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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91화 (91/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091화

91화

"소금을 쉽고 많이 만드는 법이라 하시면……."

"소금이라는 것은 만들기는 어려운 것이나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쓰면 없어져 버리는 탓에 지극히 귀한 물건입니다. 그렇기에 중국에서는 예부터 조정에서 소금을 전매해 부를 쌓았지요. 하지만 그래서는 나라가 백성의 목숨을 위협해 돈을 뜯어내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전조 고려에서는 소금을 전매해 큰 이득을 보았지만, 지금 조선에서는 세금을 내기만 하면 민간에서 소금을 만들고 파는 것도 허락한 것 아닙니까."

"예. 소금이 그만큼 귀한데 만들기는 어려우니 지금의 문제가 생긴 것이지요. 그러니 많이 만들어 귀하지 않게 하고, 쉽게 만들어 어렵지 않게 한다면 폐단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이도의 말에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양녕이 말했다.

"지극히 옳으신 말씀이지만 바닷물로 소금을 만드는 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생산이 늘어도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귀할 것이고, 쉬워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수고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양녕이 드물게 무언가를 두고 시작하기도 전에 어려운 일이라 말하자 이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 상태로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다시 눈을 뜨고 진지한 얼굴로 이도가 말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요순 같은 성군이 아니니 만백성의 괴로움을 모두 없애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괴로움을 줄여 줄 수는 있겠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겠습니다."

* * *

1422년 6월 하순 모일.

삼척부.

이도의 부탁으로부터 며칠 뒤, 양녕은 수행해 줄 몇 사람만을 데리고 삼척으로 왔다. 장계를 보내고 조정의 답신만을 기다리던 삼척부윤은 양녕이 온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지만 이내 관아로 안내하고 차를 내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군께서 직접 와 주시다니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도성 일로 바쁘셨던 것 아닙니까?"

염분(소금 생산 시설)과 염간의 일로 적잖이 속을 썩였는지 걱정과 피로가 가득한 부윤의 얼굴을 슬쩍 살피며 양녕이 대답했다.

"괜찮소. 도성을 석성으로 바꾸는 공사는 다 끝났고, 도로를 까는 것은 주상께서 다른 이들에게 맡기셨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사실 삼척에서만 염간이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니 염분이 있는 고을들은 다 고생이 많을 텐데, 여기에 먼저 와 주셔서 참 송구스럽습니다."

"너무 부담가질 것 없소. 내가 출발하던 당일까지도 염간의 일로 장계가 올라온 곳은 삼척 한 곳뿐이었소. 장계가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어느 고을에 문제가 생겼는지를 미리 알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설령 올라왔다고 하더라도 먼저 장계가 올라온 곳에 먼저 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소."

"그래도 대군이 여기에 와 계시는 동안에 다른 고을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고을은 대처가 늦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크게 걱정할 것 없소. 여기 오기 전 며칠간 소금 만드는 법을 개선하는 방법을 궁리해 간단하게 책으로 써서 주상께 드리고 왔소."

"이 짧은 시간에 말입니까?"

"이미 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생산하는 법은 조선 곳곳에서 쓰이지 않소. 나는 그 방법을 조금 더 다듬은 것뿐이니 대단할 것도 없소. 완성된 기술인 것도 아니라 관청을 새로 두어 내가 없는 동안 그 책을 기반으로 실험하고 기술을 만들 것이오."

"관청이 생겼습니까?"

"그렇소. 의염색이라는 관청이오. 거창한 것은 아니고 임시 관청이오."

원래 역사의 의염색은 나라에서 직접 소금을 생산해 팔아 세수를 올리는 것이 주목적인 기관이었지만, 지금 원래 역사보다 일찍 만들어진 의염색은 전국의 염분을 관리하고 소금 생산 기술을 개발해 보급하는 목적의 기관이 되었다.

"임시라고는 하지만 관청까지 두실 정도면 두 분 전하께서도 심각한 상황이라 여기시는 모양입니다."

자신이 삼척에 와있어도 한성과 다른 지역의 일을 처리할 관청이 생겼으니 안심하라는 뜻으로 꺼낸 말이었지만, 오히려 더 걱정하는 부윤을 보고 양녕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예 정확히 다 말씀드려야 부윤께서 안심하시겠구려. 우선 최근 판 수로의 부평 쪽 입구. 그러니까 부평목 주안 일대에 염전을 만들어 실험해 볼 계획이오."

"주안이면 제물포 쪽인데, 거기는 원래 염분이 없던 곳이지 않습니까."

"아예 새로 만드는 이유가 있소. 우선 도성과 가까워 인부와 관원들이 오가기 좋으니 실험장을 만들기 좋고, 혹시라도 생산이 잘 된다면 한성부에 소금을 공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오."

"하긴 이제 수로가 있으니 소금을 싣고 수로를 통해 한강으로 들어가면 한성부가 지척이지요. 가까우니 옮기기도 좋고 옮기다 손실되는 양도 적겠습니다."

끄덕이는 부윤을 보며 양녕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연안부의 염분에 기술을 적용할 것이오."

"연안부의 염분이라 하시면, 연안목 남쪽 곶에 있는 염전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그렇소. 부평만큼은 아니지만 한성부에서 한강을 타고 나가 강화도를 지나면 금방 닿는 곳이고, 예성강을 타고 올라가면 개성부도 금방인 곳이지."

연안은 조선시대에 이미 백성들이 어업과 염업을 생업으로 삼았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소금 산지였고, 당시 이미 50여 개소에 달하는 염분이 있었다. 원래 역사에서도 근대 이후까지 수도권 일대의 소금 수요를 거의 연안의 염전으로 충당했던 탓에, 분단 이후 일시적으로 남한지역에 소금 부족 사태가 생겼을 정도였다.

"조정에서 쓸 것과 두 서울에서 쓸 소금을 모두 주안과 연안에서 충당할 수 있다면, 적어도 소금을 공납으로 전국 각지에서 받아와야 할 필요는 없어지겠군요."

"그렇소. 그 뒤로는 전국 각지의 염분을 관리하기만 하면 되오. 염분 관리 정도면 호조에서 해도 되는 것이니, 의염색이 임시 관청인 이유가 그 때문이오. 그리고 임시 관청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조정에서 일하는 양이 늘어나지는 않았으니 그것도 안심하시오."

"새로 관청을 만들었는데 일이 늘어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원래는 도성 공사가 끝나고 도성수축도감을 해산하면서 인부와 관원들을 도로부설도감으로 전부 돌릴 계획이었소. 그 가운데 일부를 의염색으로 돌려 일하게 했소. 이미 있던 이들 일손을 빌린 것이고, 공사 하나가 끝난 다음 다른 일을 시작한 것이니 일이 늘어난 것은 아니지."

"그건 그렇지요."

"그리고 인부들은 주안에 염분만 만들고 도로부설도감으로 갈 것이고, 염분을 만드는 동안의 품삯도 제대로 쳐줄 것이니 혹시라도 그들에게 소금일을 시켜서 고생케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접어 두셔도 좋소."

"다행입니다. 한시름 놓았습니다."

드디어 안심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부윤이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조심스럽게 양녕에게 물었다.

"인부와 관원은 도로부설도감에서 빌렸다고 치고, 의염색 도제조는 누가 맡았습니까?"

"방촌 대감이오."

"아……. 그렇군요."

황희의 이름이 나오자, 부윤도 이미 황희의 수많은 겸직에 대해 알고 있던 모양인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잠시 이어진 적막 끝에 양녕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나도 어느 정도 쉬었으니 상황을 보러 가야겠소. 하루가 급한 사안이니 서둘러야 하지 않겠소."

* * *

잠시 후 가까운 염분에 도착한 양녕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6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저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바닷물을 퍼오거나 장작을 나르고 있었다.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는 노인이나 아이들은 연기에 콜록거리면서 솥에 바닷물을 끓이고 있었다. 하나같이 지치고 고된 표정이었다.

"이리 심각할 줄은 몰랐소. 동해안에서 소금을 어떻게 만드는지 알기는 했지만 직접 보니 보통 일이 아니구려."

갯벌이 없는 동해안은 펄을 갈아 소금기가 쌓이게 하는 전통 방식의 염전을 만들 수가 없었다. 그런 탓에 동해안의 염분은 전부 바닷물을 퍼다 끓여서 소금을 만들고 있었다.

"서해안하고 달리 흘러드는 강물이 얼마 없어 같은 양의 바닷물이라도 약간 더 소금기가 많다는 것이 유일한 이점일 뿐이고,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서해안보다 악조건입니다."

"그렇다고 동해안에서 소금을 생산하지 않으면 영동지방은 물론이고 안동부까지도 소금을 구하기 어려워져 버리오. 일반 농촌에 흉년이 든 것이라면 세금을 면제해 주거나 감해주고, 그 정도가 심하면 다른 곳 곡식을 옮겨와 구휼하면 되겠지만, 소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데다가 부윤께서 장계를 올리실 정도로 이미 소금이 귀해지는 상황이니 더더욱 생산을 줄일 수 없소."

알고 있다는 듯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부윤이 말했다.

"이번은 어떻게 해결하더라도 앞으로도 문제입니다. 아까 대군께서 말씀하신 주안과 연안의 염분에서 소금이 충분히 생산된다면, 여기 백성들이 한성부까지 공납으로 소금을 보내야 할 일은 없어질 겁니다. 하지만 전국에 대동법이 시행되면 이들이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 포목이건 미곡이건 간에 결국 소금을 만들어 팔아야 구할 수 있겠지요."

자신의 임기 뒤에나 있을 일임에도 진심으로 백성들을 걱정하는 부윤의 모습에 양녕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만일 이들이 염업을 그만두고 농업이나 어업을 한다면 소금일을 하는 고생은 없어지겠지만, 그러면 이제는 영동과 안동부 소금값이 치솟아 다른 문제가 생길 것이오. 결국 이 지역도 주안이나 연안에 하려는 것처럼 소금 만드는 법 자체를 쉽고 생산량이 많게 만드는 것만이 해답이오."

"생산이 많아지면 종사하는 이들이 줄더라도 버틸 수 있겠지요. 만들기 쉬워진다면 소금일을 해 소금을 파는 것도 생업으로 할 만한 것이 될 테니, 종사하는 이들도 잘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둘 다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고요."

"좋소. 그럼 방향은 잡았으니, 어디 둘 다 해결할 수 있을 방법을 찾아봅시다."

말을 마친 양녕이 열심히 소금을 만드는 이들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데 옆에서 부윤이 말을 걸었다.

"책으로 써놓고 오셨다는 염분 개선 방법은 어떤 기술입니까?"

"우선 바닷물을 보관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오. 밀물 때 입구를 열어서 바닷물이 들어오게 하고 썰물 때는 닫아서 바닷물을 가두는 것이지. 다음으로 갯벌 위에 개흙을 고르고 넓게 펴서 다지고, 사방에 턱을 만들어 물을 담아둘 수 있게 염전을 만드오. 거기에 앞서 가둬 두었던 바닷물을 채우고 햇빛으로 말려 소금을 만드는 기술이오."

양녕의 설명을 다 들은 부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햇빛으로 말리는 것 말고는 동해안과는 인연이 먼 기술이로군요. 밀물과 썰물이 크고 갯벌이 넓은 서해안에 맞춰 생각하신 것이라 그렇겠지요."

"뭐 그렇소. 사실 동해안 염분 자체가 터가 좋아서 만들었다기보다는 필요해서 만든 것이니 개선할 기반 자체도 없지 않소."

"그렇지요……."

"아예 적용할 수 없을 것은 아니오.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눈에 띄게 낙담했던 부윤이 그 말에 양녕을 보았다. 양녕은 말하는 내용과는 다르게 굳은 표정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갖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해안의 염전 기술을 동해안에도 적용할 방법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양녕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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