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035화
35화
박초의 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양녕과 이종무가 서로를 흘끗 보았다.
분명 일기도에서 출정하기 전 대마와 일기의 지사 대리로서 해야 할 일의 방침을 정해줄 때, 일기도의 모든 주민을 압송하고 재산을 몰수하라는 양녕의 지시가 과하다며 수색할 때 약탈품이나 노예가 나오지 않은 집은 일반 백성으로 대우해도 좋다는 추가 방침을 받아낸 것이 박초였다. 그런 박초가 며칠 만에 추가 방침이 아닌 양녕의 원래 지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주민을 압송하고 가산을 전부 몰수하다니. 설마 모든 집에서 약탈품이나 노예가 나온 것이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저 대군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제 생각이 바뀌었기에 대군의 처음 지시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겐가?"
몇 집 수색하다 마음을 바꿀 수도 있겠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바뀔 줄은 몰랐던 양녕과 이종무가 박초에게 물었다.
"첫 집을 수색할 때였습니다. 노예를 부릴 만큼 큰 집도 아닌 것 같고, 약탈품도 나오지 않아서 일반 백성으로 간주하고 다음 집으로 가려 했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집 뒤로 가보니 흙바닥에 주변이랑 색이 조금 다른 곳이 있어서 파 보았습니다."
"약탈품을 숨겨 뒀던 것이오?"
"시체가 나왔습니다.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고, 귀에는 귀걸이를 걸었던 뚫은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에서 끌려와 노예가 된 자였던 것 같았습니다."
무덤덤한 박초의 말에 지휘소 천막 안에 적막만이 가득 찼다. 그 적막 속에서 박초가 말을 이어갔다.
"약탈품이나 노예가 나온 집은 재산을 모두 뺏기고 노비가 될 것이라는 걸 알기 전에도 그런 짓을 한 것입니다. 대군과 정동군단장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해적들의 섬에 무고한 자는 없습니다. 피 묻은 이익임을 알면서도 나눠 먹은 놈들은 결국에는 생각도 행동도 해적 놈들과 같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집에서 그 꼴을 본 뒤로는 제 어리석은 미련을 버리고 전부 대군의 첫 지시대로 처리하는 중입니다."
차가운 박초의 말투에서는 언뜻언뜻 분노한 기색이 느껴졌다.
"그런 경우가 더 있었소?"
"약탈품을 묻거나 버린 경우도 있고, 노예를 죽이지는 않아도 숲에 내다 버리고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 잡아뗀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미 열 건이 넘었고, 병사들을 시켜서 섬을 샅샅이 뒤지고 수상한 곳은 모두 헤집고 파내게 시켰으니 앞으로 더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알겠소. 그런 놈들은 조선에 압송할 때 특별히 어떤 죄를 지었는지도 적어서 보내야 그에 마땅한 벌을 추가로 받게 될 것이오. 또한 노예로 잡혀 왔으나 살아 있는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고, 고향을 알 수 없는 이들은 본인들이 원한다면 대마나 일기에 정착시켜도 좋소. 죽은 이들은 같이 끌려온 자들에게 물어봐 출신이 밝혀지면 죽어서라도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해 주고, 연고가 불확실한 이들은 잘 묻고 장사 지내 주시오. 나머지 업무는 하던 대로 하시오."
"알겠습니다."
며칠 사이 변해 버린 박초의 모습과 조금 전 들은 흉흉한 이야기에 가라앉아 버린 지휘소의 분위기를 바꾸고자 헛기침을 두어 번 한 양녕이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그럼 장수들께서 다 모이셨고, 대마와 일기의 업무 지시도 끝났으니 원래 오늘 모인 목적대로 향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하겠소. 이것이 석성진 부근 사찰과 사당에서 찾은 지도에, 포로와 승려들에게 알아낸 것을 합쳐 새로 만든 구주도의 지도요."
그렇게 말하며 양녕이 탁자 위에 지도를 펼쳤다. 실제 지리와 조금씩 다르거나 이상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제법 정확한 지도였다.
사실 양녕의 머릿속에 거의 정확한 구주도의 지리 지식이 있기는 하지만, 갑자기 너무 정확한 지도를 만들면 주변에서 이상하게 여길 것이어서 중요한 부분에만 조금씩 지식을 반영해서 만든 지도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선 구주도의 상황을 설명하기 전에, 일본에서 구주도의 군현을 어떻게 나눴는지부터 설명하겠소. 각 고을의 위치를 알아야 앞으로 설명을 듣거나 작전을 짤 때 이해가 쉬울 테니 말이오."
막대를 집어 든 양녕이 구주도 전체를 크게 넷으로 나눈 굵은 선을 막대 끝으로 따라가며 말했다.
"옛 일본에서 처음으로 크게 나눈 고을 구분은 축자(츠쿠시), 풍(토요), 비(히), 웅습(쿠마소)의 넷이었소. 우선 북부의 축자는 조선에 가까운 항구와 옛 관청터인 다자이후는 물론이고 제법 넓은 평야도 가지고 있소. 그래서 구주도 전체를 가리키던 옛 이름인 축자도를 그대로 고을 이름으로 쓰게 될 정도로 예로부터 구주도의 중심지였소."
이번에는 지도에서 동쪽과 서쪽을 순서대로 짚어가며 말했다.
"동쪽의 풍은 지역 대부분이 산이지만, 그 산 아래에 있는 평야 지역은 비옥하고 풍요롭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소. 서쪽의 비는 아소산과 온천산(운젠다케)이라는 두 큰 화산이 있어서 왜말로 불을 뜻하는 말과 비라는 한자의 음이 같아 비라 이름 지어졌소."
끝으로 구주도의 남쪽 1/3가량을 차지한 지역을 짚었다.
"여기는 일본의 중심지에서 멀어 오랫동안 동화되지 않은 이민족이 살던 곳이오. 그들을 곰처럼 거칠고 짐승 같은 이들이라 비하하여 웅습이라 부른 것이 그대로 지명이 되었소."
"북에 축자, 동에 풍, 서에 비, 남에 웅습이군요. 축전이니 비전이니 하는 지금 지명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까?"
최윤덕의 질문에 이번에는 각 지역을 또 나누는 가느다란 선을 막대로 따라가며 양녕이 대답했다.
"그렇소. 이 지역들 가운데 축자, 풍, 비의 세 지역은 각각 반으로 나누고, 왜경(교토)에서 올 때 먼저 닿게 되는 가까운 쪽을 전, 먼 쪽을 후라 덧붙였소. 그래서 축전, 축후, 비전, 풍후 등의 이름이 된 것이오. 이민족의 땅이던 웅습은 따로 셋으로 나누어서 서쪽에서부터 살마(사츠마), 대우(오오스미), 일향(휴우가)이라 이름 붙였소. 이렇게 총 아홉 고을이 설치되었다 하여 그 이름을 구주라 하게 된 것이오."
"과연. 그런 것이었군요. 변방인 일본에서도 또 변방인 섬에 너무 거창한 이름이 붙었다 생각했습니다."
구주가 고대 중국의 아홉 행정구역에서 유래해 전 중국을 가리키는 별칭으로 쓰이는 이름임을 떠올리며 최윤덕이 말했다.
"이름만 거창하지 실제로는 난장판이오. 호족들 가운데 그나마 세력이 큰 자가 우두머리를 자처하고, 그 우두머리 영주들 중에서도 세력이 큰 자를 조정에서 태수로 임명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죽을 때까지 태수를 하고 그 자식에게 세습되오. 태수들 세력도 제각각이라 그 지역 호족들을 모두 제패한 이가 있는가 하면 호족들 대표로 감투만 겨우 쓴 이들도 있소. 심지어 태수로 임명하는 것도 왜황이 아니라, 고려처럼 정권을 잡은 무신들의 우두머리인 정이대장군(쇼군)이오."
"그렇게 난잡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태수들이 다 무사 출신이라면 뭉쳐서 정동군을 막으려 들면 버겁지 않겠습니까?"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오. 내가 구주탐제에게 준 서신이 별문제 없이 일본 조정에 올라갈 뿐만 아니라 구주도 태수들에게도 전해진다면 말이오."
"그 서신 내용이 정확히 어떤 것입니까?"
상륙 준비를 하느라 바빠 당시에 자세히 듣지 못했던 기병여단장 우박의 질문에, 양녕이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 구주도는 장차 정복되어 조선의 땅이 되고 조선의 주상께서 지방관을 보내어 다스릴 것이나, 정복하기 전에 무고한 살생을 피하고자 하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항복을 권고한다. 항복하게 되면 일본 조정에서 임명한 태수들은 모두 식솔들을 데리고 왜경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호족들은 조선의 법도에 따라 사병을 모두 폐지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역모죄로 간주될 것이다. 만일 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한 이들은 적으로 간주하고 몰살할 것이다. 이는 일본 조정에서 구주도 태수들이 왜구 짓 하는 것을 단속하지 않고 방치해 조선과 명에 큰 피해를 준 벌이며, 명나라의 황제께서도 승인하신 내용이니 감경의 여지는 없다. 이런 내용이었소."
양녕에게 서신의 내용을 들은 우박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전 말씀하신 것처럼 일본 태수들은 조선이나 명나라처럼 중앙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 호족 중에서 임명된 것이라면, 왜경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곧 가문의 기반을 스스로 버리라는 것과 같은 말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아예 뒤가 없게 몰아붙이면 궁지에 몰린 저들이 서로 힘을 뭉치는 것 아닙니까?"
"이들이 그냥 서로 사이가 안 좋은 정도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나, 현실은 그렇지 않소."
지금까지 서신 내용과 양녕의 의도를 자세히 알고 있던 것은 정동군단장과 세 사단장뿐이었던 탓에, 새롭게 내용을 알게 된 여단장들이 다들 의아해하는 것을 본 양녕이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조정이 남북으로 나뉘고, 영주들도 저마다 남북 조정의 편을 들어 내전을 벌인 것은 공들도 알고 있을 것이오."
"예. 북조 세력이 승리해 지금의 일본 조정이 되었지만 겨우 목숨만 부지하는 정도인 남조 잔당에 아직도 충성하는 이들이 있는 것, 나가강 전투에서 싸운 두 가문 중에 시부카와 가문은 북조 세력 중에서도 아예 정이대장군 가문의 방계이고 쇼니 가문은 남조 충성파인 것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소. 그 두 가문만이 아니라 구주도의 다른 태수들도 남북조 내전기에 저마다 편을 갈라 싸웠소. 그 여파로 아직도 구주도 태수와 호족들은 지금의 북조 조정에 충성하는 가문, 남조 조정에 충성하는 가문뿐만이 아니라, 딱히 어느 쪽에도 충심 없이 이득에 따라 편을 옮긴 가문부터 한 가문 안에서 지지하는 조정이 남북조로 갈린 이들까지 다양하오."
거기까지 말한 양녕이 잠시 장수들을 둘러보고 다음 말을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구주도의 모든 세력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이고, 항복하더라도 태수들은 왜경으로 돌아가라는 권고를 보내 놓고서도 남조나 북조 세력 중 한쪽하고만 싸우고 다른 쪽과는 크게 싸우려 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소?"
양녕의 말에 깨달았다는 표정이 된 우박이 말했다.
"남조 세력과 싸우지 않으면 북조 세력들과 조정은 남조 잔당이 외세를 끌어들여 구주도를 기반으로 남조를 다시 일으키려 한다 생각할 것입니다. 반대로 북조 세력과 싸우지 않으면 남조 세력들은 북조 조정에서 기어코 외세를 끌어들여서라도 자신들을 확실하게 없애 버리려 한다 생각하겠지요."
"맞소. 거기다가 남조 충신인 미츠사다는 우리에게 포로로 잡힌 뒤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으로 보이게 만들 것이고, 북조 조정에서 보낸 지방관인 요시토시와 그 사촌은 우리가 추격했는데도 전혀 공격받지 않고 서신만 받고 무사히 돌아갔으니, 양쪽 다 의심의 불씨는 이미 타기 시작했을 것이오."
"북조 조정 입장에서는 구주도의 태수들이 모두 협력해야만 막아 낼 수 있으니 조선의 항복 권고 내용을 모든 태수들에게 알려야 하지만, 그걸 알리는 것과 동시에 태수들이 서로 의심하면서 내분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로군요."
"뭉쳐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서로 의심하고 내분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각개격파한다면 그야말로 어부지리입니다. 외통수도 이런 외통수가 없습니다."
양녕의 설명을 들은 여단장들이 감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과찬이시오. 아직 외통수라고 하기에는 이르오. 구주도를 완전히 정복해 조선의 영토로 만들 때까지는 이긴 것이 아니니 말이오."
"그래도 적들을 뭉치지 못하게 한다는 목적을 이루는 데에는 외통수라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우박의 말에 양녕이 여유롭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꼭 그렇지만도 않소. 아직 한 수 더 남았으니까."