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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81화 (81/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081화

81화

1422년 3월 중순 모일.

대분부(옛 풍후 지역) 대분목.

"이렇게 바로 와도 괜찮으십니까?"

오키타 전투로 황폐해졌던 모습은 떠올릴 수도 없을 만큼 깔끔해진 시가지를 걸어가던 양녕은 뒤에서 들려온 최만리의 질문에도 멈춰서지 않고 대답했다.

"어차피 석성부야 내가 항상 있던 곳 아닌가. 석성부 동부지역이야 관아가 있는 석성목에서 멀긴 하지만, 어차피 지난 전쟁에서 호족들도 다 쓸려나가고 사당들도 진즉에 헐리고 남은 거라고는 탄광하고 마을들뿐이니 굳이 볼 것도 없고 말이야."

"그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다만 계응국의 적간관(시모노세키)을 접하는 쪽도 그냥 바로 지나치셔서 여쭈어본 것입니다."

최만리가 관문(칸몬)해협 일대를 말하는 것임을 이해한 양녕이 말했다.

"아, 문사(모지) 지역을 말하는 게로군. 조선과 계응국 주요지역을 잇는 항로이자 칠주도와 일본 본섬을 나누는 해협이라 중요한 곳이지. 그래서 나도 자세히 살펴보고 싶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네."

"어쩔 수 없다니요?"

"아직 전쟁이 끝나고 몇 년 지나지 않았고, 여전히 오우치 가문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는 상황이네. 그런데 내가 조선과 일본의 접경지역을 오래 살피고 있으면 왜인들 사이에 좋은 소식이 퍼질 일은 없지 않겠나."

"하긴 오우치 가문에서도 칠주도 동향을 비교적 빠르고 정확하게 일본 조정에 전달해야 의심도 피하고 변방 영주로서의 위신도 살 것인데, 협상 명분으로 오우치 저택까지 가시는 것도 아니고 접경지역에서만 머무르셨다는 게 일본 조정에 전달되면 재침공을 준비한다고 이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걸세. 아, 다 올라왔군. 저택이 있던 자리에 누각을 지어 놓으니 느낌이 완전히 달라졌군그래."

시가지 끝의 비탈을 올라 양녕과 최만리가 도착한 곳은 오토모 가문 성이 있던 곳, 즉 마지막 전투에서 치카아키가 몸에 폭탄을 두르고 양녕과 자폭하려 했던 그 저택이 있던 자리였다.

소규모 전투 중심의 일본식 방어체계에서 벗어나서 대분목 주위에 새로이 읍성을 쌓고 조선식 방어체계를 구축할 계획이었지만, 성이 있던 자리가 조선식 방어체계에서도 중요한 위치였던 덕에, 평소에는 연회나 행사 장소로 쓰고 전시에는 장대로 삼을 목적으로 기존 저택을 헐어 내고 새롭게 누각이 지어져 있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보니 정말 한산해졌군요. 차라리 지난 전투 때 본 시가지가 더 번화했던 것 같습니다."

누각에 올라 시가지를 내려다보던 최만리가 감상을 말했다. 그 말대로 대분목 시가지는 한때의 번영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다.

"그때는 그나마 포탄이나 인화살에 당하거나 전투 과정에서 크게 상한 건물들은 있어도 호족들과 상인들 저택은 멀쩡했지. 그 뒤로 동쪽으로 바다 건너 왜경까지 이어지던 해상 교역로가 끊기긴 했어도 상인들만 손해를 보았지, 시가지가 쇠퇴할 정도는 아니었고 말이야."

"그 우물 안 개구리 놈들이 반란만 안 일으켰어도 그때 시가지가 거의 남아 있었겠지요. 치열한 전투가 하루 종일 이어졌고 정동군에서도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는 것을 자신들도 제법 잘 싸웠고 조선군도 붙어볼 만한 상대인 것이라고 해석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지배층에서 밀려난 호족 가문들과 손해를 보게 된 상인들이 그런 착각 속에서 반란을 일으킨 대가는 컸다. 정동군은 해산되었지만, 여전히 일기도에 남아 있던 수군여단이 함대와 병력을 몰고 와 단숨에 난을 진압해 버린 것이었다.

이후 양녕의 승인을 받은 수군여단이 옛 비전 지역 마을들을 상대하며 익숙해진 방식으로 뒤처리를 하면서 대분목은 말 그대로 싹 쓸려나갔다. 반란에 가담한 호족과 상인들은 모조리 처형당하고 집은 헐려 평지가 되고 재산은 몰수당했다. 남은 왜인 주민들도 동조한 책임을 물어 전부 칠주도 각지로 산산이 흩어 이주당했고, 남겨진 땅과 건물들은 조선에서 온 백성들이 차지했다.

"그래도 덕분에 명분을 얻어서 옥토이자 요충지인 이곳을 조선 백성들로 쉽고 빠르게 채울 수 있지 않았나. 불만 품은 왜인들을 조선인으로 동화시킬 수고를 덜었으니 우리에게는 잘된 일이지. 시가지가 이전만큼은 번화하지 않지만, 애초에 교역로도 끊기고 변방이 된 마당에 이전처럼 번화할 필요도 없고 말이야."

뒤에서 누가 듣나 슬쩍 확인한 최만리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대분목사 겸 대분부윤가 정말 천운이었지요. 반란이 터졌는데도 본인은 처벌받고 고을은 반역향으로 찍혀 강등당하기는커녕, 오히려 상을 받고 왜인들 교화하는 수고까지 덜었으니 말 잘 듣는 조선 백성들 데리고 잘 꾸려가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애초에 어찌 되건 이 사건을 역모로 취급할 수도 없었지 않은가. 축자국을 막 다스리기 시작했는데 역모가 터졌다고 하면 내 위신에 문제가 생기니 말이야."

그런 이유로 양녕은 이 사건을 역모 진압이 아닌 칠주도 정벌의 연장으로 취급했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던 척하고 정체를 숨겼던 오토모 가문 잔당들이 기회를 엿보다 반란을 일으킨 것이고, 반란에 동조한 주민들도 교화되기 전이라 조선인이 아닌 왜인들이니 역모로 볼 수 없다는 논리였다. 덕분에 대분목사 겸 대분부윤은 역모를 막지 못했다고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잔당들의 습격에 제때 대처하고 수군여단이 올 때까지 잘 막은 것이 되어 포상까지 받게 되었다.

"뭐 결과적으로 보면 대군께서도 대분목 왜인들의 교화에 신경 쓰실 것이 줄어들었으니 상황 파악 못 하고 반란 일으켰다가 죽은 놈들과 쫓겨난 주민들을 제외한 모두에게 잘된 일이지요. 그나저나 저 앞바다에 떠 있는 과생도에는 왜 마을을 만들지 말라 지시하셨던 겁니까? 왜인 마을도 있던 제법 큰 섬이지 않습니까?"

갑자기 치고 들어온 최만리의 질문에 양녕은 잠시 당황했다. 몇백 년 뒤에 가라앉기 때문이라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최대한 빨리 머리를 굴린 다음 입을 열었다.

"가뜩이나 왜인들을 모두 이주시키고 조선 백성들만 남겨서 인구가 적은데, 최대한 농사짓기 좋은 육지부터 채워나가는 것이 순서 아니겠나. 그리고 여기는 지진이 잦은 곳인데 바닷가에서 지진이 나면 큰 파도가 치는 법이네. 다행히 저 과생도가 제방 구실을 할 것이니 육지에는 피해가 적겠지만, 제방인 과생도 위에다 집을 짓는다면 그 집이 무사하지는 않겠지."

"듣고 보니 지극히 맞는 말씀입니다. 조선 백성들이 번성해야 요충지인 이곳을 방비하는 근간이 될 것인데 큰 파도에 상하면 안 되지요."

최만리가 이해했다는 듯 끄덕거리고, 적어도 최만리가 양녕이 미래까지 내다본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끝났다는 사실에 양녕도 안심하는 순간이었다.

* * *

며칠 뒤.

동사부 동사목.

동사목 관아 밖, 조선식으로 화려하게 지어진 누각에서는 양녕이 온 것을 환영하는 연회가 펼쳐지고 있었다.

"저번에 오셨을 때도 이랬습니까?"

"아니. 저번에는 금방 가서 아예 연회고 뭐고 없었네."

악사들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 속에서 최만리가 작은 소리로 묻자 양녕도 조금 예상 밖이라는 목소리로 대답할 정도로 연회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대접받는 건 기쁘지만 이렇게 거창하게 안 했어도 괜찮소."

양녕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동사목사 겸 동사부윤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도 고을 재정을 고려해서 적당한 규모로 하려고 했지만, 대군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호족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다들 나서더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동사부윤이 말하기가 무섭게 백성 몇 사람이 저마다 안주가 가득 담긴 소반 하나씩을 들고 와 양녕 앞에 내려놓았다.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라도 무엇이라도 말씀하시라며 어눌한 조선말로 말하고 물러가는 백성들은 조선옷도 제대로 갖춰 입고 있었다.

"내가 저번에 호족들이 잔치를 열어준다는 것을 마다하고 가긴 했지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백성들까지 자발적으로 이런단 말이오?"

양녕이 접시마다 그득히 담긴 안주를 내려다보며 말하자 옆에서 동사부윤이 말했다.

"수백 년간 백제 유민의 후손으로서 백제왕의 제사를 지내온 이들입니다. 자신들이 지켜온 조상의 말과 의복을 온전히 되찾아 주시고, 삼한을 이은 나라인 조선의 품으로 다시 받아들여 주신 대군은 이들에게 천하에 둘도 없는 은인이신 것이지요."

"게다가 그 계기도 이들이 지극히 모셔온 정가왕이 내 꿈에 나타난 것이었으니 더욱 그렇겠구려."

"예. 조선에서 기술자들이 왔을 때 이들이 가장 먼저 부탁한 것도 관아를 다 짓고 나면 정가왕과 그 아들들의 사당을 조선식으로 새로 지어달라는 것과, 평상복은 천천히 알려줘도 괜찮으니 사당에 제사를 지낼 때 입을 조선옷 짓는 법을 먼저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최만리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백성들도 어눌하긴 하지만 2년 남짓 배운 것치고는 조선말을 제법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뿌리를 되찾으려는 열의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 정도면 동사부 출신치고는 조선말을 못 하는 편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동사부윤의 말에 최만리만 아니라 양녕도 눈을 크게 뜨며 물어보았다.

"저들이 얼마나 조상의 말을 찾고 싶어 하는지, 불과 1년여 만에도 이미 조선말을 유창하게 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대군께 도움이 되겠다며 이주해 온 조선 백성들을 도우러 사방으로 퍼진 탓에, 오히려 동사부에 남은 이들은 그들에 비해 조선말이 어눌한 것이지요."

"동사부 출신으로 재주 있는 이들을 뽑아서 관청 일을 돕게 할 때에도 하나같이 조선말이 유창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문관들이 기왕이면 재주도 있고 조선말도 잘하는 이들로 가려 뽑아서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말았는데, 지금 알고 보니 제 생각을 뛰어넘는 일이었군요."

동감한다는 듯 끄덕거린 양녕이 부윤에게 말했다.

"동사부 백성들이 정말로 열의만이 아니라 재능도 대단한 이들이오. 부디 부윤께서는 이들을 잘 보살피고 이끌어서 칠주도에서만이 아니라 조선 전국에서 널리 쓰일 수 있게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여기 백성들이 대군을 칭송하는 것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여기 백성들의 성심에 응해서 연회를 즐기시지요."

"알겠소. 그런데 내가 오늘 젓가락을 일찍 멈추면 여기 백성들이 슬퍼할 것이고, 그렇다고 너무 잘 먹으면 백성들이 또 음식을 차려오겠다 할 것이니 얼마나 먹어야 될지 고민이구려."

양녕이 농을 던지고 잔을 비우자 동사부윤이 다시 병을 들고 술을 따랐다. 술잔을 받는 양녕의 표정은 온화했지만, 속으로는 냉정하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곳 백성들이 이렇게 금방 조선의 말과 의복, 건축을 받아들인 것은 삼한인임을 자부하면서 자신들의 뿌리를 찾겠다는 의지도 있지만, 지금까지 왜인들처럼 살았다는 사실을 지우고 싶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조선인보다도 더 조선인이고자 하는 이 백성들을 널리 써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빨리 칠주도에서 일본의 흔적을 최대한 없애고 완벽한 조선 땅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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