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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159화 (159/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159화

159화

1429년 6월 중순 모일.

석주목. 옛 관아 동헌.

오랜만에 익숙한 동헌 의자에 앉아있던 양녕은 오우치 모리하루가 들어와 꾸벅 인사하는 것을 보고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서 오시오. 여기까지 오신 것은 처음이지 않소?"

"예, 그렇습니다. 엄청 독특한 느낌의 건물이군요."

"철거하는 사당을 옮겨와 지은 건물이고, 의자나 책상 역시 사당에서 몰수한 기물들을 전용해 쓴 것이오. 그런데 내가 오랫동안 동헌으로 쓰면서 수리도 하고 교체도 하고 조선식 가구도 들여놓고 하다 보니 조선과 일본을 뒤섞은 듯한 모양이 된 것이오."

그 말을 들으며 동헌 안을 둘러보던 모리하루가 말했다.

"그런데 여기는 관청 건물 아닙니까?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기는 한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동안 누가 여기서 일한 흔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질문에 양녕이 웃으며 대답했다.

"정확히 보았소. 한때 내가 동헌으로 썼던 건물은 맞소. 그런데 나도 여기 도착해서 들어오자마자 공과 같은 이상함을 느끼고 부윤에게 물어보았더니 부윤이 말하길, 내가 대군에다가 축자후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여기를 석주목 관청 건물이 아니라 내 궁궐이라 여겼다 하오. 그래서 감히 쓰지 않고 깨끗하게 치우기만 했다는 것이지."

"아하, 그리된 것이었군요."

"그나저나 이렇게 칠주도까지 와도 괜찮소? 일단 일본 조정에는 조선이 공격했다고 말하고 방비하러 온 것일 텐데, 그렇다면 여기는 협상하러 오기에는 너무 적진 깊숙한 곳 아니오."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는 계응후와 오우치 가문 가독 자리를 조카에게 물려준 상태이니, 조카는 영지에 머무르고 저만 온 것이 크게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또 왜 관아까지 들어갔냐고 하면 잘못한 것이 없으니 무사답게 당당하게 갔다 왔다고 하면 되지요. 그리고 어차피 사실은 영지가 공격받은 게 아니었던 것으로 결론이 날 것 아닙니까."

모리하루가 그렇게 말하고 씨익 웃자 양녕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맞소. 우리는 밤에 불도 켜지 않은 수상한 배가 접근하기에 포를 쏜 것이라 말하고, 오우치 쪽에서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조선이 대뜸 포를 쏘았다 말하니, 어느 쪽이 맞는지 확인하고자 직접 만나러 온 것이라는 명분이지. 그리고 조금 조사해 보는 척을 한 다음 알고 보니 큰 물고기인지 고래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조선에서 밀수업자의 배라 생각하고 포를 쐈던 것이라는 결론을 낼 것이오. 결국 오우치 가문을 공격한 것도 아니었고 다친 사람도 없고 상한 물건도 없으니 그대로 끝내면 되는 것이지."

"예. 그리고 어차피 조금 더 있으면 전국이 혼란스러워지니, 다들 이번 일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석주부가 계응국을 공격한 사건이자, 미카도가 죽기 직전 알아낸 진실이었다.

'쇼군이 죽으면 모리하루가 미리 제비뽑기에 손을 써둔 대로 후계자 문제가 터진다. 일본 전체를 혼란에 빠뜨려 약화시키고 그 틈에 조선이 영향력을 넓히려는 목적이지. 그런데 그때 모리하루가 미야코에 남아있다가는 최악의 경우 속임수를 썼다는 것이 발각되어 잡히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미야코의 소란에 휘말려 다칠 수 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양녕이 칠주도를 떠나기 전에 준비해 둔 것이 있었다.

만일 모리하루가 미야코에 있는 상태에서 쇼군이 죽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급하게 사람을 보내서 오우치 가문 영지에 있는 모치요에게 알린다. 그러면 모치요는 비밀리에 석주부윤에게 알려서 자신들 쪽으로 대놓고 포를 쏴 달라 하고, 이 소식을 다시 바로 미야코에 사람을 보낸다. 그러면 모리하루는 급히 돌아갈 이유가 생긴 것이니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고 복귀할 수 있었다.

"좋소. 이제 혼란이 심각해지고 중앙의 권위가 완전히 붕괴하면 그때 또 영지를 넓히면 될 것이니, 지금은 새로 얻은 이와미와 아키의 두 땅을 견고히 지키며 때를 노리시기 바라오."

"물론입니다. 야마나 가문 놈들이 워낙 똘똘 뭉쳐서 막아내다 보니, 이와미와 아키를 얻는 데에 워낙 힘을 많이 써서 사실 한동안은 군사를 먼저 움직이는 것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말한 모리하루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우치 가문이 공격하기 전 야마나 가문의 영지는 서쪽에서부터 이와미, 아키, 빈고, 호키, 이나바, 타지마의 여섯 개 지역에 달했고, 그 여섯 지역이 전부 이어져 있었다.

같은 가문의 영지라도 각 지역을 다스리는 이는 다르기에 평소에는 잘 뭉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 견제하는 편이다. 하지만 숙적인 오우치 가문이 공격해 온다면 한데 뭉쳐서 막아내려 하는 것은 당연했다.

"수비하는 것은 괜찮소?"

"예. 야마나 가문 영지가 이어져 있으나 전부 한 덩어리는 아닙니다. 접경지역인 이와미, 아키, 빈고는 뭉쳐 있어서 공격하기 어려웠지만 결국 긴 전쟁 끝에 이와미와 아키가 오우치 가문의 것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와미와 붙은 이즈모는 쿄고쿠 가문의 멀리 떨어진 영지고, 아키와 붙은 빈고만이 야마나 가문의 소유이니, 이즈모 지역의 동향을 주시하면서 빈고 지역의 야마나 가문을 대비하면 그리 방어선이 길지 않습니다."

"거기다 야마나 가문 역시 패전하고 영지를 잃으면서 힘이 빠졌을 뿐만 아니라, 남은 영지는 길게 이어져 있으니 일본 전체가 혼란에 빠지면 관리하기 쉽지 않겠소. 좋소. 그럼 한동안은 이대로만 잘 유지해 주시오."

"예, 대군. 모치요에게도 잘 일러두겠습니다."

"그럼 쇼군이 죽으면 포를 쏴 공의 피신을 도울 뿐만 아니라 왜 나도 직접 내려와 만나기로 약조했던 것인지 그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로군."

그 말에 모리하루가 씨익 웃었다.

"기대되는군요."

"이제 곧 일본 전체가 혼란에 빠지면 각지에서 분쟁이 심각해질 것이오. 이미 쇼군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졌고 힘도 없으니, 주된 교역 대상들도 힘을 키운 슈고나 호족들이 되겠지. 쇼군이 호족들에게 한 것처럼 호족들도 자기 휘하의 무사들을 통제하기 위해 사치품을 선물할 테니 사치품은 여전히 팔리겠지만, 다른 것이 새롭게 많이 팔리게 되니 전체적인 비중은 줄어들 것이오."

"새롭게 많이 팔리는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전쟁이 잦아지고 규모가 커지면 점점 일반 백성들도 끌어다 병사로 삼으려 할 텐데, 그러려면 그들을 무장시킬 무기와 갑옷이 많이 있어야 할 것이오. 게다가 격한 전투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일어날 것이니 땀을 잘 흡수하면서 겨울에는 보온도 잘 되는 면포도 많이 필요하겠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교역을 진행하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면포는 그렇다 치고, 무구를 많이 팔면 위험한 것 아닙니까? 조선제 도검 같은 좋은 무기가 일본에 많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걱정스러워하는 모리하루에게 양녕이 웃으며 말했다.

"안심하시오. 조선제 도검은 왜인들이 쓰는 칼을 모조리 조선제로 바꾸어 훗날 그들의 정신을 꺾어 놓을 목적이었기에 그리 좋게 만든 것이오. 다른 무기들은 그리 좋은 것을 팔지 않을 것이고, 애초에 그런 좋은 무기를 대량으로 만들어 일본에 팔려 하다가는 정작 조선에서 철이 부족해질 것이오."

"그럼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지금 조선에서 나는 철은 일본에서 나는 철보다 값도 싸고 품질도 더 좋소. 그러나 평균적으로 그러한 것이고, 철을 제련하다 보면 품질 낮은 철도 나오기 마련이오. 그중에서 조선에서는 낮은 품질로 취급되지만 일본에서는 괜찮은 품질로 여겨지는 정도의 철을 가지고 무기나 갑옷용 철편을 만들어 팔 것이오."

"그러면 왜인들 기준에는 괜찮은 성능이 나오면서도 값은 더 싼 물건으로 여겨질 테니, 같은 철로 만든 물건을 조선에 파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겠군요."

"그렇소. 아마 원가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도 못 할 테니 싸게 잘 샀다고 좋아하겠지. 그리고 조선에서 가공해서 일본에 팔아도 그 이익이 가공한 대장장이 품삯보다도 못해 손해가 날 정도로 낮은 품질의 철이라면 아예 그 원재료 상태로 일본에 팔 것이오."

"역시 그것도 왜인들은 나쁘지 않다 생각하며 사겠군요."

잠시 생각해 보던 모리하루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제 미야코에 가기는 힘들 것이니 조선제 도검 때처럼 직접 가지고 다니며 광고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조선제 도검이 널리 이름이 나 있으니 여기 영지에서 교역항을 관리하면서 오가는 상인들 대상으로 천천히나마 판매를 늘려 보겠습니다."

"좋소. 내 지금은 급히 오느라 못했지만, 돌아가는 길에 조금 전 말한 대로 낮은 품질의 철로 제품을 만들거나 원재료 상태로 모아두라 지시할 것이니 공급은 안심하시오."

그 말에 모리하루가 기쁜 얼굴로 말했다.

"일본의 정세가 바뀌기 전에 미리 대비할 수 있게 해주시려는 것이었군요. 감사합니다."

"조선의 제후를 조선이 돕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오. 게다가 조선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지 않소."

양녕은 씨익 웃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공께 말할 것이 아직 남아 있소."

"또 있단 말씀입니까?"

"그렇소. 원래 쇼군이 죽었을 때 와서 전달하려 계획한 것에는 포함되지 않으나, 마침 지금 상황이 되었으니 바로 진행하고자 하오."

"무엇입니까?"

양녕은 그 질문에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 확보하신 이와미 지역은 전 지역을 완전히 통제하게 된 것이 확실하오?"

"물론입니다. 그렇기에 마침내 완전히 장악했다고 조정에도 보고한 것입니다."

"좋소. 그럼 다음으로 묻겠소. 이와미 지역 니마군 일대에 은광이 있는 것을 알고 있소?"

그 말에 모리하루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대군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희 조부께서 옛날에 묘견보살의 계시를 받고 은광을 발견하시어 잠시 채굴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미 지역을 잃으면서 다른 이가 쉽게 찾지 못하게 숨겨두고 훗날을 기약했지요."

"그 일대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고, 존재는 물론이고 위치까지 안다면 더 길게 말할 것도 없소. 니마군의 은광을 다시 채굴하시오."

"은광을 말입니까? 하지만 광을 캐고 제련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인력은 물론이고 돈도 많이 들 것입니다."

"공께서도 영지를 지킬 병력이 필요하고 교역도 해야 하니 인력과 돈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하오. 하지만 안심하시오. 조선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도록 하겠소. 특히나 조선에는 이미 은광을 캐고 제련하는 데에 익숙한 이들이 많고 도움이 되는 기계들도 많으니, 그 기술자들을 파견하고 기계도 만들어 쓰게 하겠소."

멍하니 듣고 있는 모리하루에게 양녕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조선에서 도울 것이기는 하나 오우치 가문의 광산이니 거기서 나는 은도 당연히 오우치 가문의 것이오. 그저 은광에서 이익이 날 경우에만 조선이 광산 개발과 운영에 들인 돈에 약간씩만 더해서 은으로 주시오. 아마 그것을 빼고도 오우치 가문에 큰 이문이 남을 것이오."

"그리하여 주신다면 저뿐만 아니라 오우치 가문 전체에 크게 경사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은이 얼마나 묻혀 있을지 모르는데 너무 많이 투자하셨다가 손해를 보시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괜찮소. 내가 손해 보는 일을 한 적 없는 것은 아시지 않소."

"그것은 그렇습니다만……. 알겠습니다. 제가 어찌 대군을 의심하겠습니까. 믿고 따르겠습니다."

"고맙소."

그렇게 말한 양녕이 미소 지었다. 양녕이 이렇게 자신과 여유로움으로 가득 차서 장담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양녕이 개발하려는 이와미 은광은 원래 역사에서는 전성기 때의 은 산출량이 당시 전 세계 은 산출량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매장량을 자랑하는 초거대 은광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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