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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61화 (61/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061화

61화

1419년 12월 중순 모일.

미야코, 무로마치 어소.

집무실 상석에 앉은 지친 표정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모치가 말했다.

"오우치 가문이 실로 수고가 많소. 도유 선사께서 오랫동안 나를 도와주시고 또 지금의 위기에서 조언을 아끼시지 않아서 내가 버틸 수 있소."

"과찬이십니다."

도유라는 법명으로 불린 오우치 모리하루가 고개 숙여 대답하자, 이번에는 모리하루 옆에 앉은 청년에게 말했다.

"그리고 조카인 자네도 수고가 많네. 내려가서 영지도 돌보랴, 오고 가며 중요한 소식들도 전하랴 정말 열심히 힘쓰는 것을 내가 알고 있네. 특히나 이번에 얻은 수급과 전리품들은 자네가 주도했다고 들었어. 참으로 고맙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쿠보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청년도 고개 숙여 대답했다.

청년의 이름은 오우치 모치요. 모리하루의 죽은 형인 요시히로의 아들이었다.

"그나저나 큐슈 북부의 호족들을 돕던 것을 조선의 왕자에게 들켰다 들었소. 그 뒤로 별문제 없었소?"

"다행히 경고만 보내고 말았고, 그 뒤로도 조금씩 몰래몰래 도운 것도 들키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가지고 올라온 수급과 전리품들도 그렇게 몰래 도우면서 얻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부젠까지 완전히 빼앗겨 교두보가 없어지고 말았으니, 앞으로는 그마저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아니오. 선사께서 송구스러울 것이 무엇이오. 오히려 협상 담당이라는 입장이라 들키는 것이 큰 위험일 텐데도 호족들을 도운 것이 정말로 어렵고 대단한 일이었으니, 앞으로 못 돕는다 하여 누가 선사를 감히 책망하겠소."

그리고는 자기 앞에 놓인 꾸러미들을 내려다보았다. 수급이 담긴 오동나무 상자며 갑옷과 투구들이 몇 개 놓인 가운데서 가장 화려한 투구를 들어 올린 요시모치가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이 투구는 일본 무사들이 쓰는 것과 모양은 다르지만, 꾸밈이 화려하고 만듦새가 정교한 것을 보아하니 장수급은 되는 이가 쓰던 것 같구려. 그 힘든 와중에 조선군 병사들만 해치운 것이 아니라 장수까지 해치웠다니 대단하오."

"사실은 급히 거두어 오느라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장수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 낮추지 않아도 좋소. 장수는 아니더라도 높은 자리에 있는 이가 쓰는 것은 확실하지 않겠소."

사실 요시모치가 들고 있는 투구는 장수가 쓰는 것이 맞았다. 모리하루가 조정을 좀 더 잘 속이면서 신임을 받을 수 있도록 양녕이 수급을 보내면서 병사용과 장수용에 이르는 다양한 갑옷과 냉병기를 깨진 것과 온전한 것을 적당히 섞어 보낸 것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제 치쿠젠과 부젠의 평야를 잃었으니, 식량은 어찌하실 생각이오?"

투구를 내려놓으며 꺼낸 요시모치의 질문에 모리하루가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잘못 판단한 탓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제 책임입니다. 어떻게든 해야지요. 다행히 조선군에게 빼앗기기 전에 수확철에 세금으로 거둔 곡식들을 바다 건너 거점으로 옮겨 비축해 두었으니 당장은 큰 문제 없을 것입니다."

"당장이야 괜찮아도 멀리 보면 여전히 큰일 아니겠소. 정 어려워지면 언제든지 말하시오. 내 힘닿는 데까지 돕겠소."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쿠보."

모리하루는 고개를 깊게 숙여 인사하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참았다. 양녕이 말했던 것처럼 모리하루가 평야 지대를 잃은 것만으로도 의심하기는커녕 걱정하는 쇼군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오려 했다. 웃음을 참아내고 고개를 든 모리하루는 주제를 돌리려 요시모치에게 말했다.

"도친 선사께서는 괜찮으십니까?"

법명 도친. 즉 시부카와 미츠요리의 근황을 묻는 그 질문에 요시모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말했다.

"여전히 상심해서 틀어박혀 있소. 그리 큰일을 겪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나마 선사께서 나를 도와줘서 다행이오."

미츠요리의 아들이자 큐슈의 탄다이(절도사)였던 시부카와 요시토시는 나가강 전투에서 조선군에 당해 초주검이 되어 앓다가 결국 얼마 전 죽고 말았다. 아들을 잃은 충격에 전임 탄다이였던 미츠요리가 거처에 틀어박히자, 결국 큐슈 관련해서 쇼군이 의지할 대상은 모리하루만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쿠보께서도 근심이 많으시겠습니다."

모리하루의 말에 요시모치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쩌겠소. 술을 저리도 마셔대는 것이 걱정이지만, 몸이 약해서 잘 나다니지도 못하는 놈이 술 마시는 낙이라도 없으면 더 몸이 상할까 봐 그것도 걱정이오."

요시모치의 아들은 병약한데도 술을 엄청 마셔 댄 탓에 원래 역사에서도 요절하고 말았고, 쇼군의 외동아들이 후사도 없이 죽은 탓에 요시모치의 형제와 조카들 사이에 쇼군직 계승을 두고 문제가 터져 나왔다.

지금은 조선이 구주도를 공격하면서 쇼군으로서의 업무가 바빠져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한 탓에 원래 역사보다도 더 건강이 나빠진 상태였다. 그러자 요시모치의 형제와 조카들에 더해 관동의 방계 가문에서도 쇼군직 계승에 끼어들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다.

"같은 가문인데도 도움이 되는 놈이 단 한 놈도 없소. 나를 고깝게 보지 않는 귀족 놈들도 마찬가지요. 내 아들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더라도 큐슈를 잃은 책임을 물어 나를 끌어내리려 들 놈들이지."

말하다 잠시 멈추고 한숨을 쉰 요시모치가 이어서 말했다.

"까마귀들이 조선군에게 싸울 상대가 어디 있는지 알려준다는 소문이, 까마귀가 조선의 왕자에게 길을 알려준다는 내용으로 바뀌어 미야코에도 퍼졌소. 귀족들은 물론이고, 미카도(왜황)도 자기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면서 나더러 뭐라 하는 지경이오."

까마귀들이 귀족과 왜황의 걱정의 근원이 된 이유는 고사 때문이었다.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손자가 큐슈의 휴유가 지역에 강림해 일본 땅을 다스렸으나, 그 손자의 증손자인 히코호호데미는 통치하기에 더 좋은 땅을 찾아 동쪽으로 토착 세력들을 격파하며 나아갔다. 그때 길을 안내한 것이 세 발 까마귀였고, 동쪽으로 간 끝에 야마토 지역에 도읍을 정한 히코호호데미가 초대 왜황이 되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큐슈에 상륙한 조선의 왕자를 까마귀가 안내한다는 소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왜황의 정통성을 뒤흔드는 존재인 것이다.

"괴이한 소문이 그리도 사방에 퍼지니 정말 큰일입니다."

'잘 퍼져서 다행이다.'

모리하루는 입으로는 큰일이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뻐했다. 영지와 미야코를 오가며 슬금슬금 소문과 해석을 퍼뜨린 것이 바로 오우치 가문이었다.

"이젠 하다못해 날짐승마저 내 속을 썩이니, 이제 진짜 믿을 것은 선사뿐이오."

"열심히 보필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치쿠젠, 치쿠고, 히고는 조선이 정복했고, 사츠마와 오오스미의 시마즈 가문은 조정을 배신하고 조선에 항복했습니다. 큐슈 서북쪽 히젠과 동남쪽 휴우가는 이리저리 쪼개진 호족들의 세력이 약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 저도 부젠을 잃고 말았으니, 남은 것은 분고의 오토모 가문 하나뿐입니다."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며 요시모치가 말했다.

"알고 있소. 분고의 오토모 가문마저 조선에 패하고 큐슈가 조선 손에 떨어지고 나면 협상이고 뭐고 의미가 없어지겠지. 내 생각이 짧았소. 조선이 생각만큼 강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남조 세력들과 싸워서 기운이 빠진 틈을 타 어부지리를 얻으려 했는데, 조선이 멀쩡히 큐슈의 슈고들을 각개격파해 버렸소. 차라리 맨 처음부터 시간을 끌지 않고 큐슈의 슈고들을 한데 뭉쳐 싸우게 했으면 더 나았을지 모르겠소."

"쿠보의 탓이 아닙니다. 제가 조선군의 전력에 대한 해석을 그르쳐서 쿠보께서 그리하신 것이니 오히려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선사께서도 부젠을 잃었으니, 뼈아픈 실수라고 할지언정 책임을 물을 수는 없소. 게다가 이미 지나가 버린 일 아니오."

"그럼 어찌하시겠습니까?"

요시모치는 눈에 띄게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저번에 조선의 왕자가 요구한 조건대로, 큐슈가 조선에 넘어갔음을 인정하고 항복하겠소. 대신 그 앞에 있었고 뒤에 생길 일들, 즉 선사께서 조선군에 대항하는 부젠 호족들을 도왔던 것과 앞으로 오토모 가문이 조선에 저항하는 것은 우리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확답을 얻어 주시오."

거기까지 말한 요시모치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전에 은밀하게 말했던 조건도 들어달라 요청하시오. 조선과 명나라를 들쑤셔 일을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해적들은 전부 남조 추종 세력들이고, 해적질 지시도 남조에서 시킨 것임을 자백받았다는 내용을 서신에 포함시켜 주겠다는 그 조건 말이오."

일이 생각대로 풀려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모리하루가 말했다.

"그러면 책임의 근원을 남조 탓으로 돌릴 수는 있겠지만, 큐슈를 내어 준 책임을 쿠보께 물으려는 이들은 여전할 것입니다."

"애초에 지금 상황에서 큐슈를 다시 찾을 가망도 없소. 어차피 잃을 거라면 아무것도 못 건지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책임을 더는 게 낫소. 게다가 나에게 책임을 따질 놈들은 어차피 내 자리를 노리는 놈들뿐이오. 내가 설령 조선을 몰아내고 큐슈를 되찾더라도, 그동안 있었던 피해가 크다며 책임을 물을 놈들이오."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조카와 함께 내려가서 조선의 왕자와 협상하겠습니다."

어둡다 못해 침통한 표정이 된 요시모치가 끄덕이며 말했다.

"고생해 주시오. 이만 가 보셔도 좋소. 난 술이라도 마셔야 오늘 잘 수 있을 것 같소."

* * *

그날 밤.

미야코. 오우치 미야코 저택.

영지인 스오에 있는 것보다 훨씬 검소하게 지은 미야코의 저택에 앉은 모리하루는 장지문을 다 열어놓고 정원을 보며 술잔을 홀짝이고 있었다.

"숙부님, 날이 찹니다. 장지문이라도 닫고 드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옆 방에서 들어오며 걱정스럽게 묻는 조카 모치요의 말에, 모리하루는 싱긋 웃었다.

"괜찮다. 겨울 달과 정원이 어우러진 경치가 지극히 좋아 추운 것도 모르겠구나."

그리 말하는 모리하루의 앞에 큼직한 술병은 하나였지만 술상은 하나가 더 차려져 있었다. 그 상의 술잔은 아직 비워져 있지만 안주와 젓가락은 정갈히 놓여 있었다.

"더 오실 분이 있으십니까?"

"형님 몫으로 차린 것이다."

술상을 보던 모치요가 뜻밖의 대답에 모리하루를 보았다. 그리움과 슬픔이 담긴 숙부의 눈빛에 모치요도 부친을 떠올렸다.

"형님의 아들인 네가 앉아서 안주라도 좀 들거라. 형님께서도 상을 그냥 두는 것보다 그걸 원하실 것 같구나."

"예, 숙부님."

조심스럽게 맞은편 술상에 앉아 젓가락을 들고 말린 사슴고기를 한점 집어 먹는 조카를 흐뭇하게 보던 모리하루가 입을 열었다.

"형님께서 그리되시고 나서 아들인 너는 일곱 살의 어린아이인데, 가문 안에서나 밖에서나 자리를 노리는 이들이 많아 내가 가독을 맡아온 지가 오래다. 하지만 이제 네가 장성했으니 조만간 너에게 가독 자리를 넘겨주마. 형님의 아들인 네가 마땅히 이었어야 할 자리를 내가 잠시 맡았던 것뿐이니 사양하지 말거라."

뜻밖의 말에 모치요가 젓가락을 멈추고 말했다.

"제가 장성했지만 아들은커녕 딸도 없습니다. 오우치 가문의 위기를 극복하신 것은 숙부님이시고, 마침 숙모님께서 회임 중이시니 태중의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후계자가 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네가 계속 자식이 없을 거라 정해진 것도 아니고, 태어날 아이가 아들이라 정해진 것도 아니다. 장자가 가문을 잇는 것이 오우치 가문의 오랜 전통이니 네가 잇고, 정 너에게 후사가 없고 이번에 태어난 아이가 아들이라면 그 아이를 양자로 들여다오."

"그리하겠습니다."

숙부의 말에서 진심을 느낀 모치요의 대답에 안심한 듯 끄덕인 모리하루가 말했다.

"큐슈를 둘러싼 이번 전쟁이 끝나도 여전히 일본은 소란스러울 것이야. 호족이 주군인 슈고의 자리를 노리고, 슈고의 자식들이 누가 뒤를 이을 것인지 두고 서로 견제하고 다투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은 지체 높은 가문들이 크게 번성하면서도 그런 일이 얼마 없다고 하니, 우리도 그 방법을 따라가면 가문 안에서 더 피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전쟁 중이었다고는 하지만 자기 손으로 동생을 죽인 일이 떠올랐는지, 모리하루는 술병을 기울여 잔을 채우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정말 웃긴 일이야. 남조 놈들도 배신하고, 조정에서도 토사구팽하고, 이웃한 슈고와 호족이라는 놈들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결국 우리 살길을 터주고 복수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바다를 건너온 조선이라니."

"오우치 가문이 삼한 혈통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개를 끄덕인 모리하루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명나라가 시비 거는 것을 피하고자 몇몇 제도와 용어의 격을 낮추었다고는 하나 해동의 땅에서는 비길 자가 없이 강하고 존귀한 것이 조선의 대왕이다. 자칭 황제라고 하면서 실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미카도의 신하로 남느니, 강성한 임금의 제후가 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지."

"맞습니다. 미카도는 그저 필요할 때 문서에 도장이나 찍을 뿐인데 그 격만 높아서는, 쇼군이 일본국왕을 칭해서 명나라에 조공을 마치고 나라에 이익을 얻는 데에 방해만 되지 않았습니까. 애초에 미카도가 천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게 된 지도 이미 200여 년이 되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살아서는 문짝(미카도)이라 불리고, 죽어서는 집(인)이라 불리는 것이 고작이지. 그래도 죽고 한 번 더 죽으면 궁궐 취급 비슷한 거라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

얘기가 얘기인지가 작은 소리로 나눈 대화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 죽여 큭큭거리며 웃었다. 한참 웃은 모리하루가 잔을 다시 채워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와 이리 얘기하니 참 좋구나. 형님하고도 이렇게 농을 주고받으며 술잔을 기울이곤 했었지."

그렇게 말하고 단숨에 들이켠 모리하루에게 모치요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과음하시면 안 됩니다. 내일 바로 영지로 내려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괜찮다. 술이 좋아서 그런지 취하지도 않는구나. 너도 한잔 받겠느냐?"

모치요는 잠시 망설였지만, 모리하루가 딱히 취한 것 같지도 않았고, 스스로도 부친 생각이 났기에 술잔을 들었다.

"그러면 한 잔만 받겠습니다."

모리하루가 따라준 술잔을 아무 생각 없이 입에 털어 넣은 모치요의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잠시 그대로 굳어 있다가 꿀꺽 삼키고는 연신 기침하는 조카를 보며 모리하루가 껄껄 웃었다.

"술이 너에게는 많이 독한가 보구나. 역시 내가 다 마셔야겠다. 이 술을 마시고 미카도와 쇼군에게, 그리고 남조와 야마나 가문 놈들에게 몰락을 안겨 줄 것이야."

그리고는 술병을 기울여 자기 술잔을 가득 채우고는 천천히 들어 올려 마셨다.

모치요는 지독하리만치 쓴 쓸개 탄 물을 태연하게 마시는 숙부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이윽고 음미하듯 잔을 비우고 내려놓은 모리하루의 취기 없는 눈에, 마루에 켜놓은 촛불이 반사되어 활활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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