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73화 (73/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073화

73화

1420년 3월 중순 모일.

미야코, 무로마치 어소.

담장 근처에 작게 지어진 어소 내 법당에는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모치가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시선 끝에는 조금 전 도친과 오우치 모리하루가 염불을 외고 물러 나온 불상 앞에서 피어오르는 향 연기가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쿠보?"

요시모치 근처로 와 앉은 도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소. 이미 각오했던 일이기도 하고. 오히려 비슷한 일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도친 선사께서는 소식만 듣고도 먼저 보낸 자식 생각에 마음이 아프실 것인데, 이렇게 오셔서 명복을 빌어 주시니 정말 고맙소."

원래 몸이 약하면서도 음주를 즐겼었고 거기에 정동군의 구주도 원정으로 요시모치가 신경을 쓰지 못한 것까지 더해진 탓에, 요시모치의 외동아들이자 쇼군 후계자였던 아시카가 요시카즈는 원래 역사보다도 5년 일찍 요절해 버리고 말았다. 장례식으로부터 49일이 지난 지금은 사십구재를 지내는 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십구재를 저희 제외하고 혼자서만 지내시다니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으신 분이 큰일을 당하셨는데 누구도 격을 갖추시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도친의 옆에 앉아 있던 모리하루의 말에 요시모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소. 큐슈를 조선에 빼앗긴 것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죽어 간 이들과 헐려 버린 사당이 한둘이 아니오. 내가 거창하게 의식을 치를 체면이 어디 있겠소. 오히려 격을 갖추자 하는 이가 있더라도 내가 사양했을 것이오."

차분하면서도 어딘가 넋이 나간 듯 요시모치가 말한 그때, 담장 너머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쿠보께서 병력을 모으시려 안 한 것도 아니지 않소! 각지의 슈고들이 호응을 하지 않은 것이지! 그리고 애초에 모든 사달의 근원은 남조요! 남조가 해적질을 해서 이런 상황이 된 것인데, 남조 추종자들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를 줄 알고 쿠보께서 미야코를 지키는 직할 병력을 큐슈로 보내신단 말이오?"

한 명이 아니었는지 다른 사람 목소리도 들려왔다.

"맞습니다. 게다가 큐슈 슈고들 가운데 쿠보께서 보내셨던 탄다이의 통제를 잘 따랐던 이들이 있었습니까? 오히려 탄다이를 공격해서 하카타를 장악하려 들던 쇼니 가문 같은 이들만 있었지! 그자들이 말만 잘 들었어도 탄다이가 큐슈 병력을 규합해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이 모든 책임이 남조에 있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은 미카도께서도 말씀하셨고 조정에서도 동의하는 이가 많아요!"

"그 남조 책임이라는 것이 조선이 명분을 만들려고 지어낸 것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확인한단 말이오? 조선이 간계를 써서 미카도마저 혼란스럽게 만든 것일지 어떻게 아느냔 말이오! 남조가 교대계승에서 밀려난 당시에는 아무것도 안 하다가 세가 다 기울고 나서야 슈고들에게 해적질을 하라 시켰다는 건 이상하지 않소!"

들려오는 내용이 자신을 옹호하던 이전 두 사람과 다르게 비판적인 것을 들은 요시모치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옹호파와 반대파에 뒤이어서 이번에는 쇼군에는 반대하지만 남조도 적대하는 의견이 들려왔다.

"조선이 이렇게 작정하고 토벌하러 오면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이미 해적질을 해본 이들이 잘 알았을 것이오. 그러니 후환이 두려워 최대한 뒤로 미루다가 세가 기울고 정 안 되겠다 싶으니 해적을 보낸 것 아니겠소? 물론 그렇다고 쇼군의 책임이 없지는 않소. 호응하지 않은 슈고들을 어떻게든 설득해서 병력을 보내는 것이 쇼군의 일이지, 큐슈를 통째로 내줘 놓고 무슨 할 말이 있단 말이오!"

"저 멀리 동쪽에 느긋하게 있으니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겠지! 애초에 병력을 보낼 생각은 있었소? 그리고 보낸다 한들, 뭘 믿고 관동의 대병력이 미야코를 지나게 둔단 말이오?"

무언가 우당탕하는 소리가 나더니 한층 더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싸우자는 거요? 내 주군께서 외적이 침공한 틈을 타서 쇼군 자리를 노리려고 난이라도 일으키셨을 거라는 소리냔 말이오!"

"진정들 하시오! 우리가 싸워 봤자 조선만 좋아할 것이오. 굳이 우리끼리 네 탓이다 아니다를 가릴 것 없소. 시부카와 가문이 분전했지만 쇼니 가문이 배신한 탓에 상륙을 막지 못했소. 그 뒤로도 조선이 큐슈에서 펄펄 날아다닌 것을 보면 아마 쇼니 가문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도움을 주었겠지. 이미 큐슈를 가장 잘 아는 토호가 배신했는데 중앙의 쿠보께서 뭘 어떻게 할 수 있었겠소."

"은근슬쩍 남조 책임으로 넘기지 마시오! 쇼니 가문은 배신했을지 몰라도, 키쿠치와 오토모 두 가문은 쇼군에게 버림받고서도 최후의 최후까지 분전하다가 후계자들만 겨우 탈출해 미야코에 왔고, 남조와 별 상관없고 조정에 우호적이던 시마즈 가문은 쇼니 가문처럼 싸우는 척조차 하지 않고 조선에 붙었소! 군소 호족들까지 가면 말할 것도 없는데 남조만 배신자인 것처럼 몰지 마시오! 쇼군이 잘못한 것을 왜……."

탁하는 소리와 함께 소리가 작아졌다. 조용히 일어난 도친이 소리가 들리던 담벼락 쪽 미서기문을 닫은 것이었다. 이어서 안쪽의 장지문들까지 모두 닫은 도친이 제자리에 돌아와 앉자, 담 너머에서 들리던 외침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제대로 들리지 않게 되었다.

모리하루는 양녕과 계획했던 대로 귀족 간에 책임 문제를 두고 다툼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사실에 즐거워졌지만, 그 기분이 표정으로 나오지 않게 조심하며 말했다.

"어떻게 다른 곳도 아니고 쿠보께서 계신 어소 바로 근처에서 저리 떠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들릴 거라는 생각도 않는 걸까 싶습니다."

요시모치가 반쯤 자포자기한 듯 말했다.

"들려도 상관없을 것이오. 어쩌면 들으라고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이미 내 권위는 땅에 떨어지다 못해 땅속으로 들어갈 지경이니 말이오."

"아무리 그래도 상중인데 너무한 것 아닙니까?"

"오히려 상중이라 저럴 수도 있소. 내가 제정신 아닌 틈을 타서 무언가 하려고 들려면 지금이 적기 아니겠소. 내 후사가 아예 끊겼으니 형제건 사촌이건 먼 방계건 내 자리 노리기에도 딱이니 말이오."

그렇게 말한 요시모치는 불상을 한 번 보고, 승복을 입은 도친과 모리하루를 보고 이어 말했다.

"사실 나도 생각 같아서는 출가해서 아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싶소. 두 분 선사와 다른 여러 슈고들이 그러하듯 출가한 상태로도 정무를 보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 않소. 하지만 내 자리를 노리는 놈들이 좋아할 일을 해 줄 생각은 죽어도 없어서 그러지 않고 있을 뿐이오."

요시모치의 동생들은 모두 출가해서 승려가 된 상태였으니 그들이 쇼군 자리를 노리려면 일단 환속을 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자신도 출가해서 경쟁자들과 같은 선상에 서 줄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일단 후계자는 정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두면 쿠보의 자리가 더 흔들립니다."

걱정스러운 도친의 말에 요시모치가 끄덕였다.

"알고 있소. 설령 내 아내가 지금 바로 회임해서 아들을 낳더라도 그 아이가 후계자가 될 나이까지 크는 동안 내가 버틸 수 없을 것 같소. 차라리 미련을 버리고 다른 누군가를 후계자로 정하는 게 나라를 위하는 일이겠지."

"그러면 어떻게 정하시겠습니까? 쿠보께서 직접 지명하신다면 그자는 후계자가 된 것에 감사하며 자리를 안정적으로 승계받기 위해 쿠보의 편이 되어 줄 것이지만, 다른 후계자들과는 갈라서게 되어 버립니다."

"나도 그건 알고 있소.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이미 전국의 유력자마다 누구를 후계자로 밀어줄지 파벌이 생긴 상태일 텐데, 그들 사이에서도 내분이 터지겠지. 아마 가장 좋은 방법은 신령께 의중을 묻는 제비뽑기라도 해서 정하는 것이 아닐까 싶소."

양녕이 말했던 제비뽑기 얘기가 그대로 요시모치의 입에서 나오자 모리하루가 바짝 긴장하고 듣기 시작했다.

"신령의 뜻이라면 결정에 토를 달 사람도 없겠지요. 괜찮은 방법입니다."

모리하루가 도친의 말 뒤에 조심스럽게 끼어들며 물었다.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시오?"

양녕은 제비뽑기로 후계자를 정할 수도 있다는 조언만 했을 뿐이니, 이 앞으로는 온전히 모리하루가 판단하고 진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확실하게 부추겨 자신이 원하는 상황으로 몰아가기로 마음먹은 모리하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담장 밖에서 떠들던 이들 가운데는 쿠보의 편도 있었지만, 쿠보의 책임이라 하는 자도 있었고, 그 안에서 또 남조의 탓을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저들이 그냥 자기 의견을 말하다 언쟁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자신이 지지하거나 충성하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세론을 만들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그럴싸한 지적에 둘 다 가만히 듣는 것을 확인하고 모리하루가 말을 이었다.

"만일 제비뽑기를 했을 때 그렇게 세론을 조작하려고까지 들던 이에게 후계자 자리가 넘어간다면 큰일입니다. 차라리 직접 지정하신 것이라면 후계자가 된 것이 쿠보의 권위에서 나온 것이니 쿠보의 편이 되는 척이라도 하겠지만, 제비뽑기로 신령의 뜻을 물어 후계자가 된 것이면 그 권위가 신령에게서 받은 것이니 쿠보를 무시하고 무슨 짓을 할지도 모릅니다."

양녕이 말했듯 원래 역사에서도 제비뽑기로 요시모치의 후계자를 정하긴 했으나, 그것은 요시모치가 사경을 헤매던 상황에서 제비를 뽑은 것이라 요시모치가 죽은 직후에 결과를 공개했고, 그렇게 정해진 후계자가 바로 쇼군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요시모치가 멀쩡히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후계자를 빨리 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겹친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오. 내가 죽고 자기가 계승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나를 죽이려 들 수도 있겠지. 그럼 도유 선사께서는 혹시 괜찮은 방법이 있으시오?"

요시모치의 질문에 모리하루가 천천히 대답했다. 그 방법을 들으며 요시모치와 도친이 괜찮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모리하루는 이어질 다음 책략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 * *

며칠 뒤.

이와시미즈 하치만궁 경내.

제비뽑기를 하기로 결정된 장소는 원래 역사와 마찬가지로 미야코 남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이와시미즈 하치만궁이었다.

"제비를 가져와라!"

제비뽑기의 진행을 맡은, 신토의 최고 제사장이기도 한 미카도의 호령에 경내 한쪽에서 승려 몇 명이 소반을 하나씩 들고 나왔다. 소반 위에는 길게 접은 종이를 무늬 없는 비단으로 감싼 것이 하나씩 올라가 있었다.

후계자 후보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내용이 비쳐 보이지 않게 비단으로 한 번 더 감싸 만든 제비였다.

"제비는 총 넷. 숫자에 틀림은 없다."

중앙 귀족들과 미야코에 올라와 있는 호족들 대다수가 자신과 친분이 없는 관동의 방계가 쇼군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던 덕분에, 제비에 적혀 있는 것은 모두 지금 쇼군인 요시모치의 형제들 이름뿐이었다. 형제들이 승려로 있는 각 사원에서 온 다른 승려들이 이름을 적고 비단으로 감싸는 과정에 다 같이 참관해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직접 나눠서 들고나온 것이다.

"이번에는 상자를 가져와라!"

다음 지시에 이번에는 사방이 막히고 윗면에 손 하나 들어갈 구멍만 뚫린 큼직한 상자를 조정 신하들이 가져와 내려놓았다.

미카도가 팔을 걷어붙이고 상자 안에 손을 넣어 보더니 말했다.

"상자에 이상이 없는 것을 다시 확인했으니 제비를 넣어라!"

상자 옆에서 신관과 승려들이 각자 축문과 염불을 외우는 가운데, 승려들이 저마다 가져온 제비를 조심스럽게 상자에 집어넣었다. 제비를 넣은 승려들이 소반을 들고 물러나고 축문와 염불을 다 외운 신관과 승려들도 제자리로 돌아가자, 미카도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제비에 이름이 적힌 후보자들은 모두 오늘 결과를 하치만 대보살의 뜻으로 여기고 따르기로 서원한 이들이니, 이들 가운데에 누가 뽑히더라도 나머지 후보자들은 신령의 뜻을 받아들임이 마땅할 것이다. 그럼 이제 하치만 대보살의 뜻을 묻겠다."

소매를 걷은 미카도가 상자에 손을 집어넣었다. 다들 숨을 죽이고 정적만이 흐르는 가운데, 한참 손을 움직이던 미카도가 조심스럽게 제비 하나를 꺼냈다. 꺼내는 도중에 펴지지 않게 꽉 쥐어서 꺼낸 탓인지 약간 구겨져 있었다.

"그럼 자르겠다."

옆에서 기다리던 조정 신하 둘이 제비 양쪽을 조심스럽게 잡자 미카도가 가위를 집어 들고 제비 가운데를 비단째로 천천히 잘랐다. 이것이 바로 모리하루가 제안한 방법이었다. 이름을 위아래로 두 번 적어 중간이 잘려도 괜찮게 만든 제비를 반으로 자르고, 쇼군과 미카도가 한 쪽씩 나눠서 보관하다가 쇼군 사후에 열어서 대조해 보고 후계자를 발표하는 것이다.

"이제 상자를 가져와라. 봉인하겠다."

잘린 제비를 상자에 하나씩 넣고 삼끈으로 둘러 튼튼하게 묶었다. 맨 마지막 매듭에는 미카도가 직접 봉인문을 적어 접은 종이를 끈과 함께 단단히 묶고, 그 위에 붓으로 종이와 매듭에 걸쳐서 먹물이 묻게 선을 그어 누가 풀어 보는 것을 방지했다. 미카도의 공양품이 있는 보물창고인 쇼소인의 자물쇠에 거는 것과 같은 엄중한 봉인이었다.

"다 되었다. 하치만 대보살께서 쇼군의 후계를 직접 점지해 주신 것이니, 후보자들은 훗날 신령의 뜻이 밝혀지고 자신이 쇼군 자리를 계승했을 때 신령께 부끄러움이 없도록 열심히 능력을 쌓아 두어라."

"예, 그리하겠나이다."

옆에 나란히 앉아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후보자들이 고개 숙여 미카도에게 인사하는 동안, 승려 몇 사람이 상자를 옆으로 가져가 횃불을 안에 집어넣자 상자에서 불길이 솟았다. 남은 제비를 모두 태워 없애 요시모치가 죽기 전까지는 아무도 결과를 확인할 수 없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다. 너희는 상자가 다 타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오도록 해라."

말을 마치고 떠나가려던 미카도와 모리하루의 눈이 짧은 순간 마주치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다시 시선을 돌린 모리하루는 타오르는 상자를 보며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물건으로 된 증거는 다 사라졌다. 나머지는 결실의 그날까지 기다리면 될 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