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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65화 (65/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065화

65화

1420년 1월 초순 모일 오전.

분고노쿠니. 오키타 지역 앞바다.

정동군 상륙함대가 해안을 향해가는 모습을 대장선 망루에서 지켜보던 양녕에게 옆에 서 있던 이종무가 말했다.

"동남서는 산으로 막혀 있고, 북쪽은 바다일 뿐만 아니라 적당히 큰 섬을 끼고 있다니, 정말 방어하기에는 최고인 지형입니다."

"그러게 말이오. 정말로 섬이 있었소. 저게 정말로 과생도(우류지마)라니."

양녕의 말에서 작은 어감 차이를 잡아내지 못한 이종무가 살짝 어긋난 대답을 했다.

"예. 며칠 전 오우치 가문에서 항구마다 다니며 교역하는 상인들을 통해 알아내어 보내 준 것과 크기와 위치도 같습니다. 첩보를 마지막까지 꾸준히 해서 다행입니다. 자칫하면 이런 섬이 있는지도 모를 뻔했습니다."

양녕은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로운 눈으로 섬을 보았다. 이종무가 양녕의 말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이종무가 양녕의 말을 듣고 생각한 것은 섬이 '있다'는 사실뿐이었지만, 양녕이 흥미를 느낀 것은 그 섬이 '진짜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설일 가능성이 크다 생각해 지도를 만들 때에도 반영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정보를 모은 덕에 예상 못 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우류지마는 상업으로 번성했으나 큰 지진으로 하루 만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는 섬이었다. 저번 삶에서 우류지마가 그려진 고지도, 큰 지진으로 섬 지반이 액상화되어 가라앉았을 것이라는 추정 논문 등을 접해 그 이름을 알고는 있었지만, 명백한 증거가 없어 전설 취급받던 섬이 진짜로 눈앞에 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묘한 것은 당연했다.

"대군. 과생도에 적들이 보입니다."

이종무의 말에 양녕은 상념에서 벗어나 섬을 살펴보았다. 정말로 인영이 몇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이군. 갑옷을 차려입은 것을 보니 마을 주민이 아니라 적병이 확실한 것 같소."

"이대로 진입하면 좌측에 오키타 해안, 우측에 과생도를 두게 되지만, 저들이 대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 작은 섬에 병력을 아무리 두어봤자 아군을 좌우에서 협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교란책으로 간주하되 관찰은 계속하겠습니다."

"좋소. 그리하시오."

이종무가 지시를 다른 함선에 전달하러 망루에서 내려가자, 망루 안쪽에 누워있던 최만리가 일어나서는 조금씩 비틀거리며 양녕에게 다가왔다.

"드디어 전투가 시작되는 겁니까?"

말하는 최만리의 입에서 강렬한 생강 냄새가 퍼져 나왔다. 실제로도 최만리는 매워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생강 조각을 계속 우물우물 씹고 있었다.

"그렇네. 이제 시작이야. 자네 멀미는 좀 어떤가? 생강이 잘 드는가?"

"예, 정말로 효과가 있습니다. 아예 멀미 기운이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구주도 오는 배에서 한 멀미에 비하면 이건 안 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안색은 안 좋아 보이지만 그래도 앓아누울 정도는 아닌 것 같으니 다행이야. 하긴 지금까지 내가 본 사람 중에서 자네가 생강을 가장 많이 먹고 있으니 효과가 있어야겠지."

양녕의 말에 최만리가 다시 생강 냄새를 퍼뜨리며 말했다.

"이렇게 좋고 쉽고 빠른 방법이 있는 줄 여기 오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그야 그럴 만하지. 이 방법을 아는 병사들은 이미 다 구주도에 와 있었고, 여기까지 오면서 들렀을 곳들도 거제는 어촌마을이니 멀미와 연이 없고, 대마는 화전민들이니 멀미는커녕 배도 잘 모를 것이고, 일기는 수군들만 있으니 역시 멀미와 연이 없겠지. 오히려 오는 동안 이 방법을 아는 사람을 만났다면 그야말로 하늘에 감사해야 할 일이야."

"그건 그렇습니다. 중군사단장께서도 대마도에서 병사들과 얘기하다가 아셨을 정도라고…… 하니까요…… 윽."

누워 있다가 일어선 탓에 다시 멀미 기운이 올라오기 시작했는지 최만리가 말을 흐리며 망루 난간을 붙잡았다.

"자네 괜찮나? 정 안 좋으면 다시 가서 누워서 쉬게."

"괜찮습니다. 계속 누워만 있을 수도 없으니 적응해야지요. 그나저나 이전에는 전투에서 지시를 적극적으로 하시는 편이었다 들었는데, 오늘 보니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때는 신무기나 신전술을 처음 쓰는 상황이었으니 고안자인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를 해야만 했지. 하지만 지금은 신무기라고 해 봐야 우리가 지금 타고 있는 판옥선이 고작이고, 그나마도 판옥선을 계속 운용했던 수군여단장이 나보다 더 익숙할 걸세. 게다가 새로 쓰이는 전술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예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많이 나서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되지."

양녕과 최만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종무가 다시 망루로 올라와 말했다.

"과생도는 관찰만 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시천 하구에 통나무가 잔뜩 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밧줄로 통나무들을 서로 엮어서 강 좌우안에 고정시켜 놨다 합니다."

시천(이치카와)은 오키타 지역 중앙부를 흐르는 큰 강이었다. 해자를 겸하기도 하고 바다에서 오는 수운을 받기도 좋게 하려고 오토모 가문의 저택과 성은 모두 이 강에 가깝게 지어져 있었다.

"역시 그렇군. 바보가 아닌 이상 당연히 틀어막았을 일이긴 했소. 그것도 들이받아 부술 수 없게 통나무를 띄워 막은 것은 대규모 수군과 싸워 본 적 없는 놈들이 한 것치고는 좋은 판단이오. 그래서 어떻게 지시를 내리셨소?"

"오키타 쪽 연결부만 집중적으로 부수라 했습니다. 어차피 강이라는 것이 계속 흐르는 것이니 한쪽만 부수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반대쪽 연결부에 매달릴 것입니다. 괜히 양쪽 다 부쉈다가 통째로 떠내려와 아군 배를 상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낫겠지요."

"오키타 반대쪽에 매달릴 테니 아군이 하구에 진입하는 데 걸리적거리지도 않겠구려. 좋소. 통나무 몇 개가 풀려서 떠내려올 수는 있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으니 작은 배들이 상하지 않게만 조심하면 될 것이오. 보고 고맙소."

"알겠습니다."

이종무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시천 하구 쪽 정동군 함선들에서 쩌렁쩌렁한 포성이 울리고 연기가 퍼져 나왔다. 그 광경을 본 최만리가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진짜로 시작이군요."

"그렇네. 그나저나 자네 생강 냄새가 엄청 나서 화약 연기에 사방이 가려도 다른 배들이 대장선이 어디 있는지 찾기 좋겠군."

구주도 정벌 최후이자 최대가 될 대전투를 앞두고, 생애 첫 참전인 최만리는 물론이고 이종무도 긴장하고 있어서 풀어 주려고 한 것이었지만, 농담을 던지는 양녕도 긴장한 표정이긴 마찬가지였다.

"혹시라도 멀미가 나면 승상 근처로 와야겠습니다. 근처에만 와도 멀미가 멎을 것 같군요."

"그럼 대신 제가 물에 빠지면 헤엄을 못 치니 꼭 건져 주셔야 합니다. 생강 냄새 진한 놈부터 건지시면 될 겁니다."

이종무와 최만리도 긴장을 풀기 위한 농담을 던지고는 굳은 얼굴로 허허허 웃었다. 거의 동시에 멀리에서 두 번째 포성이 울렸다.

* * *

잠시 후.

오키타 해안.

키쿠치 타케다테는 가만히 고삐를 움켜쥐고는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조선군 함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번째인지 모를 포성이 울리고 연기가 퍼지더니, 저 멀리 이치카와 하구 쪽에서 물기둥이 치솟는 게 어렴풋하게 보였다.

"과연 대단한 무기들이다. 키쿠치 성 전투 때 저런 걸 직격으로 맞았으면 여기까지 살아서 오지도 못했을 거야. 그래도 키쿠치 성 전투에서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저 대단한 무기들이 높이 쌓은 목책보다도 오히려 낮고 두꺼운 토벽을 쉽게 뚫지 못한다는 사실이지. 그게 이번 전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잠자코 듣는 기마 무사들에게 말하던 타케다테가 고개를 돌려 오키타 시가지 방향을 보았다. 시가지 외곽은 잔뜩 보강이 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거대한 성채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잠시 보던 타케다테가 다시 무사들을 보며 말했다.

"이번 전투에서 조선군을 물리칠 거라는 기대는 나도, 오토모 가문 그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시간을 끌고 최대한 피해를 입혀 잠시 물러나게만 해도 우리가 승리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지. 게다가 이번 전투는 시가지를 끼고 하는 방어전이 중심이 될 것이라 기병인 우리가 크게 나서서 싸울 자리도 없을 것이다."

사기가 떨어질 만한 소리지만, 듣고 있는 키쿠치 가문 기마 무사들의 표정을 하나같이 열의로 가득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전투 상황을 빠르게 알리는 전령의 역할을 할 것이고, 적이 시가지로 진격하는 것을 방해해서 속도도 늦출 것이야. 시가전이 시작되고 나서도 할 수 있을 일을 할 것이다."

"아마 엄청 죽겠군요."

무사 하나가 전혀 걱정스럽지 않는 표정으로 태연하게 말했다.

"물론이다. 결국 북조 참칭자 겁쟁이 놈들도 우리를 버리고 조선에 항복했다. 원군이 올 가망도 없고, 여기서 더 달아나 봐야 큐슈를 장악한 조선군에게 추격당해 비참히 죽을 뿐이야. 이제 어차피 더 물러날 곳도 없어진 게지."

다른 무사가 역시나 일상 얘기를 하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옥처럼 깨질까 기왓장처럼 남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기왓장처럼 몸을 사릴 길조차 조선과 참칭자 놈들이 치워 준 덕에 옥처럼 깨어지는 길만 남았습니다. 고민이 하나 줄어든다는 게 이리 상쾌한 일인지는 알고 죽어서 다행입니다."

그 말에 무사들이 다 같이 폭소를 터뜨렸다. 같이 한참을 웃던 타케다테가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좋다. 그럼 첫 임무다. 저들이 시가지까지 오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안에 내려야 하니, 그걸 방해해 시간을 끄는 것이다. 시부카와 가문이 했다던 것처럼 방책을 쌓고 보병을 세워 막아봤자 저들의 화포와 불화살에 허망하게 사라질 뿐이야. 하지만 우리 기병이라면 말을 빠르게 달려 최대한 피해를 줄이면서 접근할 수 있다. 그렇게 적들에게 바짝 붙어버리면 저들도 화포를 함부로 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말한 타케다테가 칼을 뽑아 치켜들고 외쳤다.

"자! 우리가 태어난 땅은 잃었으나 죽을 땅은 새로 찾았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키쿠치 가문의 무사들아! 출진이다! 에이! 에이!"

"오!"

우렁찬 토키의 함성이 퍼지고, 타케다테가 앞서서 말을 몰아 조선군 함대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타케다테가 통솔하는 키쿠치 기병대가 다가가는 동안 조선군 함대가 접안을 시도하고, 이미 최초의 한 대가 해안에 배를 대고 내릴 준비를 시작했다.

"적들이 배를 댄다! 속도를 올려라!"

"예!"

이윽고 빠른 속도로 접근 중인 키쿠치 기병대를 발견했는지, 저 멀리 함선 위의 조선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측면이 해안에 닿게 접안한 조선군 함선들이 함미에서 상륙용으로 보이는 널빤지를 내려놓기 시작하는 것도 보였다.

"적들이 우리를 보았다! 상륙 시도도 하고 있다! 속도를 더 올려라!"

타케다테의 지시에 기병대 전원이 일제히 속도를 올렸다. 접근할 때까지 말의 체력이 버텨 줄지 계산하는 타케다테에게 옆에서 달리던 무사가 외쳤다.

"화살입니다!"

속도를 줄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그 누구도 속도를 줄이려 하지도 않았지만 다행히도 조선군이 쏜 화살은 저 앞쪽에 일렬로 박힐 뿐이었다.

"시부카와 군이 당했다는 터지는 불화살이다! 연기가 독하다 했으니 혹시라도 너무 많이 마시지 마라!"

예상대로 바닥에 박힌 인화살들이 터지며 흰 연기를 피워올렸다.

바닷바람을 타고 흰 연기가 기병대 방향으로 천천히 퍼지는 것을 본 타케다테가 외쳤다.

"우리 시야를 가려서 섣불리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그 틈에 내릴 생각이겠지! 하지만 그건 우리가 몸을 사릴 때의 일이다! 이대로 연기를 뚫고 들어가서 막 상륙한 놈들에게 접근한다! 이 연기를 오히려 우리를 조준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게 가려줄 방패로 삼자!"

"예!"

조선군의 예측을 방해하기 위해 슬쩍 진격로를 옆으로 틀며 타케다테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같은 전술을 계속 쓰는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보여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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