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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120화 (120/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120화

120화

양녕은 궁금해하는 장영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전에 직접 베틀을 써봤을 때 북을 어떻게 날실 사이로 통과시켰는지 기억하는가?"

"홀수번 짝수번 날실 사이에 생겨난 공간에 북을 집어넣고 반대쪽에서 다른 손으로 붙잡아서 꺼냈지요."

"그렇네. 이전에는 실 사이 공간도 그리 넓지 않고, 북을 아래에서 받쳐주는 구조도 없어서 북을 밀어서 보낼 수가 없었네. 직접 손으로 잡아 가며 오가야 했지. 게다가 북을 둘 자리도 따로 없으니, 날실 사이를 통과시킨 북을 옆에 옮겨놓고 양손으로 바디를 당겼다 놓고 다시 북을 집어 들어야 하니 은근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어."

슬슬 이해가 되는지 기술자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잉아 두 개를 써서 날실 사이에 생겨나는 공간을 배로 넓히고, 북을 밀어서 보낼 수 있게 만들고, 북을 다른 곳에 치워두지 않고도 그대로 바디를 당겼다 놓을 수 있게 개선했네. 이게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직접 보면 알 걸세. 이보게, 사철이, 어디 베를 계속 짜 보게나."

"예, 대군마님."

대답한 사철이가 베틀을 움직여 면포를 짜기 시작했다.

나무 부속들이 움직이며 내는 끼익거리는 소리와 발판을 밟는 덜컹이는 소리만 고요 속에서 들리기를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사철이가 말했다.

"벌써 한 치 넘게 짠 것 같은데, 더 짜야 할까요?"

"아니, 그만하면 되었네. 이만 내려오게."

사철이는 그 말에 습관처럼 부티를 풀러 허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가, 매어져 있는 끈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신기하다는 듯 개량된 베틀을 훑어본 사철이가 조심스럽게 양녕에게 물었다.

"이렇게 신기한 베틀은 처음 봅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눈을 빛내는 사철이에게 양녕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야 이번에 처음으로 세상에 만들어진 물건이니 처음 보겠지. 당연히 이름도 아직 없네. 말이 나왔으니 이름도 지어 두는 게 좋겠군. 이 개량된 베틀에서 기존 것과 구조적으로 확실히 다르면서도 중요한 부분이 발판을 발로 밟는 것이니, 발로 밟는 베틀이라 해서 족답직기라 하는 게 옳겠군."

개량된 베틀에 족답직기라는 이름을 붙인 양녕은 이어서 사철이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자네가 이 족답직기를 직접 써 보았으니 몇 가지 묻겠네. 이미 베 짜기에 능숙한 이가 족답직기를 쓰면 이전보다 얼마나 더 빨라질 것 같은가? 그리고 베틀을 아예 써본 적 없는 사람이 족답직기로 새로 배운다고 하면 얼마나 걸리겠는가? 정확히 맞추지 않아도 괜찮네."

양녕의 말에 사철이가 머뭇거리면서도 말했다.

"이미 능숙한 사람이 쓰면 못해도 두세 배는 빨라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베를 처음 짜 보는 사람이라도 이 족답직기라는 것으로 배우면 한나절이면 익숙해질 것 같습니다."

"한나절 만에 말인가?"

놀라서 묻는 장영실의 말에 사철이가 대답했다.

"예. 베틀이란 본래 끌신을 당기고 놓는 힘 조절이 배우기 어려운 것인데, 이건 발판만 밟으면 됩니다. 대신 베를 짜면서 틀어지지 않게 능숙한 사람이 미리 발판 끈 조절만 잘 해 놓아 주면 될 것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럼 이 족답직기를 바로 보급하면 되겠습니다, 대군."

기술자들이 감탄하는 가운데 장영실도 들뜬 목소리로 물었지만, 양녕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을 것 같네."

그 말에 순간 선공시 내부의 분위기가 진지해졌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족답직기 자체는 문제가 없네. 다만 너무 크기가 커서 직접 만들어서 필요한 곳으로 보내기가 어렵다는 게 문제야."

"조면기 때 했던 것처럼 설계도를 보내 알아서 만들게 하고 주요 부품은 직접 만들어서 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여기서 방금 직접 시제품을 가지고 시연해 보기 전에, 사철이는 물론이고 장 부정부터 다른 장인들에 이르기까지 이 족답직기의 구조를 정확하게 다 이해했던 사람이 나 말고 있었는가?"

그 말에 다들 조용해진 것을 보고 양녕이 말을 이었다.

"누가 봐도 어떤 원리와 구조인지 쉽게 알 수 있던 조면기하고는 다르네. 베틀이 본래 규방에서 여인들이 쓰던 물건인 탓에, 익숙하지 않은 장인들은 이게 어떤 목적으로 쓰이는 부품과 구조인지 알기 어렵고, 여인들은 반대로 기계 자체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족답직기의 각 부품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알기 어렵네."

"그러면 각 지역 장인들이 여인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아예 모든 부품들을 다 만든 다음 각지로 보내서 조립만 하게 하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장인 한 사람의 질문에 양녕이 잠시 생각해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부품과 조립하는 방법을 같이 보내더라도 본적 없는 물건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네. 그래서 조면기도 견본을 같이 보냈던 것 아닌가. 게다가 조립은 어떻게 하더라도 사용법도 가르쳐야 하니, 결국 사람도 같이 보내는 수밖에 없네."

양녕의 말에 다들 한숨을 쉬는 가운데 사철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대군 마임. 이 큰 걸 만들어서 옮기기가 어려운 것이면, 만든 베틀을 여기다 전부 모아 놓고 실만 가져와서 베를 짜면 되지 않을까요?"

그 질문에 장영실이 대답했다.

"부품을 만들어 보내서 조립하게 하는 방법에도 해당하는 것이지만, 한성부에서 전부 만든다면 재료가 문제가 될 걸세. 몸체를 만드는 나무를 한성부 근처에서 다 충당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바디를 만드는 재료인 대나무는 삼남 이북으로는 구하기 어렵지 않은가. 지금 이 시제품이야 나라에서 재료를 다 구해다 주신 것이니 쉽게 만든 걸세."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양녕이 불쑥 말했다.

"아니. 굳이 한성부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철이 자네가 나를 도왔네. 아니, 나라를 도운 것이라 해야겠군."

그렇게 말하며 점점 밝아지는 양녕의 표정에 장영실을 비롯한 기술자들은 은근한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슨 방법이 떠오르셨습니까?"

"지금 김해에 제철 시설을 모아 놓고 거기서 나라의 철 수요를 감당해내는 것처럼, 다른 남부 지방의 적합한 고을을 찾아 방직 시설을 모아놓고 나라의 면포 수요를 감당하게 하는 걸세."

"남부까지 내려간단 말씀입니까?"

놀라서 묻는 장영실에게 양녕이 대답했다.

"그렇네. 애초에 지금 목화밭을 가장 크게 만든 지역이 칠주도 아닌가. 그런데 그렇다고 칠주도에다가 방직 시설을 차려 버리면 만든 면포를 매번 바다를 건너 본토로 싣고 와야 하네. 게다가 칠주도 백성들은 목화 농사만으로도 바쁠 텐데 거기다가 방직 시설을 차리면 인력 충당이 되겠는가? 그러니 남부 지방에 만드는 것이지."

"그러면 어차피 원재료인 목화솜은 칠주도에서 바다 건너서 가져와야 하니, 그 김에 한성부까지 가져오면 되지 않겠습니까?"

양녕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첫째로 한성부보다도 남부가 더 인구가 많고 일손이 풍부하네. 둘째로 족답직기를 만들 쓸 만한 목재라면 곧고 튼튼하면서도 가공하기 쉬운 삼나무나 편백이 좋을 것인데, 그건 아직 조선 본토에서는 막 심기 시작한 정도지만 남부 지방에 가까운 대마도나 칠주도에서는 흔한 것이니 구하기 쉽네. 셋째로 바디를 만들 대나무 역시 남부 지방이라야 쉽게 구할 수 있지."

"그러면 남부 지방에 방직 시설을 모아서 차리신다 하고, 그 방법은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자기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가진 데다가 이미 족답직기를 한 번 만들어 보기까지 한 장인들이 여기 다 있는데 계획까지 짤 게 뭐 있나. 다 같이 가서 만들면 되는 것이지."

뭘 굳이 묻냐는 듯한 그 말에 장영실을 포함한 모든 기술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양녕은 거기에 신경도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 다들 짐 챙겨서 떠날 준비들 하게. 나는 바로 주상께 보고하고 와야겠어. 다들 너무 걱정은 말게. 이렇게 크고 중요한 일을 하는데 나라에서 설마 나라에서 지원을 아끼거나 공으로 인정 안 하지는 않을 걸세."

한편 사철이는 사철이대로 괜히 말을 꺼내서 일을 키웠나 하는 표정으로 기술자들 눈치를 보고 있는데, 선공시를 나서려던 양녕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참, 사철이 자네도 집에 가서 짐 챙기게. 지금까지 이 족답직기로 베를 짜 본 유일한 사람이 자네이니, 자네도 가서 다른 사람들한테 사용법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말하고 양녕이 선공시를 나가자 표정이 어두워진 사철이를 다른 기술자들이 측은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 * *

1425년 8월 초순 모일.

나주부 무안현. 목포진.

아침밥을 먹자마자 숙소에서 나와 방직 시설로 향하던 장영실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앞서서 가던 양녕에게 말했다.

"여기 근처 땅이 조금만 더 넓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원래 역사에서 훗날 목포시가 되는 이 일대는, 아직은 간척이 거의 되지 않아 평지가 얼마 없었다.

"땅으로만 쓸 것이 아니라 항구로도 써야 하니, 이 정도로 바다가 넓은 것도 나쁘지 않을 걸세."

"하긴, 농토가 급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나저나 정말 어찌 이리도 적합한 땅이 마침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적합한 땅이지. 땅 안쪽으로는 영산강을 따라서 나주부 중심 고을인 나주목하고 이어지고, 바다 쪽으로는 앞에 섬들이 파도를 막아주니 항구로서도 빼어나네. 무엇보다도 이 일대에는 이미 목화 농사가 활발한 곳이라 재배나 직조에 능한 사람들도 많고 말이야."

"게다가 입지도 좋지 않습니까?"

"해로로 칠주도와 한성부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니 매우 좋지. 나주부 일대에서 생산되는 목화솜에 더해서 칠주도에서 들여온 목화솜으로 면포를 만들고, 그걸 다시 한성부로 보내기에 이보다 좋은 위치가 없네. 어차피 여진족에게 팔 것과 명나라에 보낼 것은 한성부에서 분류해야 하니 한성부보다 더 갈 것도 없네."

"면포 생산이 활발해지면 여기는 더 번성하겠군요."

"그렇네. 그렇게 되면 자네 말처럼 땅이 좀 더 있는 게 좋을 것이니, 장기적으로는 이 일대를 간척할 필요가 있을 게야. 하지만 지금은 나라에서 나서서 간척할 여유 자체가 없지 않은가."

"선공시는 물론이고 공조 전체가 조면기나 족답직기처럼 면포에 관한 기기를 만드는 데에 투입되어있으니까요. 그게 끝나도 수로 파는 일이 또 있지요."

강화군과 통진현 사이 수로인 손돌목은 물살이 거칠어 선박 피해가 많았다. 그래서 아예 그곳을 우회하기 위해 제물포에서 한강까지 수로를 파서 이어 버렸다.

그 수로의 성공에 힘입은 조정에서는 이번에는 악명 높은 거친 수로인 안흥량, 즉 태안군 서쪽 바다 또한 수로로 우회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수로 공사가 성공한다면 태안군은 곶이 아니라 섬이 되겠군."

"정말 규모도 크고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전조 고려에서도 몇 번을 시도했다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화약을 쓸 수 있으니, 가로막는 바위를 전부 폭파해 가며 밀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네. 성공한다면 백성들의 괴로움이 또 줄어들게 되니, 조선이 고려보다 낫다는 사실을 천하에 또 한 번 알릴 수 있겠지."

거기까지 말한 양녕은 민감한 쪽으로 넘어가려던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어찌 되건 나라에서 직접 이 일대를 간척하러 나설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할 걸세. 어차피 여기 주민들이 면포로 돈을 많이 벌게 되고 땅이 부족해지면, 알아서 간척에 능한 대마군 청년들을 불러다 간척하지 않겠나."

"그 대마군 청년들도 지금은 동북방의 일로 바쁘니, 정말로 한동안은 신경 쓸 필요 자체가 없겠군요."

"그렇네. 당장 땅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 지금은 눈앞의 일. 면포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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