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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140화 (140/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140화

140화

1426년 7월 초순 모일.

두만강 이북 모처. 임시 군영.

비우진에서 한참 북쪽으로 올라온 곳. 동쪽으로 흐르는 수빈강의 남안에 위치한, 원래 역사에서 후에 흑룡강성 동녕진이 되는 곳에는 거의 다 무너져 가는 토축성의 흔적이 있었다.

최만리와 양녕이 자료를 보고 판단해 거양성터로 추정한 이 토축성터에는 현재 탐색을 위한 임시 군영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중심에 지휘소 천막이 있었다.

"무타우타가 열심히 한 것인지 아니면 우디거들이 생각보다 잘 따라 준 것인지는 몰라도, 수빈강 일대 성터의 위치 자료가 생각보다 일찍 모여서 다행입니다."

"예. 게다가 마침 여름도 되어 여기 북방은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고 쾌적한 날씨이니, 병사들을 동원해 사방을 찾기에도 좋습니다."

최윤덕과 최만리의 말을 들은 양녕이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오. 덕분에 이렇게 금방 병사들을 투입할 수 있게 되었지. 솔직히 지리를 이렇게 제멋대로 기억하는 우디거들이 어떻게 이렇게 자료들을 잘 모아왔는지는 의문이오."

양녕이 그렇게 말하고는 웃으며 탁자 위에 올려놓은 엉성한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무타우타가 모아온 여러 부족의 자료를 참고해서 만든, 이번 첫 답사와 탐색을 위한 임시 지도였다.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동서남북 방향이 제대로 안 맞는 것이야 나침반 없이 산길을 다니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모아온 자료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있다는 여진족 역참 사이 거리를 다 더해 봤더니 목적지까지 가는 총 거리라고 적어 놓은 것하고 몇 백리나 차이가 났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자기네들이 쓰는 역참 사이 거리를 정확히 모르는 것이나, 한 자료 안에서 덧셈을 틀리는 것이나 정말 놀라울 지경입니다."

"그러게 말이오. 그나마 여기까지 오는 총 거리가 700여 리인 것은 맞아서 다행이오. 그것까지 틀렸다면 도저히 찾을 방법이 없으니 정말로 그 부족을 찾아가서 길을 물어봐야 할 뻔했지 않소. 그나저나 탐색에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데, 내가 도원수를 괜히 멀리 데려와 붙잡아두는 것은 아닌가 싶소. 둔전의 일이 많지 않소?"

양녕의 말에 최윤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도원수는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자리고, 실질적으로 군사 업무를 지휘하고 도원수에게 보고하는 것은 회경군단장이지 않습니까. 지금 회경군단장(김종서)이 군문의 일을 처리하는 데에 정말 뛰어나서 어지간한 일은 다 위임해 두고, 중요하고 급한 일이 생기면 사람을 보내라고만 말해 놓고 왔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구려. 그럼 이제 여기가 거양성이 맞다는 증거나, 선춘령이나 공험진 위치와 그 증거만 찾아내면 더할 나위 없겠소."

양녕은 사뭇 기대가 된다는 듯 말하며 지도를 응시했다.

* * *

며칠 뒤.

임시 군영. 지휘소 천막.

지휘소 천막에서 양녕과 최윤덕이 각자 처리 중인 서류를 살펴보고 있는데 최만리가 들어왔다.

"대군. 드디어 지난 며칠간 병사들을 보내 탐색해 온 내용을 다 정리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지금 바로 보고 드릴까요?"

"물론이지. 고생 많았네. 자, 이리 와서 앉게."

그렇게 말한 양녕이 환하게 웃으며 탁자 위에서 서류를 치워 공간을 만들고, 최윤덕도 하던 일을 내려놓고 의자를 가져와 옆에 앉았다.

"우선 탐색에 도움이 될까 해서 이 근처 사는 우디거들에게 물어보다가 듣게 된 것인데, 이 근처 부족들이 이 성에 걸려 있었다던 종에 얽힌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말에 양녕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종에 얽힌 얘기라니. 설마 거양성에 달린 종을 경원 사는 유성이라는 자가 고철로 팔려다 동티가 나서 죽었다는 그 얘기인가?"

"예. 사람 이름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 얘기와 같았습니다. 오히려 더 세세한 내용도 있었지요."

"그게 사실이라면 여기가 거양성이 맞다는 큰 증거가 되네. 어디 말해 보게."

"예.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이 성에 높이가 3척, 지름이 4척이나 되는 큰 종이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욕심 많은 고려인이 고철로 팔고자 마음을 먹고 사람 30여 명을 데리고 성에 와서 옮기려 했으나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쪼개서 가져가려고 종을 부수었는데, 그 조각들도 너무 무거워서 데려간 말 아홉 마리에 최대한 실었는데도 채 원래 종의 10분의 1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욕심 많은 고려인과 따라간 사람 30명은 모두 범종을 함부로 부순 업보로 전부 급사하고 말았고, 버려진 종 조각들은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해 수풀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말로 자세하군. 그렇다면 혹시 깨진 종 조각들을 찾았거나, 아니면 어디 있는지 안다는 이가 있었나?"

양녕의 질문에 최만리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없었습니다. 정작 이 얘기를 해준 우디거들도 깨진 종 조각을 본 적은 없다더군요. 만일 이게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아서 세월이 지나면서 흙과 풀에 덮여 안 보이게 되었거나, 조선에서 구리가 비싸게 팔린다는 것을 알고 동티도 두려워하지 않는 놈들이 가져다 판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아쉽군. 큰 증거가 될 수 있었는데."

"대신 다른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종이 달려 있었다는 큰 돌기둥 둘이 아직도 있다고 했습니다."

양녕은 그 말을 하는 최만리의 표정을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 표정을 보니 그것도 증거가 될 물건이 아니었나 보군."

"예. 직접 가서 보니 정말로 돌기둥 둘이 나란히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당간지주였습니다. 애초에 돌기둥 간격이 4척이 되지 않으니 지름 4척짜리 종을 달 수도 없는 구조였지요."

유심히 들은 양녕은 최만리의 예상과는 반대로 크게 실망하지 않은 듯 말했다.

"법회 때 깃발인 당을 내거는 것은 천축에서부터 전해져 온 풍습이기는 하나, 돌로 버팀대인 당간지주를 만들고 그 사이에 높은 금속 기둥인 당간을 세워 거기에 당을 거는 것은 삼한 불교의 고유한 특색이네. 아마 솟대를 세우는 것하고 관련이 있겠지. 그러니 당간지주가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 근처에 삼한과 연관이 있는 사찰이 있었다는 증거가 되네."

"그러고 보니 칠주도의 사찰에 당간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시에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그게 삼한의 고유한 풍습이라 그런 것이었군요."

"그렇네. 그렇기에 지금 칠주도 사찰들이 조선의 불교 종파에 나누어 속하게 되면서 완벽히 조선에 동화시키고자 새롭게 당간을 세우고 있지. 즉 오히려 그 자체만으로는 누가 만든 것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종보다도, 차라리 당간지주가 삼한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되네."

흥미롭게 듣는 최만리에게 양녕이 설명을 이어 갔다.

"그리고 보통 당간은 구리나 철로 원통을 여러 개 만들고, 위아래가 맞물리게 33개를 쌓아올려 만들지 않는가. 만일 당간이 넘어지면서 그 맞물린 것이 흩어져 구리 원통만 사방에 나뒹군다면, 당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여진족들이 보기에는 꼭 깨진 종 조각이 흩어진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지."

최윤덕까지 귀 기울여 듣는 것을 본 양녕이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끝냈다.

"하지만 전해지는 얘기와 연결 지어 증거로 삼으려면 당간이 아니라 깨진 종이 발견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애초에 당간을 이루던 원통들도 발견되지 않았잖은가. 아무리 그럴싸하게 들리더라도 결국 추측일 뿐이야."

양녕의 말에 최윤덕이 못내 아쉬운 듯 말했다.

"삼한의 영향을 나타내는 당간지주라는 큰 증거가 있는데도 정작 소문으로 전해지는 종 얘기와 일치하지 않아서 써먹을 수가 없다니, 정말 아깝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소. 그래도 당간지주가 남아 있어서 다행이오. 당간지주가 무엇인지 모르는 여진족들이 잘 다듬어진 돌이라 생각하고 다른 데 가져가 써서 없어졌을 수도 있었지 않소. 지금 증거로 쓸 수는 없더라도 중요한 물건임은 확실하니 당간지주는 잘 관리해야 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 또 알아낸 게 있는가?"

"예. 선춘령을 찾았습니다."

최만리의 말에 양녕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선춘령을 찾았단 말인가?"

"예. 정확히는 여기서 서쪽인 수빈강 상류 쪽으로 60리가량 간 곳에서 선춘령으로 추정되는 곳을 찾았습니다. 선춘령은 수빈강 강변에 있고, 강 건너편에 성터가 있다는 기록과 일치하는 지역입니다."

"그렇다면 윤관이 세운 비석도 찾았는가?"

기대감을 가지고 양녕이 물었지만 최만리는 이번에도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없었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며칠에 걸쳐서 그 일대를 이 잡듯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비석 비슷한 것도 없었습니다."

최윤덕이 옆에서 탄식하며 말했다.

"구리로 된 종이나 당간하고 다르게 돈이 되지도 않는데다가, 높은 곳에 서 있기까지 한 비석을 여진족들이 굳이 힘들게 옮겨갔을 리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 자리가 선춘령이 맞다면 원래는 비석이 있었는데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폭우에 쓸리거나 산사태가 일어나 어디 파묻히거나 수빈강에 빠져 없어진 것 아닐까 싶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소. 그렇다면 공험진은 찾았는가?"

물어보는 양녕이나 대답하는 최만리나 크게 기대감이 담기지 않은 덤덤한 대화였다.

"공험진으로 추정되는 곳은 찾았습니다. 자료에 소하강 강변에 있는 성터라고 되어 있길래 하마터면 무타우타나 다른 우디거가 조선에 잘 보이려고 다른 강변에 있는 성터까지 조사해 온 줄 알고 제외할 뻔했습니다. 알고 보니 수빈강 상류의 남북으로 흐르는 구간을 소하강이라 하더군요. 그 구간 중간쯤에서 서북쪽으로 강을 건넌 곳에 성터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찾은 단서는 있는가?"

"없었습니다. 그저 선춘령보다 수빈강 상류 쪽에 있고, 수빈강이 북쪽으로 흐르는 구간에 있는 큰 성터라는 위치로 추정했을 뿐입니다."

최만리의 그 말에 짧은 침묵이 흐르고, 최윤덕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기록이나 위치만 보면 지금 조사된 곳들이 거양성과 선춘령, 공험진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확실한 증거가 하나도 없군요. 선춘령에는 기록에 남은 증거인 윤관의 비석이 없고, 거양성에는 소문으로 전해지는 증거인 깨진 종이 없고, 심지어 국경을 정하는 기준이 될 공험진에는 그나마 전해지는 것도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저조차도 여기가 맞는지 의심이 들 지경입니다."

"그리 고심하실 것 없소. 여기가 맞으니까."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양녕이 확언하자 말을 꺼냈던 최윤덕은 물론이고 최만리도 놀라 양녕을 보며 물었다.

"여기가 맞습니까?"

양녕은 그 질문에 대답 대신 다른 얘기를 시작했다.

"이 수빈강은 우리가 있는 거양성 추정지를 지나서 더 동쪽으로 가네. 그러다가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지. 남쪽으로 한참을 가서 여진족이 주루 호톤이라 부르는 곳을 지나고, 또 한참 더 가서 아민이라는 곳에서 바다로 들어가네."

"주루 호톤……. 저번에 말씀하시길 호톤은 여진말로 성이란 뜻이라 하셨는데, 주루는 뭔지 모르겠군요."

"한 쌍이라는 뜻이네. 그러니 주루 호톤을 한문으로 옮겨 적는다면 쌍성이 되겠지. 그리고 그 주루 호톤 일대의 금나라 시절 이름은 휼품로였네. 그 전에는 발해의 땅이었는데 그 시절 이름은 솔빈이었지."

"오호, 거기가 바로 솔빈부로군요. 새로운 것을 알았습…… 아!"

말하던 최만리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고, 옆에 있던 최윤덕도 눈을 크게 뜨고 양녕에게 말했다.

"솔빈, 휼품, 수이푼, 수빈. 설마……."

양녕이 끄덕이고 말했다.

"그렇소. 다 같은 이름이오."

"이 수빈강 일대가 발해의 옛 땅이었군요. 발해는 고구려의 별종. 즉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이들이니, 이 땅을 조선의 땅으로 만들 수 있다면 오히려 전조인 고려보다도 더 고구려를 이었다는 정통성이 강해질 것입니다. 증거가 없는 것이 정말로 아까운 일입니다."

거기까지 말하던 최윤덕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양녕에게 말했다.

"그런데 여기가 발해의 솔빈부라는 것이 신기하기는 하지만, 그게 공험진과 선춘령, 거양성이 이곳이 맞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 것 아닙니까?"

"여기가 맞다고 했지 증거가 있다고는 하지 않았소."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옆에서 조심스럽게 묻는 최만리의 질문에 양녕이 태연하게 말했다.

"여기가 맞아야 하네. 그래야 영토는 물론이고 지금 얘기가 오간 것처럼 정통성까지 얻을 수 있지. 그러니 지금 증거가 없는 건 중요하지 않아. 곧 있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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