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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67화 (67/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067화

67화

포성이 한 번 울릴 때마다 건물 벽을 이루는 흙덩어리들이 사방으로 박살 나 튀었다.

조선군이 화포를 쏘는 것을 어떻게 막아 보겠다고 지붕 위에 올라가서 화살을 쏘려던 적병 하나는 총알에 맞고 힘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무언가 터지는 소리를 냈다.

그 광경을 가만히 보던 무사가 일어나 몸을 풀며 말했다.

"아마 다음번 화포를 쏘면 뚫릴 것 같으니, 들어갈 준비를 해야겠소."

오키타 지역 공격에 조선 편으로 참여한 시마즈 방계 유력 가문 중 하나인 혼고 가문의 가독, 혼고 토모히사였다.

"알겠소. 사전에 계획한 대로만 하면 될 것이요. 그나저나 괜찮겠소? 한 가문을 이끄는 이가 이렇게 위험한 임무에 나서면 위험한 것 아니오?"

같이 돌입하게 될 총 든 군교의 질문에 토모히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내가 앞장서야 다들 날 지키러 열심히 따라올 것이오. 그리고 내가 직접 싸워서 공을 세우거나 죽거나 해야 가문에 내려지는 보상도 더 크지 않겠소?"

"역시 용맹하다 소문난 무사들답소. 좋소. 그래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아군도 같이 썰어 버리지만 않으면 나야 크게 상관할 것 없소."

"에이, 우리가 아군을 잘못 공격할 걱정을 뭘 하시오. 그쪽이야말로 우리하고 저놈들 헷갈려서 잘못 쏘지만 말아 주시오."

말을 마친 군교와 토모히사가 낄낄거리고 웃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그런 농담을 주고받기는 했으나, 시마즈 무사들을 잘못 쏘지 않기 위한 대비는 다 해 두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인 일본식 투구는 조선식 투구로 바꿔 썼고, 일본식 갑옷도 적과 혼동될 수 있어 갑옷 위에 조선군에게 받은 철릭을 덧입었다. 철릭 안에 입기에는 너무 큰 어깨 갑옷은 철릭 밖에 입는 대신 흰 삼베를 덧대어 박고 아침 조 자를 크게 써두었다.

"벽 뚫렸다! 진입해라!"

다시 포성이 울리고 벽이 무너지자 뒤에서 군관이 외쳤다. 군교가 총을 들고 재빠르게 뛰어가 무너진 벽 앞에서 건물 안을 향해 산탄을 쏘았다. 건물 안에 피보라와 연기가 퍼지고, 뒤이어 뛰어오던 토모히사를 비롯한 시마즈 무사들이 칼을 뽑아 들고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칼 휘두르는 소리와 살점 베이는 소리, 고함과 비명이 몇 번 들리고, 안에서 토모히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됐소! 빨리 들어오시오!"

"진입! 진입이다!"

기다리던 군교가 토모히사의 왜말을 듣고 조선말로 외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저마다 냉병기와 화포를 든 조선군 병사들도 우르르 달려와 박살 난 건물 벽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대로 건물에서 밀고 들어가서 골목까지 확보해야 진입로가 생긴다! 쭉쭉 밀어!"

가장 마지막으로 군관과 붉은색 깃발을 든 병사가 뛰어들어 갔다.

그 모습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다른 건물들에서도 외벽이 무너지는 대로 조선군과 시마즈 무사들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 * *

오키타 시가지 내부.

말을 타고 열심히 시가지 골목을 달리던 키쿠치 기병 하나가 토벽을 끼고 방어 중이던 병사들을 발견하고 말을 멈추며 얘기했다.

"서쪽에 방어선이 또 하나 뚫렸소. 거기 사람을 보내서 좀 도와주시오."

"우리도 사람이 부족…… 젠장!"

시큰둥한 얼굴로 기병을 보며 말하던 병사가 갑자기 들린 총소리에 고개를 잽싸게 숙였다.

날아온 총알이 누구에게 맞지 않고 대신 벽에 맞고 튕기면서, 그 소리에 놀란 기병의 말이 푸르륵거렸다. 총소리는 계속 들렸고, 맞지 않으려 토벽 높이보다도 더 낮게 몸을 낮춘 병사가 말했다.

"서쪽 방어선이 뚫렸다면 큰일이지만 우리도 뾰족한 수가 없소! 더 사람 많은 데 가서 부탁하시오! 대신 혹시 모르니 이건 알고 가시오!"

"뭐길래 그렇소?"

놀란 말을 진정시키며 건물 그늘로 숨은 기병의 말에 병사가 토벽 쪽을 가리켰다. 기병이 슬쩍 고개만 내밀어서 보자 붉은 깃발 하나가 지붕보다도 높은 위치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저 깃발 말하는 거요?"

"그렇소! 저 붉은 깃발 든 놈들이 가까이 오고 나서부터 조선군 대포알하고 불화살이 안 떨어지기 시작했소."

"그럼 저게 같은 조선군이 있다고 표시하는 것이겠군!"

"그런 거 같소! 너무 대놓고 하면 티가 나겠지만, 붉은 천 구해서 깃발 만들어서 적당히 들고 다니면 적들이 포 쏘는 걸 방해할 수 있을 거요!"

"고맙소! 가서 전하겠소!"

서쪽 방어선에 보낼 병력은 얻지 못했지만 뜻밖의 정보를 얻은 키쿠치 기병이 말을 달려 사라지자, 병사는 다시 토벽 쪽을 바라보았다. 그 상태로 창자루를 붙잡고 가만히 있던 병사가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가 머리 안 내민 지 한참 됐는데도 계속 총소리가 나는데. 안 맞을 걸 알면서 쏘는 게 꼭 고개 못 들게 막는 거 같지 않아?"

그 질문에 옆에 있던 다른 병사가 대답했다.

"나도 그 생각은 했어. 그런데 어차피 이쪽에 계속 총 쏘는 도중이면 저놈들도 아군 총에 맞을까 봐 못 올 거고, 총 쏘는 소리가 멈추면 넘어오려고 준비한다는 소리니 그때 대비하면 되겠지."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인화살 하나가 토벽 위로 날아 들어와 허공에서 터졌다. 병사들 상당수의 갑옷에 불이 붙기는 했지만, 터지기 직전 반사적으로 다들 바닥에 엎드린 덕분에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이걸 쓰려고 총을 쏴서 시간을 끌었구만!"

독한 백린 연기에 기침하며 고개를 든 병사가 짜증 내며 말했다.

"이 틈에 넘어올 수 있으니 대비해!"

다른 병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총소리가 나고, 옆에서 말없이 기침하던 병사 하나가 털썩 쓰러졌다. 다 같이 총소리가 난 방향을 보자, 바로 옆 건물 지붕에서 누군가 달아나는 뒷모습이 보였다.

"위쪽이다! 놈들이 지붕에 있어! 화살로 견제해!"

그리고 다들 건물 위쪽에 정신이 팔린 그 틈에 토벽에서 누군가 풀쩍 뛰어내렸다. 곧 골목에 고통스러운 비명이 짧게 퍼졌다.

병사들이 일제히 돌아보자 거기 서 있는 것은 갑옷 위에 조선옷을 덧입고 칼을 뽑아 든 무사였다. 그 옆의 방금 베어 넘긴 시체에서 피가 퍼져 나왔다.

"넌 빨리 가서 지붕 조심하라고 다른 이들에게 전해라. 지붕에서 지붕으로 넘어가며 적들이 진격하면, 머리 위에서 일방적으로 날아오는 공격에 제대로 반격도 못 하고 죽어 나가게 된다!"

제일 어린 병사에게 지시를 내려 안쪽으로 보내고는, 창을 고쳐잡은 병사가 조금 전 넘어온 시마즈 무사를 겨누었다. 다른 병사들도 정신을 차렸는지 저마다 무기를 하나씩 들고 시마즈 무사를 점점 토벽으로 몰며 말했다.

"배반자 놈! 조선 편에 붙으니 살 것 같으냐!"

"배반자라니, 내가 너희 조상님으로 보이느냐? 우리는 적어도 둘 중 어느 조정이 망하더라도 살아남겠답시고 대놓고 가문을 쪼개서 양쪽에 줄을 서지는 않았다."

당당하게 도발하면서도 토벽에 몰려 등을 댄 시마즈 무사가 피식 웃었다. 그 순간 '텅!' 소리가 나고 뒤이어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앉아!"

그 조선말 외침에 무사는 반사적으로 몸을 바닥에 낮췄지만, 알아듣지 못한 적들은 멍하니 있었다. 그사이에 토벽에 걸친 널빤지를 밟고 뛰어 올라온 포수가 적들을 향해 산탄을 갈기자 적 몇몇이 총알을 맞고 휘청거리다 쓰러졌다. 방금 총을 쏜 포수가 토벽 아래로 뛰어내리자 다음 포수가 뛰어 올라와 산탄을 쏘고 뛰어내렸다.

"얼마나 죽고 싶길래 혼자 뛰어들어 오나 했더니, 저놈들이 토벽에 올라올 시간을 번 거였구나!"

조금 전 산탄에 맞고 윗부분이 날아가 버린 창대를 집어던진 병사가 그렇게 말하며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그에 맞추듯 시마즈 무사 뒤에서도 널빤지를 밟고 올라온 포수 여럿이 일렬로 앉아 총을 겨누었다.

"나라를 배신하고 저 침략자 놈들에게 붙은 대가로 뭘 얻었느냐?"

"침략자라니! 양녕대군께서는 까마귀의 인도를 받으시는 진정한 큐슈의 주인이시다! 너도 그분께 투항해보겠느냐?"

병사는 시마즈 무사가 비웃으며 말하는 동안 번 시간을 활용해 적들의 상황을 살폈다. 뛰어내린 포수 둘이 들고 있는 총은 쏘고 난 직후라 비어있을 것이었다. 토벽 위에 있는 포수들이 든 총은 겉으로 봐서는 산탄인지 일반탄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한 번 쏘고 나면 장전하기 오래 걸릴 것만은 확실했다. 탐색을 마치고 결심한 병사가 칼을 앞세우고 뛰어들며 외쳤다.

"내 뒤를 따라서 돌격해라!"

갑자기 병사가 칼을 휘두르며 돌격한 탓에 포수들이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달려든 병사는 순식간에 그야말로 누더기가 되어 풀썩 쓰러졌지만, 뒤에 있던 다른 병사들은 조선군이 장전한 총알을 다 쏴 버린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고 일제히 무기를 들고 돌격했다.

* * *

시천.

조선군 함대.

저 멀리 시가지 남쪽에서 붉은 깃발 하나가 올라오는 것을 본 양녕이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저기 보시오. 또 올라왔소."

그 방향을 본 이종무도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진입 방향 완전 반대편에서 올라왔으니 저건 확실히 아니겠군요."

"제법 머리를 썼고, 우리가 시가지 포격을 좀 일찍 끝내게 만들긴 했지만 크게 상관은 없는 일이라 다행이오."

"그렇습니다. 이미 시가지에 포격은 충분히 했고, 지금은 더 급한 일이 있으니까요."

마침 대포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양녕이 탄 대장선을 비롯한 조선군 함대가 포격 중인 것은 해안 가까이 지어진 오토모 저택이었다.

각도상 잘 보이지는 않지만, 거창하게 높게 올린 건물들이 있어서 측거의로 거리를 잴 수 있었던 덕분에 포탄과 인화살을 정확하게 계속 얻어맞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생각보다 저택에 불이 나도 끄는 이가 없는 느낌입니다?"

"그럴 것이오. 저 저택은 오토모 가문이 평소 통치를 위해 시가지 중심부에 지은 것이고, 전시에 쓰는 것은 여기서 좀 상류로 간 언덕에 지은 요새요. 아마 지금쯤 거기 다들 옮겨가 있을 것이오. 저택을 얼추…… 잠깐! 잠깐! 사격 중지! 멈추시오!"

"사격 중지! 멈춰라!"

말하다 말고 양녕이 다급하게 외치자 놀란 이종무가 일단 멈추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다급함이 전해졌는지 신호로 쓰이는 북소리가 엄청나게 울리고 포성이 잠잠해졌다.

그제야 이종무도 양녕이 왜 멈추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저기 지붕에 올라온 거, 사람 아닙니까?"

대장선과 오토모 저택 사이, 강안에 바짝 붙은 건물 지붕 위로 화려한 갑옷을 입은 무사 하나가 비틀거리고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키쿠치 가문 가독 보좌 키쿠치 타케다테다! 거기 가장 큰 배에 검은 깃발이 걸려 있으니 조선의 왕자가 타고 있을 것이다! 불러다오! 얘기할 것이 있다."

양녕이 피식 웃고는 외쳤다.

"오냐! 네놈이 찾는 양녕대군이 여기 있다! 거창하게 기병대를 몰고 다니는 주제에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놈이 나에게 무슨 용무냐!"

양녕의 조롱에도 타케다테가 꿋꿋하게 외친 것은 뜻밖의 말이었다.

"협상을 하러 왔다!"

"협상? 항복이 아니라 협상이라고?"

"그래 협상! 내가 오토모와 키쿠치 두 가문의 대표 자격으로 협상을 하러 왔다! 네가 여기로 오기는 어려울 테니 배를 이쪽으로 보내다오! 내가 그리로 가서 협상을 하겠다!"

"와하하하하!"

그 말에 양녕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참 웃던 양녕이 웃음을 딱 멈추고 말했다.

"멍청하긴. 그렇게 뻔히 보이게 시간을 끌려는 수작을 부리면 누가 속아 넘어가겠느냐? 협상은 없다! 애초에 우리 함대는 여기에 있는 게 전부가 아니야! 다른 함선들은 흩어져서 분고 지역의 모든 해안 항구를 봉쇄하고 있다! 누구도 나가고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이지! 독 안에 든 쥐와 협상을 하는 놈이 세상천지에 있겠느냐?"

거리가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만만하게 외치던 타케다테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가 당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 그럼 우리는 대포를 마저 쏠 테니 알아서 피하거라!"

양녕의 외침과 동시에 갑판 위의 포수들이 사격을 준비하자, 당황한 타케다테가 이리저리 움직이다 지붕 반대쪽으로 넘어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양녕이 씨익 웃으며 작게 말했다.

"과연 항구가 막혀서만 네놈들이 독 안에 든 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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