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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83화 (83/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083화

83화

"그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개척을 돕는 왜인들에게 세금을 감해 주고 땅도 조금 주는 것이오."

양녕의 말에 부윤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세금이 줄고 땅까지 받으면 그 왜인들의 세가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조선인이 된다면 문제없는 일이오."

"그건 그렇습니다."

"이 해결책에는 그러기 위해서 몇 가지 신경 써야 할 것이 있소. 첫째로, 그냥 개척을 도우면 세금도 감해주고 땅도 준다고만 하면, 왜인들이 우르르 와 개척을 돕고 땅을 몽땅 가져가 버릴 것이오. 이 정도면 조선인으로 만들기 쉽겠다 싶을 정도 숫자의 왜인들만 뽑고, 조선인들 사이에 최대한 흩어지고 섞이게 해 그들을 동화시켜야 하오."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도울 왜인을 뽑는 과정에서 조선 백성과 친하거나, 조선옷을 입었거나, 어눌하지만 조선말을 쓰려고 하는 이들만 뽑는 것이오. 당연하지만 이런 기준을 대놓고 알리면 안 되오."

양녕의 말에 부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해했습니다. 조선과 접점이 있어야 개척을 도와 세금도 줄고 땅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왜인들에게 심어주면서, 동시에 조선에 동화될 의지가 있는 이들을 뽑는 것이로군요."

"그렇소. 그리고 마지막. 개척을 도와 세금을 우대받고 땅도 받게 된 왜인은 관에서 비호해 주어야 하오."

"비호해 주다니요?"

"일본은 마을마다 주민들이 강하게 결속되어 있소. 과한 세금에 시달리는 탓에 살아남기 위해서 힘을 모아 뭉친 것이지. 칠주도가 조선 땅이 되었다고 하나 왜인들의 그런 성품이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았소. 그리고 이렇게 집단이 하나로 뭉쳐있다면 그 안에서 모나고 튀는 이를 싫어하기 마련이오."

진지한 표정으로 양녕은 설명을 이어갔다.

"이전에 정동군에서 왜인들을 쓴 것은 자발적으로 오겠다 한 이들을 받은 것이고, 참전한 이들은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갔던 것이오. 남이 세금을 감면받는 것이 부러우면 자기도 일하러 가면 그만이고, 더 감면받고 싶으면 목숨 걸고 싸우러 가면 그만이었지."

"그런데 그렇지 않게 되는군요."

"그렇소. 이제 세금을 감면받으려면 뽑혀야 하고, 뽑히려면 조선말을 조금이나마 하거나 연줄이 있어야 하오. 그리고 뽑혀서 일하고 나면 조선인들과 일도 같이 했고 땅도 그들 근처에 받았으니 조선말도 늘고 연줄도 강해질 것이오. 이제 그들이 모나고 튀기 시작하니 이웃들의 시기가 강해지겠지. 그러다 혹시라도 그들 사이에 충돌이 생겼을 때, 조선과 연줄이 있는 이들을 비호해 주라는 것이오."

"조선 편을 드는 것이 엄청난 위세가 되겠군요. 한번 조선과 접점이 생기면 점점 자연스레 조선에 더 가까워지면서 이득을 보게 되고, 설령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비호받을 테니 말입니다."

"대신 천천히 문턱을 높여 가야 할 것이오. 처음에는 조선옷만 입어도 뽑힐 수 있었다면, 나중에는 이미 조선 편이 된 이들의 추천을 받거나 그들과 혼사라도 맺어야 하게 말이오."

"그리되면 연줄을 만들기 위해 조선 편이 된 이들에게 합세하거나, 그자들이 마음에 안 들면 아예 조선말을 배워서 바로 조선인이 되어 앞서버리려 들겠군요. 왜인들을 조선에 동화시키기는 데에 최고의 묘수입니다. 그런데 약간 걱정되는 게 있습니다."

"무엇이오?"

"조선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왜인들이라면 이 방책의 의도대로 빠르거나 늦거나 조선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마음 없이 자기 세금이 남들보다 높은 것만 불만인 자, 애초부터 조선을 싫어했던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몰락한 호족들과 합세해서 반란이라도 일으킬까 걱정입니다. 마을이 단단하게 뭉쳐있으면 마을 단위로 봉기하기도 좋지 않겠습니까."

부윤의 걱정스러운 말에도 양녕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걱정은 할 필요 없소. 오히려 일어나면 좋소. 내가 그 전례를 만들어 두었으니 말이오."

"무슨 말씀입니까?"

"이전에 대분부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을 진압했을 때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지 않소."

부윤은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역모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왜적 잔당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고, 수령은 군사가 올 때까지 잘 막은 것이라 하려 공으로 인정까지 받았지요."

"그렇소. 게다가 마을 단위로 뭉쳐서 봉기하면 동조자나 방관자 없이 전부 가담자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오. 모조리 처형하거나 처벌하고 몰수한 땅은 조선 백성들에게 주면 되겠지. 왜인들을 전부 동화시키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칠주도에 왜인 없이 조선인만 남으면 완벽히 조선 땅이라 할 수 있지 않겠소?"

"역시 대군께서는 대단하시면서도 무서운 분이십니다."

경외감이 담긴 부윤의 말에 양녕은 웃으며 말했다.

"조선인에게만 안 무서우면 되오. 왜인에게 무서운 건 괜찮지 않겠소? 그나저나 공과 대화하면서 이런 좋은 방책이 떠올랐으니, 한성에 가기 전에 다른 고을에도 알려 주고 가야겠소."

"좋은 생각이십니다. 선발 기준도 숨겨야 하고 비호하고 이간하고 하는 것이 목적이라 기록에 남길 수 없으니 자세히 적으시지는 못하겠지만, 현감도 아니고 부윤들이니 그사이에 숨은 의미는 다들 알아낼 것입니다."

부윤의 말에 끄덕인 양녕은 옆에서 조용히 들으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만리에게 말했다.

"이미 다 조선인인 동사부와 내 영지가 아닌 녹아부, 왜인을 모두 내쫓았고 다시 들이지 않을 일기부와 대분부, 오늘 방책을 들은 여기 좌하부에는 알리지 않아도 되네. 포전부하고 석성부에만 전하면 돼. 그나마도 여기서는 개간과 간척이던 것을 포전부는 간척과 유황채굴, 석성부는 석탄채굴과 소석탄 굽기로 바꿔서 보내면 그만이니 업무량은 걱정하지 말게."

"다행입니다."

속마음을 들켰다는 놀람보다도 일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더 컸는지 최만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감돌았다.

* * *

1422년 4월 하순 모일.

일기부 일기목.

칠주도 순회에 이어서 남은 업무처리와 신임 석성부윤에게 인계하는 것까지 끝내고, 드디어 양녕과 최만리는 짐을 챙겨서 칠주도를 떠났다. 멀미를 심하게 하는 최만리를 고려해서 천천히 가기로 했고, 당연히 첫 경유지는 일기도였다.

"관아도 그렇고 누각도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석성목 관아가 왜인들의 사당을 옮겨 지어서 특이했다면, 여기는 수군여단이 쓰던 건물들을 재활용한 것이라 특이한 것이네."

"그래서 망루나 장대 비슷한 모양으로 생겼군요. 신기합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누각 곳곳을 살피는 최만리를 보며 피식 웃은 양녕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옆에 앉은 일기목사 겸 일기부윤에게 말했다.

"다른 부들과 달리 배를 타고 멀리 떨어진 지역들을 관리해야 하니 어려움이 많겠소."

"아닙니다. 어차피 지금은 마을들을 없애는 것도 끝났고 사는 사람도 없이 빈 곳이니, 순찰 다니면서 누가 몰래 들어와 살고 있지 않나 살피기만 하면 됩니다. 평호도 교역항을 새로 만들어서 관리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규모도 작고 여기서 석성목 가는 것하고 거리 차이도 크지 않습니다."

"다행이오. 평호도 교역항은 어떻소?"

"그야말로 천혜의 항구입니다. 항구와 그 주변 지형은 물론이고 위치 자체도 뛰어납니다. 배를 타고 오기에는 일본이 쉽고, 서쪽으로 치하도를 타고 오면 명에서 오더라도 뱃길을 찾기 좋습니다. 남쪽의 유구나 섬라곡(태국)에서 오더라도 여름 바람을 타고 와 겨울 바람을 타고 돌아가면 먼바다를 가면서도 걱정할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면서도 조선 본토와도 가깝지요."

"듣기만 해도 기대되는구려. 나중에 꼭 가서 봐야겠소."

"나중이라니요? 지금 한성으로 가시는 길에 들려서 보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 말에 옆에서 생강 냄새를 어마어마하게 풍기며 앉아있던 최만리의 눈빛이 떨리기 시작했다.

"작으나마 교역이 시작되었으니 여러 나라 사람이 오갈 것인데, 아직 규모가 작으니 한 사람, 한 사람이 눈에 띌 것이오. 혹시라도 조선의 대군, 그것도 폐세자인 내가 교역항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명나라에 퍼지기라도 하면 수상하게 여기지 않겠소."

"그건 위험하지요. 대군께서 정동군을 이끄셨다는 이야기도 의심을 살까 봐 명나라에는 숨기고 있는데, 갑자기 변방 섬의 교역항에 모습을 드러내신다면 이상하다 생각할 겁니다."

"그렇소. 그러니 나중에 규모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져 인파에 섞여 들키지 않을 정도가 되면 가겠지만 지금은 아니오."

부윤이 이해했다는 듯 끄덕이고, 옆에서는 배를 안 탄다는 말에 안심한 최만리가 양녕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교역항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명나라는 조공 아니면 무역을 하지도 않는데 일본은 정이대장군이 사신을 박대해서 쫓아낸 뒤로 조공국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해금령까지 내려져 있으니 바다에 나온 명나라 상인이라고 해봤자 결국 밀무역상 아닙니까."

"그렇네."

"어차피 소석탄은 조선 안에서 오가는 것이고, 조선과 일본 무역은 오우치 가문을 통해서 하는 것이니 평호도를 거치지 않아도 됩니다. 명과 일본 사이에 무역으로 오가던 물품이 있더라도 평호도에서 거래하게 두지 말고 조선에서 중계하면 더 이득이고요."

"자네 말이 맞네. 일본이 명에서 수입하던 물건을 아예 조선이 독점하다시피 해서 팔면 값을 올려받을 수 있을 것이고, 일본이 명에 팔던 물건들도 조선이 조공품으로 명나라에 넘기면 훨씬 더 값을 후하게 받을 수 있겠지. 밀무역은 제값을 받기 어렵지만 조공은 오히려 제값보다 많은 회사품이 돌아오니까 말이야."

양녕의 시원스러운 인정에 역으로 최만리가 당황하며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입니까?"

"평호도 교역항은 교역이 주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네."

최만리가 혼란에 빠져 작아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금 전에 부윤께서도 말씀하셨지만 교역항으로는 이만한 곳이 없고, 이미 상인들도 오가기 시작한 것 아닙니까?"

"그건 맞네. 장차 교역항으로 요긴하게 쓰일 것이야. 다만 당장의 주목적이 아닐 뿐일세. 지금 평호도 교역항을 둔 가장 큰 이유는 교역으로 이익을 얻는 게 아니라 명을 안심하게 하고 일본의 판단을 흐리기 위함이야."

수수께끼 같은 말에 부윤도 궁금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양녕이 이어서 말했다.

"삼한이 요동을 얻으면 반드시 강한 세력을 이루어 중국과 겨루었네. 그것을 알기에 전조 고려 말에나 내 조부이신 태조대왕 때에나 조선과 명이 요동을 두고 날을 세웠던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요동에는 삼한인이 많이 사는 탓에 명은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지요. 그런 상황에서 조선이 알아서 반대쪽인 남쪽으로 군사력을 투사한다 하였기에 명이 이번 정벌을 승인해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끄덕이며 말하는 부윤과 다르게 정벌 개시 후에 관리가 된 최만리는 새로운 것을 알았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맞소. 왜구들은 명나라 해안지역에도 위협이 될 정도였으니, 조선이 알아서 요동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왜구들과 싸워 힘도 빼고 자기네 해안도 지켜주는 일거양득을 노린 것이오. 그런데 승인에는 한 가지 더 이유가 있었소."

"무엇입니까?"

"칠주도가 영남만 한 섬인지 몰라서 조선이 가지라고 한 것이오. 중국은 대륙인 탓에 섬이라고는 해안에 있는 작은 것만 접한 데다가, 일본은 멀리 떨어져 있기까지 해서 제대로 알 수 없으니 작은 섬이겠거니 한 것이지. 섬의 크기도 모르는데 어떤 자원이 나는지는 당연히 모를 것이오."

"화포의 재료인 구리, 화약의 재료인 유황은 물론이고, 금은이 나는 광산도 있지요. 조선 각궁의 가장 중요한 재료라 중국이 잘 팔지 않으려 하는 물소뿔을 들여올 수 있는 항로도 있습니다."

"게다가 날씨가 따뜻하고 땅이 넓으니 물소만 구한다면 아예 칠주도에서 키울 수 있을지도 모르오. 아니, 키워야만 하겠지."

양녕의 말에 부윤과 최만리가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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