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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160화 (160/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160화

160화

"그럼 이제 캐낸 은을 어찌할지를 얘기할 차례인 것 같소."

"어찌하다니요? 캐내어 제련까지 마친 은이면 그냥 돈으로 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맞소, 돈으로 쓸 수 있지. 하지만 그랬다가 자칫 재난을 부르고 말 것이오."

"무슨 말씀이신지……."

궁금한 표정이 된 모리하루에게 양녕이 말했다.

"만일 오우치 가문이 갑자기 은을 많이 가져와서 영지 교역항에서 거래한다면 일본의 다른 영주들이 수상히 여기지 않겠소? 그리고 만약 뒤를 파본 그들이 오우치 가문 영지에서 은이 많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양녕의 말에 팔뚝을 타고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모리하루가 말했다.

"모두들 눈에 불을 켜고 빼앗으려 들겠지요. 특히나 이와미 지역 니마군 일대는 조금만 더 가면 이즈모 지역이 나오는 접경지역일 뿐만 아니라, 영지의 중심지인 지금 이곳 요시키군에서 정반대 위치에 있으니 방어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소. 얼마 전 그 지역을 빼앗긴 야마나 가문은 물론이고 광산 코앞인 이즈모 지역을 가진 쿄고쿠 가문도 탐을 내겠지. 쇼군이 죽으면서 오우치 가문을 비호해 줄 사람이 없으니, 야마나나 쿄고쿠가 아니더라도 다른 가문에서 조정에 손을 써서 이와미 슈고의 자리를 빼앗은 다음, 그 명분으로 은광을 차지하려 들지도 모르오. 산출되는 은을 나눠 갖기로 하면 조정에서도 괜찮은 거래가 될 것이고 말이오."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면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모리하루가 걱정스레 묻자 양녕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은은 조선과의 거래에서만 대금으로 쓰시오. 은을 조선하고만 거래하느라 제값을 못 받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소. 은값이 너무 떨어져버리면 조선에서 은광 개발과 운영비로 가져가게 되는 은값도 같이 떨어져 오히려 손해가 날 수 있으니, 채굴량을 관리해 적당한 은값을 유지할 것이오."

"제가 어찌 대군을 두고 그런 걱정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러면 은과 무엇을 교역하게 되는 겁니까?"

"물론 면포요. 면포 교역이 점점 활성화되면서 조선의 면포 생산량도 늘고 있소. 증가분을 전부 오우치 가문하고 교역하는 데에 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채굴되는 은과 거래할 만큼은 이쪽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오."

양녕이 의도하는 것을 파악한 모리하루가 알겠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군요. 은은 광산에 묶인 것이니 영지를 빼앗으면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면포를 조선에서 사오는 독점 교역권은 오우치 가문에 묶인 것이지요. 갑자기 은으로 교역한다면 수상하게 여기고 출처를 캐려 들지 몰라도, 원래도 교역하던 물건인 면포의 교역량이 늘어나는 것은 그리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그거요. 어차피 자신들도 많이 필요로 하는 물건인 면포이니,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오우치 가문이 조선에서 사오는 양을 늘렸다 생각할 것이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으니, 은광의 존재를 숨기는 것은 철저히 해야겠지만 말이오."

"물론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좀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오우치 가문은 은을 캐고 조선에서는 면포 생산이 늘었으니 둘 사이에서 은과 면포를 거래하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우치 가문이 더 많이 사오게 된 면포를 다른 일본 영주들과 무엇으로 거래해야 할지가 막막합니다. 그들이 면포를 많이 필요로 한다고 하더라도, 면포값으로 치를 물건이 부족하다면 결국 못 파는 것 아닙니까."

"그 말씀이셨구려. 그거라면 걱정 마시오. 조선에서 필요로 하고 일본에서 많이 나는 것이 있으니, 면포를 팔고 그것들을 사와서 다시 조선과 교역하면 될 것이오."

"그렇다면 다행이지요. 무엇입니까?"

"금은과 구리, 납, 아연, 주석, 수은이오."

양녕이 열거한 교역품들을 들은 모리하루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금은이야 귀한 것이고 특히나 은은 오우치 가문이 사들이는 모습을 보여야 광산이 있다는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니 당연히 교역품이 될 겁니다. 구리는 이전에도 화포를 위해 교역해가시곤 하던 물건이고요. 그런데 나머지도 전부 다 광물이군요?"

"그렇소. 그냥 늘어놓고만 보면 이상하지만, 다 조선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오. 납은 총알, 아연은 황동, 주석은 유기의 재료가 되오. 수은은 금은을 도금하는 데에 쓰이고 말이오."

"그런 것이었군요. 저는 무슨 다른 이유가 있나 했습니다."

"조선에서 필요로 하기에 사려는 것이긴 하나, 노리는 다른 이유가 있기도 하오. 바로 각지의 영주들이 광산을 개발하게 만들려는 것이지."

"영주들이 광산을 개발하게 되면 그들에게 이로운 것 아닙니까?"

양녕은 고개를 작게 가로젓고 말했다.

"단기간으로 보았을 때만 이로울 뿐이오. 첫째로 영주들이 광산에서 캔 광물들로 면포를 사기 시작한다면, 조금 전 우리가 걱정했던 것을 그들도 걱정해야 할 것이오."

"광산을 빼앗으려 영주들이 서로 싸우겠군요. 작물이야 농지를 개간하거나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 원래 가지고 있던 땅으로도 생산을 늘릴 수 있겠지만, 광물은 오로지 광산에서만 나오는 것이니 빼앗기 위해서 온갖 더러운 수가 오가겠습니다."

"둘째로 빼앗건 발견하건 해서 광산을 확보한다면 교역에서 제법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나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오. 조선과 달리 기술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광산을 개발하면 할수록 광독, 즉 제련 부산물로 나오는 독성들이 물을 타고 퍼지니 농경지가 황폐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주민들까지 온갖 병에 시달리겠지. 그렇다고 면포 교역에 필요한 광산을 캐지 않을 수도 없고, 남에게 줄 수는 더더욱 없소."

듣고 있던 모리하루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아하! 그야말로 계륵입니다. 광산이 고갈되고서야 어쩔 수 없이 멈춰질 것이고, 그때까지는 광독을 막기 위해 돈과 인력을 더 쓰거나, 피해가 그리 크지 않다면 억누르고 무시할 것 같습니다."

"맞소. 광맥은 언젠가는 바닥나지. 그런데 광물을 팔아 사온 면포는 쓰다 보면 삭아 버리는 물건인 데다가 광맥과 달리 조선에서 목화 농사를 짓는 한 계속 만들어지는 물건이오."

"고갈되는 것을 팔아 고갈되지 않는 것을 사온 셈이로군요. 지극히 손해 보는 장사지만, 그렇다고 면포를 쓰지 않을 수도 없으니 방법이 없겠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이유요. 가공하는 기술만 생긴다면 일본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었을 광물들을 모조리 바닥내어 조선에 팔아넘겼고, 광물로 다른 것을 만드는 기술 없이 캐내어 파는 기술만 있었는데 광산이 고갈되었으니 그나마도 무용지물이오. 게다가 광독으로 황폐해진 농경지와 병든 주민들도 결코 적지 않겠지. 영주 개개인에게는 당장 이득이 되었거나 필요해서 어쩔 수 없던 일일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미래를 통째로 팔아넘긴 셈이 될 것이오."

"무시무시하군요. 그래도 미리 그렇게 될 것을 대비하는 영주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광물을 팔아 번 돈 일부를 써서 다른 기술을 발전시켜두거나 한다면 광산이 바닥나도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당장 저희만 하더라도 교역이 주력이고 은광은 보조적으로 개발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모리하루의 말에 양녕은 전혀 걱정되지 않는 듯 말했다.

"문제없소. 누군가가 광물을 이용한 제조 기술을 개발하려고 한다면 소식을 듣는 대로 바로 조선에 알려주시오. 그러면 조선에서 그것보다 더 좋은 품질로 만든 같은 물건을 약간의 이문만 남기고 공께 팔 테니, 공께서 일본에 저렴하게 파시오."

"개발 초기에는 기술이 부족해서 가격을 내릴 수가 없을 텐데, 더 싼 물건이 먼저 풀려 버리면 내다 팔 수가 없으니 기술 개발도 막히겠군요. 그 상황에서도 손해를 감수하고 어떻게든 기술을 개발하려는 이가 없지는 않겠으나 오래 가지 못할 겁니다. 아니, 오래 가지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모리하루의 말을 들은 양녕이 씨익 웃었다.

"역시 공께서는 내가 말하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려 주셔서 정말 좋소. 좋소. 그럼 진짜 본론은 끝났고, 가짜 본론을 해결할 차례로군."

"가짜 본론……. 아, 오우치 영지 포격에 관한 것 말씀이시군요."

"그렇소. 우선 공께서 나를 만나고 돌아가신 다음, 우리가 며칠 조사하는 척을 한 다음 사람을 보내겠소. 밀수업자가 배에 불을 끄고 지나간다 생각해서 포를 쏘았으나, 조사 결과 큰 물고기인지 고래가 지나가는 것을 잘못 보았던 것으로 결론 내는 것은 이전에 말했던 대로요. 대신 처음 계획했던 당시 예상과 달리 이와미 은광도 이번에 동시에 개발하게 되었으니 하나 더 추가하겠소. 다친 사람이나 상한 물건은 없다고 하나, 어찌되건 조선군이 잘못 알아보고 포격해서 이 소란이 생긴 것이니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의미로 교역량을 늘려주기로 했다. 어떻소?"

"과연, 그러면 사실은 은광을 개발해서 교역량이 늘어난 것이지만 다른 영주들 눈에는 포격에 관한 협상에서 교역량을 얻어낸 것으로 보이겠군요. 현명하십니다."

"과찬이시오. 그럼 그리 알고 진행하겠소."

양녕의 말에 모리하루도 야심 가득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예. 저도 잘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조심히 가시오. 다음번에도 좋은 소식으로 뵈면 좋겠소."

모리하루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동헌을 나가자, 양녕은 그대로 옛 관아 동헌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잘 풀리면 좋겠군. 그리된다면 훗날 일본이 하나로 뭉치더라도 귀중한 발전 동력이 될 광물들은 이미 대다수가 난세의 전쟁 자금으로 소비되어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피의 다이아몬드는 아니고 피의 광물이라 해야 되려나.'

내전 상황을 이용해 일본 전역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기술 발전을 막아 일본을 약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우치 가문을 통해 빨아들인 일본의 부와 자원을 조선을 부강하게 만드는 데에 쓰는 것이 양녕의 큰 계획이었다.

'그 과정에서 오우치 가문도 큰 이득을 볼 것이다. 그리고 사냥이 끝났다고 해서 토사구팽당하지도 않는다. 그저 사냥개에서 집 지키는 개가 될 뿐이지.'

모리하루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할 훗날의 일을 떠올리며 양녕은 야심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 * *

1429년 9월 초순 모일.

한성부. 경복궁 사정전.

이도와 양녕, 중신들은 사정전 가운데에 놓인 소반을 보고 있었다. 소반 위에 올라가 있는 큼직한 은덩어리 몇 개를 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던 황희가 말했다.

"불과 두 달여 만에 은이 이렇게나 많이 채굴되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게다가 이것은 시험 삼아 생산한 은을 계응후가 주상전하께 바친 것이 아닙니까? 본격적으로 채굴이 시작되면 얼마나 많은 은이 생산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습니다."

"영상께서 말씀하신 대로요. 아직 조선인 기술자들도 다 간 것이 아니고, 건물과 설비, 기계들도 다 완성되지 않았소. 제련 기술은 물론이고 은광의 존재 자체도 새어 나가면 안 되는 탓에 조선인 위주로 천천히 진행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오."

양녕의 말이 끝나자 맹사성이 은덩어리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생산된 은은 오우치 가문의 것이고 조선은 광산 개발과 운영에 쓴 돈에 조금씩만 더 쳐서 받는다고 하지만, 결국 오우치 가문이 은을 가지고 거래하는 대상은 조선뿐이니 그 많은 은들도 장기적으로 보면 다 조선으로 들어오겠지요."

"그렇소. 그럼 다들 은 구경은 충분히 하신 것 같으니, 슬슬 오늘의 본론으로 넘어갈까 하오."

"그러고 보니 오늘 이 자리를 만드신 것은 대군이셨지요. 본론이 어떤 것입니까?"

이도와 중신들의 기대 가득한 시선 속에서, 양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장차 조선에 모여들 이 커다란 부를 더 크게 만들고 활용할 방책을 논의하고자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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