고 있다가 이만주 세력의 보복이 거세지니 달아난 것인지 알 수 없어집니다. 확인하려고 해도 그 부족들이 옮겨진 조선 국경 먼 안쪽으로 와서 확인할 수도 없지요."

"저쪽에 불신을 심자는 얘기로군. 그렇다면 좀 전에 나온 얘기도 쓸 수 있겠어. 그 부족들이 전부 무사히 후방으로 이주해서 따뜻한 곳에 땅을 받고 살게 되었다는 얘기를 퍼뜨려서 동요하게 만드는 것이지."

"예. 물론 끌려온 부족 가운데 배반한 놈들이 있더라도 당장 죽지는 않고 오히려 잘만 하면 땅을 받아 안정적으로 살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조선 땅 깊이 들어와 있으니 만약 정체를 들킨다면 달아날 수도 없이 확실히 죽게 되겠지요. 평생 그걸 두려워하며 산다면 배반자 놈들이 받을 처벌로는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끌려오면서 증거가 없어져서 조선에 들킬 일도, 이만주 세력에게 보복당할 일도 없이 마음 편히 사는 놈들도 있지 않겠나?"

"물론 그렇겠지요. 배반자 놈들이 편히 살지도 모른다는 건 달가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제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하는 일 아닙니까. 당연히 나라에 이득이 되는 쪽으로 방침을 짜야지요."

양녕은 동권두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끄덕이며 말했다.

"좋네. 그럼 그리 시행하도록 하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부족하다니요?"

등자사의 질문에 양녕이 답했다.

"우리의 주목표는 여진족을 포섭하는 게 아니야. 경원부와 거솔도를 확실한 조선의 영토로 만드는 것이지. 물론 이 춥고 척박한 땅에 알아서 이주해 오려는 조선 백성이 많지 않으니 이미 살던 여진족들을 동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네. 하지만 우리가 여진족들을 포섭도 하고 몰살도 하던 가장 큰 이유는 이만주 세력이 커지는 걸 막으려던 것 아닌가."

"맞습니다. 조선과 같은 넓이의 땅을 두고 봤을 때 인구가 조선의 십분의 일만 있어도 많이 산다고 할 수 있는 게 북방이지요. 그런 만큼 한 사람의 인력이 조선 대비 열 배의 가치를 한다고 볼 수 있으니, 한 사람만 데려가더라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쏟아부을 수 있는 힘도 차이가 있지. 조선은 이 일대를 영토로 만들기 위해 죄인을 전가입거 시키거나 일반 백성에게 세금이나 군역 혜택을 주고 북방으로 데려올 수 있는 인구와 능력이 있지만, 저들은 그렇게 할 수 없네. 결국 다른 곳에서 데려오는 게 최선이지. 그런데 지금 보니 저쪽도 이미 인구를 나름대로 확보한 모양이야."

양녕의 말에 동권두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인구를 확보했다고 보기에는 이만주 쪽으로 도주하는 데 성공한 부족이 많지 않습니다."

"최근 이만주 세력에게 습격당한 모든 조선 편 부족이 자네와 친분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

"물론입니다."

"그럼 친분이 없던 부족이라고 해서 죽은 이가 적던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친분이 있던 부족과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끌려간 것으로 추정되는 것보다 시체로 발견된 이가 더 많은 것은 같……. 아!"

동권두가 깨달은 표정이 되자 양녕이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놈들은 이미 연철 제조 기술과 4윤작법에 농기구 만드는 법까지 익혔어. 자신들에게 저항하던 이들을 억지로 끌고 가 억지로 풀무질과 홀테질만 시키더라도 충분히 인력으로 써먹을 수 있네. 이전에도 여진족들이 요동이나 조선에서 사람을 납치해 농사를 짓게 시킨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니 자연스러운 행동일 수도 있지. 그런데 딱히 원한이 있거나 본보기로 삼으려는 것도 아닌데 끌고 간 이가 적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저항하는 이들은 모두 죽이고 항복하는 이들만, 즉 데려가서 순순히 일 시킬 수 있을 이들만 데려가도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겠군요."

"바로 그걸세."

그때 대화를 듣던 등자사가 말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놈들 규모가 애초에 크지 않았고 끌고 간 사람도 많지 않은데 어떻게 인구가 급하지 않게 된 걸까요? 조선에서 4윤작법을 성공시키자마자 기술을 빼돌렸다 치더라도 고작 4년입니다. 부양할 수 있는 인구가 늘어나고 새로 낳은 아이들이 커서 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볼 수 없는 기간입니다."

"방법이 있긴 하네."

"무엇입니까?"

"이만주 세력에는 명나라에서 받은 지휘사 관직이라는 위신이 셋이나 있네. 이만주 본인은 크게 쓰고 싶지 않아 하겠지만 내 조부이신 태조대왕을 모셨던 가문이라는 것도 여진족들 사이에는 먹히는 요소겠지. 거기에 식량하고 연철을 만들어 낼 기술까지 있으니, 다른 여진족들을 포섭하기에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요동 쪽 부족들을 흡수해 인구를 늘렸다는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지금 명나라가 해서위를 만들어 견제하는 중인데 그게 가능합니까?"

"해서위도 이만주 세력으로 들어갔다면 가능하지. 이만주 놈이 조선을 치밀하게 속이고 때를 기다리다가 단숨에 오돌리 부족과 무타우타의 부족을 빼내어 간 걸 생각해 보게. 해서위를 이미 포섭해 놓고 들키지 않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

그 말에 최윤덕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게 사실이라면 큰일입니다. 명나라가 이만주 세력을 견제하고자 해서위에 지원하는 게 그대로 이만주 세력을 키워 주게 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만주 세력이 이전에 명나라가 알던 것보다 많이 강해졌다는 것, 연철 만드는 기술이 있다는 걸 명나라에 알릴 때가 온 것 같소. 물론 4윤작법이 명나라에 넘어갔다가는 요동에서 농사를 지어 더 확고히 자신들의 영토로 굳힐 우려가 있으니 그건 최대한 존재 자체를 숨겨야겠지."

"하지만 세력이 강해진 것, 연철 제조 기술을 연습한 것 모두 조선과 교역하면서 일어난 일이라 명나라에 알릴 수 없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건 그때가 판차와 무타우타가 넘어간 직후였기 때문에 그랬소. 그 시점에서 놈들의 세력이 크다면 두만강 근처에서 조선과 교역해서 키웠다는 것 말고는 이유가 없지 않소. 하지만 지금은 그로부터 1년 정도가 지났고 놈들이 조선의 동북면을 어지럽힌다는 것도 명나라에 몇 번 보고했소. 지난 1년간 다른 부족들을 잡아가서 세력도 키우고 연철 제조 기술도 습득했다고 주장할 수 있지 않겠소."

최윤덕은 여전히 약간 걱정되는 듯 말했다.

"그런데 이만주 세력이 규모가 커지고 연철 제조 기술이 있다는 걸 조선이 어떻게 알았냐고 나오면 뭐라 합니까? 놈들이 거점은 요동에 두고서 습격만 하러 오는데, 습격 흔적만 보고 연철 제조가 가능하다는 걸 알 수는 없습니다. 습격하러 오는 놈들 규모가 세력 규모에 무조건 비례하는 것도 아니니 그것 역시 마찬가지지요."

양녕은 최윤덕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거라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오. 애초에 우리가 직접 명나라에 보고할 필요가 없소. 요동도사를 써먹으면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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