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136화
136화
"걱정되시는 것이라니, 주상께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당장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니 그리 놀랄 것은 없다. 다만 너도 알다시피 주상께서 고기반찬을 엄청 즐기시지 않느냐."
급한 문제가 아니라는 이방원의 말에 양녕이 한결 안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요. 고기가 없으면 식사가 아니지만, 고기만 있는 것은 충분히 식사라고 하실 정도니까요."
"그래. 그런데 고기만큼이나 책을 좋아하면서도 몸 쓰는 것은 그리 즐기지 않으시니, 저러다 건강을 해칠까 걱정된다. 지금이야 젊으시니 괜찮다 하지만 미리 준비하지 않다가 장차 옥체에 무슨 일이 생긴 다음에는 늦는 것이 아니겠느냐."
원래 역사에서 이도는 당뇨병과 온갖 합병증을 달고 살았으니, 이방원의 걱정은 매우 정확한 것이었다.
"맞습니다. 그렇지만 정사를 돌보거나 책 읽는 시간을 줄이고 사냥을 다니시라 진언할 수도 없는 노릇이로군요."
"그래. 그 반대로 진언을 하면 했지, 그리 진언을 하면 꼭 암군이 되라는 소리니 말이야. 그래서 무슨 좋은 방안이 없나 네게 물어보려는 것이야. 조정의 문무백관에게 묻는 것보다, 영특하면서도 주상과 형제인 네게 묻는 것이 다른 이들을 걱정하게 만들지도 않으면서 좋은 방법도 나올 것 같아서 말이다."
"우선 고기는 절대로 줄이시지 않으실 것이니 그건 제외하고, 몸을 많이 쓰는 일을 권해도 잘 하시지 않겠지요. 좋은 방법이……."
잠시 말을 멈추고 가만히 생각하던 양녕이 다시 말했다.
"우선 차를 많이 드시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차를?"
녹차의 성분이 알려지지 않은 시대에 그 효능을 갑자기 논할 수는 없었지만, 이방원을 설득할 근거는 있었다.
"삼한인들은 고기라고 하면 쇠고기를 떠올리고, 돼지고기는 쇠고기가 없어야 먹는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반대로 고기라고 하면 돼지고기를 먼저 떠올리고 먹기도 많이 먹지요. 그런데 모든 중국인들이 몸 쓰는 일을 좋아하는 것도 아닐 텐데, 중국인들이 고기를 즐겨 건강을 해친 자가 많다는 말이 없는 것은 끼니는 물론이고 차를 물처럼 마시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일리 있는 얘기로구나. 그렇지만 찻잎 공납이 폐지되어서 전부 민간에서 사들이고 있는데, 조정에서 많이 사들이기 시작하면 값이 올라 백성들이 약으로 쓸 찻잎마저 부족해지지 않을까 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
"그것도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차나무는 따뜻한 곳에서만 자라는지라 영남과 호남, 그것도 일부 지역에서만 키우고 있었지요. 그것으로 전국의 수요를 감당했으니 여러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따뜻하고 더 넓은 땅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이방원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렇구나. 이제 칠주도가 있지."
"예. 섬 전체가 차를 키울 수 있는 따뜻한 기후지요. 차밭은 산에 만드는 것이니 차밭이 늘어난다고 해서 평지의 농토를 줄이는 폐단도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미 가꾸어진 차밭도 있을 것이니, 거기서 이미 차나무 키우던 이들에게 바다 건너 조선 본토에 내다 팔 수 있는 길만 열어 주면 알아서 생산을 늘리려 할 것입니다."
"다행이다. 그렇다면 우선 주상께서 차를 많이 드시게끔 해야겠구나. 차는 머리를 맑게 하는 것이니 책을 읽으시면서 드시라 권하면 받아들이실 것이야. 또 다른 방법도 있느냐?"
양녕은 이번에는 조금 길게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주상께서 고기를 조금 많이 드시는 것이 아니니 차만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음……. 말을 타시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말이라……. 그런데 격구도 말을 타고 하는 것은 아니 하시고 걸어 다니면서 하는 것만 가끔 즐기실 뿐인데, 말을 타시겠느냐?"
"승마는 격하게 움직이지 않더라도 좋습니다. 안장에 제대로 앉아 말을 빨리 걷게만 하더라도 충분히 건강을 유지할 정도로 몸을 쓰게 됩니다."
"그건 그렇지. 그럼 권하기 좀 낫겠구나. 어찌 권해야 좋겠느냐?"
"주상께서는 직접 쓰실 일은 없는데도 산학을 배우고 계십니다. 선비가 통달해야 하는 여섯 가지 가운데 산학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마찬가지로 말 타는 것 또한 그 가운데 있으니, 만백성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꾸준히 말을 타시라 하면 될 것입니다."
"괜찮은 명분이군."
"또 말을 꾸준히 타면 소화가 잘 되어서 고기를 더 잘 드실 수 있게 된다 말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 말에 이방원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그 이유를 가장 반기실 것 같구나. 알겠다. 내 그리 권해 보마."
그리고 잠시 말없이 양녕을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던 이방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걱정된다고 이리 살펴보러 와준 것도 고맙고, 내 걱정을 들어주고 좋은 답을 준 것도 고맙구나. 네게 더 바라는 것은 없으니, 거듭 말하는 것이지만 다치거나 아프지만 말거라."
"예. 아바마마."
말을 마친 이방원은 다시 양녕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 * *
1426년 6월 중순 모일.
경원부. 관아 동헌.
동북면으로 돌아온 양녕에게서 조정에서 오간 이야기를 다 들은 최윤덕이 말했다.
"그렇다면 경원부를 어디로 되돌릴지 정하는 것과 공험진을 찾는 것 둘 다 결국 대군께 위임된 셈이로군요."
"그리되었소. 공험진까지 거론되면서 일이 더 커졌으니, 좀 더 서둘러야 할 것 같소."
"그럼 우선 경원부를 되돌려야겠군요. 생각해 두신 곳이 있습니까?"
양녕은 탁자 위에 펼쳐둔 지도를 천천히 살펴보다가 말했다.
"단순히 경원부 한 곳의 위치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소. 경원부는 북방으로 뻗어 나가기 좋은 위치에 지어져야 하는데, 북방으로 뻗어 나가려면 남쪽에서 올라오는 물자와 사람을 받아야 하니 말이오."
"타당하신 말씀입니다. 변방의 고을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뒤에서 받쳐주는 다른 고을들이 있어야 하지요. 그럼 온성진을 받쳐 주기에 회령진이 너무 멀어서 중간에 종성진을 두신 것처럼, 경원부를 되돌리실 자리와 지금 경원부 사이를 이어줄 고을들도 같이 위치를 정하시려나 봅니다."
"그렇소. 함흥부에서도 점석회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니 항구를 만들거나 읍성을 쌓을 점석회는 꾸준히 공급될 것이고, 그러면 새로 만들 고을들을 지킬 병력을 기준으로 따져야겠군. 무리하지 않는 한도에서 진마다 수비병을 배치한다면 몇 곳에 배치할 수 있겠소?"
양녕의 질문에 옆에 두었던 종이들을 들여다보며 최윤덕이 대답했다.
"여기 경원부는 어차피 제가 머무는 곳이라 병사들이 충분히 있어 수비병을 두지 않아도 될 것이니 제외하겠습니다. 회령진은 읍성 대신 주변 길목에 둘 관문을 다 합쳐서 진 하나라고 치면……. 진 여섯 곳 정도를 수비할 병력이 나오겠군요."
"진 여섯 곳이라. 그럼 어디."
양녕이 바닥에서 조약돌 여섯 개를 집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대로 조약돌을 하나씩 집어 지도 위에 올려놓으며 위치를 말했다.
"교역소가 있는 영북진. 관문을 둘 회령진. 최북단 온성진. 온성진을 받쳐줄 종성진."
순식간에 두 개만 남은 조약돌에서 또 하나를 들어 두만강 하구에 바짝 붙은 옛 경원부 터에 내려놓으며 또 말했다.
"경원부."
단 하나만 남은 조약돌을 본 최윤덕이 탄식하듯 말했다.
"옛 경원부에는 무타우타의 부족이 있으니 저 조약돌은 다른 곳으로 옮기시겠지만, 어디로 옮기건 간에 설치할 수 있는 남은 진이 하나뿐이니 뒤를 받쳐 주기에는 부족합니다. 진마다 배치되는 수비병을 조금씩 줄여서 진 하나라도 더 배치할 수 있게 하는 게 나을까요?"
"이미 최대한 많은 진에 배치할 수 있게 짜낸 것이 여섯 곳이었던 것 아니었소? 거기서 더 짜내서 수비병을 줄였다가는 여진족들이 소란을 일으켰을 때 제대로 방어할 수 없어지고 말 것이오."
"그렇다고 진 하나로 뒤를 받칠 수 있게 경원부를 옛 경원부 터보다 뒤로 물려서 되돌리면 북방으로 뻗어 나가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어지고, 북방으로 뻗어 나가기 좋게 앞으로 밀어서 되돌리면 진 하나로는 도저히 뒤를 받쳐줄 수 없게 됩니다."
최윤덕의 말을 듣고 한참을 지도를 내려다보며 생각하던 양녕이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좋은 생각이 났소."
"무엇입니까?"
양녕은 최윤덕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마지막 조약돌을 들어 옛 경원부 터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곳에 있는 해안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 진은 여기에 둘 것이오."
원래 역사의 나진시에 해당하는 그 위치를 보고 최윤덕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옛 경원부 터에 올려놓았던 조약돌을 다시 들어서는 한참 북쪽으로 옮겨 내려놓았다. 원래 역사에서 경원부가 최종적으로 되돌아간 위치였다.
"그리고 경원부는 여기로 되돌릴 것이오."
당당한 양녕의 말에 최윤덕이 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군, 경원부를 되돌리시려는 자리가 확실히 북방으로 뻗어 나가기 좋은 자리이고, 마지막 진을 두신 자리가 지금 경원부가 있는 곳과 경원부가 되돌아갈 위치의 중간이니 진 하나로 양쪽을 이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최윤덕은 지도를 가리키며 이어 말했다.
"하지만 지금 경원부와 마지막 진 사이, 마지막 진과 경원부를 되돌리시려는 위치 사이의 거리가 각각 회령진과 온성진 사이 거리만큼 떨어져있습니다. 회령진과 온성진 사이가 멀어 받쳐주기 위해 종성진을 두신 것처럼 여기도 진을 더 두어야 받칠 수 있을 것인데, 그러려면 최소한 진 두 개는 더 두어야 맞습니다. 게다가 옛 요충지에 무타우타의 부족까지 있으니, 그것까지 감안하면 방어할 진이 더 필요할 것입니다."
최윤덕의 설명을 듣고서도 양녕은 오히려 미소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실 것 없소. 그리고 해안에 둔 것은 마지막 진이 아니오."
양녕은 바닥에서 새 조약돌 하나를 집어 들고 말했다.
"이게 마지막 진이지."
그리고는 새 조약돌을 지도 위에 올려놓았다. 경원부를 되돌릴 위치에서 두만강을 건넌 자리였다.
"여기는 두만강 건너편이지 않습니까? 아직 공험진의 위치를 알아내기 전입니다."
거듭 당황한 최윤덕에게 양녕이 태연하게 말했다.
"공험진이 어디에 있건 간에 온성진은 이미 조선의 땅이지 않소. 만약 지금 최북단인 온성진이 공험진으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조선의 영토 기준은 공험진 이남이지 두만강 이남이 아니오. 마지막 조약돌을 둔 자리가 두만강을 건너기는 했으나 온성진보다는 남쪽이니 아무 문제 없소."
그 대답에 눈만 깜빡이던 최윤덕이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중간지점에 두시려는 진이 뒤를 받쳐 주기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도 괜찮은 이유도 있습니까?"
"물론이오. 여기는 만 입구에서 큰 섬이 파도를 막아 주는 천혜의 항구라고 할 수 있는 곳이오. 산으로 둘러싸여 부지가 좁은 것이 조금 흠이지만, 수비병을 많이 둘 수 없으면서도 방어가 중요한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장점이라 할 수 있소. 물자와 인원을 청진포에서 이곳으로 바로바로 실어 나를 수 있고 지키기에도 좋으니, 중간에 다른 진을 두지 않아도 충분하오. 경원부를 흥성하게 하는 진이니 이름은 경흥진이라 할까 하오."
"듣고 보니 확실히 해로로 수송한다면 말을 탄 여진족들이 덤벼들 수 없으니 거리가 좀 멀어도 문제없겠군요. 하지만 되돌릴 경원부는 거리가 비슷하게 멀면서도 내륙입니다. 두만강이 있다고는 하나 수심이 얕고 겨울이면 얼기까지 하니 수운에 의존할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 건너편에 진을 하나 더 설치하려 하시는데, 수비병을 나눠 배치한다면 조금 전 말씀하신 것처럼 방어가 힘들어지는 데다가 강을 끼는 이점도 없고, 수비병을 다른 곳에서 끌어와 늘린다면 보급해야 할 물자가 더 늘어납니다."
걱정 가득한 최윤덕의 질문에 양녕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괜찮소. 두만강 건너에 설치할 진에는 수비병이 필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